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老鋪 브랜드 네이밍 공모 결과 발표

노포 브랜드 네이밍 공모서 선정
오래된 가게+오래가라 의미
BI제작 관광자원으로 활용키로

구하산방ㆍ통문관ㆍ종로양복점 등
내달 말 30~40개 선정해 지원



서울시의 노포 발굴 사업 후보지 중 하나인 종로구 인사동의 전통 필방 '구하산방'. 1913년 문을 연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종, 순종이 이 집의 붓을 쓰면서 유명해져 당대의 서화가들은 모두 이 가게를 드나들었다. / 류효진기자



서울시가 오래된 가게를 의미하는 노포(老鋪)의 새 이름으로 ‘오래가게’를 선정했다.

시는 서점, 양복점, 이발소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오래가게를 발굴해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21일 노포 발굴 사업의 일환인 노포 브랜드 네이밍 공모 결과 오래가게를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오래가게는 ‘오래된 가게’라는 뜻과 ‘오래 가라’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노포보다 부르기 쉬운 우리말이기도 하다.

시는 오래가게를 브랜드 아이덴티티(BI)로 제작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노포 관련 홍보에 활용할 계획이다.

공모전에서는 이외에도 ▦장수상점 ▦히스토어 ▦이어가게 ▦店店오래 ▦오고가고가 수상했다. 

  

서울은 오래된 가게를 찾기가 힘든 도시다. 짧은 기간에 식민지, 전쟁, 산업화로 인한 압축성장을 겪으며 옛 흔적은 빠르게 사라졌다.

오래된 가게라 해도 역사가 30~40년이다. 해방 전부터 이어져 온 가게는 손에 꼽는다.

반면 일본에서 시니세(老鋪)라고 불리는 노포는 단순히 오래된 가게가 아닌 가업을 이어 오는 가게라는 의미로,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다.

2017년 도쿄상공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1,000년 된 시니세는 7개, 100년 이상 된 곳은 3만3,000여개에 달한다.


국내의 노포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온 가게들도 시대상의 변화로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전통 필방 구하산방의 홍수희 사장은 “구경만 하다 그냥 가는 관광객이 태반”이라며 “사업을 접을 기로에 서 있다”고 토로했다.

고서점 통문관의 주인 이종운씨는 “사람들이 책 같은 활자 매체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시대다 보니 운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는 ‘맛집’과 성격이 다르다”며 “오래된 가게를 보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는 이런 세태에 맞서 노포 발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를 헤아리고 보존한다는 취지다.

노포에 새 이름을 지어준 것을 시작으로, 시민과 전문가가 추천한 후보 중 30~40개를 선정해 9월 말 발표한다.

단순 발굴 작업에 그치지 않고 가게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도 함께 알릴 예정이다.

종로구와 중구에 위치한 가게 중 요식업은 50년, 그 외 업종은 30년 이상 이어진 곳을 일차적 선정 기준으로 정했다.

요식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은 서울시내가 최근 100년 간 급격한 변화를 겪은 점을 감안해 영업 장소를 옮겼어도 후보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고종과 순종이 붓을 구입했다는 전통 필방 ‘구하산방’, 삼대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서점의 대명사 ‘통문관’,

기성복의 등장에도 100년 넘게 옷을 지어 온 ‘종로양복점’ 등이 후보지다. 

 

서울시 사업 관계자는 “주인 분들이 ‘장사가 안 된다’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신다”며

“관광 책자를 만들거나 투어 코스로 지정하는 등 도움이 될 만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하산방의 홍수희 사장은 "구경만 하다 그냥 가는 관광객이 태반"이라며 "사업을 접을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류효진기자



[한국일보]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치킨점 절반 개업 3년 내 문 닫아, 장수 가게의 남다른 경영 철학 배워야

인사동 '구하산방'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인간이 100세를 넘기기 어려운 것처럼 하나의 가게가 100년을 넘기기란 쉽지 않다. 그 안에서 한 우물 경영과 신뢰로 생명력을 이어 온 오래된 가게들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경비즈니스는 이런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들을 취재했다. 많은 위기와 역경을 헤치고 이 땅에 반세기 넘게 살아남아 번영해 온 그들의 생존 원리와 장수 비결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100년이 넘도록 맞춤양복을 만드는 ‘종로양복점’, ‘고객 한 명에게 완벽한 단 하나의 신발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수작업을 고집하는 ‘송림수제화’, 138년 된 독일제 면도날을 쓰며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는 ‘성우이용원’, 한국의 산 역사를 증명하는 ‘통문관’.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장수하고 있다. 저마다의 모습이나 방식은 다르지만 ‘신뢰’와 ‘믿음’을 얻기 위해 품질을 높이는 과정은 똑같이 뒤따랐다. 가장 잘하는 것 하나를 선택한 뒤 거기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열심히 헌신한 사람이 빠질 수 없다.

