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정 동지 더러 인사동서 밥 한 끼 사겠다며 불러냈다.

며칠 전 ‘인사동 맛 집 순례’란 글을 올렸는데,

‘메밀란’도 괜찮다는 신단수선생의 댓글이 올라와서다.

 

그 집은 예전에 ‘산타페’에서 이태리식 식당으로 바뀌기도 했으나

‘메밀란’으로 바뀐 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맛을 봐야 알 것 같아 정 동지에게 생색을 낸 것이다.

 

코로나로 대개의 식당이 한가하지만, 그 곳은 손님이 제법 있었다.

자리 잡아 메밀 콩국수 두 그릇을 시켜놓고 보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했다.

오래 전 ‘산타페’ 술집일 때는 ‘인사동 밤안개’로 통하는 여 운의 단골집이었다.

 

오래 전 '산타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여운화백

인사동에서 만나기만 하면 이곳으로 끌고 왔는데, 아예 양주병을 맡겨두고 술을 마셨다.

백수인 내 처지를 알아 주인에게 이 친구가 오면 맡겨둔 술을 언제든지 내 주라며 호의를 베풀었는데,

소탈하고 인정 많은 친구였지만 이제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저승에서 기다릴 그를 생각하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밑반찬이 정갈하고 그중 겉절이가 맛있었다.

걸쭉한 콩국의 구수한 맛이 진국인데다 쫄깃한 메밀 맛이 더해 최상급의 콩국수였다.

주머니 사정으로 시키지는 못했지만, 제주흑돼지보쌈, 복 튀김, 메밀전 등 침 넘어가는 음식도 많았다.

 

정 동지는 쓴 김에 제대로 쏘라고 부추겼지만,

“이 여자가 기초수급자 등 쳐 먹을려 한다”며 어름장을 놓았다.

메밀콩국수 한 그릇에 만이천원이라 좀 부담스럽지만, 음식 맛이나 식당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다음에 물주 나타나면 제주흑돼지보쌈에다 소주 한 잔 해야지.

 

인사동 나가시는 걸음에 ‘메밀란’에 들려 콩국수로 올 여름을 보내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4일 강민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정영신씨와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으로 문병 갔다.

병원 휴게실에는 달마선생 내외 분과 정승재교수, 서정란씨 등 여러 명의 문인들이 먼저 와 계셨다.

소설가 김승환선생은 먼저 다녀가셨고, 맹문제교수도 오실 것이라고 했다.






어디가 편찮은지 궁금해 “선생님 병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상사병이라고 대답하셨다.

다들 웃기에 먼저가신 사모님이 그리워 생긴 우울증 쯤으로 가볍게 여겼는데,

선생님 몰래 전해준 서정란씨의 이야기로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암이 곳곳에 전이되어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의사선생으로부터 처음 검사결과를 들었을 때는 선생님께서도 당황하셨으나, 모든 걸 내려놓았는지 여유롭게 웃으셨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오래 전 입원하셨을 때, 병의 위중함을 아셨으나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해 둔 것이다.

그 끔찍한 고통을 혼자 감수하며 틈틈이 인사동에 나와 주변사람들을 걱정하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무슨 말로 위안 드려야 할지 막막했으나, 내일이면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긴다니 눈앞이 더 캄캄했다.






늦게 오실 분을 맞으려면 피곤하실 것 같아 병실 침대에 눕는 것을 보고 돌아왔는데, 이제 인사동도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떠나야 할 길이지만, 불 꺼진 인사동을 생각하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으나, 선생처럼 온 몸으로 사랑하신 분은 없었다.

터줏대감이며 친구였던 심우성선생도 떠나시고, 이제 선생님까지 떠나신다면 누가 인사동을 지킬 것이란 말인가?






강민 선생의 시 ‘인사동 아리랑2’ 황혼 편을 다시 읽어보자.

“붐비는 인파 속에도
내가 찾는 이는 없다
오늘도 인사동 걷기는 허전하다
추억처럼 불빛이 켜지고 있다
열이 오르며 목이 마르다
잃어버린 불모의 사랑이 허공을 맴 돈다
어딘가 전화라도 걸까
눈시울만 시큰할 뿐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가락은 뻣뻣이 움직이지 않는다
종로 쪽 멀리 남산이 다가오고
차츰 어둠의 장막도 깔린다.
나 이제 또 어디론가 돌아가야 하리
그이의 아지트였던 찻집<보리수>도 없어졌다
진공의 거리
어디선가 그리운 이들 목소리 들리는 것 같다
돌아가리
돌아가리
그런데 이 끝없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눈물의 의미와 그리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을 밤의 공동(空洞)이 두렵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절절한 선생님의 시에 눈물이 절로 난다.





인사동으로 돌아와 약속한 공윤희씨를 만났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병문안드리지 못함을 애석해 하며,‘메밀란’으로 갔다.
그 자리는 ‘산타페’가 있던 자리인데, 돌아가신 여운 화백의 아지트가 아니던가?






그리고 맞은 편 잡초만 무성한 ‘목인박물관’은 흑백현상소 ‘꽃나라’가 있던 자리다.
‘꽃나라’를 운영하던 신작가도 여운화백도 다 떠나버린 인사동이 더욱 낯설기만하다.






다행스럽게 찻집 ‘초당’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초당보살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아 늦게 나오고 일찍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가고, 나 또한 떠나가리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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