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쟁이 정영신을 말한다.

그는 24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시골 장터의 정겨운 풍경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대개 사진가들이 작업을 하다보면 시류에 따라 주제가 바뀌기도 하고,
살기 위해 새로운 주제를 찾기도 해, 평생 작업으로 끌고 가는 경우는 드물다.
오랫동안 장터를 찍었다는 사진가들도 대개 2-3년이면 끝내는 경우가 많고,
그 외는 재미가 아니면 공모전용 사진소재를 찾는 능마주이들이 전부다.

정영신은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부터 장터를 겨냥했다.
장터를 기록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사진을 선택하는 것과,
사진을 하다 장터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은 아무런 기교도 멋도 부리지 않는다.
다만 장에서 따스한 인간애를 느끼는, 마음의 고향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골 아저씨들의 등짐에, 아줌마들의 봇짐에 감춘 사연 사연들을 찾아내며 사진을 찍었다.
오로지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과 정에 취해 장돌뱅이처럼 떠돌아 다닌 것이다.

다큐멘터리사진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현장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짙게 깔려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장터 사진을 보면 따뜻한 인간애가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동안 한국 중견사진가 두 사람이 시골 장터를 찍어 사진집을 펴낸바 있다.
그 사진들에 비해 정영신의 장터사진은 산만한 느낌은 들지만,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장터의 난장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대부분의 사진인들이 화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치우는 등,
주변을 정리해 기록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오히려 하잘 것 없는 집기나
생활용품 에서도 그 시대상황과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만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럴듯한 배경을 택해 장꾼들을 연출시키는 기존의 사진들에 비해 순간적인 감정 표현이나
어지러운 장터 분위기가 오히려 가슴에 와 닿는 울림이 훨씬 크다.

대개 사진인들이 습관적으로 찍을 소재를 찾게 되면 화면을 구성하게 된다.
장터 특성상 하이앵글, 즉 위에서 내려 보고 찍는 것이 효과적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영신씨가 구사하는 카메라앵글은 대개 수평이다.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의 자세가 평행이거나 아니면 더 낮은, 즉 동격을 의미하고 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물건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것 또한 최고의 어프로치였다.
재미는 좀 덜하지만, 그보다 몇 배로 값진 장꾼과 사진쟁이의 소통으로 대상의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영신식 색깔의 장터세계이고 작품세계인 것이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8년 전에 펴낸 정영신의 "시골장터 이야기"는 이미 13쇄에 이르도록 많이 팔렸다.
정영신씨가 장터에서 느꼈던 훈훈한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그의 장터사진으로 그림을 그린 책이다.
지난해에는 '한국방송통신공사'가 해외 동포들을 위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정영신씨의 작업과정과 사진작품들, 아리랑제 장터 설치전'등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시골장터의 정겨움이 세계 곳곳에 방영되어 해외 동포들에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안겨 주었다.
이것이 곧 사진의 힘이다.

한국의 장터 자료를 모은 사진집 "한국의 장터"는 정영신의 장터 철학을 조명할 수 있는 사진집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장터를 찾아다니며 기록하고, 보부상에 대한 사료를 찾아 온 정영신 만의 저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정영신의 '장터'사진들을 보면 스타이켄의 '인간가족'이 떠 오르고, 잊었던 고향이 그리워진다.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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