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22_1005 ▶ 2022_1024

 

최경선_두려움 없이_캔버스에 유채_162×130.4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크지 않고 나지막한 발성으로 최경선 자신의 회화적 호흡을 확인하는 프로세스인 듯하다. 이 전시타이틀은 최경선이 바라본(혹은 기대하는), 그래서 그림으로 형상화한 아이들의 평화로움에 대한 간절한 기원의 서술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야 자기식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작가적 내면의 비유로도 보인다. 중국 북경에서 거칠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작업을 하다가, 귀국한 지 십 년. 한국에서의 그동안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가정주부로서 여러 역할(사업가의 아내, 대입 입시생의 엄마, 시부모의 며느리, 친정엄마 딸, 기타 등등)의 수행과 함께 시간적·경제적·공간적 제약들로 작업에의 집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신작 개인전도(2015, 2017), 북경에서의 작업으로 구작 개인전(2019, 2020)도 가졌지만, 그가 원한 만큼의 수준이나 성취도에는 이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최경선_꽃 피는 첫번째 들판_종이에 수채_40.8×30.8cm_2022

이번 전시작들은 그런 부담으로부터 훌쩍 벗어난 집중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림마다 조형적 의도와 일치하는 그리기 형식이 자신만만하게 결합되어 있고, 집중된 상태에서의 일획의 붓질은 두 번의 덧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형상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대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한 묘사로부터 일탈해서, 마치 문인화의 담백하고도 긴장된 일획의 필력처럼 직관적으로 자신이 의도한 분위기로 화면을 주조해냈다. 게다가 모든 그림을 다 보아도 같은 유형의 붓질이나 터치가 없다. 각각의 그림과 부분마다 그 맥락과 조형에 꼭 필요한 만큼의 긴밀한 회화적 날것의 표현들이 몸의 직접적 궤적을 생생하게 현전해내면서 말이다. 경쾌하고도 날렵하게. ● 비유하자면, 지속적 주제였던 소외되고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존재(자연)임을 확인한 순간의 기쁨으로 드러낸 것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오히려 작가에게 삶의 에너지를 제공해준다는, 능동적이고도 긍정적인 자기 깨달음을 회화로 증명한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뻔하게 반복적으로 그리는 클리셰 없이 작품마다 다르게 전개되는 이런 즉발적 표현성은 긴밀하고도 예민한 회화적 내공이 그 바탕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경선_날마다_캔버스에 유채_53×41.2cm_2022

그러나 이런 점은 작가의 지극히 감성적 영역에서의 작업과정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최경선의 이번 전시작들이 또 다른 큰 변주 직전 자기 확인의 지점 같다는 언급은, 바로 이런 주관적·감성적 표현으로부터 좀 더 넓게 사회화할 수 있는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언급이다. 제도적·구조적으로 "배제된" 아이들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작가의 내밀한 감수성과 더불어 인식적인 면에서도 좀 더 주제를 사회화할 수 있는 내용적 기제의 창발 또한 작가의 몫이라서 그렇다. 최경선의 회화적 능력을 확인하는 이번 전시에 이어, 더"두려움 없이"자기갱신으로 도전하는 다음 작업들이 그런 내용의 '태풍'같은 소통을 불러일으키기 기대해본다. 작가에게 관객의 기대는 곧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부담은 또한 작가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한 것이니... ■ 김진하

 

최경선_볕 든 산성_캔버스에 유채_90×100cm_2022

『두려움 없이』란 제목은 한 보도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뉴스 중에 나온 한 장면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얀마의 젊은 남성이 아이를 업은 채 장총을 들고 대치 중에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이와 위험한 상황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아이를 지키겠다는 아버지로서의 결연함.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 장면은 작품 「두려움 없이」의 모티브가 되었다.(그림에서는 총이 아닌 확성기로 그려졌다. 확성기는 언어의 힘에 대한 은유이다.)

