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 전의 인사동은 밤 9시만 되면 인적이 거의 끊어져 버렸다.
야차가 나타날 것처럼 은산하고 괴괴하였으며 쓸쓸 맞기까지 하였다.
이따금씩 한복 차림의 기생들과 함께 술 취한 넥타이꾼들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는 곧 사라져 버리는 것이 인사동 야경의 전부였다.
필방들과 골동품 가게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겨우 구멍가게 하나와 골목 끝에 숨어 있는 실비집 만이 백열등을 밝히고 있었을 뿐,
초저녁부터 인사동은 까만 침묵 속으로 까무룩하게 빠져 들어가곤 하였다.
우리는 텅 빈 위장 속에 농약처럼 소주를 풀어 넣으며 밤이 새도록 알 수없는 사랑에 대해 떠들어대곤 했다.
제 풀에 지쳐서 절망을 하기도 했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터무니없는 분노를 폭발하기도 했다.
그 후 삼십 년이 흘렀다.
몇몇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고, 시인이 되었고, 화가가 되었고, 영화감독이 되었으며, 사장이 되고, 정치인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몇몇은 술병으로 타계하여 전설이 되었고, 또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또 몇몇은 입산(入山)을 했다.
그리고 또 몇몇은 아직도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조해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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