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nbsp; 자화상 (1951)&nbsp; 종이에 유화물감 , 14.8&times;10.8cm,&nbsp; 개인소장&nbsp; <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회고전서 270여점 펼쳐

까치·나무·해와 달 평생 탐구
파격적인 구도 완벽하게 소화

서 귀환한 가족등 첫선
한국화 닮은 말년작 재발견

 

옛집처럼 나지막한 벽을 거쳐 들어가니 성소처럼 어두운 공간이다. 그곳을 손바닥만 한 그림 2점이 꽉 채웠다. 장욱진(1917~1990)과 가족이 평생 그리워했던 유화 가족’(1955)과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그린 가족도’(1972). 평생 가족을 그린 화가의 전범(典範) 같은 그림이다.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 팔려 주요 전시 때 마다 수배했지만 60여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을 일본에서 발굴해 흰곰팡이를 제거하는 등 응급 보존처리 후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그림에도 등장하는 큰딸 장경수 양주시립미술관 명예 관장은 “60여년 만에 봤는데 먼지가 뽀얗고 조금 훼손됐을 뿐 당시 들락날락하면서 봤던 그림 그대로여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장욱진, 자화상(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27.5 &times; 22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14일 개막한 그의 대규모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1920년대 다채로운 화풍을 시도하며 공모전에 참가하던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 때까지 그린 유화와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점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쳤다.

 

장욱진, 밤과 노인(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 &times; 31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또 한국 전쟁 후 생계를 위해 소설가 염상섭의 장편소설 새울림에 그렸던 삽화 56점과 마지막 유화 작품 까치와 마을’(1990)도 처음 공개됐다.

동심 가득한 작은 그림작가로 알려진 1세대 모더니스트 화가의 주제의식과 조형의식의 변모를 짚어가며 작가의 진면목을 발견할 소중한 기회다.

 

장욱진, 언덕 위의 가족(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33&times;24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

무엇보다 장욱진 그림에서 작가의 분신 같은 까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을 상징하는 해와 달 등 반복되는 소재의 의미, 도상적 특징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아울러 기존 화가들이 좀처럼 쓰지 않던, X자나 왕(), 십자, 변각 등 비현실적이거나 불안정한 구도를 나무와 집 등 흔한 소재를 더해 안정적으로 풀어낸 솜씨가 놀랍다.

 

장욱진, 부엌과 방(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22 &times; 27.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인간과 가족처럼 조화로운 동물 모습은 평면성이 극대화된 원시 벽화를 연상시킨다. 해방 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며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에 참여한 이력도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문인화와 민화 전통까지 흡수해 장욱진이란 브랜드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완성했다.

 

장욱진 ,&nbsp; 심우도 (1979),&nbsp; 종이에 먹 , 66.5 &times; 43.4cm,&nbsp; 개인소장&nbsp; < 국립현대미술관 >

작가는 생전에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툭툭 튀어 나온다며 텅 빈 마음 상태에서 비로소 붓을 든다고 고백한 바 있다. 1970년대 말부터 본격 그린 먹그림 등 말년작에서는 불교 색채가 강해졌다. 작가 스스로 붓장난이라 일컬었을 정도로 무계획적인 필선으로 자유분방하다. 형태를 즉흥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한 심우도’(1979)는 순간의 깨달음을 시각화한 선종화의 미학적 요소를 갖춘 수작으로 꼽힌다. 넓어지는 여백만큼 좁은 화폭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와지고 해학성도 엿보인다.

