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출간한 황정수

 

미술평론가 황정수가 지난 11일 서울 인사동 황정수미술연구소 사무실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는 현장 취재와 발굴의 결과물이다. 돈이 생길 때마다 그림을 샀다는 그의 작업실엔 그림과 문헌 자료가 가득하다. 실물을 확인하지 않으면 작품 평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김종목 기자

“작품을 소유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소문난 수집·애호가
조선 말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의 화가와 작품 찾아 ‘있는 그대로’ 기록
“서구 인상파 영향 받은 이인성, 정확히 말하자면 구로다 세이키 영향”

 

“탑골공원에 가면 심전 안중식(1861~1919)의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가 떠오르고, 정관 이건중(1916~1979)의 사진 ‘탑골공원’도 생각나죠.” 미술평론가 황정수는 옛 서울의 흔적이 남은 곳에 갈 때면 관련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고 했다. 탑골공원에서는 “그림 네댓 개가, 사람 네댓 명이 머릿속으로 싹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살던 집은 탑골공원 근처라 ‘탑원’이라 불렸다. ‘탑원도소회지도’는 안중식·오세창 등 여덟 친구가 달빛 아래,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뒤로 두고 시·서·화를 즐기던 모습을 담았다.

황정수가 최근 출간한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푸른역사) 북촌·서촌 편 2권(사진)에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전후까지 격변기를 살아낸 화가와 작품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은 ‘황정수, 근대 그림들의 장소를 거닐다’로 여겨도 된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주상복합건물에 있는 황정수미술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황정수는 경성 화가들의 자취를 빠뜨리지 않으려고 기록을 하나하나씩 뒤져 다 찾아다녔다고 한다. “뜻밖에 화가가 많았어요. 대부분 서울 중심부, 그중에서도 북촌과 서촌에서 활동했더라고요.”

 

인물과 인맥, 지리, 미술사에 관한 육하원칙이 줄줄 이어진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은 광통교 쪽에서 활동했다.” “인사동은 일제강점기 서화골동(書畵骨董) 유통의 본거지다.” “일본인 화가들은 주로 남산 아래 남촌으로 들어갔다.” 황정수는 “인사동을 중심으로 북촌과 서촌, 남촌이 하나의 미술 벨트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왜 ‘경성 화가들’이었을까. “이중섭이나 김환기는 1950년 이전에 그린 작품으로 남은 게 다섯 점 될까 말까합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라 불리는 춘곡 고희동(1886~1965)의 작품은 서양화 석 점만 남았어요. 근대기 작품을 여럿 남긴 다른 작가는 왜 연구하지 않는지가 불만이었죠.”

 

근대기는 ‘일본 미술’ ‘일본인 화가’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는 “여러 연구자가 자랑스럽지 못한 일제강점기 역사 때문에 미술 분야에서 발전한 일본이 발전되지 못한 한국에 영향을 줬다는 식의 서술을 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파를 배운 일본인이 도쿄에 온 한국인에게 그림을 가르쳤는데, 이 한국인 제자가 나중에 한국에서 유명 화가가 되었어요. ‘서구 인상파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1886년 프랑스에서 화가 라파엘 콜랭에게 배운 구로다 세이키의 영향을 받아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 유명 화가는 고희동 등이다. 황정수는 “일본의 누구한테 무엇을 배웠는지, 왜 그런 작품을 그렸는지 하는 연구가 없다”고 말했다.

 

황정수는 2018년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이숲)를 출간했다. “일종의 한·일 문화교류사의 사초”로 책을 정의했다. 1908년 한국에 들어와 미술을 가르친 일본인 화가 시미즈 도운의 ‘최제우 참형도’와 ‘최시형 참형도’ 등 여러 작품을 발굴해 책에 실어 알리기도 했다. 그는 “(한국인 화가든, 일본인 화가든)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긴 건 미술사에 이름은 남았지만, 작품이 남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라고 했다.

 

책을 낼 때 ‘친일·반일’ 프레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황정수는 “일본인 화가들은 빼고 근대기 한국 미술과 경성 화가들의 면모를 볼 수가 없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신념으로 출간했다”고 말했다. 그 신념은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에도 적용됐다. 작업실은 온갖 작품으로 가득했다. 황정수는 소문난 수집가이자 애호가다. “작품을 소유하지 않으면 작품을 알 수 없다”는 신념으로 여유가 생기는 대로 작품을 사들였다. 부모님 드릴 용돈을 빼곤 다 그림을 샀다고 했다. 통틀어 1만점가량을 가졌다. 그는 “너무 그림이 좋으니까 안 사면 못 배기는 그런 병이 생긴 것”이라며 웃었다.

 

30여년간 작품을 수집하면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욕심을 낸 적이 없다고 했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나 다른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 갖고 있던 그림을 팔고서는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림을 팔아야 한다면, (화랑이나 개인이 아니라) ‘반값’에라도 미술관에 팔려고 한다”고 했다. “미술관에 가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요.”

