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선 바삐 일만 해야 하는 건가?
모처럼 한적한 시간을 보내니, 상념에 잠 못 이룬다.
눈을 떠보니 아직 새벽 세시.
어두워 일도 못하는 시간에 뭘 할까?
갑자기 적음의 시 ‘새벽녘’이 생각난다.
책꽂이에서 시집을 찾아보았다.






“잠 안 와 뒤척이는
새벽녘 그만
불을 켜고 일어나 가만히
앉아 있다
책을 읽을까(아니),
차나 한 잔 (아니),

木石처럼 앉아 있는
두 빰에
웬 일인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갑자기 저승 간 적음이 보고 싶다.
외로움을 낄낄거림으로 위장한 땡초가 보고 싶다.
아직 ‘월간 빠’는 유효한 건가?

발문은 표성흠씨가, 그림은 신동여씨가, 사진은 내가 찍었다.







"무주공산의 빈 달처럼" 



           

-시집 '저녁에'에 쓴 시인 표성흠씨의 발문-

무주공산의 빈 달처럼 허허롭게 가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인생살이의
고달픔도 욕심도 벗어 던지고 바람처럼 떠돌며 그야말로 운수납자 생활
을 했다.
그가 열 다섯 살때 출가해 어언 몇 해인가. 떠도는 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
승가에서 이르기를 비구는 乞僧이라고 했다. '거지중'이란 말이고 중은
곧 거지이고 거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배고프면 물로 배를 채우고, 여비
없으면 걸어다닌다. 그의 삶을 여지껏 지탱해 주는 것은 다름아닌 비구,
걸승의 정신 한 가지 때문이다.

찬 달이 뜨면
찬 달이 만산 가득히 떠올라 오면

나는 가리라
이 육신 다 벗고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실려
둥둥 떠나가리라
서방정토에 눈이 오는가 비가 오는가
바람이 부는가

그의 산문집 '저문 날의 목판화"에 실린 한 귀절이다.
찬 달, 寒月. 무주공산의 빈 달처럼 그렇게 그는 오고 갔다.
그런 그가 이제 한 자리를 잡아 머물곳을 마련하였다.
소백산 자락의 '一笑唵'이 그 곳이다.
들며 나며 한 번씩 웃으며 살자는 것이고, 만사를 一笑한다
는 것이기도 하다.
적음이 일소암에 들어가 무슨 일을 했을까? 그는 거기 머물며
시를 썼다.

왜 그처럼 늦게 연락을 주었는지
어제는 감꽃이 지기 시작하더니
초가을 바람이 벌써 한차례 비를 몰고 가는구나

저녁엔 스산해서 한 잔 소주로 목을 달랬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놓아두고
그렇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 저녁을 꾸려가야 하는 것인가

연락은 한차례 내리는 비처럼 왔다 갔다.
감이 발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 하겠다

-저녁에(전문)

순수무구, 그 자체다. 여기서는 시적 기교도 메타포어도 필요가 없다.
시인 중에는 시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시를 억지로 만들어 쓰는 사람
이 있다. 시처럼 사는 사람에게는 일거수 일투족이, 혹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가되고, 시만 쓰는 사람은 억지로 기교를 부려야 시가 된다.

우리나라엔 시처럼 살다 간 시인들이 몇 있다. 그 중에서도 천상병시인
이 우리 곁에 있다가 간 시인이고, 풍문에 의하면 김관식 같은 시인도
그러 했다고 들었다.
나이 사십도 훌쩍 넘어, 뜨거운 여름날 그는 나를 찾아왔다. 형, 보고
싶어서 왓어. 하룻밤 내내 술을 마시면서 그는 울었다. 좀 편하게 살 수
없느냐고, 좀 이 기나긴 터널을 벗어나서 안녕할 수 없느냐고.
그는 빈 손이다. 그 빈 손의 시인이 또 이런 노래를 한다.

흘라가는 강물속으로 몸을 적셨다가
달은 이 산상에 고이 떠있다.
한 사내가 서서 허공을 향해 오른쪽 손을 내민다
달의 몸을 만져보려 한다
웃으면서 달은 구름속으로
몸을 숨긴다

-산상의 달(일부)

달과 하나가 되어 시인은 무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 시를 억지로 만들어
쓰는게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놀고 있다. 아마 강물속으로 뛰어든
이태백이 이랬을지 모른다.

숲에 가려서 달은 조금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고 서서
달을 보았다

-숲속의 달 (일부)

현대시의 기법상으로 본다면 이런 건 시가 될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시를 읽으면 가슴 한 구석이 녹아 내리는 느낌을 받는다.
무기교의 기교다. 시란 느낌을 주면 그만이다. 느낌을 주기 위하여
온갖 기교가 필요한 것이지 기교를 위한 기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시에는 시의 몸인 형식이 있고 시의 정신인 시혼이 있다. 둘이 합일이
되면 더 좋겠지만 비록 몸이 늘씬하지 못해도 그 내면의 아름다움이
흘러나오는 지성미가 있듯 시혼에서 우러 나오는 아름다움도 있게
마련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느낌은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이다.
그는 자연의 일부로서 서 있는 나무처럼 그냥 서 있기만 한다. 그런
데도 나무와 달과 내가 하나가 되어 몰아일체가 되는 공감대를 형성
한다. 이 공감이 바로 시가 아니던가.

禪詩에 가까운 시들을 묶어 시집을 낸다기에 몇 자 부끄러운 소리를
보탠다. 적음이 이제 그 오랜 방황을 끝내고, 이름 그대로 조용한 소리
를 내고 있거나 그 소리조차도 침묵으로 다스리는 시 작업을 하고 있다
는 생각에서다.



(적음 최영해의 약력)

寂音은 법명이고 본명은 崔永海(1948-2011)다
경주에서 태어나 15세 때 含月山 기림사로 출가.
동화사 혜붕노사께 내전을 이수하고 전국을 떠돌다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소요집', '저녁에'가 있고
산문집으로 '어디엔들 머물 곳이 없으랴',
'저문 날의 목판화','가을 밤의 춤' 등이 있다.
그동안 경북 봉화군 물야면 수식리의 '일소암'에서 혼자 살다 열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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