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으로 한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지만,

인사동 전시장에는 따뜻한 훈풍이 불었다.

 

‘마루아트’ 2층에서는 한센촌 주민들이 기록한 ‘만종’이 열렸고,

3층에서는 사진가 양재문씨의 ‘舞夢’이 열렸다.

 

양재문씨의 환상적인 ‘비천몽’은 여러 차례 보았지만,

"처용 나르샤" 시리즈는 처음 보았다.

 

오방색 치맛바람 휘날리는 사진들은 언제보아도 설렌다.

꿈결 같은 춤 자락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양재문씨 말로는 갑작스레 이루어진 전시라 했다.

빈 공간을 메워준 전시였지만, 두 점이 팔리는 작은 성과도 있었다.

 

‘무몽’은 20일까지 열리고, ‘만종’은 23일까지 열린다.

전시를 볼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전시장을 나오다 사진가 권양수씨와 김효성씨를 만났다.

신단수란 필명을 가진 김효성씨는 알아주는 역술가인데,

이번에 자신을 모델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도 주었다.

 

축하주를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차를 끌고 나와버렸다.

오래 마스크를 쓸 수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부자 병에 걸린 탓이다.

 

인사동에서 주차비가 가장 싼 대일빌딩에 세웠지만,

꾸물대면 밥 한 끼가 통 채로 날아간다.

정확하게 한 시간 10분 걸렸는데, 주차비는 3500원이었다.

 

돌아서는 내 발길만 무거운 게 아니라 지나치는 노작가의 발길도 무거워 보였다.

늙어가는 설움에 무거운 게 아니라 외로움의 설움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즈음,

인사동에서 사람냄새 진득한 아름다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3시 인사동 마루아트 ‘갤러리 아지트’에서 개막된

‘만종’ 60년만의 외출이다.

 

한센인 정착촌인 강원도 대명원 만종마을 주민들이 직접 찍은 풍경들이다.

그 사진 사진에는 60년 동안 죄인처럼 소외받고 살아 온 절절한 아픔이 눈처럼 녹아 있었다.

 

절망에서 희망의 삶으로 바꾸게 된 뒤에는 사진가들의 숨은 노력이 따랐다.

노은향씨를 주축으로 한 '좋은 사진 모임 포트인' 맴버 들이다.

기록 앞에 사람이 먼저라는 사람 사랑이 이루어 낸 결실이었다.

 

더구나 만종 주민들과 함께 이룩한 전시라 더욱 빛났다.

‘만종’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그들 외에 누가 있겠는가?

외지인이 보는 시각과 당사자가 보는 시각에서 누가 더 진실에 가깝겠는가?

기술적인 요령이나 말하는 방법을 참여 사진가들이 교육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진 속에 찍은 이의 아픈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서툴지만 솔직하고, 어눌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사진이라 보고 또 보았다.

몇 년 후엔 그들 사진이 어떻게 변할까? 하는 가능성이 점쳐졌다.

상처의 기억들이 사진사에 남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도 기대된다.

 

요즘은 전시장이나 사람 모이는 곳은 잘 가지 않지만, 이 전시는 안 갈수가 없었다.

만종에서 온 작가나 주민들도 목숨 걸고 왔는데, 어찌 죽는 것이 두렵겠는가?

모임을 기피할 때라 걱정스러웠으나, 생각보다 많이 참석했다.

각지에서 보내온 축하 화환은 리본만 걸렸다. 

 

개막식이 열리는 인사동 ‘마루아트’2층 행사장의 레드카펫은

만종에서 온 작가들과 주민들이 장식했다.

주민 작가로는 김동한, 김연태, 김정희, 신순재, 전석권, 제갈귀자,

이종애, 윤순심, 허정자씨 등 아홉명이었다,

 

80대 작가들이 나란히 꽃다발을 들고 앉은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행사를 진행하는 몇몇 외에는 아는 분이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복면의 시대라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축가를 불렀는데, 맞은편에 사진 찍는 곽명우씨가 눈에 띄었다.

이어 '좋은 사진 모임 포트인' 회장인 노은향씨의 인사가 있었는데,

‘만종’ 어르신들을 말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기야! 3년 동안 어울려 정든 세월이 어찌 눈물겹지 않겠는가?

자식처럼 반겨준 그동안의 고마움에 눈시울 붉혔겠지만,

사회와 단절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이 어디 쉬웠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진이 주민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외지인과의 접촉과 노출에 배타적이던 만종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열어 지역 문화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고향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 60년의 한(恨)을 예술로 승화한 경사였다.

 

사회자 김선식씨가 참여 작가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했는데, 대견스러웠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지 모른다"는 말도 있듯이, 열심히 기록을 이어갈 것 같았다.

신진 노작가들의 새로운 도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만종’의 노작가들과 ‘포트인’ 젊은 작가들이 협력한

가슴 따뜻한 일상의 기록은 오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에서 '만종' 사진집과 2021년 캘린더도 판매한다.

 

이 전시를 준비한 '좋은 사진 모임 포트인' 운영진은 다음과 같다.

노은향, 김선식, 윤남중, 신민각, 김동욱, 이호남, 이응석, 이우영, 허윤정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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