 

최경선_일어서는 풀_캔버스에 유채_100×80.2cm_2022

지난 몇 년간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일상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나는 드러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보다 왜곡되는 언어들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태를 양산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범람하듯 몰려오는 위기 증후는 근본적으로 부조리를 상쇄시켜왔던 인류의 정화 능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신뢰를 이루는 언어는 오염되었고, 양육과 책임의 마음을 잃은 인류의 생존방식은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보인다. 두렵다. 그러나 견고한 것은 없다고 알려준 위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폭력적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것을 찾아 자연을 자세히 보도록 하였다. 낮아질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약함보다 두려움이 삶의 장애가 됨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우리는 회복으로 활성화된 생명의 움직임을 좀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주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만이 생명적 보탬의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긍정성을 믿고 움직였던 사람들로 인해 위기가 극복되어 왔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최경선_묵묵한 활보_캔버스에 유채_53.3×45.5cm_2021

나는 자연의 메커니즘에서 언어의 순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생명적 가능성을 신뢰할 때 기꺼이 살림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잃었던 돌봄의 마음들이 돌아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메마른 땅에 물과 빛이 닿아 생명이 움트듯 말이다.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자연에서 발견한 생명력을 통해 존재의 회복력을 형상화했다. 소재는 주변에서 만난 특별하지 않은 것, 연약한 것, 하찮은 것들이다. 번뜩이는 순간 노출되는 숭고함, 아름다움, 활력과 같은 내력을 느끼고 표현하고자 했다. 보호자가 있는 어린 아이의 안도감, 죽은 듯 누운 풀의 되살아남, 쉼이 없는 땅의 활력이 담기길 바랬다. 개인의 슬픔이 사회적 슬픔으로 연결될 때 회복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는 「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책임 있는 존재의 중요성을 피력하고자 한 「두려움 없이」의 일련의 작품들, 풀의 생명력을 통해 연약함에 내재된 놀라운 가능성을 보고자 한 「일어서는 풀」, 축적된 보살핌과 성실의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날마다」 등이 있다.

 

최경선_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_캔버스에 유채_162×131cm_2021

그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좀 더 붓질이 강조된 명료한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안료의 물질감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붓의 방향성은 다양해졌다. 형상은 단순화하며 표현성에 집중하였는데, 묘사가 생략된 대상은 마치 콜라주처럼 보이면서도 화면의 다양한 층의 형성하도록 평면화시켰다. 거기에 리듬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드러나도록 시도 했다. 이전보다 빛은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 결과 더 신중하게 선별한 색은 밝아지고 다양해졌다. ● 나에게 그림은 점차 '미지의 개척지'에서 '주변부와의 화해'의 기능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모두가 함께 겪는 이상 징후 앞에서 공동체 속으로 좀더 들어가야 함을 느낀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나의 슬픔으로 공감할 때, 인류의 저울 위에 생명의 추 하나가 올라간다고 생각해 본다. 불안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평범한 초인이 오늘도 내 안에서 출현하기를 기다린다. (2022) ■ 최경선

 

Vol.20221005a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미동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20_0605 ▶︎ 2020_0630

 

최경선_선잠_캔버스에 유채_110×11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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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선 블로그_outframe.kr

 

초대일시 / 2020_0605_금요일_05:00pm

후원 / 예술하라 arthara.co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comblog.naver.com/artzahawww.facebook.com/museumzaha

 

 

최경선은 '작은 움직임' 이란 주제로 개인전 연다. 최경선은 어떤 실체가 드러나기 직전의 상태, '변화의 첫 조짐'을 회화로 구현하고자 한다. 주제와 관련하여 작가는 중국거주 시절의 작품과 신작들을 선별하여 보여줄 예정이다. 작가는 생명이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변화를 불러오는 지점을 주시해 왔다. 특히 혼돈의 상태에서 마침내 순풍과 같은 전향이 감지되는 지점을 서사적 풍경으로 펼쳐 보여준다. 화면 속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 자연물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힘찬 붓의 필력과 흐르는 물성은 미비해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적극 노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경선_사라의 방_캔버스의 유채_160×140cm_2011

