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까치걸음으로 지나다 가끔은 심술도 이는지 숲을 헤집기도 합니다.
거친 일렁임이 멈춘 자리는 잠시 정적이 머물고, 달고 짧은 긴장을 새소리가 깨트리곤 합니다.
숲에서 정물이 되어 생명의 박동에 귀를 주고 있습니다.
깨어나는 소리. 절로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소리 , 삼라만상의 여닫이 소리.


천상병 선생님,
선생님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지 어느덧 열여덟 해가 지났습니다.
1993년 4월 29일 선생님 홀로 누워 계셨던 의정부 장례식장의 풍경이 어제 일인 듯 선연하게 다가듭니다.
부슬부슬 봄비 뿌리는 의정부 의료원 앞마당 세 칸 천막에는 경향 각지에서 모여든 조문객들로 빼곡했었지요.
선생님이 안방처럼 드나들던 인사동 지인들도 대부분이 자리를 함께해서 마치 인사동을 통째로 옮겨온 듯했습니다.

계신 듯, 안 계신 듯 조용히, 아주 조금씩 술잔을 비워나가시던 선생님.
선생님이 떠난 그때 그 자리에서 이따금씩 고성을 지르다 옆자리의 조문객과 드잡이를 하던 외로운 영혼들.
그들의 이유 없는 분노도 선생님을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집안 어른이신 천승세 선생님은 신발을 어디에 벗어두고 오셨는지 빗물에 흠뻑 젖은 검정색 양말로 장례식장에 뛰어들어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꼭 봐야만 하겠노라며 이미 입관을 마친 선생님의 관을 개봉해달라고 울부짖기도 하셨습니다.
천승세 선생님은 훗날 선생님이 가시는 길을 지켰던 제가 대견했던지 닭 한 마리 잡아주시겠노라고 김포 댁에 꼭 찾아와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만 그러겠노라고 답변만 하고 찾아뵙지 못한 지도 열여덟 해나 지나버렸습니다.

송산 공동묘지로 선생님을 모시던 날은 궂었던 세상이 봄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의정부의료원을 나서던 선생님의 운구차량을 뒤따르던 긴 차량행렬들의 비상깜빡이는 꼬리가 끊길 줄을 몰랐지요.
하관 때에 흰 국화 한 송이와 흙 한 삽 떠 내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뒤로 하고 저는 직장을 향해 발길을 돌렸었습니다.
그 봄, 화사한 봄볕 속에 선생님은 생전에 늘 그리워하시던 하늘로 되돌아 가셨습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 한동안 인사동은 늦가을 정경이었습니다.
삼삼오오 무리지은 술판에서도 현저하게 말 수가 줄어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롱 밑에 구겨진 와이셔츠’ 모습으로, 선생님의 귀하고 은밀한 그곳에까지 전기고문을 가했던
공권력의 하수인들조차 용서하고, 선생님은 성자의 모습으로 머물다 소풍을 마치셨습니다.

오늘 새삼 선생님이 그리운 것은 날로 삭막해지는 세상 탓일까요, 아니면
선생님의 큰 그릇을 닮고픈 욕심 때문일까요?


“요 놈, 요 놈 요 이쁜 놈”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출처] 하늘로 띄우는 편지|작성자 구두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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