'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국 교도소에 수감된 부재자 투표를 3월 28일 이전에 입소한 수용자만 허용해,

그 이후에 들어 온 수많은 수용자들의 투표권을 박탈했다.

의도적인 투표권 침해는 아니겠지만, 행정편의주의에 따른 직무유기다.

지난 3일, 벌금 대신 ‘서울남부교도소’에 수용되었으나, 사전투표일에 투표를 못하게 했다.

교도관에게 항의 했으나 '중앙선관위'의 지침에 따른 조치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중앙선관위'에서 투표률을 올리기 위해 방송이나 신문에 쏟아 붓는 나랏돈이 얼만데,

하고 싶은 사람도 못하게 하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들어간 시간대에 같이 간 사람만도 열 명이 넘었는데, 11일까지 들어 온 수용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전국 교도소의 수용자를 더한다면 투표 못한 숫자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닐 것이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개판되도록 방임한 것만도 용서 못할 죄인데,

중요한 투표 절차마저 관료적인 관습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부재자 투표가 안 된다면 사전투표나 거소투표로 해결하야 할 일 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납득할 만한 해명과 시정을 촉구한다.


글 / 조문호







서울남부교도소 정문


벌금대신 몸으로 때우려는 꼼수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보름동안 몸 관리하며 충전할 속셈인데, 막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사전투표를 못하게 했다.


며칠 전 교도관 반말에 열받아 혼낸 일이 있었는데, 미운털 박혀 나만 못하게 한 것으로 알았다.

참정권 침해라며 교도소장 면담을 요청 했더니, 선거담당교도관이 찾아왔다.

이유인즉, 선관위의 지침에 따른 조치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재자 투표는 3월 28일 이전에 입소한 수용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개 같은 일이 어디 있는가?

내가 입소할 때 들어 온 사람만도 열 명이 넘었는데, 13일까지 들어 온 수용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전국의 교도소를 더한다면 투표 못한 사람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닐 것이다.

선관위에서 투표률을 높이기 위해 방송이나 신문에 쏟아 붓는 나랏돈이 얼만데,

하려는 사람도 못하게 한단 말인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개판되도록 방임한 것만도 용서 못할 일인데,

투표마저 관료적인 관습에 빠져 자기네 편한데로 처리하고 있었다.

부재자 투표가 안 된다면, 사전투표나 거소투표에 참여시키면 될 일 아닌가?


이미 사전투표일이 지나버려 정해진 투표일에 찍는 방법뿐이란다.

남은 일 수만큼 벌금 내고 나가라는데, 그걸 누가 몰라서 못하나?

교도관들도 그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틀 당겨 나갈 수 있도록 벌금 20만원 내어 줄 사람이 없냐고 재차 다그쳤다.


하는 수 없어 정영신씨 전화번호를 일러 주었더니, 다음 날 바로 나가라고 했다.

아마 정영신씨가 빨리 내보내라며 십만원을 더보태 삼십만원을 보낸 것 같았다.

마무리 할 일도 남았는데, 정영신씨 선심에 갑자기 쫓겨나게 된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복도 그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서울남부교도소


그런데, 처음 교도소 들어가는 날, 지문채취를 하였으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열 손가락을 다했으나 나오지 않아 별의 별 짓을 다했는데, 왜 지문이 없어졌을까?

지문이 닳아 사라졌다는데, 무슨 중노동 한다고 지문이 지워진단 말인가?

설마, 애무를 너무 진하게 해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또 한가지 반가운 일은 그냥 모르고 넘어갈 뻔한 일을 알게 된 일도 있었다.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지 못해 항소기일을 놓쳤는데,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왜 변호사 면담 때, 그 문제를 말해주지 않았을까?

이미 형기야 마쳤지만, 정식재판청구서를 서부지방법원에 제출했는데, 잘 못된 일은 기어이 바로잡을 것이다.


아무튼,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보낸 나날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감염자처럼 2주일 동안 독방에 격리시켜주어 좋았다.

눈치 볼 사람도 탓할 이도 없으니, 혼자 즐기기는 그지 그만이었다.

외부인 접견도 되지 않고, 목욕이나 운동조차 할 수 없었으나, 견딜만 했다.

한 자리에서 앉았다 눕기만 반복했는데도, 하루가 너무 빨랐다.


오전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열 두시에 점심 먹고, 오후 여섯시에 저녁 먹고,

여덟시에 자는 다람쥐 채 바퀴 도는 일정인데, 시계가 없으니 밥 주는 시간으로 감을 잡을 뿐이었다.

낮 시간에는 티브이나 라디오 방송을 듣기도 하고, 책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밤이 문제였다.


장장 열 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어찌 잠만 잘 수 있겠는가?

