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Jar

박소영/ PARKSOYOUNG / 朴昭映 / painting

2023_0728 2023_0806

박소영 _Forest_ 캔버스에 유채 _16×12cm_2023

 

초대일시 / 2023_072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5:00pm

 

디아트플랜트 요 갤러리

THE ART PLANT Jo Gallery

서울 중구 을지로92 3301

Tel. +82.(0)2.318.0131

 

사적인 공간 Personal Jar 언제나 그랬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가까이 갈 수록 부딪히고, 그러다가 부서지고. 누군가에게 겁없이 다가서고 나서는 상처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보이지는 않지만 관계 속에서 사적인 공간의 중요성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렇게 관계에 천착하는 나는, 관계 속에서의 사적인 공간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공간의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인간 관계의 다양성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우선 사적인 공간을 만들려면 두 팔을 벌려 동그랗게 자기 구역을 정해 놓고, 그리고 보호막을 친다. 그러면 누구도 침범하지 말아야할 공간이 만들어진다. 공간이라는 것이 생기면 인간은 그것을 자기만의 성향과 취향이 드러나게 만들곤 한다. 그리하여 누구는 쿠션으로, 누구는 뾰족한 가시나무로 또 누구는 깨질 듯 한 크리스탈로 그렇게 각자는 그들이 선택한 창과 방패로 자신이 이미지와 스스로의 공간, 그리고 그곳에 담아놓은, 침범 당하고 싶지않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공간으로 채워 놓는다. 이미지의 선택은 사물에서부터 시작했다. 각자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성향과 사적 이야기는 사소하지만 사물로 이미지를 대변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 이야기로도, 상대의 이야기를 듣거나 말할 때 떠오르는 사물로도, 산책을 하며 보았던 풍경과 같이, 이미지들은 세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상상 속에서 그들의 세상을 꺼내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하찮다 여겨진 사물의 존재감은 인간의 이미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생명을 가진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서로를 알기 위해, 알리기 위해, 혹은 반대로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 맘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한다. 그것은 강인함을 드러내기도, 나약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근사하기도 하고, 시시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아예 관심이 가지 않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나친 관심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렇게 천차만별의 사적인 공간은 형성된다. 자신만의 정체성과 존재감은 성격과 환경, 그리고 기호와 취향들로 사물을 통해 드러나며, 작고 사소한 듯 하지만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언제나 찾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다양한 이미지들은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든 살아가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며, 내가 바라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 깨달음이 늦었던 2023년 칠월에 박소영

박소영 _Emerged_ 캔버스에 유채 _16×12cm_2023
박소영_Butterflies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_Cloud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_Crystal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_Blue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 _Allergy-Nevertheless_ 캔버스에 유채 _28×22cm_2022

Personal Jar Like Personal Space It has always been like that. As you approach, you move away, as you get closer, you collide, and then it breaks. Seeing someone approaching without fear, getting hurt, and turning back, I could not see but felt the importance of personal space amidst relationships. Being obsessed over such relationships, I became interested in the existence and absence of personal space in relationships and desired to express this visually. To do so, I tried to create form of space and, using this form, to express diversity of human relationships. To create personal space, you mark your personal zone by spreading your arms and making a circle and, then, create protective shield. This creates space that should not be invaded. Once space is created, people tend to mold space to exhibit their own tendencies and tastes. Thus, some create cushions, some create sharp thorn trees, and some create brittle crystals. So, individuals choose their shields and swords and fill their personal spaces with their personal images, own spaces, and things to be protected and not wanting to be invaded. Selection of images started with objects. Tendencies shown at each one's appearance and personal stories may be trivial, yet they were enough to represent images from objects. Just like fairytales we know, objects created in our mind as we talk and listen to others, and landscapes we see while taking a walk, images could easily be found in life, and it was enough to draw their world out of imagination. Presence of objects, seemed to be belittled at times, attempts to form relationships with human images and starts to be revealed in the living life. People at times reveal or hide their own spaces in hope of knowing and informing each other within their relationships or perhaps hoping not to be known. This may reveal strengths or weaknesses; however, it could, at times, be cool, insignificant, and overly exposed to interests even when not interested. Just like that, many thousands of personal spaces are formed. One's own identity and presence emerge from personality, environment, and tastes and preferences through objects and appear, although small and trivial, in the form that are necessary and could be found always. These various images are images of how we live our lives, of our true selves, and of our world. - Late but Realized on July, 2023 Soyoung Park

 

buzzing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sculpture 
2022_0217 ▶ 2022_0312 / 일,월요일 휴관

 

박소영_이명 buzzing_청동, 천, 알루미늄 그물, 혼합재료_240×115×75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3

ARTSPACE3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23(통의동 7-33번지) B1

Tel. +82.(0)2.730.5322

artspace3.com

 

 

가장 따뜻한 색, 블루 1) ● "어느 날 귀에서 이명 소리를 들었다." 작가 노트는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쌓인 괴로움은 이명이라는 현상, 실재한 경험으로 드러난다. 급작스러운 전 세계적 전염병의 장기화로 인한 제한적 일상이 만들어 낸 스트레스는 우울감으로 서서히 우리 주변에 자리 잡았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박소영 작가는 상징적인 푸른색을 통해 지난 2년 동안의 초현실적 상황 속에서 일으켜진 감정들을 입체 형태로 선보인다.

