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너무 바빠 불알에 요령소리가 날 지경이다.

전시 치루느라 정신 차릴 겨를도 없었는데, 또 다시 전시 아닌 전쟁을 치루어야 할 판이다.

여기 저기 바쁘게 쫓아 다니다보니 반가운 사람도 많이 만났다.

 

어제는 '눈빛출판사' 예술산책으로 교정보러 갔는데, 사진평론 하는 진동선씨가 와 있었다.

둘 다 부산에서 올라 온 처지라 어찌 사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한동안 병원에서 고생하다 살아났다는 뜻밖의 소식도 전해주었다.

사진평론집 출판을 위해 왔다는데,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 역시 사진집이 나와 전시까지 준비해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16일부터 정영신의 ‘장날’전이 '돈화문박물관마을'에서 열리기도 하지만,

24일부터 나의 '인사동 이야기'도 '나무화랑'에서 열린다.

 

얼마전 노광래씨가 추진한 ‘인사동 이야기’ 복간이 생각보다 늦어졌기 때문이다.

‘노숙인, 길에서 살다’현수막 전시 때 싸 잡아 출판 기념회까지 열 작정이었는데,

한 분이라도 더 찍어 제대로 된 개정판을 만들려는 욕심이 문제였다.

 

사진원고가 지체된데다 책 만드는 ‘눈빛출판사’까지 요즘 일손이 모자란다.

출판사 운영이 어려워 파주로 옮긴 후로 이대표 혼자 살림 살아가며 책을 만들어야하니

날짜 맞추기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달 하순경 책이 나온다는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전시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적자를 무릅쓰고 내주는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아니겠는가?

사진은 못 팔아도, 책이라도 한 권 팔려는 속셈에서다.

 

문제는 전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시에 들어 갈 경비야 차지하고라도, 요즘 몸이 말이 아니다.

보름동안 전시 치루느라 퍼마신 술병 후유증으로 빌빌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죽지 못해 움직이는 산송장에 가깝다.

 

그렇다고 정동지 돕는 걸 포기할 수도 없지만, 아는 분들 행사도 어찌 모른척 할 수 있겠나?

근 한달 가까이 돌아 다니며 찍은 사진이 첩첩이 쌓였지만 그대로 처박아 둔 것이다.

이미 시기를 놓쳐 포스팅할 필요도 없는 것이 태반이라 정리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이 포스팅도 근 열흘 동안의 사진과 이야기를 짜집기 한 것이다.

 

며칠 전 정동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시할 '장날' 사진을 프린트하니 좀 옮겨 달라는 기별이었다.

'스마트협동조합'으로 가보니, 때 마침 김문호씨가 와 있었다.

예술인 등록하는 일이 까다로워 도움받으러 왔다는 것이다.

짐부터 옮겨놓고, 서인형이사장과 어울려 전으로 시작해 전으로 끝나는

전집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녹번동 정동지 집으로 이어졌다.

 

김문호씨는 나를 처음 만난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부산에 계셨던 사진가 최민식선생을 만나러 갔더니, '서울에 있는 조문호를 만나 보라' 했단다.

그래서 이석필, 안해룡, 김봉규, 추연공, 이한구씨등 여러명이 규합하여 ‘사진집단 사실’이란

동아리를 만들었고, 김문호씨와는 충무로에서 같은 사무실을 사용한 인연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이튿날은 아산에서 ‘공유공간 마임’을 운영하는 김선우씨가 녹번동 집으로 찾아왔다.

정동지가 ‘장날’전을 보조할 장터 소품 좀 알아보라 부탁한 모양인데,

어디에서 구했는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왔더라.

골동 가게에서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 있어 깜짝 놀란 것이다.

 

옛날 아리랑 성냥각에서 부터 손저울, 됫박, 체 등 귀한 것들만 챙겨왔다.

김선우씨는 안 되는 게 없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무조건 밀어부치는데는 선수다.

