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 보기 LOOK INTO

                                     성병희展   

                                                

                                                  2012_0727 ▶ 2012_0810
 

                                                                    성병희_눈-비-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8cm_2012

 

 

 

갤러리 빔 GALLERY BIIM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82.2.723.8574 www.biim.net

 

 

 

고통과 상처로 드러난 소녀의 초상 ● 성병희의 근작은 예전의 구체화된 인물에서 점차 상징적인 표현의 형식을 띄고 있다. 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던 세부적이고 서술적인 표현 어법들은 더욱더 간단명료해지고 보다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변모해 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상징적인 표현들이, 어떤 상황이나 설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명쾌하고 직접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녀가 그리는 인간들은 늘 불안과 상처로 쫒기는 불안의 눈빛을 하고, 외부의 강압으로 침묵을 강요 당하거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허무에 다시 잠식 당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을 표현해 왔다. 그들은 타인이자, 자기 자신이며,내부적 허무와 외부에서 오는 또다른 허무에 의해 무너져내리고 상처 받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성병희_호기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11
 
 
성병희_들여다보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8cm_2012
 
 
성병희_붉은 방석_종이에 아크릴채색, 환조_73×55×36cm_2012
 

 

 

이번 작품들에서는 한 소녀이자, 여인이자 인간으로서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기인한 혈흔과 고통의 흔적들이 호소하는 듯한 눈과 손을 통해서 표현된다. 마치 수화 같기도 한 손의 동작들은 몸이나 얼굴과 하나라도 된 듯이 합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이를 가늠 하기 어려운-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의 인물들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은근하면서도 뚜렷하게 낱낱이 보여준다. 그러한 것을 더욱 돗보이게 하는 표현 방법으로 알비니즘(백색증)에 가까운 창백한 얼굴색과 그와는 대조적인 손과 눈의 붉은 색은 그 그림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이 보이지만,그것은 나 이기도 하고 우리 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그것이 그녀가 갖고 있는 힘일 것이다. 매우 절제되고 제한된 표현으로 오히려 더욱더 풍부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역설의 방법. 그것이 지금의 그녀가 추구하는 표현 방법인 것이다.

 

 
 
성병희_비행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8×131cm_2012
 
 
성병희_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8×131cm_2012
 
 
성병희_비행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8cm_2012

 

 

 

어떠한 시대적 상황이나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그녀가 일관되게 관심을 갖고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인간 이었다. 그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인 한 인물에 대한 치열한 탐구로 했었던 90년대나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내밀하고 구체적인 일기장을 공개한 듯 한 2010년의 작품이나 보다 관념적이고 몽환적으로 변모한 2012년의 작품이나 모두 ,이 지상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인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끌어안고 가려는 애정어린 시선이 있다. 여러 시대적, 개인적 상황을 지나 현실적인 무게를 지니고 그 시선이 닿는 곳이 어딘지 계속 따라가 보고 싶다. ■ 류수원

 

 

 

 


 

현대사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화폭에


   


 누드를 통해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아 온 서양화가 이주리씨(42)가 26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이흥재) 서울관에서 '던져짐-살다' 展을 연다.

'살다'라는 주제로 작업을 이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점점 소외돼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그림 속에는 근육질의 남성들이 한데 뭉쳐있다. 머리카락 하나 없는 민머리와 함께 피부 톤은 피한방울 흐르지 않을 것처럼 차가운 회색이며, 금방 폭발할 것 같은 근육들이 뒤틀려있다. 이 몸들 사이를 비집고 숨어버리고 싶어 하는 듯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처럼 비추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 뒤엉킨 채 밀치고 짓밟기도 하는 현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제목은 '살다'이다.

그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자본화 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자아를 잃어가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뭉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현실을 환기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치고 피 흘리며 결국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삶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은 마치 무중력 상태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유유히 떠 있는 듯 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눈앞에 쉽게 드러나는 표정이 아니라, 몸을 통해 드러나는 마음속의 표정을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그의 작품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대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얼굴은 모호하며,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이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며 소비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고, 기계문명의 발달과 획일화된 소통에 의해 소외당하고 있는 인간들은 점점 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원광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2회의 개인전을 개최한 그는 우진문화공간 청년작가 전시 및 해외연수 지원과 청년작가위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북인물작가회, 한국평면회화회, 전북시대미술연구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고 전북도의 해외전시지원사업에 선정돼 오는 10월 미국에서 '버질아메리카 초대전'을 열 예정이다.

