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한겨울 인사동에서 만나는 남천(南天)의 소탈한 사군자

 


지난 6월 75세를 일기로 타계한 남천 송수남(1939~2013) 화백은 1980년대 한국의 수묵화운동을 주도했던 작가다. 그가 보여준 묵직하면서도 담백한 수묵화는 현대 한국화단의 결을 깊게 해주고, 풍성하게 해줬다.

홍익대 미대 교수직을 퇴직한 후 남천 송수남은 뜻밖에도 화려한 꽃그림을 내놓았다. 일각에선 수묵화의 기치를 드높였던 그가 원색의 꽃그림을 내놓자 ‘외도’라며 비판적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내 속에서 그런 그림이 막 쏟아져나오니 그릴 뿐"이라며 화려무쌍한 꽃그림과 나비그림 등을 쏟아냈다.

유유자적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남천은 후학들에게 매년 격려금을 말없이 전달하며, 작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예술을, 인간을 끝없이 사랑했던 작가는 작업 틈틈이 동양수묵화의 기본인 사군자 작업도 시행했다. 꽃그림 작업 중간중간 자신의 예술적 고향이기도 했던 매난국죽, 사군자를 치며 마음을 다스리고, 정진했던 것이다.

 

 

 

사군자는 선비 정신의 총아이지만 남천의 사군자는 좀더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붓을 그어내려 보다 조촐하고, 질박한 것이 특징이다. 소탈한 남천의 성격이, 그의 웃음이 사군자 작품에 그대로 녹아든 듯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천이 2000년대에 집중적으로 그린 사군자 작품은이 오는 18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대표 노승진)에서 전시되고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한솔뮤지엄 관장)는 “사군자는 작가의 내면을 가장 솔직히 반영해주는 화목이다. 남천의 사군자는 화려하지 않다. 기술적으로 흥청거리지도 않다. 무심한 듯 하면서 정감이 배어 나온다. 그의 사군자는 혼탁한 현대에 남긴 하나의 메시지다“라고 평했다.

 

 

 

 




ㆍ인사동 노화랑 4일부터 ‘꽃의 화가’ 송수남 매란국죽 유작전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이른 봄 먼저 꽃을 피워 진한 향을 전하는 매화, 때묻지 않아 고결청초하면서 은은한 향의 난초, 꽃들이 져가는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 고고하게 꽃을 피우는 국화, 사시사철 푸른 데다 곧게 뻗어 강인한 기상을 지닌 대나무. 사계절과 때를 같이하는 매·난·국·죽은 각각의 특성이 덕과 학식을 겸비한 군자의 인품에 비유되면서 ‘사군자’로 불렸다.

동양 수묵화의 기본으로 중국 북송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사군자는 고려시대에 도입됐다. 선비정신을 상징하기도 한 사군자는 조선시대엔 문인 사대부 등이 문인화와는 달리 여가가 날 때 틈틈이 즐겼다. 요즘은 취미생활의 하나로 사군자를 즐기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수만명에 이른다. 바쁘고 팍팍한 일상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려는 몸짓의 하나이다.

여기 특별한 사군자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노화랑(서울 인사동)이 마련해 4일 개막하는 ‘남천 송수남, 매란국죽’전이다. ‘현대 수묵화의 거장’ ‘꽃의 화가’라 불리다 지난 6월 타계한 남천 송수남 전 홍익대 교수의 유작들이다. “내 장례식에는 모두가 화사한 복장으로 꽃을 들고, 생전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참석했으면 좋겠다.” 남천은 생전에 이 같은 유언을 남겼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준다.



                                                                                       ‘매화’, 한지에 수묵담채, 34×40㎝



이번 전시회에 나오는 작품들은 남천이 전시회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평소 틈틈이 수양하는 자세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며 먹을 갈고, 붓을 든 것들이어서 의미가 새롭다. 한 거장 화백의 속내가 오롯이 담긴 작품들인 셈이다.

남천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남천 선생은 생전 수묵화 운동을 이끌 때나 2000년대 들어 유명세를 치르게 한 ‘꽃그림’을 그릴 때도 사군자를 등한시하지 않았다”며 “마음을 안정시킬 때, 혹은 여유로운 마음을 그림으로 드러내고자 할 때 특히 사군자를 그렸다”고 회고했다.

화면 한 가득 소담스러운 꽃을 채운 매화, 옆에 있는 괴석이 ‘향에 취해 앓는 소리’를 내게 하는 난초, 붉고 노랗고 때론 푸른색인 국화, 현대적 조형성과 함께 먹의 농담이 조화를 이룬 대나무는 남천만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붓질이 보는 사람까지도 저절로 평안하게 만든다. 평소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는 한지에 먹물이 스며드는 때, 그때의 묵향이 참 그윽하다”고 한 남천의 말이 떠오른다.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 동양화과로 전과한 남천은 상업주의·복고주의 등에 반발해 수묵화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3년부터 유화 등으로 화사한 꽃그림을 그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2005년엔 사군자 작품을 엮은 화집 ‘매란국죽’을 펴내기도 했다. 12월18일까지. (02)73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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