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서울 구석구석

 

[여성동아]글·구희언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연인과 가족의 단골 나들이 코스인 인사동길. 알고 보니 역사적인 명소도 곳곳에 숨어 있었다. 걷기 좋은 계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조선 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각각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게 지금의 인사동이다. 지금의 인사동길은 종로2가(인사동 63번지)에서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관훈동 136번지)까지를 말한다.

인사동 하면 쌈지길과 다양한 찻집, 기념품점, 화랑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사동의 지나친 상업화로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걸 아쉬워한 이들이 뭉쳐 만든 ‘인사누리’는 인사동 다르게 보기를 제안한다. ‘인사동을 누리다, 누비다’의 준말인 인사누리는 중요한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며 역사 인식을 바로잡고, 인사동의 참모습을 알리고자 기획된 역사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인사동 맛보기(2시간), 인사동 보물찾기(3시간), 인사누리 체험 여행(5시간) 코스 중 인사동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인사누리 체험 여행 코스 일부를 소개한다. 그동안 몰랐던 인사동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 정신 깃든 승동교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인 승동교회는 1893년 곤당골교회를 계승한 교회로 1백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899년 지어진 2층 예배당은 19세기 말 개신교 교회당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러 차례 수리하고 보완 작업을 거쳤지만 기본적인 형태와 구조는 예전 거의 변함이 없다. 3·1운동 당시 학생대표들이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7

조선 시대 서울의 중심 서울중심표석

지금은 광화문 사거리 세종로파출소 앞 미관광장에 있는 도로원표가 서울의 중심이지만, 조선 시대 서울의 중심은 인사동이었다. 서울의 중심을 정한 건 태조 이성계로, 조선 건국 당시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경복궁을 건축한 뒤 4대문과 성곽을 쌓고 중심 지점을 잡았다. 1896년 세워진 서울중심표석은 당시 이곳이 서울의 중심이었고, 전국 지번의 중심 지점이 되는 곳이었음을 알려준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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