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떠나보내는 날, 방안에 갇혀 있자니 온 몸이 근질거렸다.

인사동에 나가려 미적거리는 걸 눈치 챈 아내가 말했다.

“길도 미끄러운데, 새 해 계획이나 세우시죠.”

못들은 척, 우편함에 들어있는 잡지를 꺼냈다.

월간문학 신년호 첫 페이지에 민영 선생님의 시가 실려 반가웠는데,

아내가 전화를 바꿔 줬다.

시인 강민선생님께서 인사동에 나오셨다는 전갈이었다.

얼씨구나! 가방을 둘러메고 선생님이 계신“인사동 사람들”로 달려갔다.

혼자 앉아 계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쓸쓸한 오늘의 인사동을 읽었다.

 

오후4시가 가까운데도, “노마드”, “푸른별 주막”,

그리고 “백련”까지도 문이 닫혀 있었다.

성탄절도 그랬지만 년 말 인사동 분위기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선생님께서 빙판에 미끄러져 가며 찾아 간 술집이 “포도나무집”이었다.

그 곳에서 사진하는 안영상, 고 헌씨, 그리고 장춘씨를 만났다.

늦게 김명성씨와 연락이 닿아 찾은 곳은 “부산식당”인데,

김철기씨 내외분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만찬자리였다.

돌아오는 길에 “노마드”에서 전활철, 장 춘, 노광래, 최일순, 손성근씨를 만났고,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마지막 술잔을 나누며 새해를 맞았다.

 

새해 첫 날부터 고주망태가 되었으니, 올 한 해도 순탄치는 않으리라!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부산식당’과 ‘노마드’에서의 기억들이 지워져

찍은 사진들을 보며 짐작해야했다.

요즘 들어 부쩍 필름 끊기는 일이 잦은데,

강선생님께서 밤 늦은 시간에 잘 가셨는지 걱정스럽다.

 

 

2013.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