 

장욱진, 까치(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times;31cm, <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첫 가족도를 새롭게 발굴하기도 했지만, 아카이브 조사를 통해 초기 작가의 행적을 보완하며 작품명이나 연보 등 오류를 바로잡은 것도 성과다라며 그림 속 점 하나, 선 하나 엄격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완성해 나간 완벽주의자로서 작가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장욱진 회고전 전경. 작가가 작업실 벽에 걸었던 작품들을 배치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실제 작가가 명륜동 작업실 벽에 걸었던 그림들을 흡사하게 되살린 장면은 반갑다. 자식 같은 작은 그림들이 걸린 방에서 그만큼 작은 화폭을 바닥에 놓고 쪼그려 앉아 수공업 장인처럼 그렸던 화가의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하면 작품이 또 달리 보인다. 평생 수행처럼 그려서 일상과 작품이 하나가 된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한 듯싶다. 아침에 염불 외는 아내 모습에 감화받아 7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보살로 그렸다는 진진묘’(1970)처럼 소박한 일상이 종교적으로 승화하는 경지를 느끼게 된다.

 

전시는 내년 212일까지.

 

매일경제 / 이한나기자

 

사진 확대 장욱진, 여인상(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15 &times; 10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 인사아트센터서 개막

덕소·명륜동·수안보·신갈작업실…전시장에 4개의 방으로 재구성
대표작·먹그림 등 100여점 소개

'나무와 새와 모자' 등 첫 공개…진진묘·팔상도 등 불교그림 눈길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누런 황소, 둥근 나무, 빨간 해, 허수아비, 초가 등 우리 고유의 소재로 동심과 상생의 미덕을 아울렀다. 지극히 단조로운 색과 선, 면은 우리 몸의 피돌기처럼 이야기의 편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표방한 붓질의 순수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평안하게 해준다.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장욱진 화백(1917~1990·사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을 몸으로 이어받아 현대성을 접목하는 데 평생을 바쳐 그 혼신의 기력이 작품에서 빛난다. 그는 생전에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며 자유로운 무애의 삶을 살며 장인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가 남긴 또 다른 한 마디가 겹쳐진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평생 자기 몸 돌보다간 아무 일도 못한다.”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전시된 장욱진 화백의 1973년작 ‘나무와 새와 모자’.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장 화백의 이 같은 예술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24일 개막한 ‘장욱진 100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 전이다.

장 화백은 1948년께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과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약했지만 동년배 화가들이 대형 추상화를 그릴 때 우리 전통을 모더니즘에 접목시켜 동화적 화풍을 개척했다. 서울대 교수로 일하면서도 직업을 ‘까치 그리는 사람’으로 소개하던 그는 평생을 선비처럼 꼿꼿하고 유유자적하게 살며 궁핍한 시대의 인간상을 깊이있게 그려냈다.

가나문화재단과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에서는 남양주 덕소(1963~1974), 서울 명륜동(1975~1979), 충북 충주 수안보(1980~1985), 경기 용인 신갈(1986~1990) 등 작가가 머물렀던 집과 작업실을 중심으로 한 시기별 작품과 불교 색채의 그림, 먹그림, 목판화 등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수안보 근처의 황금 들녁과 허수아비를 묘사한 작품, 황소와 나무를 붓질한 작품, 단란한 가족, 탈속적인 불교 경향의 작품 등 평소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접하기 힘든 작품들이다. 특히 미국인 소장가가 보내온 ‘나무와 새와 모자’(1973)와 ‘배와 고기’(1960)는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장 화백의 화풍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심’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어려운 시절을 관통하며 미술사에 길이 남은 그의 작품에 어린아이, 가족, 가축, 새 등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 동그란 나무, 빨간 해, 나무에서 지저귀는 까치 등 소재와 파격적인 구도로 배치한 단순한 그림은 서양화가답지 않게 토속적이고 동화적이다.

자유로운 풍류와 여유, 선비 정신 역시 그의 작품에서 단골 화제다. 땅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는 사람, 나무 아래 어슬렁거리는 개, 들판 길을 배회하는 사람이 나오는 이미지는 단순한 일상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천진무구한 풍류적 심성에서만 가능하다. 중광 스님은 장 화백의 그림을 풍류의 미학으로 칭하며 ‘천애(千崖)에 흰구름 걸어놓고/ 까치 데불고 앉아/ 소주 한잔 주거니 받거니 청산(靑山)들도 손뼉을 친다/ 달도 멍멍개도 멍멍.’이라며 시로 읊기도 했다.

