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카펫-가족공동체의 욕망

 

박재철展 / BAKJAECHOL / 朴在喆 / painting

2020_0818 ▶ 2020_0830

 

박재철_붉은 카펫_한지에 먹, 채색_200×56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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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 더플럭스

gallery the FLUX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2층

Tel. +82.(0)2.3663.7537

gallerytheflux.com

 

 

아파트 단지 속 나무는 가지와 뿌리가 절단되고 심어진다. 아마도 운반의 편리와 아름답게 보일 목적으로 다듬어졌을 것이다. 아이러니한건 이렇게 상처 낸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하려고 천을 감고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 지지하고 영양제를 꽂아 놓는 일이다. 아이러니로 서있는 처참한 나무에서 강요된 삶을 살아온 인간의 욕망과 상처를 보았다. 상처투성이 나무에서 봄날 화사한 꽃을 보려고 인간은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하는가. 나무는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팠을까.

 

박재철_붉은 카펫_한지에 먹, 채색_200×560cm_2020_부분

 

박재철_붉은 카펫_한지에 먹, 채색_200×560cm_2020_부분

 

결국 그렇게 핀 꽃은 예쁘게 포장된 가식이자 인간의 탐욕이자 불가능 없는 자본의 힘일 것이다. 미술이 동시대와 자신이 속한 사회를 표현하는 시각예술이라면 내 회화는 시대나 사회보다는 철저히 개인을 표현하는데서 출발한다. 각 개인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나 이슈에 공감하게 되는 동기나 시작은 각자의 환경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매우 독자적이고 특별한 형태로 출발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떤 개별적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축척된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판단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상처나 트라우마 또는 행복감 같은 문제는 개인이 속한 사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 등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사되어 결국 개인에게 나타나는 문제이다. 아무리 개별적 인식이더라도 다른 개인들과 동시대 사회에서 마주하는 문제는 어떤 형태의 집단 이슈로 드러나는 지점(사회화)이 있는데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습이나 룰에 무의식적이든 또는 의식적이든 갇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화된 문제나 이슈는 강력하게 실재하지만 그림자처럼 실체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기 이전의 차별화된 개인의 모습인 실체에 집중한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개인에게 소속감으로 삶을 안정시키지만 관습화된 가족형태는 개인에게 어떤 역할을 강요한다. 가족공동체의 지나친 의무감은 화단에 잘린 체 심어진 나무처럼 개인적 삶을 크게 거세시키는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시간은 지나도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건만이 기억될 뿐 깊게 베인 상처는 시간의 아득한 흐름 속에서도 좀처럼 희미해지지 못하고 뚜렷이 기억된다. 나는 이런 가족공동체의 욕망이 남긴 아물지 않은 상처를 회화의 주제로 다루어왔다

 

박재철_봄은 아프다_화선지에 먹, 채색_130×162cm_2016~20

 

박재철_본디 나비는 꽃을 좇지만 이 나비는 무엇을 좇는지 알수 없다_한지에 먹, 채색 91×116cm_2018~20

 

이번 전시 『붉은 카펫』은 가족 공동체의 욕망 중에서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다루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이 있을까?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결합이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로의 욕망을 확인하고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 셈을 해본다. 솔직히 상대가 어떤 걸 원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여줄지가 확실히 중요하다.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자는 약속 어쩌면 이런 욕망의 약속이 결혼이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동물의 세계는 종족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하지만 인간의 사회에서는 종족번식의 우수성보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우수성이 짝짓기에 더 결정적이다. 인간은 욕망하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왜 그토록 끊임없이 욕망에 순교적일 수밖에 없는가. 갈망하는 욕망에 대한 순교의 끝은 무엇일까를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의 문제를 회화로 표현하려고 했다. 나는 절대적인 문제나 학습된 지식은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신뢰하는 지점은 몸이 반응하여 직접 체험된 즉 오감에 의해 육체와 접촉된 사건들과 사건의 반복과 연속성 속에 몸에 축적되고 사유된 일련의 인식이다. 이렇게 축적된 인식으로 『붉은 카펫』-가족공동체의 욕망을 이번 전시에서 담아냈다. ■ 박재철

 

 

 

Vol.20200818b | 박재철展 / BAKJAECHOL / 朴在喆 / painting

봄의 횡단


정상곤展 / CHUNGSANGGON / 鄭尙坤 / printmaking.painting
2020_0102 ▶︎ 2020_0122


정상곤_어두운 숲-Burnt carmine_캔버스에 유채_110×18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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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곤 홈페이지_www.sanggonchung.com         블로그_blog.naver.com/cho36836


