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콧수염으로 통하는 사진가 김영수씨가 지난 6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그 와는 30년지기지만 생각이나 삶의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주고 받은 기억이 난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속담에 빗대어 그의 성격을 나무랐더니
'야 인간아! 니 처럼 살면 밟혀 죽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 번 마음이 상하면 두번 다시 뒤돌아 보지 않는 성격이다.
괴팍한 그의 박치기에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는데, 결국 그는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화를 다스리느라 술을 마시고, 술 때문에 큰 병을 얻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깨우치고 외로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기구한 그의 삶이 너무 가슴 아파 일찍이 영안실을 찿아 나섰다.
작업실에서 내려와 낙원동 쪽으로 가는 길에서 난데없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안경과 모자는 보이지 않고 구경꾼만 모여들고 있었다.
포터 옆에는 운전한 사람인 듯한 40대 남자가 물끄럼이 지켜보고 있었다.
'운전하는 사람이 앞도 않 보냐? 며 역정을 내자
미안하다는 말은 커녕 '보험처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적인 면은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로 치닺는 세태에 울화가 치밀어
'돈만 있어면 지 애비도 잡을 놈이네!'라며 그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문득 화를 잘 내던 김영수씨가 떠 올랐다.
경찰과 앰블란스가 나타나 그쯤에서 부끄러운 시간들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을지로 백병원으로 가겠다는 구급대원의 말에 친구가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가자며 우겼다.

응급실에서 다리 깁스만 한채 영안실로 향하다 길목에서 사진가 강운구씨를 만났다.
병원복 차림으로 절뚝거리는 초라한 행색에 대한 사연을 듣고 그가 한마디 했다.
'그 친구, 저승길이 외로워 조형을 데리고 갈 작정을 했구먼'

영안실에서 영정사진을 올려보니 김영수씨가 웃고 있었다.
부디 영정사진 모습처럼 저승에서라도 웃고 지내시게나.

오랜동안 같이 사진을 해왔지만 그는 카메라를 무기처럼 사용한다는 생각을 가끔 해왔다.
그 무기로 인해 조그만 재물과 영예는 거두었을지 모르지만, 죽음 앞에 모두 잃어버렸다.
산다는 것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술이 취했다.
초상집에서 노래도 부르고 정인숙씨에게 "시원 섭섭하겠다"는 못 된 말도 했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그 다음 부터는 필름이 끊겨 버렸다.
그 이틑날 몸은 아프고 속은 뒤집혔지만, 병문안 온 김명성, 전활철, 공윤희씨와 술로 속을 달랬다.

조경석선생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나 창살 없는 감옥살이였다.
그러나 스스로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갖기로 작정했다.

'위기가 기회'라듯 스스로의 화를 다스리고 깨우치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갈 작정이다.

오늘 아침 친구의 어머니가 죽은 자식을 위해 정릉에서 굿판을 벌린다는 연락이 왔다.
"영수씨! 잘 가시게, 같이 못가 미안하네"

 

-서부병원에서 조문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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