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하는 세계

홍세진展 / HONGSEJIN / 洪世辰 / painting
2018_1205 ▶︎ 2018_1211



홍세진_눈 앞에 있는 것들_캔버스에 유채_193.9×260cm_20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나는 어릴 적 의료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 유기체의 사전적 의미는 세포로 이뤄진 몸체와, 신진대사가 이뤄지면서 스스로 성장과 증식이 가능하고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는 조직체를 일컫는다. ● 유기체가 생존 혹은 욕구의 해소를 추구하기 위해 각자 살아가는 방식의 규칙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유기체가 생존을 위해, 감각 욕구의 해소를 위해 각자 살아가는 방식의 규칙과 합의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인간은 유기체(멀쩡한것과 기이한)를 실험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무기체와 결합해보는 것 등(사이보그와 같은 기계적 결합)이 있을텐데, 나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나의 감각기관이 보완장치에 의해 일반적인 감각 기준으로 도약할 때, 그 감각의 체험은 일반적인 감각적 체험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익숙하게 기능하던 다른 감각기관의 역할을 침범하며 새로운 감각이 대상을 지각하게 한다. 예를 들면 청각 기관은 매질로부터 발생한 진동을 뇌로 하여금 인지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기관이 망가졌을 경우 무기체(보청기 혹은 인공와우)로 대체했을 때 그 매질로부터의 진동이 다른 범주로의 감각 범위에 들게 된다고 보는 것과 같다. 사물은 그 자리에 존재하는데 비언어 속에서도 부분 외 부분으로 존재하며, 나름 질서를 가지고 있다. 작품 안에 세포, 또는 그와 비슷한 형태, 프렉탈의 유기체, 추상적인 선, 어디선가 목격한 익숙한 장소, 사물, 공간들은 푼크툼을 촉발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홍세진_삐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18


홍세진_펑_캔버스에 유채_112.1×162cm_2018


홍세진_조용한 소란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17


홍세진_반복된 도형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8


홍세진_link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8


작업을 통해 감각을 지각하는 신체 언어(정형적이든 비정형적이든)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감각하여 세계가 드러나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 홍세진