장 화백이 자신의 아내를 그린 ‘진진묘’와 ‘팔상도’ 등 불교 그림은 물론 먹그림도 원만하고 막힌 데가 없다는 점이 매력이다. 먹흔은 간략해 형체를 간소하게 드러내고, 자못 선미(仙味) 혹은 불교적 영기마저 느끼게 한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벽을 넘나들며 독창성을 구현한 게 장 화백 화풍의 특징”이라며 “장 화백이 아끼던 후배 작가 최종태(조각), 윤광조(도예), 오수환(추상화) 등 세 명의 작품 40점을 전시장에 함께 소개해 그의 순수하고 초월적인 정신을 기렸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스크랩 [한국경제]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장욱진(1918-1990) 

 

 

 

 

 

 

 

 

I'm simple... 

 

"이 말은 내가 되풀이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마디지만

또 한번 이 말을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다."

 

장욱진은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신명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장인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그를

세상의 눈은 기인으로 여겼다. 

또는 세속도시에서 신선으로 살다간 화가라 말한다,

 

그는 늘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었고 화가는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뱉어내는 것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일곱 살이라 하였다. 

그런 화가였기에 그의 그림은 작고 소박한 화폭에 

단순한 주제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작은 그림은 친절하고 치밀하다." .....

 

 

 




 

일명「보리밭」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 그림은 나의 자상自像이다.
1950년대 피난중의 무질서와 혼란은 바로 나 자신의 혼란과 무질서의 생활로 반영되었다.

나의 일생에서 붓을 못들은 때가 두 번 있었는데 바로 이때가 그중의 한번이었다.

초조와 불안은 나를 괴롭혔고 자신을 자학으로 몰아가게끔 되었으니

소주병(한되들이)을 들고 용두산을 새벽부터 헤매던 때가 그때이기도 하다.



그는 늘 잎이 풍성한 나무를 그렸고,

이는 가난하지만 늘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그의 삶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여름 한낮, 나무 아래에서 속옷만 입고,

누워있는 어린 아이의 편안하기만 할 마음 또한 그렇다..

 








 

붉은 색이 나는 땅 위에 녹색의 들이 잘 어울리어 활력이 넘쳐나고,

가축과 집 가까이 찾아 드는 까치도 한 식구로 여기고 있다. 

 


 

아이의 눈, 코, 귀 목이 가장 단순한 기호로 그려져 있다.

그 뒤로는 집 세 채가 바로 또는 거꾸로 서 있다.

천진한 어린이가 두 다리사이로 세상을 바라보면 집이 거꾸로 보일 것이다.

 



화면에 그린 소재들이 마치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한결 같이 간결하다.

작가가 늘 말하는 [나는 심플하다]는 말 그대로

소재가 지니고 있는 핵심적인 구성 요소만 그려서 가장 단순한 그림을 창작한다 

 









입체주의 시점에서 그린 그림이다.

즉, 모기장 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視占)에서 그리고

 등잔, 요강과 그릇은 옆에서 바라다 보는 시점에서 그렸다

 




























 

원시시대 그려졌다고 하는 동굴 벽화 같기도 하고, 암호화된 그림 같기도 한 작품이다.

 사람도, 벽도, 부엌의 모습도 모두 단순화되었다.

가재도구 하나 제대로 없이, 빈궁하기만 한 살림이지만

그들은 절망하거나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라고 할까...


































 

이 작품은 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신선의 모습을 한 노인은 바로 작가 자신...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그는 세상을 등지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발 아래 있는 세상은 늘상 그의 바람처럼

어린 아이와 새 그리고 나무로 차 있다.


 

출처 :정인성 그림 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 정인성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