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가 만난 사람]가수 최백호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삶을 노래하다



                                             가수 최백호가 SBS라디오 녹음실에서 ‘최백호의 낭만시대’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진행 비결이자

                                             매력은 삶을 통해 얻은 따뜻함과 경륜으로 청취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상처를 감싸 안는 것이다.

                                             사진=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삶을 노래로 부른 가수가 있다. 어렵고 힘겨웠던 삶. 그 아픔과 슬픔이 노래가 되었다. 쉰 듯하고 탁한 목소리에 실린 그 노래.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서 듣는다면 메마른 가슴이 쓸쓸함과 애수로 흥건히 젖어들 노래다. 이쯤에서 <낭만에 대하여>의 가수 최백호를 떠올린다면, 맞다. 그렇듯 노래로 대중을 위로하는 그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청취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최백호의 낭만시대>가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진행자와 가수의 삶을 사는 그를 만나러 최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SBS 방송국을 찾았다.

  가수 최백호는 저녁 무렵만 되면 SBS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라디오 채널인 러브(LOVE) FM을 통해 매일 밤 10시5분부터 12시까지 전파를 타는 <최백호의 낭만시대>(프로듀서 이재춘)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5년이 넘도록 거르지 않는 일상이다.

 “늦은 밤이라 힘들게 생활하는 분들이 많이 들어요. 노점과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운전하고 장사하는 분 등등이 주요 청취자들입니다. 이분들에겐 상처가 있어요. 그런 상처가 담긴 사연을 보고 친구처럼 조언을 해줘요. 제 자신이 초년에 험난한 삶을 살아서인지 대부분 공감이 간답니다.”

 따뜻함과 경륜. 그가 원고 없이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또한 그 비결이 40~50대 중년층을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였다. 덕분에 그는 러브FM에서 최장수 진행자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수도권이 방송권이라 다른 지역엔 전파가 닿지 않는데도 지방 청취자들이 ‘고릴라’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프로그램을 청취할 정도다.

 “농민들이나 귀농인들의 사연도 꽤 들어와요. 언젠가 한 청취자는 부모님이 손수 키운 농산물을 택배로 받았대요. 그때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이 떠올라 가슴이 ‘찡’ 했다는군요.”

 하지만 그는 처음에 이렇게까지 방송진행을 오래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길어야 6개월에서 1년? 5년째 접어들면서 ‘그만둘까’를 고민했다. 매일 묶여 있어서 다른 일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취자들이 떠올랐다.

 “제가 그만두면 ‘그 힘들어하는 분들이 어디 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그분들이 저를 돌려세운 셈입니다.”

 힘겹게 사는 청취자들 못지않게 그의 삶도 힘들었다. 2대 국회의원을 지낸 부친(최원봉)은 그가 태어난 해인 1950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모친은 그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인 1970년 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부모의 부재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월세 낼 돈조차 없었던 경제적 어려움과 의지할 데 없는 외로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세상은 암담 그 자체였다.

 “원래 제 성격은 밝았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힘든 삶을 겪으며 어둡게 변했죠.”

 그때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이 통기타였다. 혼자 기타를 치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기타 치는 법도, 악보 쓰는 법도 스스로 익혔다.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못한 대신 얻은 것은 그만의 ‘개성’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가수가 될 작정은 아니었다. 친구의 소개로 부산의 한 통기타 공연업소(라이브클럽) 무대에 선 이유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공연이 조금씩 인기를 끌면서 당시 유명 음반사의 소속 가수가 됐다.

 “이를테면 ‘생계형 가수’죠.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는 대부분 배가 고파서 노래한 세대입니다.”

 첫 음반에 실린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무명가수이던 그를 세상에 알린 노래였다.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란 가사는 10월에 모친을 잃은 슬픔을 담아 그가 직접 가사를 썼다. 음악적 완성도도 높아 그가 가장 아끼는 노래다. 그럼 가장 고마운 노래는? 그는 40대 중반 무렵에 지은 <낭만에 대하여>를 꼽았다.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보다는 과거에 기대고 추억을 회상하는 40대의 정서를 그리고자 했다. 그런데 이 곡이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가수로서도 침체기에 빠져 있던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96년 김수현 작가가 KBS 2TV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남자들> 삽입곡으로 쓰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것. 노래를 발표하고 1년 반 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꿈도 못 꾼 그였다.

 사실 이 노래가 실린 음반이 그가 낸 음반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단다. 1996년 그해에만 어림잡아 35만장가량이 나갔다는 것. 그런데 그는 음반을 낼 당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에 500만원을 받고 제작사에 판권을 넘겨버렸다. 따라서 판매량에 비례한 수입을 기대할 수 없었던 노릇. 나중에 제작사로부터 고작 500만원을 추가로 받았을 뿐이다.

 “제가 나중에 그 노래를 담아 따로 제작한 음반까지 합하면 지금도 연간 수천장씩 판매됩니다. 돌아보면 한마디로 운이 없었던 거죠.”

 이 같은 삶의 곡절이 가사에 투영돼서일까. 특히 후배가수들은 그를 ‘가사가 가장 좋은 가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곡(멜로디)보다는 가사의 비중이 훨씬 크다. 그는 시를 쓰듯 가사를 먼저 쓰고 곡을 붙인다. 곡을 먼저 만들면 가사를 곡에다 억지로 맞춰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 풍부한 감수성으로 만든 노래 <첫사랑>을 담은 음반을 8월경에 낼 예정이란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작은 소망 하나를 내비쳤다.

 “농사가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요. 고교 1년 때 공부하지 않는다고 어머님이 저를 농업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시던 시골 이모네로 끌고 갔어요. 농사도 지으셨는데 거기서 한 6개월 정도 살았어요. 그때 구불구불했던 논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일을 이모네 머슴과 함께 했거든요. 한여름에 트랙터가 땅을 밀고 나면 올라온 돌들을 지게에 지고 개울까지 나르는 일이었는데 그때의 고생이란 말이 아니었죠. 저야 잠깐이었지만 농민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제 노래가 그분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만한 보람이 없겠습니다.”

▶최백호는

1950년 부산 기장에서 태어났다. 1977년 데뷔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19개의 음반을 냈다.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에 이어 1978년 <입영전야>, 1979년 <영일만 친구> 등이 연달아 인기를 끌었다. 1983년엔 MBC 10대 가수상과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학창시절 꿈이 화가여서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강영식 기자 river@nongmin.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