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 숙소 부지 한옥호텔 건립 논란

 

서울 종로구에서 대한항공과 삼성화재가 중소형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두 부지 모두 학교보건법상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에 속하지만 문화형 호텔 설립을 추진한 대한항공은 건축 허가를 거부당했다. 반면 비즈니스호텔 건립을 추진한 삼성 측의 부지는 지난 2월 서울 중부교육지원청으로부터 정화구역 해제 판정을 받았다. 5분 거리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지역에 건립되는 또 다른 호텔에 대해서는 교육청이 건축을 허가한 것이다. 그런데 그 허가를 내주는 잣대가 모호하다.

 

종로구 송현동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의 대한항공 한옥호텔 프로젝트 부지.

대한항공은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으로부터 호텔 건축 허가를 거부 당했다.

 

최근 서울 경복궁 인근에 ‘종로구 송현동 49의 1’이 한옥호텔을 건립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25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학습 환경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관광호텔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한항공의 해당 부지가 중·고등학교 인근에 위치, 호텔이 들어설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당·정·청이 다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개정 법안의 골자는 유흥 시설과 사행 행위장, 미풍양속을 해치는 부대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 내에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수년째 무산…이대로 좌초되나
대한항공이 공을 들이는 이곳은 옛 주한 미국대사관 숙소였던 부지다. 면적 3만6642㎡의 이곳을 2008년 삼성그룹으로부터 2900억 원에 매입했다. 조양호 회장의 맏딸인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대표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이 사업의 청사진을 보면 대한항공은 호텔과 문화 전시장을 지어 인사동·경복궁·북촌 등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숙박과 문화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예정이었다. 담장 밖 학교와 가까운 쪽에는 공연장과 갤러리를, 율곡로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변에는 국제회의장을 배치하고 호텔은 건물 한가운데로 깊숙이 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은 무산되기 일쑤였다.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학교 반경 200m 이내)에는 원칙적으로 관광 숙박 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학교보건법 조항 때문이었다. 사실 이 부지는 애초부터 부침이 심했다. 삼성그룹이 사서 미술관을 지으려다 여의치 않자 대한항공에 판 땅이다. 경복궁이라는 대형 문화재가 코앞에 있는 데다 풍문여고·덕성여중고 등 학교를 끼고 있어 건축 규제가 많았다.

실제 대한항공 측은 호텔의 규모가 기존의 대형 호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데다 문화 전시 시설이 부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서울시는 대한항공의 부지가 정화구역에 속해 있고 전통 문화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들어 호텔 건축을 반대하고 있다. 호텔 부지와 가까이에 있는 풍문여고 역시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강경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치열한 법정투쟁을 벌였다. 2010년 4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서울행정법원)과 2심(서울고법)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패소한 뒤 지난해 8월 학교보건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헌법 소원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던 차에 학교 인근에 관광·숙박 시설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에 힘입어 기사회생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법 개정과 교육청의 재심사를 거쳐 대한항공이 사업 계획 승인을 다시 신청하면 주민 의견 청취와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법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게 시의 공식 방침이다.

정부가 호텔 건립을 측면 지원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관할 지자체는 여전히 ‘불허’쪽에 기울어 있다. 해당 부지는 시장이 재량권을 갖는 북촌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여 있고 이 계획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해당 부지에 숙박 시설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는 내부적으로 직접 송현동 부지를 사들여 공익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시 재정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안이다. 이 때문에 정부 매입을 통한 관광자원 활용이 차선책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시 관계자는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해당 부지는 한양 도성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역사문화벨트의 중심이라는 입지 여건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종로구민은 “종로에는 호텔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게 좋다”며 “지금 관광버스나 차 댈 곳이 없다. 호텔 주차 시설 이용으로 교통 문제도 완화되지 않겠는가”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주민 역시 “이 동네 사람들은 다 환영한다. 그 땅이 몇 년째 공터로 있는지 모르겠다”며 “규제를 풀어줘야 할 텐데 소송에 걸려 있으니 손해가 많다”며 호텔 건립에 대해 찬성 의견을 전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에 호텔이 들어선다면 역사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주민은 “호텔이 생긴다는 부지는 전체 북촌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게다가 바로 옆의 경복궁과 나란히 있다고 생각하면 낯설다”며 걱정했다.

대한항공 호텔 계획 부지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서는 삼성화재가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곳은 대한항공과 달리 이미 허가를 마친 상태다. 삼성화재 소유로 알려진 종로구 관훈동 155의 2의 면적 2075.2㎡는 현재 비즈니스호텔 건립을 위한 토목공사가 준비 중이다. 2011년 대성쎌틱 부지를 1384억 원을 주고 사들인 이곳은 차도 쪽으로는 조계사의 바로 맞은편, 골목 안쪽으로는 인사동 거리와 맞닿아 있다. 대한항공 소유의 부지와는 직선거리로 150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특정 기업만 허가…“불공평해”
삼성화재는 이에 따라 종로구청에 관훈동 155의 2 부지를 관광·숙박 시설로 개발한다는 내용의 개발 계획서를 제출했다. 비즈니스호텔은 주로 비즈니스맨들이 출장 같은 업무에 이용하는 숙박 시설이다. 1~2인실 소형 객실 위주로 구성되며 일반 호텔보다 요금이 저렴한 편이다.

삼성화재의 관훈동 호텔 건립 계획 역시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첫 번째 문제는 문화재 훼손 여부였다. 해당 부지는 기존 건물 철거 작업 중 문화재가 발굴돼 공사가 잠정 중단된 바 있다. 그런 만큼 공사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 2월 관훈동 부지에서는 기존 건물 철거 작업 중 장대석인 긴 장방형 마름돌이 발견돼 문화재청이 공사를 중단시킨 바 있다. 둘째는 바로 맞은편에 있는 조계종에 끼칠 피해다. 15~20층 정도의 호텔이 들어서면 조계사의 종교 및 수행 환경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조계사를 비롯해 종단 차원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셋째는 이 부지 또한 학교보건법 제한 규정에 따라 호텔 건축 계획이 실행될 수 없는 곳이다. 길 건너 풍문여고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 부지도 학교보건법상 호텔 건축이 금지되는 정화구역에 속한다. 풍문여고 정문을 기점으로 할 때 이 부지는 반경 180m 지점에 속한다. 그러므로 학교보건법에 따라 호텔 등 학습 환경을 저해하는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 호텔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담당 교육청인 중부교육지원청의 해제 승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지난 2월 서울 중부교육지원청이 “학습과 학교 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 ‘해제’를 밝혀 삼성화재의 호텔 건립은 사실상 최대 고비를 넘기면서 순항할 토대를 마련했다. 물론 풍문여고 측의 동의도 얻었다. 삼성 측은 호텔 부지가 인사동 고미술품 상가와 맞닿은 만큼 전통문화와 연관성이 깊은 특성에 맞춘 비즈니스호텔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화재 측 역시 “시에서 허가가 난 부분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며 “주변 학교와 주민들의 합의 내용이 허가를 받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특정 기업의 호텔 부지만 정화구역에서 해제했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며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단순한 호텔 땅으로만 볼 게 아니라 새로운 ‘한류’를 창출할 수 있는 도심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메거진]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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