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돌계단 주위에 진달래가 피어있다.

이 화창한 봄날,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도망치려는 내 마음을 눈치 챈 걸까?

아니야! 아니야!” 다독였으나,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지난 3월 29일부터 만지산에서 나흘간 머물었다.

'동강할미꽃축제' 사진전이 날 붙잡은 것이다.

전시장은 정영신 동지에게 맡겨두고,

잠시 만지산 집으로 들어 왔다.





'통도사' 수안스님은 꿈꾸는 집이라 이름 주셨지만,

꿈만 꾸어 그런지, 힘들어 못 살겠다.

이제 영정사진으로 사용하려는 알 몸까지 지쳐버렸다. 



 


지난번 바쁘게 떠나며 챙기지 못한 것도 거두고,

방 청소를 하려니 물 부터 받아야 했다.

지하수 분쟁의 연결점인 우리 집 땅속 밸브는 늘 잠겨있다.


밸브를 열면 물이 새니,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조금만 받으려고 밸브를 살그머니 열었는데,

호스 연결점에서 물이 삐쳐 올라 물을 뒤집어 써야 했다.



 


제기랄!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수도정 사준지가 오래건만, 옆집 때문에 고치질 않는다.

더 이상 다른 집은 물 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연판장에 서명하지 않았으니, 미운털도 박혔을 것이다.


수시로 열리는 지하수 회의에 참석 할 수 없어

위임장에 도장 찍어 준지 몇년이 되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본 정관에 어이 없는 항목도 있었다.

헌집을 새집으로 개조해도 이 백 만원 내야 한다는

우리 집을 겨냥한 내용도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물싸움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 지켜본 죄다.

얼마 전 정선 군수 중재로 물주겠다는 약속을 했다지만,

아직 마음의 빗장은 열지 않은 것이다.


한 집은 연결되었다지만, 고장 난 우리 쪽 라인을 고치려면

수도관이 지나는 밭 주인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그 밭 주인이 누구더냐?

여지 것 물 분쟁을 주도한 사람이 동의서를 쓰 주겠는가?





이제 더 이상 쪽팔리게 하지 말고. 제발 끝내라.

자기중심의 정선 산골사람들 근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돈 때문에 변해버린 사람들 모습이 싫어졌다.

아무리 살기 좋은 곳도 사람이 싫어지면 못 산다.

 

저 많은 짐들은 어쩌며, 울 엄마는 어쩔거냐?

아직은 미련이란 게 남았으니, 버리지도 못한다.

울 엄마 계신 산소 올라가, 술 한 잔 올리며 하소연 했다.



 


와, 지난번엔 차 쳐 박아 못가도록 용심 부렸소?

산소 왔다 발목 잡힌 지난 이야기부터 꺼냈.

~ 이놈아! 자식 못되게 하는 애미 봤냐?

그 날 가면 다치니까 잡은 거지

그 말을 믿어야지 어쩌겠나?

 

이제 영정이 새겨진 무덤 앞의 목판 사진도 지워지고 있었다.

저 사진이 지워지면 엄마도 지워질 것이라고 말한 그 때가 생각났다.

엄마도 이제 육신이 허물었겠네요. 그만 화장할까요?“라며 슬쩍 떠 보았다.





태우던 버리던 거기 무슨 소용이고!

니 마음 다 안다,

그냥 순리대로 살아라. 모든 건 때가 있다



 


정녕, 만지산의 봄은 오려나?

 

사진, / 조문호





















 

 

 

 




보름 만에 찾은 만지산 집, 반갑게 맞이하네.

지천에 핀 코스모스 덩실덩실 춤춘다.






따가운 가을 햇살에 온 산천이 다 익는다.

오곡백과 만 아니라 내 마음도 익는다.




누렇게 늙은 오이, 늦게 옴을 원망하고

자라다 만 열무는 목마르다 소리치네.







문 지키는 현판은 꿈꾸자며 반기는데,

통도사수안스님, 꿈만 꾸라 쓰 주셨나?




방에 걸린 최씨 할매 기별 없이 떠나셨네.

무정타, 그 책임 아들에게 떠넘긴다.

 

놀러 온 이웃 양반,

네 엄마는 어디가고, 옆집 할매 붙여 놨노?”

 

울 엄마 보다 최씨할매가 예쁘다는 내 대꾸에

사진작가는 죽은 미인도 좋아하나?



울 엄마 산소에 벌초하러 올라가니,

누운 엄마 토라져, 못 본 척 말 던진다.

 

좋아하는 할매나 깎지, 여는 왜 왔노?”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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