Vol.20181205i | 홍세진展 / HONGSEJIN / 洪世辰 / painting




Oscíllo

김범중_민복기 2인展 

2018_1008 ▶︎ 2018_1023

김범중, 민복기_Oscillo_무지향 이미징 스피커_2018


초대일시 / 2018_1008_월요일_05:00pm

후원 / 서울대학교 융복합연구지원사업협찬 / (주)고려아연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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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Oscíllo를 전시부제로 한 전시는 김범중과 민복기의 공통 관심사가 융합된다. 오랫동안 음을 연구해왔던 김범중, 그리고 '빛의 메아리'에 대한 이미지를 금속으로 표현해온 민복기는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입자의 파동과 소리에 대한 상상력을 이상적인 스피커 형태로 구현한다. 신화 속의 풍요의 뿔(cornucopia)처럼, 원하는 음이 원하는 방식으로 무한하게 흘러나오는 기구가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기술이 있다면 광고주들이 선점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실제로 지구의 안과 밖은 발신/수신되는 신호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진보된 통신기관이 없던 고대시대부터의 상상과 관련된다. 현대의 물리학은 모든 물질이 고유의 진동수(natural frequency)를 가진다고 보는데, 최초의 음향학자로 평가받는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세계 질서의 중심에 수(數)를 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음악(musica universalis)이나 '천구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 등으로 불렸던 사상을 통해 우주에 가득한 음악을 표현하기도 했다. ● 시각보다 더 원초적 감각인 청각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김범중 +민복기의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그 형태만으로도 공간에 가득 한 소리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소리는 진동을 통해 전달되지만, 조형예술가인 그들은 시각적 수단을 통해서 온 우주에 편재하는 진동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무(다)지향성(Omni Directional) 스피커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밑이 약간 뾰족한 그릇 형태의 스피커는 편재하는 소리를 거둬들이는 지점 또한 암시한다. 그것은 가상의 무대에서 들려오는 식이 아니라 사방으로 퍼지는 음을 지향한다. 위로 쏘아 올려진 음이 사방으로 퍼져 모든 방향에서 음의 파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음은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고 샘처럼 솟아날 것이다. '혼돈의 과학'을 주장한 미셀 세르가 현대적 시간의 이미지에 대해 상상했듯이 말이다. 이 스피커에서 음의 방출은 한쪽방향도 양쪽방향도 아닌 다방향이다. ● 그것을 시각적 이미지와 비교하자면, 전경과 배경의 구별이 없는 에셔의 그림처럼 무(舞)중심, 또는 다(多)중심의 세계를 말한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인지과학을 주제로 한 저서 『괴델 에셔 바흐』에서 전경과 배경의 구별이 없이 짜여 들어가고 짜여나오는 순환구조를 가진 에셔의 그림에서 무한의 개념을 발견한다. 호프스태터는 19세기 말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에서 빌려온 '유한하지만 무한성을 담고 있는' '모든'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무지향, 정확히는 모든 지향을 가진 스피커는 무한에 대한 상상이 있다. 『우주와 세계의 무한성에 관하여』(1584)를 쓴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우주의 중심이 하나가 아닌 여럿임을 주장하다가 이단으로 배척되어 화형당한 이도 있으니만큼, 다중심 또는 편재하는 중심에 대한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두 작가의 공동작품에서 스피커그릴에 해당되는 구조는 마치 아래에서 출력되는 음에 의해 변형된 듯 오록볼록한 형태를 하고 있다. ● 그것은 무지향 드라이버가 만든 음을 통과시키면서 더욱더 사방으로 퍼뜨리는 디퓨저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아래로부터의 에너지를 통과하는 물질적 기관의 외양을 가진다. 하늘을 향하고 있는 스피커는 작지만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진동을 발산할 것 같은 모습이다. 형태만으로 소리를 상상하는 것은 비약일지 모르지만, 내용이 형식을 파생시킨다면 형식 또한 내용을 규정할 수 있다. 어떤 지시대상도 없는 음의 세계에서 형식주의는 때로 결정적이다. 가령 우리는 성량이 풍부한 성악가로 울림통의 역할을 할 몸통이 큰 성악가를 상상할 수 있다. 형식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했던, 20세기 전반 초기 추상화가에게 끼친 음악의 영향은 잘 알려져 있다. 한지에 연필로 파동을 형상화하는 김범중과 기본 원소로 이루어진 형태들의 간섭작용을 금속공예 작품으로 표현해온 민복기의 공통 관심사가 수렴된 작품은 우주를 가득 채우는 소리를 발산하는 상상적 기구이다. ● 우주를 에너지가 진동하는 장으로 보는 우주 에너지장 (Universal Energy Field) 이론을 연상하게 하는 두 작가의 진동에 대한 관심사는 보편성을 가진다. 과학적 이론은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심미적으로 향유될 수 있다. 우주적 진동을 음악적 상상력으로 전화시키는 발상은 고대부터 우주로 발사체를 쏘아 올린 현대에도 이어졌다. 1977년 발사된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에 실린 황금(도금) 레코드에는 미지의 우주인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실려 있는데, 저장된 정보 중에 우주인이 입력된 신호를 성공적으로 재생할 수 있다면 나오는 정보들에는 태양계에서 지구의 위치를 비롯하여, 가장 완벽한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는 바하의 음악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기성이 있는 진동은 음에 관련된 원시적 상상력부터 컴퓨터 알고리즘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내재한다.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들의 작업의 규모는 크지 않다. 퍼펙트의 조건인 컴펙트를 충족시킨다.