늦도록 노닥거리다 아산으로 돌아갔는데, 자정이 넘어서야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주말에는 정영신씨와 가을 나들이 겸 장터 촬영을 떠났다.

모처럼 호젓한 시간을 가졌으나, 머리는 온통 눈 앞에 닥친 전시 걱정뿐이었다.

전시할 마음을 먹었다가 취소하기를 여러차례 번복하니,

정동지가 ‘나무화랑’ 김진하 관장께 전화 걸어 전시할 날을 잡아버린 것이다.

이제 날자가 정해졌으니, 죽기 살기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있는 사진 골라 전시하는 건 어려울 것 없으나, 무슨 말을 하느냐가 문제다.

조그만 전시장이지만 인사동 정체성도 말하고 싶고, 흘러간 풍류도 되새기고 싶고,

암울한 인사동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 등 온갖 욕심만 난무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내년에 마무리할 ‘인사동 풍류 40년’ 출판전 때 하기로 하고,

며칠 동안 한가지에 집중해 사진을 찾아 보기로 했다.

 

지난 5일은 아침부터 연이어 연락이 왔다.

제일 먼저 케이비에스 이석재 피디 였는데, 오늘 만날 수 없냐는 것이다.

며칠 전 만난 자리에서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대신 다른 방면으로 협조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분량의 연말 특집이라는데, 시달리는 시간보다 빈민들 내세워 잘 난채 하는게 쪽팔려서다.

동자동 사는 동안 여러 매체에서 요청해 온 인터뷰를 번번이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지만 당면한 재개발문제에서부터 고통받는 빈민들의 현실을 알려

개선하는 일 또한 소홀할 수 없는 일이라 ‘동자동사랑방’ 선동수 간사장을 추천했다.

필요하다면 노숙인이나 쪽방 빈민 중에 힘든 사람을 연결시켜 주거나

그동안 찍은 스틸사진은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일단락 지은 것이다.

 

전화 온 바로는 일전에 말한 노숙인 소개도 받고 싶고,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을 샀는데, 사인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빛출판사' 이대표 약속이 내정되어 있어 월요일 오전으로 미루었다.

두 번째는 부산의 함창호씨가 오후 세시경 서울역에 도착한다지만,

그 또한 저녁 시간으로 미루었다.

 

녹번동에 들려 정동지를 태우고 경인선 책거리부터 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진동선씨가 이규상대표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이대표가 파주에서 챙겨 온 교정본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더러 이름과 사진이 바뀐 것도 있으나 초판보다 편집디자인이나 내용이 새롭고 알찼다.

인사동에서 50년 동안 리어카 끈 이방웅씨와

‘그림마당민’에서 잔뼈가 굵은 미술평론가 곽대원씨 사진까지 넘겨주고 마무리했다.

 

마지막 교정은 메일로 하기로 하고, 함창호씨가 기다리는 인사동으로 갔는데,

함창호씨는 짐 내려 놓고 온다며 좀 늦겠다고 했다.

'유목민'에는 장경호씨와 이기정, 한상진씨 등 반가운 분이 여럿 있었다.

골목에 앉아 술 마시다 보니, 벽치기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정동용시인을 필두로 박건, 김수길, 백승호, 정영철, 황경애, 이인섭선생까지 줄줄이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인사동 주막 골목의 진미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함창호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눈 뒤, 자리를 옮겨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작업하는 주제는 사라지기 직전의 농촌가옥과 사람이었다.

농민들 사진은 입상사진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기존 사진과의 차별화가 난제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남은 농촌 옛모습은 곧 사라질 우리의 유산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한 때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을 찍어사진집을 출판한바 있지만,

20년이 가까워지니 당시의 풍경은 모두 바뀌었고, 사람도 세상 떠난 사람이 더 많다.

내가 찍은 사진이 흑백사진인 반면 함창호씨 사진은 컬러사진이었다.

 

사실적인 측면에서는 컬러사진의 리얼리티가 더 강하다.