 

 

최경선_문턱 너머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3~9

 

최경선_옥탑방_캔버스에 유채_60×80cm_2011~9

 

최경선_떠가는 집_캔버스에 유채_110×140.3cm_2013

 

최경선_네가 움직일때마다_캔버스의 유채_110×140.5cm_2012

 

 

최경선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연약한 것들의 숭고함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한다. 미동은 미동이 아닌 것이다. 이번 『미동』展이 작가에게 작업을 해내는 과정에 이어 또 하나의 미동微動에서 미동美動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 전시는 '예술하라' 작가미술장터 참여작가 중 '개인전 지원' 1인에 선정되어 자하미술관에서 열게 되었다. ■ 예술하라

 

최경선_오래된 미래_캔버스에 유채_162×227cm_2013~9

 

최경선_움직이는 숲_캔버스에 유채_116.5×91cm_2011

 

'침체된 것이, 지체된 것이, 완고한 것이, 쇠락한 것이, 무심했던 것이, 아프기만 한 것이...' 어떤 상태에서 벗어나는 변화의 시작은 반드시 감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유기체로서 몸이 변화하고 있듯이 존재의 내외적 변화는 진행 중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된 찰나들의 중첩이 변화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원하는 변화라면 부지불식간 순하게 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더디고 아픈 거친 과정에서 온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미완의 상태일 것인데 우린 그럴싸한 완결된 상태를 성급하게 단정하거나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에 비롯된 마찰이 일상 이탈까지 불러오지 않더라도 상당한 내외적으로 파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긍정적인 방향의 전환이 감지되는 지점이 있다. 통증이 가라앉는 지점, 회복의 희망이 보이는 지점 말이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너무 조용하고 미세해서 놓치기 쉬운 그 지점이 사실 혼돈의 상태에서 막 구출되어지는 극적인 현장임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최경선_멀리 가는 가까운 길_캔버스의 유채_97×145.5cm_2020

 

최경선_이름을 새기는 사람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20

 

삶은 친화를 욕구하는 이질적인 것들의 배열과 공생의 움직임인 거 같다. 추구하는 이상과 하루 세끼의 수고, 타인의 욕망과 나의 욕망 사이에서 우린 갈등하고 선택하며 때론 어정쩡하게 타협하며 살아간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맞닥뜨리면서 우리는 분주함을 멈추고 더 섬세히 주변을 살필 것을 요구받고 있다. 각자 자신을 견인해 가는 생의 목적성을 향해 걸으면서도 타자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는 긍정적 상생을 바래 본다. 혹여 드러나지 않더라도 미동微動이 미동美動이 되는 일일 것이다. ■ 최경선

 

 

Vol.20200605a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비오톱의 저녁(The evening of biotope)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17_0913 ▶ 2017_1002


최경선_고택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35.4×53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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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선 블로그_outframe.kr


초대일시 / 2017_091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순례적공간의 더께와 빛 ● 최경선이 생명과 삶에 대한 성찰 위에서 작업을 해 온 것은 그가 화가의 소명을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다. 그는 생활이 엮어 놓은 여러 관계들 속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만큼이나 작가의 눈으로 목격한 것을 기록하는 행위 또한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런 관계로 관객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일상적 풍경과 인물들, 감정의 파열과 회복, 사유와 깨달음의 흐름을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풍경의 형태로 옮겨온 작품은 그곳에 머물렀을 작가의 의식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포개어진다. 그래서 최경선의 회화는 재현되거나 표현된 질료적 대상을 넘어 우리들 사이 사이, 세상의 틈과 틈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최경선_마치저녁처럼_캔버스에 유채_72.5×90.7cm_2017