 

박소영_이명 buzzing_청동, 천, 알루미늄 그물, 혼합재료_240×115×75cm_2021_부분

푸른색으로 물들여진 작품들은 작가가 이전부터 이어온 덩어리와 껍질 작업의 변주로 보인다. 규정 불가한 모호한 형태, 우연적인 형태(이영욱)나 어떤 '상태'로서의 형태(장승연)의 덩어리들은 작가가 말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형태"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형태들은 엉성하게 그려지는 우리들의 감정과 닮아있다. 길들여지지 않는 감정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로 인식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남는다. 모호함을 제시하는 형태들은 이러한 인식 불가능한 우리 내면의 감정을 건드린다. 말해지지 못하는 것들이 설명되지 않는 그대로 표현되는 조형적 지점에서 우리는 정서적 감응을 이루게 된다.

 

박소영_진혼곡 requiem_클리어 필름_220×90×28cm_2021

작가는 침하하는 우울을 끌어올려 놓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재료를 통해 투명하거나 반짝이거나 부드럽거나 섬세한 질감과 디테일을 부여한다. 작품의 표면은 얇은 플라스틱 필름, 스팽글, 패브릭 레이스로 촘촘히 채워진다. 오랜 시간 작게 오려낸 재료를 손에 들고 하나하나 붙여나가는 과정을 작가는 자신 내면의 감정을 꺼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무겁고 깊은 혹은 투명하고 부유하는 정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괴테는 저서 『색채론』에서 "청색은 언제나 어두운 것을 내포하고 있다. ... 이 색에서 우리는 자극이자 휴식이라는 그 어떤 모순적인 것을 본다. 2)"라고 적었다. 이번 전시에서 청색은 초록이나 보라색이 섞이기도 하고, 그 농도가 깊어져 검은색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부정적 감정을 조급하게 지워내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들을 끌어안고 그 상태 그대로 빛나고자 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박소영_어떤 별 a star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펀지_267×27×30cm_2021

그동안 작품에서 보여지는 박소영 작가의 태도는 '핍진하다' 혹은 '솔직하다'고 언급되었다. 나는 이것이 진심을 다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고 여긴다. 지난한 노동의 과정은 그녀가 작품에 마음을 다하는 과정이다. 진심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강력하게 전달된다. 청색으로 물들어 있는 전시장에서 우리는 가장 따듯한 색을 보게 된다. ■ 김지혜

 

* 각주1) 압델라티프 케시시, 영화 『가장 따듯한 색, 블루』, 201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 장희창 역, 서울: 민음사, 2003, p.253.

 

박소영_holding up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틸_가변크기_2022
박소영_holding up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틸_가변크기_2022_부분

무거운 우울 속에서 가볍게 상승하는 것들 ● 필자가 박소영의 작업을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끼게 된 것은 2019년 11월 에이라운지(A-Lounge)에서 열린 그의 지난 개인전 『뿔(BBULL)』을 통해서였다. 이 전시는 그간 필자가 산발적으로 이해해왔던 작가의 여러 작업들을 하나로 엮어주며 그 근간을 통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전시 제목의 의미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대해 박소영은 곧바로 "화가 나서"라고 단순명쾌하게 답했었다. 그 말이 어쩐지 속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작업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생겼다. 전시된 작품들의 치밀한 완성도에 의한 미감도 주목할 만했지만, 무엇보다 전시장 전체가 일상에서 느낀 작가의 심리상태를 예술작품으로 전치시킨 하나의 방 혹은 집처럼 느껴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비즈를 하나하나 정교하게 채워 만든 글씨 "뿔나다"와 "불끈 불끈"들은 작업의 원천들을 지시하면서, 전시 작품들이 매일매일 쌓아올린 작업의 시간을 통해서 정교하게 응집된 감정의 전이체들임을 느끼게 했다.