김범중_Oscillo_장지에 연필_20×100cm_2018


민복기와의 공동작업인 다지향성 스피커가 밥그릇만한 크기를 가진다면 김범중의 평면작품들은 들고 연주할만한 아담한 악기같은 규모이다. 위아래로 길쭉한 작품들은 어쿠스틱 기타, 첼로나 바이올린,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모델로 한다. 그의 작품은 수량화에 치중하거나 점차 그것으로의 환원을 지향하는 디지털 문화에 비해 질적인 것을 중시하는 아날로그 문화에 바탕한다. 디지털 방식은 복제능력과 속도면에서 아날로그 방식에 앞서 있을 뿐이다. 질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차이에의 감각이다. 장지에 연필로 드로잉하여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중첩의 조건이 무한대의 차이를 염두에 둔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악기 특히 현악기가 떠오르는데, 그것은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이 가느다란 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을 긋는 행위로 이루어진 작업과정은 연주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지금은 나일론 등으로 대체되었지만, 원래 바이올린의 현은 양의 창자를 말려서 꼬아 만든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수련도 그렇고, 아름다움을 향한 지독한 수행적 행위에는 일말의 잔인함이 깔려있다. ● 그리드나 수직선 구도를 가지는 작품에서 경계는 심연에 잠겨있다. 심연으로부터 나오고 되돌아가는 운동의 궤적들에 비추는 광선은 균일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입체적이면서도 평면적이다. 특히 장지 위를 주행하는 연필 선들의 흔적들 또한 작품의 중요한 요소이다. 2015년 작품 「Eigen Frequency」에는 보이지 않는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소리의 파장이 선명하다. 여기에서 중심은 보이지 않는 지평선에 산재한다. 작품 「Stereodium」은 두 개의 중심이 있는 것 같지만, 가장자리로 갈수록 다시 줄어드는 단위구조들은 여러 중심 주에서 두 개만을 전경화시킨 것처럼 보이게 한다. 즉 그것은 전체의 일부를 따온 듯한 모습이다. 최근 작품 「Oscillo」에서는 중심으로부터 동심원 구조로 퍼져나가는 듯한 선들이 파장이 있다. 차이의 놀이가 있는 그의 작품에서 놀이의 규칙은 비교적 단순하다. 모노톤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금욕적이다. 작가의 관심인, 만물에 내재하는 파장은 보이기 보다는 들리는 것이기에 시각적 단서는 최소화한다. 잘 듣기 위해서 때로 눈을 감아야 한다. 우리 머리 위에 늘 상 빛나고 있던 별을 보기 위해서는 문명의 빛을 줄여야 하듯이 말이다. ● 민복기와의 공동작품인 다지향 스피커는 화려한 스펙터클에 길들여진 시각을 잡아끌 요소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곧 공간 전체의 성격을 급변하게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지점임을 깨닫게 한다. 생김새는 도토리같고 밥그릇만큼 작은 스피커 몸통은 플라톤이 말한 원초적 그릇으로서의 코라(chōra)를 연상시킨다. 존 맥컴버는 근대의 시각성에 대한 반성을 다루는 논문 『데리다의 시각폐쇄』에서, 플라톤의 코라를 소개한다. 플라톤의 가장 잘 알려진 관념은 이데아론이며, 그것은 재현주의의 근본이 되었지만, 그의 또 다른 관념인 코라는 재현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원초적 에너지의 담지체이다. 존 맥컴버에 의하면 플라톤의 『티마에우스』에서 볼 수도 없고 형식도 없는 어떤 것이면서도 모든 것을 담고서 영원한 본질들을 생성의 유희로 끌어들이는 그 그릇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은 우리는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사물이 변화하고 존재하게 되고 사라져가는 것을 봄으로서 그 그릇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모든 것이 시작된 원초적인 공간인 코라는 모성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그 원초적 공간에서 비롯된 모든 존재들은 거기에서 지속적인 운율을 느꼈던 것이다. 코라--'여러 요소가 정체성도 이성도 없이 들어차 있는 자궁, 혹은 유모이다 코라란 최초로 측정 가능한 육체 구성에 대한 예비 단계이고 카오스의 장소이다'(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명백히 여성적 함의를 가지지만, 코라는 남성/여성을 떠나 모든 예술적 언어의 과정에 내재하는 근원적 맥동이다. 질서는 원초적 혼돈에서 나오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리오타르가 말하는 비가시적인 것의 체제인 모체(matrix)도 비슷한 의미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보려는 충동』에서 '윤곽선에 의해 규정된 대상 아래에는 비가시적인 것의 체제가 놓여져 있다'는 리오타르의 말을 인용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에 의하면, 모체는 무의식에 속해 있는 것으로 외적인 공간의 좌표에 동화될 수 없는 공간성을 포함한다. 그리고 모체의 요소들은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을 형성한다. 체계가 아닌 블록은 하나의 위치가 아닌 많은 위치를 말한다. ● 가로, 세로, 때로는 고치 모양으로 분절화되어 있는 김범중의 작품은 부분에도 전체를 담고 있다. 여러 곳에서 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대한 시각적 상응은 무엇일까. 그것은 근대의 시각중심주의에 도전한 많은 이론가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 도전자들은 근대의 외눈박이 시점에서 맹목을 본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보려는 것, 우리의 시계의 형태와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것'(존 맥컴버), '시각성을 열면서 그것에 한계를 긋는, 그 보이지 않는 것'(데리다)이 더 중요하다. 미세한 선들과 그 흔적이 살아있는 김범중의 작품은 경계를 만들면서도 사라지게 한다. 경계를 무화시키기 보다는 보다 많은 경계들로 분산시킨다. 그러한 실험은 바자렐리 등 옵티컬 아트(민복기가 활용하고 있는 므와레 현상 또한)에서 행해진 바 있지만, 김범중의 버전은 어지러운 착시를 낳는 현란한 패턴이 아니라, 보다 잔잔한 수행성에 바탕한다.