 

 

[전북일보 / 2013.8.23 / 김정엽기자]


이주리 展

be living - live (산다-살다)



살다_150x150cm_Oil on Canvas_2013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장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2013. 8. 21(수) ▶ 2013. 8. 27(화)
Opening 2013. 8. 21(수) pm 6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 (인사동길 41-1) | T.02-720-1757  
www.insaartcenter.com

 
 


살다_162.2x130.3cm_oil on canvas_2013

 


인간의 내면 세계인 무의식은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는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 무의식의 과정을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꿈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겪은 상황을 깨어난 뒤, 의식적으로 파악해 보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파편적으로 등장하여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간혹 옷차림이나 무엇을 들고 있었는지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얼굴을 기억하려하면 역시나 모호해서 전체적으로 불명료한 이미지로 남게 된다. 이주리의 남성들이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고, 그들의 육중한 몸이 가볍게 공간을 유희하듯이 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꿈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를 암시한다. 또한 이주리의 무의식의 세계, 즉 내면에 자리잡은 남성들은 우선 나신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살필 수 없다. 그들은 한국인의 페르조나가 지향하는 이미지, 물질 중심적 이미지로 투사된 외모가 아니다. 이는 소비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치장된 외모를 벗어던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여성 작가인 이주리가 페르조나를 벗어던지고 바라본 내면의 세계 속에서, 자아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마주보게 되었을 텐데 왜 혼자있는 여성이 아닌 다수의 남성들의 이미지와 마주하게 된 것인가? 조금 시간을 들여 융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와 달리 내적 인격은 자아가 내면세계와 관계를 맺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으로서 나(자아)와 무의식의 더 깊은 층을 이어주는 매개자이다. 내적 인격이란 심혼(心魂, Seele)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는데, 심혼은 의식을 자극하는 무의식의 심리적 실체이며, 매우 여성적인 여성은 남성적인 심혼을, 그리고 매우 남성적인 남성은 여성적인 심혼을 가지고 있다고 융은 말한다. 이부영의 설명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구분된다. 남성과 여성은 심리적으로 서로 다른 관심과 특성을 나타내고 사회적으로도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되어 왔다. 그렇게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가는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과 여성의 페르조나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내적 인격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남성의 무의식에는 여성적 인격이,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적 인격이 내적 인격으로 자리하게 된다. 융은 남성의 여성적 심혼을 아니마(Anima), 그리고 여성의 남성적 심혼을 아니무스(Animus)라고 불렀다. 이 아니마, 아니무스는 남성과 여성의 의식에서 억압된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조건인 원형으로서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남성이 남성 호르몬 뿐아니라 여성 호르몬을 가지고 있고, 여성에게도 남성 호르몬이 있는 것은 이런 원초적 조건의 생물학적 토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살다_162.2x112.1cm_oil on canvas_2011

 
그러므로 이주리의 작업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바로 그녀의 남성적 심혼인 아니무스 이미지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품에서 아니무스는 왜 집단적으로 등장하는가? 이에 대해 융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물학적 단계에서 여성의 주된 관심은 한 남자를 붙들어두는 일이지만, 남성의 주된 관심사는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본래의 성질상 남성은 하나의 정복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은 여성의 의식이 보통 한 남자에 국한되는 반면 남성의 의식은 한 여자라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확장하는 성향을 띠며 때로는 모든 개인적인 것을 거역한다. 그런데 무의식에서는 그 반대인 가능성이 있다. 남성의 무의식의 아니마상이 비교적 뚜렷한 윤곽을 보이는데 비해서 여성의 무의식의 아니무스상은 불명확하고 다수의 인격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작가 이주리는 “물질이 정신성을 지배하고, 기계문명의 발달과 획일화된 소통에 의해 소외당한 인간들이 대중 속에 휩쓸려 자신의 얼굴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이렇게 본질을 상실해가는 한국의 현대 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성찰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희망처럼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로인해 그녀의 내적 인격인 아니무스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그녀의 아니무스를 찾는 작업은 우리가 페르조나를 따라가느라 의식적으로 무시했던 심혼의 목소리를 찾게 할 것이다. 또한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의 조화롭지 못함으로 인해 삐걱되던 삶의 공허함을 서서히 채워줄 것이다.