실컨 자다 깨어나면 곧 날이 샐 것 같았지만, 새벽 한시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가끔 순찰하는 교도관의 발자국 소리만 지나칠 뿐, 적막강산이었다.

어쩔수 없이 다섯 시간 넘게 생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기회도 흔치 않을 것이다.


독방의 크기는 동자동 쪽방과 비슷하지만, 방안에 화장실이 포함되어 더 좁았다.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월요일마다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옮길 때 마다 조금씩 주거 환경은 나아졌다.


처음엔 종이컵 한 개로 삼일을 버티고, 세재가 없어 휴지와 비누로 식판을 닦기도 했으나,

두 번째 방에 가니 다른 사람이 두고 간 머그컵도 있고, 요구르트 통에 담긴 세제도 남아 있었다.

세 번째 옮긴 방은 세 사람이 사용하는 방이라  넓은데다 주방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혼자 지내는 데는 큰 방이 오히려 불편했다.


물품을 구입하는 것도 품목마다 신청하는 날자와 주는 날자가 제 각각이라 놓치기 일수였다.

없으면 없는 데로 지내면 될 텐데, 빵이나 비스켓 등을 주문하였더니, 밥맛을 잃게 되더라.

가끔은 담배 찾느라 주머니를 뒤지다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겪어 본 구치소 생활인데, 시정해야 할 점도 있었다.

주변 환경이나 시설은  나아졌지만, 억압적인 일제 잔재는 그대로였다.

좌변기 화장실이 방마다 있고, 티브이를 시청하는 시간이 주어지고,

제공하는 음식물은 좋아졌지만,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있는 군대식 점호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까지 짐승에게 먹이 주듯

식구통이란 구멍을 통해 밥 넣어 주는 형태는 여전했다.

다들 받아먹기야 편할지 모르겠으나, 이건 인간을 모독하는 짓이다.


낮 시간에는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따랐다.

티브이야 보기 싫으면 꺼 버리면 되지만, 라디오 방송이 문제였다. 

유일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아침 일곱시 멘트 외는 대부분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스피커가 천정에 달려 있어 껄 수도 없는 일이라 짜증스러웠다.


티브이는 하루 한차례 보여주는 생방송 뉴스 외에는 대부분 녹화방송인데, 어디를 가나 먹는 이야기 뿐이었다.

먹다 죽은 귀신이 화색도 좋다지만, 감방에 갇힌 놈들 침흘리게 하는 것은 무슨 악취미인가? 

오랜만에 본 티브이 방송이라 처음 보는 생소한 프로도 많았다.

보여준 프로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는 ‘그린 북’이었다.

취향도, 성격도 완전히 다른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을 다룬 영화였는데, 시사하는바가 컸다.


좌우지간, 12일 동안의 감옥생활은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처음부터 작정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주변 여건도 따라 주었다.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았다면 어찌 독방에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덕분에 조용히 앉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일도 결국은 스스로를 위한 일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이기심에 가족만 희생시켰다는 생각에 이르니. 돌로 머리를 찍는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여생은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난 14일 정오 무렵, 교도소에서 쫒겨나왔으나,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일단, 마을버스를 타고 오류동까지 나와 목욕탕부터 들어갔다.

머리에 남은 찌꺼기야 교도소에 버렸지만, 몸 찌꺼기를 버리기 위해서다.

뜨거운 탕에 들어 앉아 다짐에 다짐을 했다.

이젠 재미있게 살기로...


사진, 글 / 조문호



















그동안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지난 14일,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삼일을 앞당겨 나왔습니다.


수감자 참정권을 침해하는 중앙선관위의 투표규제에 맞서

거금 삼십만원을 내고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결과는 쪽팔리네요.


대부분 여당이 압승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찍은 용산만 미똥당이 될게 뭔가?

안 될 줄 알면서도, 빈민을 걱정해 준 정의당 정연욱 후보를 찍어 준 피눈물의 댓가였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진보정당의 자존심을 지켜 준 정의당의 몰락이었다.


또 한 가지 신통한 것은 내가 태어 난 경상도 창녕은 물론,

작업실 처럼 더나드는 정선에 이르기까지 나와 관련된 모든 지역은 미똥당이 되었다는 거다.

내가 찍으면 잘 떨어지는 오래된 나의 선거 징크스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건, 황교안, 나경원, 김진태, 차명진을 비롯한 미똥당 쓰레기들이 처리되었다는 점에 위안이 된다.

그리고 적페 청산에 힘이 실리게 된 더불어 압승은 기대해 볼만하다.

이제 눈앞에 닥친 검찰개혁은 물론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모든 적폐들을 하나 하나 손봐야 한다.


힘없는 약자들도 더불어 함께 사는 그런 세상을 위하여...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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