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수묵회화 맥 잇는 김호석 작가 30일부터 '아라아트'에서 개인전

 

 

생생한 표정과 더불어 관람객을 압도하는 머리카락의 세밀한 붓질은 붓털이 2~3개인 세필로 그리되,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 작업이다. ‘포로’, 147×208㎝



검은 먹물의 짙고 옅은 번짐만으로 화면이 살아나고, 아낀 몇 가닥의 선은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생생한 기운을 품고 있다. 은은한 쌀 빛깔의 전통 한지와 먹의 농담이 어우러지면서 텅 빈 여백이 꽉 차게 느껴진다. 미술계 안팎에서 화법이나 재료, 화풍 등 전통 수묵회화의 맥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수묵화가 김호석(56)의 작품들은 농익은 수묵화의 맛을 제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그저 눈에 보이는 수묵화 맛에만 취한다면 작품을 절반만 즐기는 것이다. 그가 미술계의 찰진 평가를 받는 것은 전통의 맥을 이 시대 사람들의 일상에서 찾아내고, 시대정신으로 재해석해 발언한다는 데에 있다. 실제 동양 수묵화의 핵심은 사물의 외형만이 아니라 사물이 지닌 본질이나 이치, 작가의 정신성을 담아내는 것 아닌가.

김 작가가 30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일상적 소재로 사의(寫意)까지 추구한 작품들로 개인전을 마련했다. ‘그리움이 숨 막혀 그림이 된 김호석 붓’이란 전시명은 소설가 김성동이 지었다. 수묵화의 참맛을 느끼도록 작품들은 이례적으로 액자없이 배접한 한지 그대로 내걸려 작가의 강한 자부심도 내비친다.

  

▲ 일상 소재서 시대정신 찾아
전통 배채법으로 인물화 그려
“붓은 나를 지탱하고 치유해”



작품 ‘탁주에 발을 씻다’는 인간이 천시하는 파리들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오만, 부조리함, 나아가 세태까지 꼬집는 작품이다. 한용운의 시 ‘파리’가 생각난다. ‘(…) 나는 작고 더럽고 밉살스런 파리요/ 너는 고귀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어여쁜 여왕의 입술에 똥칠을 한다/ 나는 황금을 짓밟고 탁주에 발을 씻는다/ (…)/ 너희는 나를 더럽다고 하지마는/ 너희들의 마음이야말로 나보다도 더욱 더러운 것이다/ (…).’

딸이 엄마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는 ‘포로’, 바람 목욕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표현한 ‘바람 목욕’을 보면 저절로 가슴이 훈훈해진다. 세필로 한올 한올 그려낸 머리카락, 생생하기 그지없는 표정은 구도자같은 작업의 결과물이다. 화목한 가족의 정이 오롯이 드러나면서 팍팍한 세태를 잊게 하고, 시어머니-며느리-딸로 이어지는 우리 삶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스님의 뒷모습을 담은 ‘허허’는 수묵화의 정수로 살아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사랑을 나누는 파리 두 마리만으로 125×111㎝의 큰 화면을 채운 ‘생명’은 공간 장악의 힘과 더불어 널찍한 여백에 사랑의 숭고함, 아름다움을 담았다. ‘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상인데 얼굴이 없다. 선을 최대한 적게 긋고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한 작품은 논란이 그치지 않는 법의 잣대, 겉모습에 매몰돼 내면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꾸짖는 듯하다.

‘허허’, 188.5×95.5㎝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등을 수상한 그는 수묵화로 이 땅의 사람, 삶을 그려왔다. 민주화 현장, 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시대정신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사실 그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맥을 잇는 작가로 유명하다. 뒷면에 수십번의 정교한 붓터치를 함으로써 화면 위로 인물이 은은하게 살아나게 만드는 배채법을 쓴다. 이 기법으로 김구 등 역사적 인물은 물론 성철·법정 스님,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번 작품전에 나온 인물도 황톳물을 걸러 만든 살굿빛 안료를 사용해 배채법으로 그린 것이다.

“사실 작품마다 은유가 깊게 담겼다. 붓질과 먹을 줄임으로써 중의적 의미를 살리고자 했다. 늘 그렇듯 현실을 맞받아치되 그 너머까지 표현하려 애썼다. 견뎌내기 결코 쉽지 않은 모욕을 겪고, 겉모습 속에 숨겨진 추악한 단면들을 보고 있다. 나를 지탱시키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붓이다.” 김 작가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재직 때 전통회화 수업시간에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됐지만 복직 판결을 받았고, 최근 학교 측의 정직에 맞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포기하라고 하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그는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말한다는 다짐을 거듭한다”고 밝혔다. 11월5일까지. (02)733-1981

 