이현경(미술비평) 포토저널 기사 부분

 


살다_162.2x130.3cm_oil on canvas_2013

 


살다_97x162.2cm_oil on canvas_2013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

 

개인전 12회 | 2013 (be living-live)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장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서울 | 2013 (PLATFORM 개관기념 초대전) 갤러리 숨 ,전주 | 2012 (vergil america 초대전) space WOMB,New York | 2011 (살다-지우다) 사뽀 갤러리 무료대관기획전, 전주 | 2010 (살다) 우진문화공간 청년작가초대전, 전주 | 2010 (던져짐-살다)수도권전시지원, 인사갤러리,서울 | 2009 (grayish-살다)공유 갤러리 초대,전주 | 2008 (살다)전북예술회관 (살다) 전주 | 2007 (초대) 東내미술관,전주 | 2006 (침묵) 전북예술회관,전주 | 2002 (크로키 초대전) 얼화랑,전주 | 1998 전북예술회관, 전주

 

 














































2013 인사미술공간 전시공모 당선작 세 번째 전시


차혜림 개인전 < 밤의 무기들 >

 


● 전시기간: 2013. 8. 23(금) – 9. 14(토) *오프닝: 8월 23일 오후 6시
● 전시장소: 인사미술공간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창덕궁길 89 문의 TEL 02-760-4722
● 전시관람: 11:00 am - 7:00 pm (월요일 휴관), 관람료 없음
● 주 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은 오는 8월 23일(금)부터 9월 14일(토)까지 <밤의 무기들> 차혜림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시각 예술계의 미래를 책임질 역량을 갖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차세대예술인력육성지원 사업(AYAF)의 일환입니다. 올해는 허수영, 정지현, 차혜림, 김용관, 백현주 등 총 다섯 명의 작가가 선발되었으며, <밤의 무기들>차혜림의 개인전은 허수영(5월), 정지현(6월)에 이은 세 번째 전시입니다. 인사미술공간에서 소개하는 신진작가의 개인전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 1층 전시전경, 2013



□ 전시 서문

(글 / 이단지 _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세계의 틈은 필연적으로 만나지기도 하고, 우연히 나타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집인 동시에 덫이며, 보호구역이자 수용소이며, 모든 것들의 외부이자 심연 속에 존재하는

익명의 별인 밤은 작업이라는 매혹의 대상 앞으로 항상 나를 데려다 놓았다.”

_작가 노트 중

 
 
차혜림이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창작의 배경은 우리의 앎이 닿을 수 없는 어떤 세계의 그림자이다. 실재(實在)로써 현현되기 전의 중간상태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파편으로 엮어내기도 하고(paraxis: 중간스토리_공간해밀톤. 2010), 주인이 없는 어느 낯선 공간에 들어가 사건의 흔적들을 이어 붙이고, 무대를 증폭시키려 했던 실험(교환 X로의 세계_잠원동 10-32번지. 2011)을 진행하기도 한다. 동시에 이러한 시도들은 소설의 형식으로 집필되기도 하며, 이번의 경우처럼 다음 전시의 실마리가 되어 자기 오마쥬(hommage) 적인 지시들로 이어지고 확장된다. 전작들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이성적 원칙의 부조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나아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의식의 균열을 벌리고 관찰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인사미술공간에서 소개되는 <밤의 무기들>은 상당히 상징적이다. 이번 전시는 구체적인 낮의 표상 너머, 그 이면의 시간인 ‘밤’을, 의식의 실존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상정한다. 차혜림이 빚어낸 익명의 오브제와 운동하는 이야기들은 낮의 빛(이성의 지각)이 잔상으로 남아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듯 모호한 상태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어둠 속에서 새롭게 호명된 모든 사물과 이미지, 이야기들은 논리적인 기승전결의 나침반을 파악하기에 실패하며 현재의 시간과 무관하게 앞 뒤를 구분하기 어렵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업들은 거대한 좌대에 설치된 여러 가지의 상징들인데, 작가는 이것을 나열하듯 펼쳐 놓고 <밤의 무기들>을 여는 서사의 시작으로 “림보(Limbo_성경에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머무는 보류된 수용소로써의 공간)”의 상태를 제시한다. 세 개의 다른 조각을 이어 붙여진 레코드 판과 분절된 신체로써의 귀, 여러 개의 렌즈가 하나의 구조에 달라붙어 있는 안경, 맹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개 등은 결론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실패의 차원, 미끄러짐에 대한 묘사이다.

