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처럼 인사동에 나갔다.

 

지난 달 물대포를 쏘며 강제철거 논란이 일었던 인사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코트' 전시장에

또 다시 승합차 두 대를 전시장에 밀어넣어 재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러 나간 것이다.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 큰길로 들어가니, 구세군 종소리가 연말분위기를 풍겼으나,

왠지 쓸쓸한 인사동 풍경이 낮 설게만 느껴졌다.

 

곳곳에 대포 맞은듯, 구멍 뚫린 빈 점포가 자리잡은 음산한 풍경이야 익숙하지만,

인사동 사거리 대로변에 들어서는 식당의 대형 간판이

마치 정육점 같은 벌건 고기 덩어리로 장식되고 있었다.

 

건물철거 등으로 곳곳에 출입통제 막이 쳐져 있었고,

남인사마당 공연장 앞에는 바닥교체 작업으로 어수선했다.

 

해마다 년 말이 가까워오면 지자체에서 남은 예산을 탕진하기위해

멀쩡한 바닥을 교체하는 장면은 이제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문제를 일으킨 복합문화공간 '코트' 전시장은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벽면에는 ‘깨어진 땅’이라는 제목의 김지욱, 함형렬씨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바닥에는 텐트와 승용차가 들어 차 있었다.

 

지난 4일, 건물 입주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쏜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이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돼 분쟁이 일단락 되는 듯 했지만,

이날 추가로 점거 사태가 일어나면서 분쟁이 재점화된 것이다.

 

'코트'는 예술인들에게 작업 공간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전시 및 공연 장소로도 활용하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현재 다큐멘터리 감독, 디자이너, 사진가 등

약 30여 명이 2층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전시장을 치우고 승용차를 끌어들이는 용역업체 직원들 [사진, 점포주제공]

법정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돈 앞에는 예술도 상도의도 필요 없는 무지막지한 요지경 세상을 언제까지 지켜보아야만 할까?

엉뚱하게 피해 보는 전시작가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돈이 인사동 고유의 전통문화와 예술가를 말살하고 있다.

인사동이 위태롭다. 이대로는 안 된다.

 

사진, 글 / 조문호

 

‘갤러리 브레송’에서 기획한 ‘The Last Dreamer’ 섹션2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브레송’과 ‘스마트협동조합’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본 전시는 김지욱, 남영주, 모지웅, 류엘리, 변성진씨 등 젊은 사진가 다섯 명이 참여했다.

 

김동진, 김문호, 김장욱, 안명현, 최치권씨가 참여한 섹션1은

지난 10월21일부터 30일까지 열린바 있다.

 

‘The Last Dreamer’는 코로나에 주눅 들어 사는

사회현상을 형상화한 사진가들의 시각적 연대기다.

 

김남진관장은 ‘코로나 사태 전후에 새롭게 제작되거나

미발표 상태에 있던 작품들을 모아 재구성했다고 한다.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창작 활동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등

관람객들에게 코로나의 장기화에 따른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섹션1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을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려는 시도였다.

섹션2에서는 세상과 사회에 시선을 돌린 일군의 작가와는 달리

인간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번 기획전에 대한 안내를 보아 대략의 내용은 알았으나,

요즘에는 전시장에 잘 다니지 않는다.

사람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기로 한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또 하나 이유는 나이값 좀 하라는 주위의 충고도 한 몫 했다.

전시장 사진찍어 리뷰까지 올려주는 짓을 왜 하냐는 것이다.

소개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한다는 것을 모르냐?고 되물었다.

맞는 말이지만, 성질이 모질지 못해 끌려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2일 ‘갤러리 브레송’을 찾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정영신씨와의 약속에 따라 차를 가지고 그 녀를 데리러 갔다가

입구에 서 있던 김관장에게 붙들려 버린 것이다.

그 날이 2부 개막식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갔는데,

어찌 정영신씨만 데리고 나올 수 있겠는가?

 

전시만 보고 포스팅은 하지 않기로 했으나, 습관적으로 찍은 사진 때문에 또 올리게 되었다.

전시장에는 김문호씨와 이윤기, 곽명우씨 등 잘 아는 사진가도 여럿 보였다.

전시작가인 모지웅씨로부터 사진집을 받았는데, 마음은 편치 않았다.

책은 절대 공짜로 받지 않기로 했지만, 거절하는 게 더 어려웠다.

 

전시작들을 돌아보니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벽에 걸린 이미지가 주는 불안감이었다.

 

성 소수자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지웅의 ‘More’,

자신의 불안한 모습을 드러낸 류엘리의 ‘Blue Portrait’,

대면의 자유를 갈구하는 남영주의 ‘코로나 시대의 사랑’,

욕망과 속박을 선이라는 매개를 빌려 몸에 투영한 변성진의 ‘hide & seek or YOU’,

깊은 내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김지욱의 ‘미궁’ 등,

각기 다른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정신적으로 피로한 시기에 열린 좋은 전시였다.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The Last Dreamer’ 섹션2는 오는 10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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