노포를 좀 더 살펴보자. 오래된 가게는 먹고 입는 업종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대전의 동네빵집 ‘성심당’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성심당은 연 매출 270억 원, 직원 수 280명, 대전 지역 대학생들이 꼽은 취직하고 싶은 기업 순위 3위에 오른 곳이다. 여타의 노포들과 규모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동네 빵집 성공 스토리를 만든 주인공은 2대 빵집 사장 임영진 성심당 대표다. 1956년 선친이 연 대전역 앞 찐빵집으로 시작해 58년간 대전 시민의 사랑을 받으면서 중견기업 수준으로 동네 빵집을 성장시켰다. 성심당은 2011년 세계적인 맛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 그린’에 국내 빵집으로는 처음으로 등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뿌리 깊은 노포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성심당의 전통은 빵에서 나눔으로 이어진다. 빵을 통해 사랑도 실천하는 것이다. 과거 찐빵집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날 팔다 남은 찐빵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 주던 선친의 나눔 철학이 2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다른 빵집에서는 다음 날 팔 수도 있는 빵이지만 성심당은 팔고 남은 빵을 대전역 노숙자와 사회복지 시설에 나눠 준다. 팔고 남은 빵이 기부하기로 약속한 수량에 못 미칠 때는 급히 만들거나 떡을 사서 보내기도 한다. 매년 수억 원을 기부하고 아프리카에도 사랑을 보낸다. “빵으로 세상을 즐겁게 하려고 해야지 손님에게 빼앗으려고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성심당의 (빵을 만드는) 레시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심당의 마음을 갖고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게 임 대표의 경영 철칙이다.

다양한 제품을 연구하고 도전한 결과 성심당은 그 어느 곳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술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외식 사업에도 진출했다. 플라잉팬·테라스키친·우동야·삐아또·오븐스토리 등의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해외로 무대를 넓혀 나간 장수 가게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호텔을 제외하곤 가장 비싼 냉면을 만든다는 65년 전통을 지닌 ‘우래옥’이다. 3대에 걸쳐 평양냉면을 고수하는 우래옥은 한국 고유의 음식을 세계에 알린다는 일념으로 일찍이 인도네시아와 미국에 진출했다. 우리 맛의 세계화를 이끄는 오래된 가게가 된 셈이다. 이곳의 성공 비결은 바로 ‘최상의 재료’를 쓰는 것. ‘변하더라도 핵심만은 지킨다’는 진화 경영의 철학이다.

‘문화 경영’을 하며 명맥을 유지하는 곳도 있다. 인사동에서도 가장 오래된 가게, 문방사우를 비롯한 서화 재료를 파는 ‘구하산방’이다. 1913년 문을 연 이곳은 작가마다 지닌 독특한 화풍을 파악해 붓을 만들 정도로 한국화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내로라하는 한국화 대가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한다. ‘구하산방’은 어려운 시절 붓 살 돈이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며 ‘문화 상인이라는 자부심과 보람에 산다’는 철학으로 가게를 유지해 왔다.

오래됐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비록 존재하지만 쇠락을 이겨 내지 못해 존폐의 위기에 놓였던 곳도 한둘이 아니다. ‘삼일로 창고극장’이 대표적이다. 1975년 가정집을 고쳐 극장으로 만들었던 게 시작이었다. 실험 연출가 방태수 씨가 ‘에저또 창고극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소극장이다. 정신과 의사 유석진 씨, 배우 추송웅 씨 등 극장을 이어 가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경영난에 부닥쳐 김치공장이나 인쇄공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한 기업의 후원으로 2011년 서울 명동성당 뒤쪽에 삼일로 창고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고 서점인 ‘대오서점’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곳은 1950년 6·25전쟁 때 참전했다가 다쳐 돌아온 조대식 씨가 호구지책으로 열었던 헌책방이다. ‘ㅁ’자 한옥의 앞부분을 터서 서점으로 만들고 뒤쪽 방에는 살림을 차렸다. 남편은 책을 구해 오고 부인 권오남 씨는 책을 팔았다. 책이 귀해 물려 보고 나눠 보던 시절이 대오서점의 전성기였다. 미안하다는 편지를 써 놓고 몰래 책을 훔쳐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옛날 참고서나 흔한 소설책을 그대로 안은 채 대오서점은 훌쩍 반백 년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고민 끝에 다섯째 딸 조정원 씨가 가게를 이어 받아 2013년 12월부터 대오북카페로 고쳐 운영하고 있다. 서점을 오래 이어 갈 방법이었다. 지금 대오서점은 서촌의 명소가 돼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 발 앞선 서비스…기본 중시
이들 오래된 가게는 시대가 나를 필요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받아들이되 전통을 지켜 나가는 고집, 한 발 앞선 서비스, 최고의 상품과 최고의 서비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그러나 끝까지 전진하는 자세, 한 가지 일에 끝까지 파고드는 정신이 있다. 그리고 기업이나 학벌의 좋은 배경이나 보수, 그럴 듯한 위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순전히 자기가 좋아해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이겨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이들 노포의 경영 철학 가운데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기본’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기본자세를 갖추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전문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장인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바닥부터 일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노포의 경영 철학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가게와 기업이 명멸하는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경영 모델의 교훈을 주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혹은 기업이 오래가기를 원하지만 많은 곳들이 몇 해 안에 망한다. 한국의 치킨 가게 중 절반은 개업 3년 안에 문을 닫고 80%는 10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통계도 있다. 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 기업의 평균수명은 2.5년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이들의 경영 철학이나 방식이 특이하게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기 쉽고 잊기 쉬운 가장 기초적인 것을 그들은 잘 살려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특별한 비결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별하지 않다는 그들의 말 속에 특별함이 있다.


한국경제메거진 /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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