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사동 출입이 부쩍 잦아졌다.

인사동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니, 인사동과 관련된 분들이 너무 많이 빠져서다.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화가 이종승, 금보성, 서정란, 이만주 시인 등

몇몇 분은 오래된 사진 파일에서 찾았지만, 다른 분들은 찍을 시간이 없었다.

 

찍은 사진만도 넘쳐나지만 가급적 많은 자료를 보내는 것이 좋은 책을 만드는 요건이었다.

책에 게재되거나 빠지는 문제는 사진의 완성도에 따라 편집자가 결정하도록 출판사에 위임했다.

 

그리고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기록하는 작업은 일회성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사동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결집시켜 인사동 정체성이나

사라져가는 인사동 풍류를 되 찾을 수 있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지껏 책 만들기 직전에 집중적으로 일했으나 앞으로는 인사동과 관련된 분은 만나는대로

꾸준히 촬영하고 기록하며 몰랐던 이야기나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번에 게재되지 못한 분은 좋은 사진이 나올 때까지 다시 찍을 것이고,

미처 찍지 못한 분도 한 분 한 분 기록하여 인사동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내년 초에 만들 인사동 사진집은 촬영해 둔 인사동 풍류를 조명할 수 있는 스냅사진으로 구성할 것이지만,

그 이후에 제작할 제2인사동 이야기는 추억하는 인사동이 아니라 앞 날을 제시할 책이 될것이다.

 

그동안 찍은 사진과 정리한 원고를 '눈빛출판사'에 넘기려고 보니, 인사동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이 생각났다

바로 인사동 역술가로 알려진 신단수씨였다.

오래전 인사동 대일빌딩 자리의 역술인 아지트에서 비롯된 그의 행적은 인사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태어나 자란 출판인 이나무씨의 인사동 이야기도 들어볼 겸,

지난 2일 오후 4시경 인사동으로 나갔다.

어차피 원고는 주말까지 보내기로 했으니, 하루의 여유가 있었다.

 

강원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금방 왔다는 신단수씨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차 한 잔 나눌 시간도 없이 인사아트프라자전시장에 갔더니 편근희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인사동 사랑도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를 정해 촬영하고 있으니 정영신씨와 김발렌티노가 나타났다.

 

김수영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추진하는 김발렌티노를 돕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인사동 청소하는 김발렌티노도 찍고 싶었으나, 청소하는 날 맞추어 차후에 찍기로 했다.

거리에 낙엽이 흩어지는 늦가을 무렵의 청소 날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영신씨는 판화가 류연복씨에게 부탁한 책 제호 글이 금방 도착했다며 보여주었다.

출판사도 만족한다지만, 나 역시 마음에 들었다.

 

추석이 끝난 다음 날부터 하게 될 정영신씨 어머니의 땅‘ 전시에 맞추어

노숙인, 길위에 살다' 현수막전을 '유목민' 골목 담벼락에 걸기 위해 현장답사를 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한 전시라 이숲 출판사이나무씨도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른 시간부터 전활철씨와 한 잔하고 있으니, 이나무씨가 나타났다.

 

노숙인 책을 출판하기로 약속했던 작년 2월의 첫 만남도 인사동 유목민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인사동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살았던 자리에 한 번 가 보자고 부탁했다.

가 보니 옛 모란미술관 자리였고 지금은 화봉갤러리가 있는 자리였다.

 그때의 기억을 담아달라는 원고청탁까지 했다.

그것도 다음 날까지 원고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으니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골목 담벼락에 걸 현수막 크기는 가로 8미터에 세로 1미터 50센티 정도인데, 그 속에 30여장의 사진을 배열하기로 했다.

현수막도 사진만 선정해 주면 출판사에서 제작해 주겠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는가?

마침 사무실에 일보러 갔던 신단수씨와 정영신씨도 유목민에 나타났다.

작년 이나무씨와 첫 만남에도 신단수씨가 합석했는데, 우연치고는 특별했다.

두 분의 성함도 새로 지은 이름이었다. 이나무씨의 본명은 임왕준이고 신단수씨의 본명은 김효성이다.

 

그날 신단수씨를 만나 사진을 찍게되면 인사동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보나 마나 실망스러운 이야기가 나올 텐데, 일할 의욕을 잃을 것 같아서다.

 

기분좋게 마신 술자리였는데, 다음 날 해는 분명 서쪽에서 뜰 것이다.

사진을 편집하여 현수막까지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 고마워 술값을 냈기 때문이다.

현금카드를 처음 만들어 보았는데, 카드 긁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러다 나도 노숙자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김수길씨의 ‘시간지우기’사진전이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렸다.

난, 오래전부터 인사동에서 김수길씨를 보아 왔지만, 사진을 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80년대 중반무렵 인사동에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이란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를 운영한 주인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일단, 그림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사진들이 그림 같았다.

오래된 활동사진이 돌아가는 느낌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중첩된 이미지는 작가의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낸 것들인데, 암울하고 처연한 풍경이었다.

앙상한 가로수가 펼쳐있고 그사이에 실루엣의 사람이 부각된 가운데. 저 멀리 버스도 보인다.

작가의 기억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면서도, 한편으론 쓸쓸해진다.

또한 꽃 위로 웅덩이가 있는 시골길이 정겹게 펼쳐져 있다. 애틋한 고향에 대한 기억인 것 같다.

모든 사진들이 숨은 그림 찾는 퍼즐 같다.

작가는 왜 시간을 지우는 것인가? 사라져가는 시간을 지운다고 말할 때는 잊기 위함인가?
아니, 그는 잊기 위함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고 한다.


한 때는, 서울 사대문 안의 이화동 낙산 뒷골목을 기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실적인 기록이 아니라 정반대의 추상적인 기억의 기록을 선보인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현실기록보다 창의적 기록으로, 한 걸음 나아갔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난다면 이화동의 현실기록이 더 빛나지 않을까?

어찌 보면, 그 가치기준 자체가 허망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잡지 ‘카페人’ 발행인 손한수씨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컷을 위해 작가는 오늘도 지운다.
 잊지 않기 위해 시간을 지운다.
 그렇게 응축된 순간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크다.
 지우면 여운이 깊다”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정영신씨가 오프닝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작가를 비롯하여 이순심관장, 노광래, 김구, 임경일, 편근희씨 등 낮익은 분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사업보다 인사동 일이 더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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