민복기_Oscillo_장지에 혼합재료_100×100cm_2018


민복기의 작품에는 작은 알갱이들의 이합집산처럼 보이는 기본입자들로 구성된 소우주가 있다. 구성된 것은 해체되어 재구성되곤 한다. 대우주를 반향하는 소우주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충만하다. 고양이 방울 속에도 우주가 있을 수 있다. 공예작품이다 보니 규모는 적지만, 이번의 협업 전시처럼 파장이라는 키워드는 빈 공간 또한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작품을 이루는 알갱이 형태의 원소들이 요구하는 것도 그러한 공백이다. 공백이 있어야 다양한 배열의 유희가 가능하다. 그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처럼 작용하면서 그것이 속한 공간 전체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작가가 염두에 두는 공간은 무엇인가를 담는 상자나 배경이 아니라 그자체가 주인공인 공간이다. 겹쳐진 공간, 휘어진 공간 등 그것의 위상학은 다양하다. 그릇 모양의 스피커 몸통과 그 위에 얹혀 있는 금속망은 굵어졋다가 가늘어졌다가 하는 작은 구들의 배열로, 전체적으로는 동심원처럼 파장이 바깥으로 확장된다. ● 파장은 서로 중첩되어 간섭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주적 차원의 사건에서 비롯된 영감이 있는 『light echo』 시리즈에는 지그재그, 또는 평행선으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선들의 배열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중간지대가 보인다. 목걸이나 펜던트같은 장식물로 응용된 형태는 입자가 모여 만들어진 막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오려지거나 접혀있다. 작가는 시공을 창조한 신이 최초에 행했을지도 모를 유희를 행한다. 그의 작품에서 만물의 기본요소라고 할만한 입자적 형상은 보존되어 있다. 입자의 배열로 만들어내는 형태는 매우 정교하다. 2011년에는 'cocoon' 전을 통해 조밀하게 빛나는 세계를 표현하기도 했다. 입자들이 모여 피막을 이루고 막은 다양하게 접혀지고 펼쳐진다. 여기에서 사물의 다양한 양상은 근본적인 요소들의 배치의 결과일 따름이다. 그 양상이 매우 다양한 것을 보면, 작가는 세상을 원자적 형태로 환원시키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 기본요소로의 감축은 진정한 다양성을 위한 조건이지, 또 다른 획일성으로 귀결될 임의성이 아니다. 그러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은 오류나 오차에 열려 있으며, 작가는 그것을 작품의 또 다른 요소로 받아들인다. 예술작품에서 변수는 상수만큼이나 중요하다. 빛 메아리라는 제목을 가지는 작품들의 영감은 허블망원경이 발견한 V838, 지구에서 2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별의 폭발에서 발산되는 빛에서 왔다. 먼지로 이루어진 우주를 산란하는 빛은 파장처럼 번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폭발하는 별에는 방출된 먼지들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 빛이 메아리치는 듯한 시각적 형태는 공기를 매개로 한 소리의 울림과 비교될 수 있다. 민복기의 작품이나 그 작품이 영감 받은 우주적 사건에서는 고대 원자론자들도 상상했던 모델이 발견된다. 장 살렘은 『고대 원자론』에서 열린 덧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 속에서 춤추는 먼지 알갱이에서 원자론을 생각했던 고대 철학자들을 소개한다. ● 『고대 원자론』에 의하면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그들 이전에 데모크리토스는 어떤 자연학, 다시 말해 존재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산재한다는 자연학 위에 그들의 철학을 세웠다. 