 

박소영_서러워 sad_종이에 클리어 필름_56.5×76.5cm_2018
박소영_scorpion_레이스 천, 스팽글, 폴리에스터_94×50×6cm_2021

팬데믹 형국의 지루한 과정을 거쳐 열린 아트스페이스3에서의 이번 개인전에서, 박소영의 작업 동력이 된 것은 그가 최근 느끼고 있는 우울감이다. 지난 개인전에서 감정에 대응하는 색으로 붉은색을 활용했던 박소영은 이번 전시에서는 우울한 감정의 표현을 위해 푸른색을 채택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옅고 창백한 푸른색에서부터 심리적 하강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짙은 푸른색, 극적이고 화려한 광택의 푸른색, 사금파리 같은 반짝임을 안겨주는 푸른색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톤과 질감의 푸른색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관통하며 하나의 극의 여러 장을 이루듯 펼쳐진다. 드로잉 속의 "서러워"라는 글씨는 이 푸른색들을 탄생시킨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지시하며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한편, 이 전시를 크고 작은 우울의 감정들을 조율하고 배치하여 만든 한 편의 시처럼 느끼게도 만든다.

 

박소영_집-손 home-hands_스테인리스 스틸, 폴리에스터_26×136×45cm_2021
박소영_그 별 the star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_32×30×26cm_2021

박소영의 작업에서 색채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지만, 덩어리진 형태들과 만남으로써 역동적 실체감을 부여받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본디 무형의 것인 감정들을 만질 수 있는 덩어리로 물질화함으로써 구체적인 현실의 자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덩어리진 형태는 마치 몸을 구성하는 내장 혹은 유기적 생명체처럼 감정 역시 생동하는 실체임을 전달하며, 그것이 상정하는 무게감을 통해 삶 속에 분명하게 차지하는 자리를 주지시킨다. 이번 전시 제목의 단서가 된 작품 「이명(buzzing)」(2021)은 박소영이 실제로 경험한 심각한 이명과 그로 인한 우울감을 조형화한 것이다. 덩어리 위에 미디움과 본드를 섞어서 만들어진 단단한 피막은 내장처럼 연약하고 유기적이며 흘러내릴 듯한 성질을 고체화함으로써, 덩어리진 물적 실체로서의 구체성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이 파란 우울 덩어리는 그 무게를 힘겹게 지탱하듯 긴장감 있게 늘여진 양손으로 인해 더욱 무거워 보이며,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 때문에 작가가 느꼈을 신경증적 상황을 더욱 예민하게 전달한다. 이처럼 박소영은 무형의 감정 상태를 형태화함으로써,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대상화하여 바라볼 수 있을 객관적 거리를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소영_cassiopeia_종이에 플리어 필름_79×110cm_2016
박소영_돌아버리겠네 going nuts_폴리에스터, 모터_28×10.5×7.5cm_2010/2021

감정 상태의 형태화라 할 수 있는 덩어리에 대한 박소영의 관심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전시 제목부터 『덩어리』였던 2006년 프로젝트 사루비아다방의 개인전에서는 다양한 감정의 상태들에 대응되는 갖가지 모양의 덩어리들이 작가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감정의 무게들을 상징하듯 짐과 같은 손잡이가 달린 채 전시되었다. 2010년 보안여관의 개인전에서 이 감정의 덩어리들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되어 작가의 자화상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보안여관에서 전시되었던 「돌아버리겠네(going nuts)」가 푸른색 캔디도장을 입은 새로운 버전으로 등장했다. 이 작품에서 박소영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감정들을 대상화하여, 실제로 끝없이 빙빙 도는 모터의 장착, 의도적으로 축소된 크기, 직설적인 제목을 통해 그 무게를 가볍게 희화화해 버렸다. 버거운 감정들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를 수 없는 유머가 될 수 있게 가볍게 전도시키는 이러한 효과야말로 박소영의 작업이 갖는 묘미라 할 수 있다.

 

박소영_나 지금 갇힌 거니? caged in?_뿔, 오브제, 쇠_58×230×94cm_2022
박소영_나 지금 갇힌 거니? caged in?_뿔, 오브제, 쇠_58×230×94cm_2022_부분

어 전시의 중심축이 된 「Holding up」(2022)에서, 공중에 매달린 코발트블루의 덩어리는 바닥으로 이어지며 치마처럼 넓게 펼쳐지는 구도로 인해 마치 허공에 맺힌 거대한 눈물방울처럼 보인다. 그것은 중력의 작용으로 곧 떨어질 듯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 무게를 견디며 균형과 긴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상태를 상정한다. 주목할 점은 덩어리의 외피에 수공으로 일일이 오려낸 꽃잎 모양의 패턴들이 빈틈없이 균질한 간격으로 부착되었다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을 반복하듯 하나하나 붙여나가며 증식된 이 껍질로 인해서, 거대한 우울의 덩어리는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정교하게 감싸진 응결체로서 영구히 지탱되고 있는 듯 느껴진다.

