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동안 여러 가지 고민에 휩싸여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코로나119'로 사회적 거리두기란 캠페인에 방콕해서 그런 게 아니라

김명성씨로부터 전달받은 돈도 한 몫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검찰이나 정치꾼들의 비인간적인 꼴에 간도 뒤집히지만,

몇 일 전에는 동자동 쪽방 촌의 유영기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왜 나쁜 놈들은 잘 살게 놔두고 착한 사람만 데려가는지 모르겠다. 과연 신이란 게 존재하는 것인가?.

종교라는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역할은 하지만, ‘신천지꼴을 보니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벌금 내라며 김명성씨가 200만원 상당의 사진을 팔아주었는데, 죽어도 벌금을 내기 싫은 것이다.

그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판결 내린 판사도 똑 같은 놈이었다.

돈에 눈깔 뒤집혀 자연환경을 망가트리는 개인의 명예가 중요한가? 공익이 중요한가?

그런 개좆같은 판결에 승복하는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서울역을 떠도는 부랑자나 쪽방 촌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만찬이라도 벌이고 싶었다.

요즘 식당도 텅텅 비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닌가?

그러나 나를 걱정해 주는 이들이 눈에 밟히기도 하지만, 죽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몇 날을 누워 이런 저런 생각만 하다 보니, 일단 주변정리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쪽방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페친을 정리하는 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지적한 일의 반감으로 뒤통수치거나, 한 통속이 되어 반응 없는 페친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대부분 오래된 인연이라 차마 친구 끊기를 못했는데, 이참에 100여명을 골라 삭제해버렸다.

그 대신 페친이 넘쳐 받아주지 못했던 잘 모르는 분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분풀이 치고는 치졸했으나, 엉뚱한데 신경 쓰지 않고 내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각오였다.


 

지난 18일은 모처럼 외출할 준비를 했다.

정영신씨께 연락해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리는 변승훈씨와 강경구씨 전시를 보기로 했다.

개막식은 오후 다섯시였으나 요즘 전염병 때문에 사람 많이 만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오프닝에 날아들 똥파리를 피해 일찍 나선 것이다.


 

인사동도 며칠 전과 달리 사람들이 제법 나왔더라.

달라진 풍경이라면, 때 거리로 몰려다니는 외국관광객이 사라졌다는 것과

수도약국 앞에 마스크 사려고 줄선 행렬이었다.


 

강경구씨 전시가 열리는 통인가게’ 5층부터 올라갔더니, 관우선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따라주는 와인 한 잔들고 전시작들을 돌아보았는데, 작품이 너무 좋았다.

마치 고뇌하는 오늘의 인간상을 그린 듯한데, 어찌 보면 이글어진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좋은 작품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다음에 볼 전시는 지하에서 열리는 변승훈씨의 도예전 手作禪이었다.

반갑게도 작가 변승훈씨도 있었고 이계선관장도 있었다.

오래 된 작품에서 부터 최근작까지 골고루 전시되었는데, 분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변승훈씨만의 독창적인 작업이었다.

특히 최근에 제작한 불상 형태의 작품들을 보며 신은 인간자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작품은 불상이 아니라, 안성장터에서 몇 십년 동안 자리를 지킨 할머니들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힘은 무서웠다. 온갖 근심 걱정을 다 떠안은 불편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전시들이 곳곳에서 열리지만, 별 의미 없는 불편한 전시가 더 많은 현실이라 운도 따라야 한다.




인사동에서 믿을 수 있는 갤러리로는 통인가게전시장과 나무화랑정도로 꼽는다.

통인은 대관에 의지하지 않고, 관우선생과 이관장의 안목으로 초대되는 전시라 일단 보증할 수 있고,

나무화랑역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운영하는 화랑이라 실망시키는 전시가 별로 없다.


 

좋은 전시들을 보아 기분이 좋으니, 반가운 연락까지 왔다.

정영신씨가 며느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데, 아들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온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정영신씨 녹번동 집에 갔더니, 더디어 귀여운 공주님이 나타난 것이다.



귀신같이 생긴 내 모습에 울기도 하고, 제 모습을 담은 동영상에 깔깔거리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하랑이의 표정과 쉼 없이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부근에 있는 연안식당으로 옮겨 외식까지 했는데, 밥도 엄청 잘 먹었다.


 

그래, 좋은 일에 위안 받고 살자. 사는 게 별 것 있겠나.

 

사진, / 조문호













 

 




남지현과 조햇님의 딸 조하랑의 생일잔치가 지난 18일 불광동 ‘본페뜨’에서 열렸다.




서둘러 나서기도 했지만, 시간 가늠을 잘 못해 한 시간이나 빨리 와 버렸다.
약속 때 마다 꾸물대다 늦게 가기 일수인데, 어지간히도 기다렸던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식장 주변을 30분이나 서성이는 촌놈 티를 내고 말았다.




시간이 되어보니, 돌상은 식장에서 차려 놓았고, 접대도 부페식이라 도와 줄 일이 없었다.
마침 노재학씨와 이정환, 성유나씨가 들어와 식사부터 하며 시간 보낸 것이다.




하랑이 태어 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첫돌이라니 세월이 빠르기는 빠르다.



뒤늦게 나타난 하랑이는 자다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모습인데,
처다 보는 초롱초롱한 눈길이 '어디서 본 듯한 영감탱이'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몇 달 만인데, 이제 처녀 티를 슬슬내며 제법 의젓했다.




"아이구야~ 올매나 이뿌고 새칩은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손님들의 집중된 시선이 불편한지, 아니면 주인공이라 폼 잡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좋아하는 음식 한 점 먹지 못하고 사진만 찍으니, 편할 리야 있겠나.
타고 들어갈 장난감 승용차에선 핸들을 돌려 보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자신의 지난 모습이 편집된 영상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갑자기 좋아 하길래, 뭔 장면인지 확인하려다 그 순간마저 놓치고 말았다.

말은 못해도 뭔가 생각하는 건 있을텐데, 그게 뭘까? "하랑이 지금 정신 없어. 묻지마~"




드디어 우리 공주님께서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
세단을 탄 하랑이가 손님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이동했다.
케익에 촛불도 켜고 인사도 했다.




좋아하는 물건 찾는 순서에서는 다들 "뭘 잡을까?" 긴장했다.
실, 돈, 연필, 청진기, 마이크 등 갖가지 물건들을 살펴보더니, 마이크를 덥석 잡은 것이다.



이 녀석이 요즘 인기 있는 프로 ‘보이스 퀸’이라도 본 걸까?
아니면 진짜 가수가 되고 싶은걸까?



더 기가 찬 것은 사회가 아빠 더러 소감 한마디 하라니까 햇님이가 또 눈물을 글썽거리는 거다.
'하랑이를 키워보니, 아내의 고생스러움과 키워준 부모 마음을 알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하기야! 혼자 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사실 하랑이를 위한 잔치지만, 하랑이는 힘들 수밖에 없다.
돌잔치가 끝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하랑아!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란다.
그리고 하랑이 생일을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하랑아~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거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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