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시작된 개인전이 이번으로 70회를 맞은 금보성씨의 ‘한글민화 의자’전이

지난 1월26일부터 오는 2월 7일까지 인사동 ‘콩세유갤러리’에서 열린다.

 

금보성씨는 한글을 현대회화에 접목하여 다양한 작업을 해 왔다.

실험적 구상과 비구상, 설치와 조형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구분 없이 한글의 형상성을 줄기차게 추구해왔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 역시 조선시대의 대표적 팝아트인

민화의 정신을 끌어들여 한글과 연계시킨 작업이다.

 

그는 일찍부터 시를 쓰다 글자에 색이 입혀진 모습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어 한글회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중견작가로 성장한 지금까지 왕성한 창작 욕구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인사동 ‘동원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고 한다.

그동안 관훈갤러리. 학고재. 리서울갤러리. 이노아트스페이스.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콩세유갤러리 등 곳곳에서 수 많은 전시를 열었는데,

올해 열게 된 70회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37년이 걸렸단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설날에 선 보인 한글민화전은 효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민화는 그림을 통해 내면의 욕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의미가 강하다.

재물과 부귀 그리고 자손 번영이 그 속내라면, 어쩌면 부적의 기능일수도 있겠다.

 

단순하게 민화적 이미지만 차용한 것이 아닌 시대적 정신을 이어받았는데,

그림을 통해 내면의 욕망을 이루려는 샤머니즘에 뿌리 두고 있다.

신분 상승이나 재물과 부귀 그리고 자손 번영이라는 주술적의미를 담았다.

 

흔한 의자를 통해 자기만의 효에 관한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다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조그만 위안이라도 주고 싶은 것 같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의자라는 한자는 ‘기대할 의倚’와 ‘아들 자子’로

부모가 나이 들어 기댈 수 있는 곳이 자녀,  가족이라는 말이다.

의자의 다리가 자녀를 의미 하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일수도 있단다.

 

부디 기댈 곳 없는 민중에게도 좋은 위안의 전시가 되길 바란다.

 

전시 소식을 뒤늦게 알았지만, 하필이면 전시가 끝나는 날 리뷰를 올리게 되었다.

오늘(7일)까지만 열리니, 금보성의 ‘한글민화 의자’전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1일 오후4시 무렵, 인사동으로 전시보러 갔다.
김명성씨 개인 소장전으로 잘 못 알아, 나도 사진을 보낸 전시다.




전시장소로 정해 진 ‘베르린미술관’이 ‘콩세유갤러리’로 바뀌었더라.
대형 갤러리인 ‘베르린미술관’이 대관전 유치가 어려운데다, 기획전 잇기도 쉽지않아,

운영하던 지승룡씨가 다른 분에게 넘긴 것 같았다.



 
그런데, 전시장 입구에 ‘평화와 상생을 위한 대한민국 다른 백년운동 기금마련전’이라고 붙어 있었다.

“이게 뭔가?” 장소를 잘 못 찾은 게 아닌 가 했으나, 참여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물론, 전시 목적을 사전에 알아보지 못한 나의 불찰도 있지만,
출품작가에게 전시 취지 정도는 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얼마 전부터 가난한 예술인을 돕는다는 허울 좋은 모금전을 비롯하여
‘민예총기금마련전’, ‘환경재단 기금마련전’ 등이 수시로 열려 기금마련전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물론, 참여작가야 손해 볼 것 없다.
작품이 팔리면 판매금액의 반은 주최 측으로 가지만, 반은 챙겨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기획전이건 갤러리 마진을 고려하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그리고 대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시일수록 끼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것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전시장으로 내려가 보니, ‘주권자 전국회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체에서 마련한 기념마련전인데,
출품 작가로는 강연균, 김준권, 민정기, 신학철, 이철수, 정고암, 정비파, 황재형씨 등
민예총 소속의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었는데, 최규일, 이청운, 강찬모, 임채욱, 전인경씨 등
인사동 사람들로 분류되는 작가도 여럿 참여하고 있었다.




아마 출품 작이 부족해 인사동 작가의 대부 격인 김명성씨가 개입되어 도와준 것 같았다.
나 역시 김명성씨가 연락해 사진을 보냈는데, 아무리 가까워도 지킬 건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난, 출품작을 제작할 여건도 되지 않지만 마침 만들어 둔 사진이 있어 그 중 두 점을 보낸 것이다.

그것도 삼년 전 충무로에서 개인전 할 때, 김명성씨가 찾아와 주문한 사진이었다.
한 변이 160cm나 되는 작품 10점을 부탁해 정영신씨가 부랴부랴 제작한 모양인데,
그 이후로 감감소식이었다고 한다.



사업에 문제가 생긴 김명성씨 사정을 잘 아는 정영신씨라 차마 전화도 못하고 혼자 냉가슴 앓았다고 한다.
만든 작품을 석 달이 넘도록 액자 집에 맡겨 두었는데, 찾아가라는 전화를 수십 번도 더 받았다고 한다.



찾아와도 보관할 곳도 없는데다, 200만원이 넘는 액자제작비가 없어서다,
결국 빚내어 작품은 찾아왔으나, 비좁은 방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승용차에는 실을 수도 없어 정선 에 갖다 둘 수도 없었다.

말 한마디 못한 채 그 짐을 머리에 이고 살았던 삼 년은 곤욕스러웠다.




그건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이번 전시는 다른 문제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르고, 똥개처럼 시키는 대로 작품 낸 자신이 부끄러웠다.
만만하고 믿으니 그랬겠지만, 한편으론 나를 우습게 본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전시장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이두엽, 김신용, 전인경, 전활철씨 등
아는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작품을 둘러보던 출품작가 민정기씨는 황급히 나가버렸다.
나 역시 기분이 언짢아 전시장을 빠져 나왔다.
인사동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 편할리가 없었다.




소주나 한 잔 할 생각에 ‘유목민’에 들렸는데, 김신용씨와 장경호씨가 있었다.
김신용시인의 산문집이 '시산맥'에서 나와 ‘유목민’에 맏겨 두었다고 했다.
“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떨어져 있네”란 산문집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뒤이어 조해인, 김명성, 전인경씨가 '유목민'에 나타났고,
최유진, 김승준, 임영균, 최효준, 노광래, 강찬모, 이인섭씨가 등장하며 술판이 무르익었다.
술집 골목을 지나가는 박기성씨를 만나기도 했다.




이리 한 잔 저리 한 잔 얻어 걸친 술에 맛이 갔다.
언짢았던 많은 생각들이 잊혀지는 것을 보니, 분명 술이 마약은 마약이었다.
택시를 탄 모양인데, 조해인씨가 다 왔다며 깨웠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 대접 받고 살 수 있을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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