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직장인 등 북적
한경갤러리의 판화전에도 관람객·문의전화 이어져

서울 관훈동 가나인사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23일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 작품 ‘빨래터’를 감상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박수근이 미술학교를 나왔으면 이런 작품이 안 나왔을 거야. 파리에 유학 가기 전에 그를 자주 만났지. 파리에서 돌아와 그의 집으로 찾아가니 미술 도구도 없이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더군. 생전에 개인전은커녕 제대로 된 화실조차 없이 마루에서 그림을 그리던 불우한 예술가였지.”(서양화가 김흥수)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3월16일까지)과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의 판화전(28일까지)에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나아트갤러리의 ‘박수근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는 지난달 17일 개막 이후 한 달간 4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가나 측은 평일에는 하루 1000여명이 전시장을 찾았고, 주말에는 2000~3000명이 관람했다고 밝혔다.

국내 미술시장의 ‘대표주’가 펼쳐놓은 ‘상상력의 보고’인 이번 전시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장년층을 비롯해 젊은 층, 노년층, 주부, 직장인, 학생까지 다양한 관람객이 다녀갔다. 기업인과 미술 전공자, 외국인 관광객, 자녀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가족들도 찾아왔다. 향토적인 민족 정서를 그림에 담아낸 박 화백이 한국 현대미술 문화에 끼친 영향 때문에 전시장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정우현 MPK(옛 미스터피자)그룹 회장은 “박 화백이 단순하면서도 민족적인 화풍을 살려내려 평생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며 “1950~60년대 일상 속 노인, 부녀자, 소녀 등의 이미지들을 작은 화면 속에 정감 있게 그린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 정서가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두 번 찾았다는 한수정 갤러리 이즈 대표(46)는 “박 화백의 다양한 작품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며 “한쪽 눈에 백내장을 앓으며 여인들을 그린 작품에는 숱한 세월을 견뎌온 마애불 같은 질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3층에 전시된 1952년작 ‘빨래터’.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미술품경매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던 이 작품은 이보다 가라앉은 색채의 또 다른 1.1m 크기의 ‘빨래터’와 함께 걸려 꼼꼼히 대조하는 관람객이 많았다.

정주성 삼성물산 전무(53)는 “이 작품 앞에 서 있으면 개울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며 “새봄과 새날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포근한 애정이 감지된다”고 감탄했다.

소설가 박완서의 처녀작이자 출세작 ‘나목(裸木)’에 영향을 미친 1956년작 ‘나무와 여인’이라는 작품 앞에도 관람객이 북적거린다. 나목이 자리잡고 그 아래 두 여인이 배치된 아주 단순한 설정이지만 박수근이 다룬 모든 여인들을 집약했다는 점에서 박 화백 미학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귀가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황토색 짙은 미감으로 묘사한 1962년작 ‘귀로’, 1950년대작 ‘시장 사람들’, ‘노인과 소녀’(1959년), ‘고목과 행인’(1960년대) 앞에도 줄지어 있다.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출품작은 모두 개인 소장자에게 빌려온 것으로 한국 미술 거장의 작품을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며 “전시에 자주 안 보였고 사연이 있는 작품들을 연대별로 선별해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한경갤러리의 ‘박수근 판화전’에는 저렴한 가격의 판화를 소장하고 싶어하는 애호가들이 몰려오고 있다. 한경갤러리는 1954년 국전 입선작인 ‘절구질하는 여인’를 비롯해 ‘귀로’ ‘아기업은 소녀’ ‘독서’ ’젖먹이는 여인’ ‘노상’ ‘골목안’ 등 20여점을 점당 30만~4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유화전 문의 (02)2287-3500.판화전 (02)360-42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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