최경선의 여섯 번째 개인전 『비오톱의 저녁』의 신작들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단순해진 화면 구도가 인상적이다. 작품의 대부분은 가로로 마주한 두개 내지 세개의 색면 위로 크고 작은 얼룩이 추상적인 인상을 강조한다. 첫인상이 채 남기 전에 색면의 경계 위로 여러 인물들의 흔적과 움직임에까지 눈길이 닿으면 색 덩어리는 일순간 하늘과 대지, 숲과 강처럼 자연의 모습으로 둔갑한다. 시공간의 콜라주처럼 인물과 배경 사이에 놓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일렁이는 대기는 더욱 낮게 가라앉고 있다. 아마도 저녁이라는 시간을 암시하는 차갑고도 어두운 색감 때문일 것이다. 네이비, 블루, 그린, 바이올렛 등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면서 각 장면들은 지붕, 나무, 지평선처럼 현실적인 장소를 지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공간-현실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조합된 누군가의 꿈-으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최경선의 회화는 꿈에 관한 것이 아니다. 모든 작업은 그가 마주했던 현실을 말하고 있다.


최경선_물고기_캔버스에 유채_52.9×45.4cm_2017


최경선의 풍경과 인물은 물리적 현실공간에서 시작하여 경험적 주체가 인식한 질서에 따라 재구성된다. 그래서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주변 풍경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감추어진 땅(2016)」, 「수레국화(2016)」 등과 같이 작가는 비어 있는 공간을 주시하였다. 대기는 여러 색깔의 활발한 붓자국을 겹쳐 밀도 높게 처리하였으며 작품 안 인물을 감싸고 있다. 작가의 세계는 깊은 바다 속처럼 모든 존재가 연결되고 맞닿아있어 인물의 호흡과 움직임에 조응하여 공간의 구조와 형태가 달라진다. 대기는 공허하게 빈 상태가 아니라 생명과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원천으로 존재한다. 생명에 대한 관심은 이번 전시 제목 『비오톱의 저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비오톱(biotope)을 "생명이 가득 찬 우리 삶의 영역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 형태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관습적으로 풍경화는 자연의 조화와 법칙을 드러내는 구상물을 아름답게 배치하여 장르적 가치를 얻는다. 반면 최경선의 회화는 무한한 가능성과 생명을 품은 공간과 인물 사이의 생동하는 관계를 시각화 하는 실험에서 본질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경선_비오톱의저녁_캔버스에 유채_60.5×72.7cm_2017


「물고기」 연작은 시간과 공간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 반딧불처럼 빛나는 아이가 천진한 모습으로 홀로 앉아있다. 느슨하게 기대어 앉아 활짝 웃는 아이의 발 아래로 물결과 같은 흐름이 빠르게 지나간다. 일정한 방향을 지닌 붓질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하나의 장소 속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감지하게 한다. 물길처럼 흐르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누적되고 각인된 장소의 울림이다. 시간과 장소가 오버랩된 신비한 이곳에서 아이는 그저 자신의 놀이에 빠져있다. 게다가 아이는 나뭇가지가 아닌 어긋나고 겹쳐진 공간의 흐름 위에 걸터앉아 장소의 안과 밖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 어떤 곳이라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공간과 합일을 이루는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최경선_수레국화_캔버스에 유채_45.3×37.2cm_2016


