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날부터 정신없이 바빴다.


빨래줄에 걸 사진 값이 없어 허둥대다 전시를 하루 남긴, 밤 늦게서야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주인도 없는 남의 작업실에 들어가 자정까지 사진 뽑아, 자르고 정리하느라 새벽녘에야 간신히 잠들었다.

잠깐 눈 좀 붙인다는 게, 일어나보니 오전 아홉시였다.

부랴부랴 공원으로 달려가 빨래 줄에 사진을 걸었는데, 마침 강 호씨가 공원에 나와 있어 많이 도와주었다.

오전10시경 준비를 끝낼 수 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추어 전시 할 수 있었다.






그 때야 동자동사람들이 새빛 공원으로 하나 둘 모여들어 빨래줄에 걸린 사진들을 돌아보았다.

“여기 용성이 사진 있네, 라면 먹고 있잖아”, “준기 썬그라스 죽이는데!”라는 등 사진을 들여다보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또한 동자동 ‘나눔의 집’에서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추석한가위 합동제례가 열리고 있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차례대로 술을 올리며 조상님께 큰 절을 올렸다.

다들 고향을 찾지 못하는 불효막심에 용서를 비는 듯, 침울한 표정이었다.






오전 11시경에는 주민들에게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도시락과 붉은 사과 한 알씩을 나누어 주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받아들고는 공원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식사하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이 일었다.





그런데 빨래줄 사진전에 이변이 생겼다.


‘동자동 사랑방’의 강동근 사업이사가 돌아다니며 5,18묘역 참배사진을 골라 찢고 있었다.

그것도 도끼로 내 목을 친다는 등, 끔찍한 욕설까지 퍼 붇는데, 귀가 막혔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원호씨가 강씨더러 죽일 놈이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평소에 말 한마디 없던 분께서 어지간히도 화가 났던 모양이다.


강씨가 찍힌 사진은 지난번 광주 5.18묘지에서 찍은 공식적인 사진들이다.

강씨는 개인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동자동 사랑방' 임원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자가 막말을 해대며, 허락도 받지않고 남의 사진을 손괴한 것은 초상권 침해가 아나라 범죄행위다.

이건 분명 개인적 앙심에 의해서거나, 아니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헤프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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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은 개인 기념사진이 아니라, 주민들의 시대적 역사성도 지닌다.

구린데가 있어 자기의 모습을 숨겨야 한다면 임원직을 맡아서는 안되고,

그런 공적인 자리에는 나오지 말아야 했는데, 찍을 때 포즈는 왜 취했는가?




당장 공개적인 해명과 사과를 촉구하며,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임원이란 자체가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다.

그 자리에는 동자동 식구들만 있었던 자리가 아니라, 신문 기자들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찢은 일곱장의 518묘역 참배사진은 단체사진이라 먼저 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다.

집에 가져가 찢던 말 던 상관할 바 아니지만, 전시사진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찢는 건,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니다.

다른 사람까지 못 가져가게 방해하는 꼴이니, 그런 이기주의가 어디 있나.


저런 자가 어떻게 '동자동사랑방'의 사업이사가 되었는지도 궁금하지만, 공동체 자체의 존립이 의심스럽다.






그자가 떠나고 나니 김용만, 이기영, 송범섭씨 등 또 다른 사진주인공들이 나타나 싱글벙글 자기 사진을 골라갔다.

뒤늦게 나타난 정용성씨는 자기 사진이 없어졌다며 울상이었고. 정재헌씨도 사진이 없어졌다며 찾고 있었다.

용성이네 가족과 정재헌씨 사진은 그들만 찍힌 사진들이라 누가 전해주려 챙겨 두었을 것이라며 달랬다.


마침 취재를 나왔던 정영신씨가 이제 일 년 동안 동자동을 기록했으니, 끝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사진을 훤히 아는 자가 이 무슨 소린가? 이제까지 주민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시작일 뿐인데...






솔직히 사진쟁이로서의 욕심이 없을 수는 없다.

빈민들이 사는 쪽방 촌이 동자동 뿐만 아니니, 서울의 중점 관리지역 다섯 곳이라도 다 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 곳에 2년씩만 잡아도 10년이나 걸리는데, 그 때까지 내가 살 수 있겠나?

그 동안 정들었던 사람이 눈에 밟히기도 하고...






추석 하루전인 3일은 ‘동자동사랑방’에서 마련한 합동제례에 음식을 나누며 노래자랑까지 하였으나,

사진 때문에 허둥지둥 돌아다니느라, 가 보지도 못했다.





찍힌 사람들과의 약속이 추석이기도 하지만 사진 뽑을 돈이 없어 미루다, 임박한 3일에서야 간신히 준비를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정선아라리촌의 ‘문학콘서트’에서 만난 김여옥시인이 오래 전부터 주려고 꼬불쳐 두었다며 10만원을 주었고,

서초동에서 밥 집하는 누님이 과일이라도 차례상에 올리라며 보내 준 돈으로 사진 만들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러한 급박한 시기에 정영신씨 프린트기에 이상이 생겨버렸다. 분명 잉크가 남았는데, 없다며 작동이 되지 않았다.