초대일시 / 2020_0104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 더플럭스

gallery the FLUX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2층

Tel. +82.(0)2.3663.7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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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관계로서의 회화 ● 정상곤 작가가 그려낸 자연 풍경들은 일견 익숙하게 보아왔던 자연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러나 시간을 갖고 감상을 하다 보면 이내 자연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뭔가 다른 것들이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회화를 진행해 가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상곤 작가의 작업에서는 자연 풍경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지워서 화면 안에 숨겨버리거나 반대로 마치 탐험을 하듯 숨겨진 것들을 파헤치며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가 자주 발견된다. 일상적 풍경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은폐와 발굴을 반복하는 것 같은 작가의 작업은 눈 앞에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에 머물기 쉬운 시선을 외적 형상이 감싸고 있어서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영역으로까지 시선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정상곤_어두운 숲과 검은 흙이 있는 곳_캔버스에 유채_200×300cm_2019

작가는 작업과 관련하여 "덤불 숲 풍경에는 애니미즘적 사고를 넘어서 이미 우리들의 넋과 영혼이 스며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언급은 작가의 시선이 어떠한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또한 자연의 숲 가운데에는 물리적 구조나 형태를 넘어 비가시적이거나 비물질적 영역들 역시 공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작가의 이러한 사유 방식은 단순히 애니미즘적 시각뿐만 아니라 만일 정신적 차원에서 세계를 보게 된다면 우리가 평소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영역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점들이 그대로 작업에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전체 화면을 명료하게 그려내기 보다는 곳에 따라 부분적으로 흐릿하게 하거나 형상이 드러나 보이는 곳 위에 여러 번의 붓질이 오가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 그 페인팅이 겹쳐지거나 중복되도록 하여 형상적 요소가 숨겨지거나 지워져 보이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붓질이 만들어낸 흔적이 하나의 형상처럼 보이도록 하여 오히려 숨겨져 있었던 것 같은 이미지들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일을 반복해 나간다.


정상곤_어두운 숲-Burnt carmine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19

정상곤 작가의 이 같은 작업 과정들은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려낸 풍경은 그래서 가시적인 현상을 그려낸 것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보게 된 현상적 풍경과 함께 그로부터 감지되는 어떤 기운이나 느낌들로부터 찾아내고 만들어낸 것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가시적 현상 너머의 부분들에 대한 감각을 열어 둔 가운데 회화라는 작업 행위를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감각의 축적물을 이미지로 구축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느낌들은 가시적 세계를 눈으로 감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의 작업에서는 명료한 무엇 보다는 붓질의 흔적을 통해 상당부분 흐릿하거나 모호하게 화면 위에 남겨둔 것들이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가 보았던 풍경 위에 덧칠하거나 지워내면서 무언가 그가 찾아가고자 했던 흔적들만을 단지 캔버스에 남겨두고자 하였을 것이다.


정상곤_봄의 횡단_캔버스에 유채_70×140cm_2019

그렇다면 작가가 그가 바라보게 된 풍경 속에서 찾고자 하였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과 관련하여 넋 혹은 영혼이라고 표현한 바 있지만 이는 비가시적 영역으로부터 감지되었던 것들에 대한 메타포일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가 그려낸 대상으로서의 풍경의 장소는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자연의 일부인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사용한 작품 명제들을 보더라도 영혼이나 넋을 직접적으로 지시할만한 단어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애니미즘이나 종교적 맥락과 같은 차원의 지시적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고자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보다는 계절에 대한 감각이나 시간성으로부터의 내적 성찰을 촉발시키는듯한 단어들을 선택한 것을 볼 때 작가는 아마도 인간의 존재론적 사유나 실존적 위치와 같은 인간 삶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부분들을 주시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정상곤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물질적 대상으로써 외적 형상만 바라보기보다는 그곳에 깃들여 있는 비가시적 세계, 즉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측면들이 있다고 보고 시선을 그곳으로 가져가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자연 풍경에도 이와 같은 부분들을 함축시켜 그려낸 작품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정상곤_나의 슬픔 프로젝트_종이에 오목판법_49.5×68cm_2019

그러므로 정상곤 작가의 작업은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재현한 회화라기 보다는 자연과 접하면서 그것과 관계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들을 회화 공간에 구축한 작가의 정신적이고 상상적인 이미지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재현적 회화'로부터 벗어나 한층 더 대상과의 관계에 의도적으로 몰입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관계적 회화'라고 지칭할 수 있는 회화의 한 경향성을 작업 가운데 구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전시를 작가가 '봄의 횡단'으로 지칭하면서 인간의 삶 혹은 우리 사회를 통시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자연 그리고 사회를 중층적으로 시각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이자 시각 방식이 회화라는 지점에서 교차되고 있는 작업의 실제적 예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곤 작가는 이처럼 시각의 중심축을 대상과 작가의 사이에서 관계적 위치에 의해 발생되는 상상적 공간에 두고 거기서 이미지를 발굴해내듯 찾아가는 가운데 그로부터 물질적 세계에서 정신적 영역을 획득하는 작업을 수행해왔던 것이다.