나 역시 예전에는 흑백사진만 고집했으나, 지금은 컬러사진의 생생함을 더 즐긴다.

함창호씨가 페북에 틈틈이 올리는 사진을 보아 왔는데,

자연이 주는 녹색의 푸르름과 따뜻한 황토색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엇보다 틀에 갇히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화면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다보면 자기만의 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늦게 사진 세계에 빠져들었다지만, 기존 아마추어 사진과는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빠져들어 나름의 가치를 찾아내고 있었다.

 

머지않아 농촌에 대한 그만의 사진세계가 확립되리라 기대되었다.

 

그나저나,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마시다 보니 주량을 초과해 버렸다.

마침 장경호씨와 함창호씨가 비슷한 연배인데다 둘다 경남고등학교 출신이라

두 사람을 붙여놓고 줄행랑 친 것이다.

 

거지 팔자에 대리기사까지 불러 뒷자리에서 비스듬히 누워 편하게 돌아왔다.

바쁘게 쫓아 다닌 하루였지만, 반가운 분들 만나 기분 좋은 날이었다.

'인천의 성냥공장'이 입에 달삭거렸지만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참았다.

 

사진, 글 / 조문호

 

 

 

 

2021.9,23

지난 23일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사진전이 막을 올렸다.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도 ‘유목민’ 담벼락에 내 걸어, 옛말처럼 떡 본 김에 제사지낸 것이다.

현수막전은 서울역이나 동자동에서 해야하지만 책을 팔기 위한 이벤트였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전시였으나 허리 통증이 심해 병원부터 들렸는데,

환자들이 많은데다 물리치료까지 받느라 시간이 지체되어버렸다.

핸드폰을 두고 와 정영신씨와 연락을 할 수 없었는데, 끝나고 가니 떠나고 없었다.

 

부리나케 전시장으로 달려갔더니, 아산 공유공간 ‘마인’ 김선우씨와 양햇살, 김온 군이 와 있었다.

사진가 전제훈씨는 일찍부터 왔으나 문이 잠겨 한 참을 기다렸단다.

마침 사진집을 가져온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도 와 계셨다.

 

아산 팀의 도움을 받아 ‘유목민‘ 담벼락에 현수막부터 설치했다.

아침 식사를 못해 전제훈씨와 '툇마루'에 갔다 오니, 그때부터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정영신씨 전시 보러 오신 분들이 현수막 전에도 들려 ‘유목민’ 골목은 일찍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코로나로 거리두기를 해야 할 즈음이라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김신용, 조해인, 김이하, 김명성, 김상현, 함창호, 조준영, 노광래

김문호, 장경호, 김수길, 김발렌티노, 최인기, 김종준, 윤 관, 이택근, 강기식, 조경석, 이두엽, 한상진,

김 구, 나종희, 노영미, 이상근, 이광군, 임경일, 최명철, 김효성, 서인형, 김성은, 김재홍,

이인섭, 김진하, 이창수, 이한복, 김영진, 곽명우씨 등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다.

 

난처하게도 ‘뮤아트’ 김상현, 김병수씨 일행은 악기를 가져 와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정영신씨 전시를 축하 한다지만 옆에 노숙인 사진이 걸려 있는데...

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내세워 잔치 벌이는 꼴이 된 셈이다.

흥겨운 음악이 아니라 애잔한 슬픔이 깔린 음율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신경이 곤두서 그런지 술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반가운 분들 만나 즐거운시간을 보냈는데, 끝난 후 나온 술 값이 한 달 생활비가 넘었다.

허구한 날 얻어먹기만 했으니 이참에 술 한 잔 대접한 것이다.

그나저나 술집 앞에서 열리는 전시라 끝나는 날까지 살아 남을지 모르겠다.

 

멀리서 와 주신 전제훈, 함창호씨를 비롯해 온 종일 일을 도와 준 아산 '마인'팀,

그리고 전시를 축하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선우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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