장 살렘이 요약하는 고대 원자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물질적 미립자들이 모든 현실의 씨앗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들은 이제는 사라진, 영원히 분해된 세계들에서 흘러나온 잔해들로부터 형성된다. 『고대 원자론』은 원자론에서 중요한 것은 원자뿐 아니라, 원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허공임을 강조한다. 허공은 원자들이 영원히 운동하는 공간이다. 빛처럼 소리도 파장이다. 음악적 상상력은 입자-파장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조화와 비교할 수 있다. 민복기는 밤하늘의 별빛에서 느껴지는 조화에서 비롯된 경외감에 공명의 상상력을 더했다. 질 들뢰즈는 이러한 조화의 세계를 바로크의 음악과 라이프니츠의 단자론(Monadology)에서 발견한다. ● 들뢰즈는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에서 음악은 초감성적인 질서와 척도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면서 그와 동시에 물체적인 진동들로부터 나오는 감성적인 쾌락이라고 말한다. 민복기의 작품에는 서로 다른 굵기와 방향을 가지는 띠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섭작용의 이미지가 있다. 작가는 간섭에 의해 파생된 제3의 파장에 관심을 가진다. 시각적으로는 모아레(Moire)같은 파장들의 간섭현상이 자아내는 공명과 여운이다. 소리 또는 빛의 간섭현상을 입자와 파동으로 표현하기 위해 정교한 세공기술이 요구된다. 여러 계열의 간섭이 있기 위해서는 각각의 계열이 가지는 차이점이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호만큼이나 신호의 간섭현상에 관심을 가지는 작가는 정보(코드) 만큼이나 노이즈(오차)를 주목한다. 그것은 시스템에 내재해 있는 것이지만, 과학기술에서는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러한 배제는 두리뭉실한 문화를 낳았다. 차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예술가들의 실험영역으로 넘어왔다. ■ 갤러리밈




Vol.20181008b | Oscíllo-김범중_민복기 2인展




야행 夜行
윤예제展 / YOONYEJE / 尹乂帝 / painting
2018_0328 ▶ 2018_0415



윤예제_야행 3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1013c | 윤예제展으로 갑니다.

윤예제 홈페이지_https://yejae01.wixsite.com/yejeyoo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4층 2전시장

Tel. +82.(0)2.733.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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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7년간 집 근처 하천에서 발견한 웅덩이를 시작으로 늪, 숲과 같이 점점 더 크고 광활한 자연이 품고 있는 작은 공간들에 집중하여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것은 단순히 풍경을 보고 재현하는 것이 아닌 내가 머무를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하는 작업이었다. 휴식과 편안함을 주는 자연이라는 소재에서 더 사적인 안락함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부분들을 다시 재구성하여 또 다른 공간을 발견해냈다.