정상곤_나의 슬픔 프로젝트_종이에 오목판법_49.5×68cm_2019

작가는 햇볕 쏟아지는 봄날의 풍경으로부터 '봄의 횡단'을, 어두움이 깊어가는 숲에서 '검은 흙'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슬픔'을 찾아낸다. 그가 그려낸 것들은 자연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고, 삶의 어두움이기도 하며,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이기도 하다. 작가의 시선은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캔버스 위에 더 깊은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의 깊이를 연금술처럼 생성해낸다. 이러한 작업은 정상곤 작가의 회화가 일상적 풍경으로만 읽혀지지 않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누구나 그러하듯 자연 속 풍경을 바라보지만 그 대상들을 일상적 풍경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자신의 삶의 궤적과 시각적 관성이 있음을 말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물질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정신적 세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가시적 세계는 풍경이라는 대상 가운데 현현(顯現)할 수 있으며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작가는 그것을 캔버스와 화지 위에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자연 그리고 작가의 관계를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나 작가의 말을 직접 듣는 것보다도 더 깊은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교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상곤 작가의 회화는 이처럼 가시적 풍경 가운데 작가가 상상하고 있는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근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보게 되는 관계로서의 세계이자 풍경이라는 것은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음직한 미지의 공간들이지만 작가는 그것을 자신의 상상력으로써 가시화 시킬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구현될 수 있음을 그의 작업을 통해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 이승훈


정상곤_나의 슬픔 프로젝트_종이에 오목판법_49.5×68cm_2019

전시 제목 『봄의 횡단』은 '계절이 빠르게 봄을 횡단(橫斷)한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에서 가져온 말이다. 봄이라는 계절이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도로를 횡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질곡의 현대사와 얽혀 그만큼 절실하게 혹은 초연하게 슬픔을 견디어 내야하는 이들에게 4월은 그저 빨리 보내버리거나 망각하고 싶은 것을 의미할 수 있겠다. 유난히 붉거나 검은 흙에서 나온 풀들, 그리고 그 사이에 흩어진 작은 돌멩이 사이사이에 우리들의 살과 피가 먼지가 되어 스며있다. 이것들로 이루어진 덤불숲 풍경에는 애니미즘적 사고를 넘어서 이미 우리들의 넋과 영혼이 스며있는 것이다. ● 페인팅 「어두운 숲」 연작에서 사용한 Burnt carmine(붉은 색 천연색소로 연지벌레에서 짜낸 염료로 만든 양홍을 말함)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물질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빛을 잃은 숲의 풍경일지라도 그 어떤 밝음 자체를 포기 할 순 없기에 그림을 그리며 그 제단에 카민 색을 희생의 의미로 선택하여 올린 것이다. 밤 풍경 그림 위에 지우듯 덧그린 덤불 숲 제주 다랑쉬 풍경, 빛의 과다 혹은 밝은 녹색으로 그린 그 덤불 숲 사이사이에 붉은 색 카민으로 그린 밤 풍경이 흔적으로 남겨져 있다. ● 「나의 슬픔 프로젝트」는 지난 초여름에 진행했던 총 11명의 인터뷰 장면과 대화 내용으로 제작한 일련의 판화 작업에 붙인 제목이다. 일련의 판화의 왼쪽 화면에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생각하고 망설이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인물들의 모습들이 정지된 화면처럼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판화의 오른쪽 화면에는 좌우명과 같은 글들, 혹은 금방이라도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릴 것 같은 흐릿한 넋두리와 같은 문장들이 등장한다. 인터뷰 장면을 간추리고 그들이 말했던 내용들을 판에 새기고 찍고 지우고 다시 찍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흐릿하게 지워지고 사라지는 판화 이미지가 마치 랙이 걸려 멈춰 선 영상의 파편처럼 우리 시대의 상처와 상실감 혹은 시대적 슬픔을 담지하고 있는 타자가 된 나 자신(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2019.12) ■ 정상곤


Vol.20200102f | 정상곤展 / CHUNGSANGGON / 鄭尙坤 / printmaking.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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