 

박소영_푸른 별 the blue star_스테인리스 스틸_52×120×153cm_2015

박소영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세공의 과정은 덩어리를 통해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거리가 부여된 감정들을 장식해나감으로써 정제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제하기 어려운 내면의 소용돌이에서 감정의 덩어리를 건져 올리고 그 외피를 치밀하게 구축해감으로써 감정 상태를 하나의 미적 상태로서 전도시킬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집요하리만치 밀도 높은 이 일상적 노동의 과정이야말로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고 그것을 정제해나감으로써 삶을 지탱하기 위한 박소영만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신적 작업인 동시에 인공적인(artificial) 노동의 기술을 통해 지리멸렬하고 범속한 일상을 '예술(art)'로 만드는 과정이다.

 

박소영_그녀 her_연점토, 알루미늄 와이어, 오브제_31×15×14cm_2020

이러한 노동의 결과 박소영의 작품에서는 흥미롭게도 상승과 하강의 느낌이 동시에 나타난다. 예컨대 「Holding up」에서 덩어리의 외피에 완벽한 질서로 부착된 꽃잎 패턴 안에서 반짝이는 비즈는 감정의 덩어리에 보석 같은 결정체의 인상, 흡사 별처럼 빛나는 상승의 경쾌함을 안겨주면서 흘러내릴 듯한 무게를 제법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냈다, 「반짝이는 블루(twingkling blue)」(2020-2021) 연작에서 감정 덩어리들은 무게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탈출하여 날아가듯 가벼운 움직임을 얻었다. 그것은 마치 반려생물처럼 일상을 함께 하도록 길들여졌으나, 여전히 완전하게 통제하기는 어려운 짓궂은 역동성을 담지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별(a star)」(2021)에서는 비극의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검은 눈물의 처연한 흘러내림이 별을 향한 상승의 힘에 의해서 일련의 위트 있는 균형을 갖추었다.

박소영_buzzing展_아트스페이스3_2022
박소영_buzzing展_아트스페이스3_2022
박소영_buzzing展_아트스페이스3_2022

이즈음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박소영의 작품에서의 덩어리와 껍질의 관계이다. 무게감을 전하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잠자리 날개처럼 반투명한 필름으로 만들어진 「진혼곡(requiem)」(2021)은 덩어리가 빠져나간 뒤에 남겨진 껍질 혹은 고치처럼 보인다. 또 다른 차원으로 자유롭게 떠난 존재를 지시하는 이 더할 나위 없는 가벼운 허물은 예술작업을 통해 박소영이 추구하는 궁극의 자유를 지시하는 기표일 것이다. 그러나 박소영의 작업은 이처럼 고치를 벗고 가벼워질 수 있는 상승이 무거운 덩어리를 반드시 전제한다고 얘기해준다. 덩어리가 있기에 껍질이 있고, 우울의 무게가 있기에 상승의 경쾌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과 희극 간의 역학이야말로 박소영의 작업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이다.

 

박소영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작업을 통해 "우울하고 힘든 감정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건져내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예술작업이란 삶을 누르는 감정의 무게에 시적 긴장을 부여하여 일련의 반짝임을 얻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명』에서 커다란 우울 덩어리를 지탱하는 두 손이 흡사 눈물을 닦아주는 치유의 손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이은주

 

 

Vol.20220217e |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sculpture



쪽방 올라가다 길에서 송범섭씨를 만났다.




송씨는 만나기만 하면 찍은 사진들 언제 주냐며 독촉이 빗발 같다.
빚쟁이 된 것처럼 만날까 피해 다닐 정도다.




예전에는 어버이날과 추석에 했던 빨래줄 전시로 사진을 주었으나,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접고부터는 사진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빨래줄 전시는 협찬 받아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젠 정해진 날자가 없으니,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몇 일전, 재난지원금 받은 게 남아, 사진을 만들어 두었기에 전해줄 수 있었다.




생각난 김에 다른 분도 주어야 할 것 같아, 사진을 챙겨 동네 한 바퀴 돈 것이다.
먼저 노숙자 아지트로 찾아가 유정희씨와 병학이 사진을 전해주었다.
병학이는 사진 둘 때가 없어 유씨가 챙겨두겠단다.




노숙하는 이의 설움이다.
몸 하나 거둘 곳 없는 사람에게 사진이 무슨 소용이랴!




공원에서 만난 이남기씨에게 사진을 주었더니,
고맙다며 음료수 한 잔 마시라고, 천 원짜리 한 장을 준다.
한 푼이라도 남에게 신세지는 걸 싫어하는 성미다,




박성일씨와 박소영씨도 만났는데, 소영씨는 식혜를 주었다.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보는 앞에서 마시라며 채근했다.



자기 핸드폰을 열어 이런 저런 사진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별 일도 아닌 사소한 일을 열심히 설명해가며 수긍해 주길 바랬다.
그 만큼 외롭다는 이야기다.




요즘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도 많이 줄어 들었다.
무료급식도, 줄 세워 배급 주는 일도 다 끊겼다.
코로나가 빈민들의 생활 환경까지 서서히 바꾸고 있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세상 외로움은 깊어만 간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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