 


▶ voix off 나무, 레코드판, 아크릴, 낙엽_가변크기_2013



1층의 풍경이 어떤 중성적인 플랫폼과 같이 지시된 파편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다면 지하 전시장은 기묘한 설정이지만 관객에게 이야기의 흐름으로 더욱 다가가게 한다. 전진하듯 운동성을 암시하는 형태를 띈 보조 구조물 위에 걸린 회화들은 “기묘하다”는 표현처럼, 그것이 마치 스스로 생명을 가진 듯한 제스츄어로 연출되고 있다. 전시장의 한 쪽 벽면에 빛으로 일렁이는 커튼과 같은 연극적인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 속 내러티브에 대한 객관적인 거리를 놓쳐버리게 하고 마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위한 장치(bridge)로써 설치된 회화들은 낮과 밤을 가늠할 수 없는 풍경과 화면 속 인물들이 몰두하고 있는 행동이 부각되면서 더욱 모호하게 번져간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의 이미지는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을 가담자 혹은 목격자로 전치시키기 위해 오브제 그 자체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것은 앞서 말한 현실적 상황(일반적인 사물 또는 작품을 보는 시각)과 달리 비현실적 틈(환영으로의 회화와 내러티브에 의해 컨트롤되는 관객의 심리)의 능동적 확장, 그것들의 대치상황으로 이해된다. 커튼의 은폐와 회화의 발언, 이중의 코드는 이성의 바깥에 존재하는(존재한다 여겨지는)균열의 경계를 시각적인 재현으로 전달한다.

이 모든 경계의 모호함들은 2층 전시장에서 봉합과 결합의 장면으로 희석되는데, 그것은 다른 세계에서 발굴되어 박물관의 한 켠에 안착 되듯이 놓여짐으로써 다시 한번 보는 이의 시선과 거리를 넓혀간다. 일상적인 오브제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덩어리들은 얕은 모래가 쌓여있는 제법 긴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긴 테이블은 세 개의 방처럼 나누어진 인사미술공간 전시장에서, 문이 있었을 법한 뚫린 구조에 놓이고 구획의 안과 밖, 두 개의 공간을 가로지른다. 방과 방 사이의 하얗고 커다란 애드벌룬은 그 자체로 본질적인 불안감을 낳기도 하지만, 한편 팽창하는 에너지를 중재(仲裁)하며 가로 막고 있는 껍질 내부의 보이지 않는 현상을 인지하게 한다.

 


▶슬픔에 갇힌 눈 안경렌즈, 안경테_가변크기_2011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또는 구전 되어 온 많은 신화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침잠하는 자유로운 심연의 ‘밤’을 그리워해왔다. 가능성의 영역, 응축되고 압축된 세계,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 닿을 수 없는 거리, 결핍과 과잉의 과정들이 기준점에 도달하지 않는 거리, 닫힌 상황에서의 탈출,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축적되어 쌓이는 공간으로서 명명된 ‘밤’은 적어도 작가에게는 회복과 소생의 순간이며 창작을 촉발시키는 리듬이 된다. 세계의 틈은 이렇게 안간힘의 붙잡음으로 만나지기도 하고, 우연히 나타나기도 한다.



눈꺼풀이 닫힌 지점에서 시작되는 밤의 이야기들은 물 위에 투영된 일그러진 이미지와 같이 모험적일 수 밖에 없다. 손에 닿으면 일그러지기 일쑤인 밤의 그림자는 빛 아래에서 느낄 수 없었던 모든 촉각의 다발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밤의 무기들>에 등장하는 많은 상징과 장면들은 논리의 분산을 맹목적으로 지향한다거나, 양가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기를 거부한다. 다만 그것은 이성의 세계와 그 이면들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벌어진 틈만큼의 공간을 대체하는 여러 기호들을 고안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문의
Tel +82-(0)2-760-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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