윤예제_야행 1_캔버스에 유채_130.3×324.4cm×2_2018


윤예제_야행 2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8


윤예제_야행 4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8


윤예제_야행 8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8


윤예제_야행 6_캔버스에 유채_40×40cm×3_2018


윤예제_야행 5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18


윤예제_야행 7_캔버스에 유채_28×57cm_2018


윤예제_나무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18

신작'야행'은 작업진행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개인의 감정적 고독과 심리를 산책이라는 행위로 해소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작업을 위해 밤낮없이 캔버스 앞에서 붓질을 하며 겪는 시행착오들은 마치 밤길을 서성이며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내 모습 같았다. 나는 깊고 조용한 시간 속에서 정적이며 비교적 작은 움직임을 가진 산책자의 시선으로 마주한 풍경들을 화면 안에 표현하였다. 계절감과 구체적인 시간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애매모호한 중간지점의 풍경을 얇은 터치로 쌓아올려 희미한 빛을 그려나간다. 나는 이번전시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탐구하고 내면의 축적된 풍경의 흐름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 윤예제



Vol.20180328a | 윤예제展 / YOONYEJE / 尹乂帝 / painting










생명의 변주 Deux
현정아展 / HYUNJUNGAH / 玄程雅 / painting
2018_0321 ▶ 2018_0327



현정아_Variation of Lif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20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17d | 현정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32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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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4층 2전시장

Tel. +82.(0)2.733.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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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 던지는 화두는 생명에 대한 성찰이다. 생명은 나의 오랜 주제였다. 나는 인간과 자연, 생명, 그리고 생로병사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인간이 삶과 죽음을 묻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무(無)를 묻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기에 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인간 근원의 문제에 대해 주로 생물학, 의학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표현해 왔다.



현정아_Variation of Lif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20cm_2018


현정아_Landscape of Lif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60×240cm_2018


이전의 작품들이 세포와 단세포 생물 등의 원시적인 생명체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면서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생명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그 흔적과 발자취를 자유로운 선으로 표현하였다. 때로는 유기체나 인체의 기관을 묘사하면서 생명의 힘찬 역동성을 엿볼 수 있고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마치 동양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또한, 캔버스 위에 그려진 형상들은 추상적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몽환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현정아_Landscape of Lif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20cm_2018


현정아_Landscape of Lif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20cm_2018

이는 생명체의 이미지와 움직임을 미시적, 거시적, 상상적, 상징적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으로 재현된다. 세포로 시작된 하나의 생명체가 하나의 존재로 변화하는 놀라운 과정은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가능성들을 보여주는 다양한 결과들이다. 나는 주어진 형상마다 재구성되고 재배치되는 생명의 다양한 변주를 그리고자 한다. ■ 현정아


현정아_Variation of Lif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29×97cm_2017


The key theme revolving around this exhibition is the reflection on life. Life has been my theme for a long time. My works have centered around the humanity, nature, life, and fundamental issues of birth, aging, sickness, and death, the four phases of life. The question of humanity about life and death reflects the inquiry about his/her own existence and non-existence, which is the essence and eternal concern of humanity. I have been taking biological and medical perspectives towards those fundamental issues facing the humanity in the course of work creation. ● If previous works symbolically depicted primitive life forms such as cells and unicellular organisms, revealing a serious consideration of life, the current works expressed the traces and footsteps through free lines while observing the motions and movements of living things. Sometimes, they depict the organisms or organs of human body to reveal powerful dynamicity of life, which also give an impression of Oriental landscape painting if they are viewed at a step backward. In that way, the shapes drawn on the canvas are reminiscent of abstract scenes and sometimes evoke dreamlike fantasies. ● That is reproduced through visualization of the living things' images and movements in microscopic, macroscopic, imaginary, and symbolic ways. The marvelous process, in which a living thing which originates from a cell turns into an existence, is a result of various results showing the possibilities inherent in himself/herself through the time. I want to make various variations of life, which are reconstructed and rearranged for each given shape. ■ HYUNJUNGAH