이번 전시는 공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외에도 시간과 기억이 투영되고 생명과 죽음이 순환하는 만유(萬有)의 근원으로 대지를 주목하고 있다. 작가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듯 신작 「마치저녁처럼」, 「로즈메리」, 「제자리」의 하단 대부분이 거칠고 광활한 대지로 채워졌다. 푸른 빛에 가까운 하늘이 지평선 위에 걸렸음에도 짙게 깔린 대지의 인상이 압도적이다. 눈 앞에 놓인 것은 어두운 풍경이다. 그렇지만 해가 떨어져 만들어낸 둔탁하고 무거운 어둠은 아니다. 작품은 여러 장의 네거티브 필름이 겹쳐진 것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여러 형태와 흔적들이 드러났다가 이내 가라앉아 어둠 속에 스며들어 있다. 물감을 바르고, 겹치고, 묽게 흘리고, 뿌리는 과정에서 풍경은 균일하지 않은 층을 드러내고, 중첩되고 교차된 여러 겹의 막이 쌓인다. 이처럼 붓이 지나는 속도와 물감의 농도와 같은 물질적 흔적들과 같은 최경선의 독특한 마티에르는 이질적 공간의 연결고리이자 서술방식이다. 마치 고장 난 카메라에 걸린 오래된 필름처럼 여러 시간과 이질적인 공간이 한 컷에 누적되어 모호하면서도 매력적인 축적물로 드러난다. 거대한 산맥의 지층단과 같은 시간의 더께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그도 그럴 것이 최경선의 풍경을 이루는 막과 막 사이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작게는 작가가 목격하고 경험했던 다양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고, 크게는 그 땅 위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 즉 역사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두운 대지는 수차례의 붓질로 쌓아 나간 결과다. 그래서 모든 색을 품고 있는 듯한 풍부한 정서적 감각을 얻는다. 마치 하나의 음에 여러 다른 음이 얹혀 아름다운 화음이 되는 것처럼 작품 속 어둠의 빛은 온갖 다양한 음색과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바로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조화의 모습이다. 나와 너, 그들과 우리,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은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이다.


최경선_자라는집_캔버스에 유채_31.6×40.7cm_2014~6


최경선의 지난 십여 년간의 작품 전개를 살펴보면 화면의 층은 더욱 깊어지고 색 또한 어두워졌다. 작가는 검은 그늘과 덩어리들 사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찾고자 했다. 마치 죽음을 딛지않은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품은 깊은 사유와 묵상에 닿아 있었다. 작가에게 어둠은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어둠은 사멸의 지점으로서 끝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연결되는 다릿돌이다. 밤이 지나야 새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상실과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야 비로소 존재의 기쁨과 성찰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작가에게 가장 의미있는 시간은 저녁이다. 행복과 긍정의 밝은 에너지를 미덕으로 삼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최경선의 회화는 다소 생경하다. 욜로(You only Live once)는 오늘의 시대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강박을 여실히 드러낸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삶은 감각적 쾌락과 욕망의 달콤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 원더랜드가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고통에 가장 민감하고 마음은 언제나 쉽게 상처받는다. 어두운 화면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여러 흔적과 형태들의 존재처럼 최경선의 회화는 심연을 향한다.


최경선_집으로가는길_캔버스에 유채_65.2×90.8cm_2016


오랜 시간 지켜 본 최경선은 순례자의 눈을 지닌 화가다. 길 위의 순례자는 항상 낮은 곳에서 진실을 찾으며 주변의 모든 존재들로부터 의미를 성찰하여 진리로 나아가는 이정표로 삼는다. 작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그것을 둘러싼 시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확대시켜, 그들 사이에 맺어진 관계적 의미를 감각의 영역에서 전달하고자 하였다. 메를로 퐁티가 대상의 지각이 일어나는 현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과거와 미래의 이중 지평의 연속으로 설명한 것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공간의 다층적 표현 안에서 신체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다. 신체의 공간과 역사의 공간은 끊임없이 교차하며 단선적 시간에 대한 판단에 혼선을 일으킨다. 비로소 인간은 유한성과 불완전성의 장벽을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생명으로 거듭난다. 이번에 최경선 작업의 여정을 따라가보니 동양적 사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시적 형태를 초월하여 대상과 그 주위의 허공마저 포괄하는 공간 의식은 의경(意境)의 또 다른 표현이다. 불교의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법(法)은 홀로 생기지 않으니, 경(境)에 의지해서 생겨난다"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풍경 속에서만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 책 속에 박제된 이론이 아닌 실제 삶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깨달음은 보다 흥겹고 생기 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비오톱의 저녁』전에서 최경선은 비로소 순례자라는 고된 무게를 내려놓고 삶이라는 순례적 공간을 산책자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걸을 준비를 마친 듯하다. ■ 김문정


Vol.20170913d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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