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는 가을걷이하러 내려갔다.

며칠 만에 아산 왔는데, 방명록에 수원의 김지식씨와 천명철씨가 다녀가셨다.

전시장을 비워 차도 한 잔 대접하지 못했으나,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수래야 배추와 무, 당근, 들깨 등 몇 가지 되지 않고 양도 얼마 되지 않지만,

서리맞아 언덕에 웅크린 대마는 행복을 전해 줄 신의 선물이 아니던가?

 

손이 많이 가기로는 무 잎 삶아 말리는 일이었다.

일단 땔감도 할 겸, 들깨와 시든 꽃대부터 수거했다.

 

들깻잎은 올여름 내 입을 즐겁게 해주었고, 꽃은 눈을 즐겁게 해주지 않았던가?

사람이나 식물이나 수명을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야속하지만 다 뽑았다.

 

코스모스는 말라 죽어 괜찮았으나, 시들어 고개 숙인 국화를 뽑으려니 마음이 영 켕겼다.

하는 김에 설치물 주변을 어지럽게 만드는 꽃대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할 때만 써먹고 활용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인간 자체가 악인 걸 어쩌겠는가?

그래도 서리 내릴 때 피는 국화만 남아 있었다.

 

꽃을 태우면서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화장해준다며, 생색까지 낸다.

 

가마솥에 물 끓이느라 숱한 꽃을 태웠으나 그래도 남았다.

한 번은 더 사용할 수 있는 양인데, 꽃대 무덤처럼 가마솥을 지키게 했다.

 

삶아 낸 무청을 빨랫줄에 늘었는데, 빨랫줄과는 인연이 많다.

동자동 사진 나누어 줄 때도 빨랫줄에 걸었으니까...

 

들깨를 정리하고 나니 서서히 어둠이 몰려왔다.

 

무청을 삶아 거무튀튀한 물로 세수하기는 꺼림직했으나,

날씨가 쌀쌀해 따뜻한 물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수확한 대마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마르기만 기다리는데,

김창복씨와 이현이 그리고 평이가 찾아왔다.

 

내일 농장에서 김장한다며 수확한 배추 가지러 온 것이다.

갖고 온 떡을 먹으며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해 이현이는 인사동 사람들블로그 전체를 다운받기 위해 안달이다.

블로그에서 쫓겨난 지 일 년이 가까워서야 살려냈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고마움을 뭣으로 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하기야, 고맙기로는 어디 그뿐이랴!

인덕이 많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들었는데, 그 많은 분에게 갚지도 않고 죽을 날만

기다리다니... 죽어도 편하게 죽기는 글렀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 새벽녘, 정선 만지산으로 떠났다.
별로 거둘 것은 없으나 겨울채비를 위해서다.
정선 가는 구불구불 옛길은 언제 가도 정겹다.
평창읍내에 들려 오늘을 견뎌 낼 김밥 두 줄 샀다.
한 줄은 아침이고, 남은 한 줄은 저녁거리다.

 

 


집보다 먼저 들리는 곳은 어머니가 계신 산소다.
방랑벽으로 어머니를 저당 잡혀둔 죄책감에서다.
단풍으로 물든 산소 길은 아름다웠다.
샘플로 만든 미니 소주 한 병 따라놓고 하소연한다.
사는 게 지겹다고... 

 

한 달 만에 들린 집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얼어 터질 것만 안으로 들이고, 가을걷이에 들어갔다.
거둘 거라고는 호박 몇 덩이와 익다 만 고추뿐이었다.

 

주렁주렁 달린 아기 감은 다 어쩌지?
따고 보관하기도 힘든 것이 먹을 것도 없다.
한 입에 쏘옥 들어가는 감인데, 씨가 반이다.
천덕구러기 신세로 박스 안에서 초가 될 경우가 더 많다.
따기 귀찮아 포기하며 새들에 선심 쓰는 행세를 한다.

 

“잘 묵고 잘 살라”고...