Vol.20180321f | 현정아展 / HYUNJUNGAH / 玄程雅 / painting




오늘의 기약 Pledge of today


조민아/ CHOMINAH / 趙珉娥 / painting
2017_0607 ▶ 2017_0709



조민아_오늘의 기약 one of them_장지에 채색_130×290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0626b | 조민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607_수요일_05:00pm

갤러리밈 영큐브 프로젝트展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더 나은 미래, 혹은 원하고자 하는 삶의 지향을 위해 노동을 하며 소득을 생성하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활동이다. 일정 시간과 기간, 혹은 평생에 걸쳐 우리는 노동을 하고 있다. 그것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도 하지만 'Working poor'라는 말처럼 반대로 노동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고용의 불안, 치솟는 물가로 인해 쉴 틈 없이 일을 해도 극빈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민아_OO로의 탈출 Escape with_장지에 채색_116×78cm_2017


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손과 몸을 움직이며 육체노동을 하는 인물들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 생겨난 '자재화된 인간'의 모습을 보며 느낀 체념의 상태와 목적을 잃은 노동의 모습은 지금 청년들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이 점은 이전 작업들과 연결된 지점으로 현재의 나와 주변의 경험을 통해 내일을 꿈꿀 수 없는 막연한 현재를 사는 이들에 대한 공감의 정서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내밀한 불안을 느끼며 자신들의 성실과 노력을 애써 쌓아 올리는 방법을 취하며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그래도 어떠한 것은 내가 좀 낫고 덜 힘들고, 혹은 월급을 더 버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하고 반대의 경우는 자기 비하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대졸자이기에, 혹은 정규직이기에 분리되는 그룹핑에서 생기는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심적으로 지니며 서로에게 대립각을 세워 서로를 분리해 나간다.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동등한 입장이 아닌 1등 시민과 2등 시민으로 나눠지는 현상에서 개인의 존엄에 대해 나 혹은 우리는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를 반문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조민아_잡히지 않는 elude one's grasp_장지에 채색_130×193cm_2017


움직이는 다수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소수가 만들어 내는 현실에서 발생한 아이러니한 사건들이나 상황들을 연상하여 풀어낸 그림이 보편적인 삶의 경험들을 끌어내 각자의 경험을 사유해 볼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듦으로써 자신과 타자, 혹은 사회에 대한 시각을 나누는 바람이 있다. 조민아



조민아_수확철 harvest season_장지에 채색_145.5×112cm_2017


조민아_눈과입 Eyes and mouth_장지에 채색_50×100cm_2017

Generating incomes through labor for better future or desired life is such a natural social activity. We are working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or throughout the whole life. Even though talking about its sublimity, just like the word 'working poor', the value of labor is dropping. Even when continuously working with no breaks because of unstable employment and rising prices, there is the insecurity to fall to the destitute poor. ● This exhibition takes people doing physical labor by continuously moving their hands and bodies as its main material. The condition of resignation and labor with no purpose felt by viewing the 'materialized humans' when capitalism is rampant, accord with the current status of youths. As a point connecting with the previous works, through experiences from me and surroundings, it might be originated from a sentiment of empathy with people who cannot dream of tomorrow. Feeling private anxiety, they were living by building up their sincerity and efforts. They comfort themselves for better or less work, or more salary. In the opposite case, it could be led to self-degradation. It is just like separating from each other by having subtle and complex feelings generated from grouping divided into university graduates or full-time positions even in the same company. Works were created by asking about our consciousness of individual's dignity when members of society are divided into the first-class citizens and the second-class citizens instead of the equal position. ● By creating outcomes to think about each one's experiences when experiences of universal life are drawn by paintings showing the association of ironical events or situations occurring in the reality created by moving majority and invisible minority that makes them move, hopefully, perspectives on myself, others, or society could be shared. ■ CHOMINAH



Vol.20170607d | 조민아/ CHOMINAH / 趙珉娥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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