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다 6,4지방선거까지 겹쳐 바닥을 쳤던 시장경기가 현충일 연휴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오일장과 더불어 주말에 열리는 장아찌 체험행사를 취재하려 지난 12일 새벽 일찍 서울에서 출발했다.
어디를 가던, 출근시간대의 자동차정체를 피하기 위해 새벽에 떠나는 것이 일상화되었으나,
엊저녁 인사동에서 늦도록 퍼 마신 후유증인지 몸이 편치 않았다.

오전 9시무렵에야 만지산 '사진굿당'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짐을 내린 후 곧 바로 정선장으로 나갔다.
문화장터에는 손님 맞을 공연준비에 바빴고 , 또 하루의 전쟁을 시작하는 장사꾼들은 손님 받을 준비로 부산했지만, 모두들 표정들이 밝아 보였다.  

파출소 앞에서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나와 농산물원산지표시제와 부정유통신고 캠페인을 벌이며, 강원도 배추로 담근 김치시식과 한우 등을 홍보하고 있었고, 문화장터 입구에서는 '강원대학교'에서 '정선아리랑시장'에 대한 고객 만족도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 뺏기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홍보나 설문조사도 그냥은 잘 응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치약을, 홍보 전단지를 받는 사람에게는 물티슈를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제법 몰려 들었다.

문화장터에는 단골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모여들었고, 아리랑가락도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늘상 보아왔던 아리랑소리공연과 민속놀이, 떡메치기, 노래자랑 등이 순서대로 진행되었으나 그 중 ‘아리랑무용단’이 보여 준 전통무용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춤의 완숙함보다는 시골 어머니, 할머니들로 구성한 순수 아마추어 무용단이라는 점에 더 호감이 갔다. 가끔은 군무 대열이 비틀어지기도 하고 손발이 안 맞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런 건 문제될게 없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분단장 곱게 하고 춤을 춘다는 것 자체만으로 보는 관객까지 행복해진다.

이리 저리 장터를 돌아다니던 오후3시 무렵 허기가 졌다.
돌아다니다보니 아침식사를 걸렀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었던 게다. 먹거리촌의 단골집 '아우라지식당'에 갔더니 아줌마들이 모여앉아 다슬기를 까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즐겨먹는 곤드레 밥을 시켰는데, 배고픈 걸 어떻게 알았는지 밥을 수북이 담아 주었다. 된장에 양념장에 정신없이 비벼 먹고나니 갑자기 식곤증이 몰려왔다.
근 일주일을 비어 둔 집 청소에다 군불 때고, 할 일들이 많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선시가지에서 벗어나 꼬불꼬불 산길 따라 가는 솔치재 쯤에서 졸음이 쏟아져 아찔한 순간을 만났다. 낭떠러지 직전에 핸들을 꺾어 위기는 면했으나, 순간적으로 “오! 마이 갓”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말이 나와 웃었지만, 결국 덜 급했다는 이야기였다. 구석진 자리에 차를 세우고 가벼운 몸 운동을 한 후 다시 차를 몰았다. 전국장터를 떠돌아다닐 때, 졸음운전으로 아찔한 경우를 당한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지만 용케도 사고를 낸 적이 없는데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 무리를 감행한 것이다. 잠 쫓느라 꼬집기도 하고, 때로는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노래도 불러가며 조양강 강변길을 접어들었으나, 결국 귤암리 마을입구에서 사고를 내고 말았다. 갑자기 "쾅~"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시멘트로 만든 가드레일을 들어 박은 것이었다. 내려 보니 운전석 타이어는 찢어졌고 바퀴를 잡아주는 축이 주저앉아 있었다.

 

몇일 전 자동차검사 받는데 문제가 생겨, 수리비로 40만원이나 지출했는데, 또 사고까지 쳤으니 마누라 볼 면목이 없었다. 다시 정선시내에 견인되어 견적을 받았으나 보험처리가 안 되는 업체라 ‘아세아공업사’로 옮겼는데, 수리비가 처음 견적보다 1/3이나 더 많았던 것이다. 아무리 보험사가 봉이라지만 결국은 소비자들의 보험료만 높게하는 이러한 악덕업체는 절대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하루에 네 번씩, 오후6시에 출발하는 귤암리행 마지막 버스는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서야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기사양반의 대답도 재미있다. “이북서 왔능기요?”

사실 정선에 온지 15년이 넘었으나 정선에서 한 번도 버스를 탈 기회가 없었다.

 

귤암리 하차장에서 내려 윗만지산까지 걸어야 했지만 불편하다는 생각도 잠시 뿐, 너무 행복한 산책길이 되었다. 매번 지나치던 길이지만 새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흐르는 강물소리의 절절함에서, 길섶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의 속삭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자연환경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이 된 것이다.

밭에서 옥수수 파종하던 최종대씨로 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만지산 꼭대기에 있는 최씨댁으로 갔다. 저녁상을 받으며 그제사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죽을 때가 되었다.“던지 ”죽는다.“란 말을 입버릇처럼 뱉어 왔기에 “당신은 벌 받아 천 년 만 년 오래 살 것이란” 말을 아내로부터 수차 들어 왔던터다. 이번 졸음 사고도 걱정할까봐 숨기려 했으나 나중에 보험사의 연락으로 알게 될 것 같아 이실직고 했더니 아내의 답이 걸작이다.

​ “당신 진짜 명줄 하나는 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