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 밤 거리

본지 편집국은 11월 7일(금)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서울의 종로구 인사동과 홍익대학교 주변, 이태원과 강남 가로수길 일대를 스케치하였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도 서울을 대표하는 지역의 밤거리는 활력이 넘쳤다. 역사의 어제와 오늘이 만나 숨 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그중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며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는 인사동을 중심으로 주말을 취재하였다.

[대한뉴스] 글 김길남 기자 | 사진 장해순 기자

인사동의 역사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조계사 바로 옆에는 조선 시대 화가를 양성하고 선발하던 도화서가 있었다. 매년 화가를 뽑는 시험이 있었던 도화서에는 전국의 화원 지망생이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인사동엔 지필묵을 파는 가게들이 생겼다.

인사동에 처음 고미술품 시장이 형성된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이때부터 인사동은‘한국 전통 문화재 유출의 현장’이 된다. 몰락한 조선 양반댁에서 집에 있던 고미술품을 일본인에게 내다 팔기 시작했다. 보리쌀 몇 되와 맞바꾸기 위해 전국의 고미술품이 인사동으로 모였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인 대신 미군과 유럽인들로 주 고객이 바뀌었다. 인사동은 뒷골목에 볼 것이 많은‘매니스 앨리(Many’s Alley)’로 외국인에게 불리기 시작했다.

1970~80년대부터 인사동에 화랑·표구사 등의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각 대학에서 미대 졸업생이 나오면서 전시회를 위한 화랑이 들어섰다. 이들의 그림을 표구하려는 표구사와 이들에게 붓을 파는 각종 필방이 속속 생겼다. 전시의 마지막 밤인 화요일과 전시의 시작 날인 수요일 저녁 인사동 인근 주점에는 뒤풀이하려는 예술가들로 북적인다.

19:00 북촌, 한복을 입은 학생들의 역사 교육


기자가 취재를 시작하자마자 한복을 곱게 입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북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가가‘어떻게 한복을 입고 북촌에 왔느냐’고 묻자, 학생들은 여의도여자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로 담임 이윤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경희궁과 경복궁, 북촌을 탐방 중이라고 했다. 이윤 선생님은‘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만큼, 우리의 전통복식인 한복을 입고 탐방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학생들이 흔쾌히 받아들여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십여 명의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건강한 쾌활함이 넘쳐났다.

인사동, 거리 풍경


인사동 초입에 들어서자 거리 예술가라고 밝히는‘버블맥스’가 비눗방울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관람객은 여덟 명에 불과했지만, 예술가의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거리 예술가를 뒤로하고 50m쯤 인사동 길로 들어서자 달고나를 팔고 있는 노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단속을 피해서 하루 2시간 동안 장사를 한다는 노부부는 하루 수입, 만 오천원으로 생활을 꾸린다고 했다. 부산이 고향인 노부부는‘젊어서 풍족한 삶을 살았지만 사기를 당해 하루아침에 거리에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인사동 길에서 노점상 단속은 필요하다.’고 노부부는 입을 모았다. ‘비록 단속에 걸리면 벌금도 물어야 하고 물품들을 모두 압수당하지만, 단속이 없다면 인사동 거리는 무질서가 난무할 것’이라며 인사동 거리에 대한 사랑을 앞세웠다. 할머니에게 고단하지 않으시냐고 기자가 묻자“인사동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자신도 기쁘고 행복해서 이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하였다.“달고나를 사 드시는 분들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어릴 적 침을 묻여 먹었던 추억이 떠오른다며 감사하다는 덕담을 건네기에 보람도 있고 즐겁다.”고 했다. ‘손님이 없어서 오늘은 일찍 들어가겠다.’며 자리를 정리하였다. 할머니는 거리 바닥에 묻은 하얀 설탕 가루들을 마치, 안방을 청소하듯 정성스럽게 닦았다.


▲ 달고나를 팔고 있는 노부부

가족단위로 통기타 가수의 거리공연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을 만났다. 그는 캐나다인 죠슈허(37)씨로‘미국인 아내와 7년 전에 결혼하여 광주광역시에 정착하였다.’고 했다.‘서울 관광을 위해 당일 오후에 서울에 올라와 인사동을 제일 먼저 찾았다.’며‘인사동은 한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관광객의 취향도 다양해지고 인사동을 구성하는 콘텐츠들도 많아져 기자가 자신이 있게 권할만한 식당은 마땅치 않다. 예전에는 값싸고 질 좋은 음식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고급화되고 가격도 부담스러워 마음 편하게 먹을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평일에 인사동을 찾는 분이라면‘인사동11길’에 자리한 서울중앙교회에서 청결하고 정갈한 채식뷔페를 드셔 보시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취재 후기
세계 대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많은 기념품에서 중국산을 발견하고 적잖게 당황한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대한민국의 명소인 인사동을 비롯한 종로구의 많은 상점에 중국산 제품들이 점령한 것은 어색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얼과 자부심이 담긴 문화와 상품들로 관광객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뉴스투데이=양문숙 기자)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발걸음이 천금만금 무겁던 저녁 인사동 초입에 들어섰을 때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었다. 습도가 높아 온종일 눅눅한 오후와는 달리 밤공기가 시원하다. 사람들이 모여 있어 호기심에 그곳을 향했다. 비눗방울공연이다.

 

 

눈앞에 귀여운 꼬마가 팔딱팔딱 뛰며 비눗방울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비눗방울공연을 하는 아저씨는 자신을 버블맥스라고 홍보하며 재미난 입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연신 비눗방울 만들어 사람들을 향해 날려 보냈다.


 

 

작은 비눗방울이 수없이 나올 때도 있었고 어마하게 큰 방울이 나오기도 했다. 비눗방울 공연하는 아저씨 말처럼 그는 비눗방울아티스트다.

 

초롱초롱 비눗방울이 불빛에 빛나는 것처럼 꼬마의 눈동자도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지금 내가 비눗방울을 보는 느낌과 저 꼬마의 눈에 보이는 비눗방울의 느낌을 너무 다를 것이다. 꼬마는 비눗방울이 만들어 질 때 마다 본능적으로 잡으려고 팔딱팔딱 뛰고 기뻐한다. 너무 행복한 표정이다. 해맑다는 게 이런 거였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나도 저랬을 거야. 너무 까마득한 지난날들이라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 시절 나도 꼬마처럼 비눗방울을 보고 해맑게 좋아했을 것이다.


고단한 오늘, 즐거운 공연을 해준 비눗방울아티스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요, 그리고 해맑은 꼬마의 모습을 보여준 꼬마에게도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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