사진, 글 / 조문호

 

 

 

 

 

 

 







지난주에는 정선 만지산으로 가을걷이 하러 떠났다.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월동 준비 겸 가을걷이에 나서지만, 이번엔 별로 거둘 것이 없었다.
그러나 추워지면 잘 가지 못하니, 밖에 내놓은 정수기도 들여 놓고, 텃밭의 고추대도 뽑아야 했다.
무엇보다 산소에 들려 어머니께 추운 겨울 잘 견디시라는 인사드리는 것도 가야할 명분 중 하나다.






새벽 녘 정선으로 떠나면, 가끔 눈요기 거리가 펼쳐진다.
매번 양평을 거치는 국도로 가는데, 일교차로 피어나는 양수리 물안개가 너무 멋지다.
온천처럼 물 위로 김이 오르기도 하고, 물위로 구름이 몰려다니기도 한다.
그런 장면이야 사진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회에 비길 수가 없다.
풍경사진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나도 모르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몸에 베인 습관이라 죽기 전에는 고쳐기 어려울 것 같다.
자연이나 사물은 찍던 말든 탓하는 이가 없으나, 사람이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반가운 사람 만나면 인사도 하지 않고 카메라부터 들이대니, 기분 더러울 것이다.
오래된 지인들은 의례 저 인간은 저러려니 하겠지만, 친하지 않은 분들은 의아해 한다.
모르는 분이라면 쓴 소리가 나오거나, 잘못하면 경찰서까지 가야 한다.






꼭 그래서만 아니지만, 난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 찍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대상 자체를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거리스냅 사진은 어쩔 수 없이 행인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땐 처신을 잘해야 한다.
찍을 때는 항상 웃고, 눈이 마주치면 손을 들거나, 멋지다는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그래도 문제 삼으면 찍은 이미지 보여주며, 상대의 결정에 따라 지우거나 양해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별에 별 사람이 다 있는지라, 트집 잡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간이 뒤집혀도 웃어야 한다. 자칫 같이 화를 냈다간 싸움되기 십상이다.
마음의 문을 닫아, 불신만 가득 찬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만지산에 도착하면 산소부터 올라간다.
지난 겨울엔 산 길이 얼어붙어 차를 쳐 박은 일도 있었지만, 늦가을의 산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무덤에 술 한 잔 올리고는 귀신과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가 그 걸 보면 미친 놈이라 여겨도 상관없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하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 날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배신감을 메주알 고주알 풀어 놓았더니, 보나마나한 답이 돌아온다.

“친구 좋아하더니, 꼴 좋다. 내가 뭐라 카더노? 
돌아서면 남보다 못하니, 대강 어울려 다니라 안 카더나.”





집으로 내려와 가을걷이를 시작했으나, 거둘 것이 별로 없었다.
따고 남은 꽈리고추 한 광주리, 호박 열 개, 부추 한 단이 전부였다.
기특한 것은 올 봄에 도망친 토끼가 먹어 치운 대마초 한포기가 살아 남아 씨를 잔뜩 안고 있었다.
씨만 없었더라면 한 철은 잘 지내련만, 영양가 없는 씨 때문에 조져버렸다.





지천에 늘린 산초열매나 땡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번 힘들여 따지만 버리기 일수다.
제 작년엔 산초를 잔뜩 따서 기름 짜려고 방앗간에 가져갔더니, 냄새가 독해 다른 기름을 못 짠다며 짜주지 않았다. 
담아 둔 산초 장아찌도 일년은 더 먹을 양이 남아 있다.






내버려 두고 일을 줄이니 하루 만에 가을걷이가 끝나버렸다.
정선에서 하루도 자지 않고, 오후 여섯 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도 명색이 가을걷이라고 정영신씨는 술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복분자술이 세우와 전어 몇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정영신씨는 고추 다듬느라 정신없었으나, 난 대마초를 술병에 옮겨 담았다.
정영신씨가 서인형씨로부터 선물 받아 둔 연태 고랑주를 거기다 쏟아 넣었다.
아끼던 좋은 술이건만, 더 멋진 술을 맛 보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혹시 알 수 있나?
그 술이 약술되어 봄이 돌아올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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