[경향신문]도재기기자



    

 

 

ㆍ수묵회화 맥 잇는 김호석 작가 30일부터 개인전

검은 먹물의 짙고 옅은 번짐만으로 화면이 살아나고, 아낀 몇 가닥의 선은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생생한 기운을 품고 있다. 은은한 쌀 빛깔의 전통 한지와 먹의 농담이 어우러지면서 텅 빈 여백이 꽉 차게 느껴진다. 미술계 안팎에서 화법이나 재료, 화풍 등 전통 수묵회화의 맥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수묵화가 김호석(56)의 작품들은 농익은 수묵화의 맛을 제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그저 눈에 보이는 수묵화 맛에만 취한다면 작품을 절반만 즐기는 것이다. 그가 미술계의 찰진 평가를 받는 것은 전통의 맥을 이 시대 사람들의 일상에서 찾아내고, 시대정신으로 재해석해 발언한다는 데에 있다. 실제 동양 수묵화의 핵심은 사물의 외형만이 아니라 사물이 지닌 본질이나 이치, 작가의 정신성을 담아내는 것 아닌가.

김 작가가 30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일상적 소재로 사의(寫意)까지 추구한 작품들로 개인전을 마련했다. ‘그리움이 숨 막혀 그림이 된 김호석 붓’이란 전시명은 소설가 김성동이 지었다. 수묵화의 참맛을 느끼도록 작품들은 이례적으로 액자없이 배접한 한지 그대로 내걸려 작가의 강한 자부심도 내비친다.

                                                         생생한 표정과 더불어 관람객을 압도하는 머리카락의 세밀한 붓질은 붓털이 2~3개인

                                                         세필로 그리되,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 작업이다. ‘포로’, 147×208㎝

 


▲ 일상 소재서 시대정신 찾아
전통 배채법으로 인물화 그려
“붓은 나를 지탱하고 치유해”


작품 ‘탁주에 발을 씻다’는 인간이 천시하는 파리들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오만, 부조리함, 나아가 세태까지 꼬집는 작품이다. 한용운의 시 ‘파리’가 생각난다. ‘(…) 나는 작고 더럽고 밉살스런 파리요/ 너는 고귀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어여쁜 여왕의 입술에 똥칠을 한다/ 나는 황금을 짓밟고 탁주에 발을 씻는다/ (…)/ 너희는 나를 더럽다고 하지마는/ 너희들의 마음이야말로 나보다도 더욱 더러운 것이다/ (…).’

딸이 엄마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는 ‘포로’, 바람 목욕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표현한 ‘바람 목욕’을 보면 저절로 가슴이 훈훈해진다. 세필로 한올 한올 그려낸 머리카락, 생생하기 그지없는 표정은 구도자같은 작업의 결과물이다. 화목한 가족의 정이 오롯이 드러나면서 팍팍한 세태를 잊게 하고, 시어머니-며느리-딸로 이어지는 우리 삶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스님의 뒷모습을 담은 ‘허허’는 수묵화의 정수로 살아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사랑을 나누는 파리 두 마리만으로 125×111㎝의 큰 화면을 채운 ‘생명’은 공간 장악의 힘과 더불어 널찍한 여백에 사랑의 숭고함, 아름다움을 담았다. ‘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상인데 얼굴이 없다. 선을 최대한 적게 긋고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한 작품은 논란이 그치지 않는 법의 잣대, 겉모습에 매몰돼 내면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꾸짖는 듯하다.

‘허허’, 188.5×95.5㎝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등을 수상한 그는 수묵화로 이 땅의 사람, 삶을 그려왔다. 민주화 현장, 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시대정신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사실 그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맥을 잇는 작가로 유명하다. 뒷면에 수십번의 정교한 붓터치를 함으로써 화면 위로 인물이 은은하게 살아나게 만드는 배채법을 쓴다. 이 기법으로 김구 등 역사적 인물은 물론 성철·법정 스님,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번 작품전에 나온 인물도 황톳물을 걸러 만든 살굿빛 안료를 사용해 배채법으로 그린 것이다.

“사실 작품마다 은유가 깊게 담겼다. 붓질과 먹을 줄임으로써 중의적 의미를 살리고자 했다. 늘 그렇듯 현실을 맞받아치되 그 너머까지 표현하려 애썼다. 견뎌내기 결코 쉽지 않은 모욕을 겪고, 겉모습 속에 숨겨진 추악한 단면들을 보고 있다. 나를 지탱시키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붓이다.” 김 작가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재직 때 전통회화 수업시간에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됐지만 복직 판결을 받았고, 최근 학교 측의 정직에 맞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포기하라고 하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그는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말한다는 다짐을 거듭한다”고 밝혔다. 11월5일까지. (02)733-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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