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랭크, 영화 시사회, 할리우드, 1955 ~1956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중앙 여배우 대신 뒤편 관객에 초점
스스로 중요한 것 선택하는 용기가 젊은 사진가를 전설로 만들어


인생에 진리를 찾아주는 강연이 유행이다. 수년 전부터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많이 생겨나더니 이젠 방송에서도 흔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평소에 강의할 일은 많아도 들을 기회는 드문지라 우연하게라도 다른 사람의 강연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세상엔 참 내가 모르는 것도 많고 지혜도 많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강연 방송을 보면서 가장 즐기는 부분은 청중의 반응이다.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고, 또 어떤 이는 딴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숨기려고 애쓴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우리의 초상을 본다.

지혜의 가르침을 찾는 것은 자신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어서 누군가는 분명히 그에 대한 답을 찾았으리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들이 전해주는 지혜를 따라가면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찾아낸 답이 내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무리 평범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 앞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그게 바로 하나밖에 없는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인생의 초보자인 것을, 만고의 진리가 무슨 소용이랴. 결국 나를 특별하게 만들려면 나만의 고통을 나만의 방법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는 1950년대에 촬영한 '미국인들'이라는 연작(連作)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스위스 태생의 이민자였던 그는 2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의 눈에 비친 낯선 미국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지금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지만 당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던 그는 이미 슬하에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는 청년이었다.

평범한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처절하게 싸워야 할 삶이 있었을 뿐이다. 그의 고통은 그의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가 찍은 사진에서 단시간에 세계의 주인공으로 성장한 미국의 자부심이나 기회의 땅에서 희망을 찾은 미국인들의 성취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 남은 이들의 모습이 담긴 것이다.

할리우드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 주인공은 영화배우가 아니다. 화면 중앙에 크게 자리 잡은 여배우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려졌고 로버트 프랭크의 시선은 저 너머 뒤편 관객들을 향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시선에 그를 거장(巨匠)의 반열에 올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남들이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지나쳐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눈은 스스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선택하는 용기를 만나서 그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아마도 세상보다는 자신의 불안한 현재와 소외된 고독감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그가 단지 세상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남들이 보고 싶어 하고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고통에 집중함으로써 그 아픔만큼 특별한 '나'를 만든 것이다.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어디에서 답을 찾을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사진예술 11월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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