연휴라 수리기사를 부를 수도 없지만, 새 잉크를 구입할 가게도 없었다.

다행히 사진하는 후배 하재은씨에게 부탁하여 주인도 없는 작업실에 처 들어가,

자정이 가깝도록 프린트 해, 어렵사리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재은씨에게 재료비라도 보내드리려고 연락했더니, 황송하게도 받지 않겠다는 거다.

전시협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이 돈은 내년 어버이날 사진제작비로 쓰기위해 묻어두었다.





사실, 이번 빨래줄 사진 나눔전도 ‘동자동사랑방’에서 행사를 치루는 3일에 할 것인가?

아니면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치루는 4일에 할 것인가? 망설였으나

일이 풀리지 않아 떠 밀려 4일에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더 잘된 것 같았다.


전 날은 박원순 시장을 비롯하여 기자들까지 달라붙었으니, 안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보여주기 위한 성격이 짙어 부담스러울 뿐더러, 추석명절이 아닌, 하루 당겨 합동제례를 치루는 것도 마땅찮았다.

추석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진짜 오 갈 때 없는 빈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 년에 봄 가을 두 번씩, 어버이날과 추석마다 사진을 돌려 줄 생각이다.

때로는 사진 값 조달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이들의 흐뭇한 표정에서 보람도 느낀다.


특히, 그 날은 사진 찍는다고 멱살까지 잡았던 분이 찍어 달라 했고,

평소에 카메라를 피해 다니던 분도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이제야 내가 하는 일이 단발성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그 진정성을 읽은 것이다.






요즘 나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 드라마틱하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일들이 하나같이 아슬아슬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아마, 만지산 산신령님이 도와주는 것 같다.


“산신이시여!  이 늙은 몸 하나 제물로 바치려 하오니,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올 해로 여덟 번째 열리는 동자동 어버이날 행사가 지난 5월8일 오전10시부터 오후2시까지 동자동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해마다 어버이날을 맞아 ‘동자동 사랑방’(대표 김호태) 식구들이 마련하는 잔치인데,

주민들로 부터 모금한 돈으로 손수 음식을 장만하는 등 서로 협력하여 정 나누는 자리다.

외롭게 사는 쪽방 촌 빈민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며, 이웃과 소통하게 한다. 

다른 음식 나눔과는 달리 반주까지 곁들일 수 있었으니, 더욱 즐거운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공원에서 술을 못 마시게 되어 있지만, 이 날만은 '동자동사랑방'에서 제공한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주민들과 노숙인 등 약300여명이 모여 모처럼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미역국과 밥 부침개, 과일, 소주, 막걸리, 음료수 등 준비한 음식이 푸짐했으나,

굶주린 이들이 너무 많았는지 오후2시까지 시간을 채울 수가 없었다.

이 잔치는 다른 곳에서 전혀 후원을 받지 않고, 마을사람들 성금으로만 치루어 졌다는 점이 좋았다, 

잔치비용으로 총 250만원을 들였다는데, 229명의 주민으로부터 한 푼 두 푼 모은 모금액이

전체 소요비용과 비슷한 2,513,230원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일 손을 보태고 협력한 애착의 산물이었다.

어려운 쪽방주민들이 더 어려운 노숙인들을 대접한 고마운 자리였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 빨래집게 사진 나눔전도 열었다.

공원 주변 나무 사이로 쳐진 빨래 줄에다 에이바이텐 규격의 사진 135장을 내 걸었다.

7개월 동안의 기록에서 골라 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몇 달 전에 찍은 결혼사진을 여지 것 전해 주지 못했으니, 그동안 당사자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민망스러웠겠는가?

돈 좀 생기면 한꺼번에 돌려주겠다며 미뤄왔는데, 어버이날을 기해 일을 저지른 것이다.

만든 사진도 주로 초상사진이나 기념사진 등 본인위주의 사진을 골랐는데, 엿쟁이 마음이니 너그러이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서로 돌려보기 싶게 빨래 줄에 사진을 걸어두고, 본인이 집에 갈 때 거두어 가기로 하였으나,

안내 글을 못 보았는지, 술이 취해 잊어버렸는지,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만든 사진이야 다음에 전해주면 되지만, 미처 만들지 못한 사진이나 추가로 촬영하는 사진은 올 추석잔치에서 돌려드리기로 했다. 

본인 사진이 없다고 서운해 하지 말고, 혹시 동자동 거리나 공원에서 만나면 “어이 조기사! 사진 한 판 멋지게 찍어”라고 말하라,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다. 그 기록이 우리의 역사이고, 크게는 대한민국 역사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회장과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 우건일 이사장, 남영동 동장 마필승씨가

나와 주민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고, 정의당 용산지구 정연국위원장, 사진가 김 원, 정영신씨도 참석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건강한 여름 맞으시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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