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소리  

 

[346호] 영주시민신문 

 

1주기 추모식에서...

 

적음(寂音)이라는 법호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고요할 적, 소리 음이니 자칭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라고 했다.

이름은 근사하지만 웃음소리가 필요이상으로 커서 시끄럽다.
공공장소에 함께 있으면 다른 분들에게 누가 될까 마음이 불편하고 민망스럽다.

본래 이 고장 사람이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고장에 나타나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이력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그냥 적음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아는 그는 어려서 불문(佛門)에 몸을 담았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저문 날의 목판화’ 등의 몇 권의 책을 남겼다는 것이 고작이다.
근래에는 농가에 조그만 집을 얻어 일소굴(一笑屈)이라 이름하고 혼자 살았다.

평상복을 입지만 머리는 스님의 형상이다.

윗니가 빠져서 늘 아랫입술이 앞으로 나와 있어 화가 난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걸음은 쪼작쪼작 걷는다.
동자승으로 불문에 들었으니 스님이라 할 수 있고, 곡차와 향을 즐겨하니 속인이라 할 수 있다.

아니다, 중도 아니고 속도 아니라(非僧非俗) 함이 더욱 합당하리라.

 

명절에 제사 지내라고 친지가 보내온 술을 조상보다 먼저 마시고

포를 뜯어 안주로 삼았으니 기인(奇人)이라 함이 가히 옳다 하겠다.
기인이니 생각과 행동이 여느 사람과 같지 아니하여 매사가 예사롭지 아니하다.

지난해 책을 낸다고 발문을 써달라고 해서 써 주었는데 그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일소굴에서 홀로 열반에 들었다.
며칠 전 그의 지인들이 주막 ‘하루’에 모여 그를 추모하는 모임을 가졌다.

평소 그와 인연을 맺은 인사동 친구들과 우리고장 수염 긴 친구들이었다.

인사동 사진작가 조문호의 작품을 영정으로 걸어놓고 그의 열반을 추도했다.
이승에서 그는 못 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성가신 친구였다.

 

누가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했던가.

그는 살아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죽어서 비로소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그에게 조금씩 빚진 게 있었다.

어떤 이는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만나주지 않은 것을 사죄하고

나는 그가 달라는 택시비를 다 주지 않고 만원만 주며 나머지는 걸어가라 했던 것을 참회했다.
그날 우리는 그에게 소홀했던 죄상을 고백하며 그의 맑고 아름다웠던 영혼을 추모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것은 침묵의 소리뿐이었다.

적음, 다시는 나지도 말고 죽지도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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