 

황정수는 한밤에 깨면 불현듯 보고 싶은 작품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둘이 마주 앉으면 그림과 어떤 대화가 이루어져요. 미술품은 살아 있는 생물이에요. 무속인들의 접신 비슷한 걸 느낄 때도 있죠. 작가의 마음이 된 듯도 하고요. 그 희열이 매력적이죠.”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미술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는 “내 눈으로 보고, 내 발로 가본 곳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이라고 했다. “미술이 인간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걸 조금이나마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소를 찾았을 때 황정수는 출판사 요청으로 신간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이름 곁에 “畵中有詩 詩中有畵(화중유시 시중유화: 그림을 보면 시가 떠오르고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른다)”를 적었다.

 

경향신문 / 김종목기자

코로나로 답답한 세상을 산지가 이년이 넘었으나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다들 외출을 자제하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나 책은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엔 책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하기야! 나 역시 모르는 것은 인터넷에서 뒤져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신문 한 장 보지 않는 판에...

 

지난 8일 오후 여섯시 무렵 정영신씨와 함께 ‘눈빛출판사’ 예술산책이 있는 ‘경의선 책거리’에 갔다.

부산에서 이광수교수가 올라 오셨는데, '눈빛출판사 이규상씨와 사진가 김문호씨도 와 있었다.

격리기간 중에 약속한 일이라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쳐두고 기다린 날이었다.

 

모처럼 반가운 분을 여럿 만났는데, 전시장 아닌 책방에서 만나는 기분은 또 다르다.

새로 나온 따끈 따근한 사진집을 살펴보는 설레 임을 알랑 가 모르겠다.

초딩 때 방학 책 받아보는 그런 기분 말이다.

시인이며 무용평론가이고 서양화가인 고)김영태선생의 '초개일기'가 서거14주기를 맞아 나왔고,

마지막 사진집이 될지도 모르는 한정식선생의 ‘가을에서 겨울로’도 눈에 밟혔다.

 

힌두교사 깊이 읽기/ 이광수 지음 푸른역사/ 2만 5000 원

이광수교수로 부터 ‘푸른역사’에서 펴낸 ‘힌두교사 깊이 읽기’란 책도 한 권 선물 받았다.

그 책은 힌두교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힌 책인데, 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힌두교부터 알아야한단다.

힌두교를 모르는 불교 공부는 반쪽짜리라는 말에 더 관심이 생겼다.

불교가 인도의 역사에서 태어나 항상 힌두교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변화했기 때문이란다.

 

이광수교수는 정치평론에서부터 사진평론에 이르기 까지 다방면에 해박하지만,

국내 유일의 힌두교사 전공자로 부산외대에서 인도학을 가르치고 있다.

너무 많이 알아 구라나 글 빨이나 아무도 당할 자가 없다.

오죽하면 교수가 아니라 교주로 부르겠는가?

 

책 1부에서는 '힌두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

2부는 힌두교 형성 과정의 역사를 통해 힌두교 기원을 찾았다.

힌두교가 체계화되고 불교가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 본 것이다.

3부에서는 힌두교가 세 가지 전통을 흡수 통합하는 과정과,

힌두교의 구동 장치로서 바르나(카스트)를 분석했다.

 

뒤이어 힌두교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관용 그리고 관용과 뗄 수 없는

박해와 개종이 힌두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구명했다.

30여 년의 연구를 통해 "힌두교가 형성되고 변화해 온 모습과 성격을

인도사의 흐름에 따라 역사학적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상상으로 그려진 힌두교에 힌두교 본연의 색을 입혔다“는

'푸른역사' 신간 ‘힌두교사 깊이 읽기’를 강력 추천한다.

 

그리고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임대료가 비싼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있는 지금의 사무실을 없애고 파주로 옮긴단다.

이제부터 사진집 출판도 엄선해 줄여나가야 할 처지라는 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진의 대표출판사인 ‘눈빛출판사’가 이럴 진데 군소출판사야 어찌 버티겠는가?

책 사보지 않는 풍토는 사진집을 펴내야하는 사진가들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간다.

다들 필요한 책들을 살펴보고, 이제부터라도 책보는 것을 생활화했으면 좋겠다.

 

길거리는 많은 젊은이들이 오갔지만, 책거리에 널린 책방을 찾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규상씨 따라 ‘경의선’이란 술집을 찾아갔다.

다섯 명이라 두 테이블에 나누어 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모처럼의 정겨운 자리였다.

술도 담배도 자가 격리 후 보름 만에 맛보는 터라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고기 굽는 데는 따를 자 없는 김문호씨가 구운 삼겹살로 입 호강을 했는데,

술만 취하면 나이 값을 못하는 내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어찌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뱉을 수 있단 말인가? 요즘처럼 남자 수난시대에...

또 하나 신기한 것은 흡연자가 별로 없는 판에 네 사람 모두 골초라는 점이다.

밖에서는 피우고 안에서는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차로 간 ‘홍대포’집에서는 주량을 초과해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 원수를 살아생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술김에 간크게도 택시를 불러 세웠는데, 거침없는 말에 삐쳤는지 정동지 입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신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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