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공유할 때 그 힘이 더 커지죠”

서울 도심에서 성수대교를 타고 한강을 건너면 오른쪽에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이 지은 8층짜리 간결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스페이스C’라는 간판을 단 이 건물에는 올해로 개관 10년을 맞은 코리아나화장박물관(5, 6층)과 코리아나미술관(지하 1층, 1층)이 자리잡고 있다. 코리아나화장품이 설립한 이들 뮤지엄은 규모(총 4개층)는 크지 않지만 나름대로 뚜렷한 성격을 갖고, 전시를 열어왔다. 두 문화시설을 이끄는 유상옥-유승희 부녀를 인터뷰했다.

“어이쿠. 어느 새 10년이냐? 세월 무섭게 빠르구나. 혹시 10주년기념 박물관 전시에 필요한 것 없냐?”

“아, 예 조선시대 아기버선이랑 배자가 필요하긴 한데요. 다른 것까지 또 사오실까봐….”

코리아나화장품 창업주인 유상옥(83) 회장과 외동딸인 유승희(49) 부관장은 이렇게 이마를 맞대고, 개관 10주년 전시를 준비했다. 그리곤 지난 17일 10주년전의 막을 올렸다.

우리 고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애호가이자 수집광인 유상옥 회장은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인사동이며 삼청동, 장한평을 누빈다. 미술의 거리를 거닐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유 부관장은 “전시에 꼭 필요한 유물인데 마침 없어서 부탁을 드리면 아버지께서 너무나 반색을 하신다. 눈도 ‘반짝’하고 빛이 나신다. 그런데 워낙 우리 문화유산을 좋아하셔서 이미 보유한 유물과 비슷한 걸 자꾸 사오시곤 하셔서 요즘은 말리는 편”이라고 했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서울 신사동의 코리아나미술관과 화장박물관을 이끄는 유상옥(오른쪽) 회장과 외동딸 유승희 부관장. ‘10주년전’ 현장을 찾은 유 회장은 “전통문화와 현대미술이 공존하도록 꾸민 전시를 젊은 세대가 많이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버지 유 회장은 “샐러리맨 시절 월급을 쪼개 하나둘씩 사모았던 유물이며 그림이 자꾸 늘어 집(아파트)이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아내로부터 핀잔도 많이 들었다. 자꾸 늘어나는 수집품을 갈무리하려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꾸몄는데 너무 잘한 것 같다.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과 문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유 회장은 5300여점의 화장유물과 1200여점의 미술품을 기반으로 지난 2003년 스페이스C를 오픈했다. 그리고 매년 기획전을 꾸준히 개최해왔다. 화장박물관은 주로 한국 여성의 화장 및 미(美)에 관한 기획전을, 코리아나미술관은 인간의 몸과 여성에 관한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유승희 부관장은 “아버지께서 처음엔 사간동, 인사동을 생각하셨으나 강남이 문화공간이 태부족한 것에 주목하시고, 신사동에 택하셨다”며 “남들은 여윳돈이 많아 미술품을 수집하고, 공간을 운영하는 거라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너무나 검소하신 편이시다. 사람들이 양복, 시계, 구두를 보면 모두 깜짝 놀란다. 본인을 꾸미시는 데 돈을 전혀 안 쓰시니까. 명품과는 거리가 너무 머시다. 그런데 문화유물은 명품을 족집게처럼 골라내신다”고 했다.

유 회장은 청자유병, 청자분합 등 화장 관련 유물 2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유물은 점당 수백만~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것들이다. “기증하기로 약속하고 유물을 다시 살펴보니 너무 아까웠다. 그런데 박물관에 잘 설치돼 많은 이들이 음미하는 걸 보고 반성을 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할 때 문화의 힘이 커짐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유 부관장은 “아버지는 우리 문화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실 분이다. 요즘 내가 미술관에서 꾸리는 전시는 영상미술과 설치미술이 많아 다소 난해한데도 고교동창, 대학동창을 모시고 오셔서 전시를 관람하신다. 첨단의 문화예술까지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시는 모습에 많은 걸 배운다. 앞으로도 꾸준히 테마를 갖고, 알찬 전시를 통해 강남의 문화명소로 자리매김하겠다. 그게 아버지의 뜻일 것”이라며 소망을 피력했다.

[헤럴드경제]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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