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OCI YOUNG CREATIVES
강동주_이미정展

 

2013_0816 ▶ 2013_0905 / 월요일 휴관

 

강동주_51초/324초의 달_먹지, 종이_20.3×30cm_2013

초대일시 / 2013_0816_금요일_05:00pm

강동주展 /『부도심_청량리 영등포 청량리』

이미정展 /『위로는 셀프』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강동주-음예의 접면으로 음예의 접면을 그리는 방법 ● 01. 신예 미술가 강동주(1988-)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누구의 손으로 그릴 것인가?"라는 동시대 공통의 질문을 마주한 채, 포스트-미디엄의 상황(post-medium situation)에 부합하는 문제적 형식으로 '그리기'라는 행위를 재정의·재발명해내고자 애쓴다. ● 02. 어떤 신인 화가가 제 주제-물(subject matter)을 찾았다고 하면, 그건 평생에 걸쳐 진행될 화업(畵業)의 대주제를 구체적 주제로 포착했다는 것과 함께, 그를 표현할 최적의 질료와 형식을 찾았다는 뜻이다. 강동주의 경우, 최종 형식을 강제해내는 작업 내용은, 음예(陰翳)의 도시 공간 혹은 도시 공간의 음예적 접면(interface)이다. 그리고, 그를 구현하는 최적의 재료는, 특별한/특정한 프로토콜을 따르는 연필과 먹지와 종이, 그리고 유채와 캔버스다. (비고: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1886-1965」에 따르면 음예란,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을 뜻한다.) ● 03. 2010-2011년에 전개한「퍼레이드」연작에서 작가는 도심의 방진막을 주제 삼아 가리는 것과 가려지는 것을 동시에 그려내고자 노력했다. 사진기로 방진막을 촬영하고, 그를 유화로 옮겨 그렸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방진막 사진을 유화로 옮겨 그린 예외적 경우도 몇몇 있다.)「안강중학교」「서울 송파구 석촌동 236-06 고암빌딩」「경기도 연천군 철산면 초성리 kcc」등 장소를 적시하는 제목을 단 그림들은, 작가에겐 회화적 탐구―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접면을 주제로 삼은―의 출발점이자 미적 종부돋움의 발판이 됐다. ● 04.「퍼레이드」연작이 지닌 모호함에 관해 다소 불만족을 느끼던 작가는, 2012년「볼 일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것의 처지」란 몹시 자명하고 다소 지루하고 우스운 연작을 전개했다. 장시간 버스를 타야했던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뒷통수들을, 바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머리로 한정해 가르마 부분만 드로잉으로 옮기고 버스 번호와 드로잉 번호, 제작 날짜와 시간(예컨대, 첫 드로잉의 제목은「720-1 01.15 08:15」)을 적어 넣었다. (비고: 이 버스 안 드로잉은, 이동 중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공간적 제약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시공간 특정성을 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05. 작가 강동주의 남다른 작업 특성―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접면을 적절한 음예의 방식으로 기록하는―이 도드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 개인전 『정전』에서였다. ●『정전』 작업 1부 : 2012년 5월 3일 20시부터 4일 20시까지 전시 장소인 누하동 256번지의 유리창을 중간 지대(접면)로 삼은 화가는, 매시간 유리창에 비춰진 맞은편 주택가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빛의 궤적을 먹지 드로잉으로 옮겼다. (비고: 먹지에 남은 드로잉과 먹지 위에 놓은 백지에 남은 드로잉과 먹지로부터 전사된 이면의 드로잉, 세 가지 모두 작업이지만, 갤러리 공간엔 먹지 드로잉만을 제시했고, 백지의 이면에 전사된 드로잉―빛을 음예로 전치시켜 놓은―은 전시 홍보물에 인쇄된 모습으로만 공개했다.) ●『정전』 작업 2부 : 누하동 256번지 유리창 뒷면에 덧붙여져 있던 나무판을 비가시성을 일으키는 가로막이의 접면으로 해석한 작가는, 이를 뜯어내 전시 작품의 일부로 삼기로 작정한다. 나무판 철거 당일, 기존에 전개한 25시간 드로잉(5월 3일부터 5월 4일까지)의 작업 시간을 총합한 약 258분간, 떼어낸 판재의 표면에 조각칼과 망치로 이날 풍경의 움직임을 아로새겼다.

 

 


강동주_155분 37초의 하늘_No. 6, 11, 16, 21, 26, 46, 51, 86, 126_

캔버스에 유채_22.7×15.8cm×156_2013_부분

2012년 5월 25일 오후 7시 종로구 누하동 256번지에서 조명을 끈 채 손전등 불빛으로 개막한 전시는, 6월 8일까지 이어졌고, 전시 관람 시간은 오후 7시에서 10시로 제한됐다. ● 06. 2013년 8월 개막 예정인 두 번째 개인전『부도심』을 위해 작가 강동주는,「빛 드로잉」「달 드로잉」「하늘 회화」세 가지 연작을 전개했다. 이 세 연작은 실상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부도심 지역을 관통하는 자동차 여행의 비디오 촬영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청량리 재개발 구역에서 출발해 영등포를 거쳐 다시 청량리에 도달하기까지의 동선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보름달이 뜨는 2013년 2월 25일 일몰시간인 6시 28분부터 승용차(쏘렌토)로 이동하면서, 좌우 거리의 풍경과 하늘의 풍경을 비디오카메라 석 대로 촬영했다. (세부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청량리 - 동대문 - 종로 - 광화문 - 충정로 - 아현 - 신촌 - 합정 - 양화대교 - 영등포 - 양화대교 - 합정 - 신촌 - 아현 - 충정로 - 광화문 - 종로 - 동대문 - 청량리.)

# 세부 동선

01. 청량리역-용두역=1.92km

02. 용두역-청량리역 금강제화=845m

03. 청량리역 금강제화-청량리 삼성화제=2.31km

04. 청량리 삼성화제-용두동 대우 아이빌 오피스텔= 1.08km

05. 용두동 대우 아이빌 오피스텔-동대문역=1.75km

06. 동대문역-종각 파고다 어학원=2.44km

07. 종각 파고다 어학원-광화문=640m

08. 광화문-충정로=1.13km

09. 충정로-충정로 삼거리=879m

10. 충정로 삼거리-신촌역=2.25km

11. 신촌역-서교동 사거리=2.1km

12. 서교동 사거리-양화대교 북단교차로=732m

13. 양화대교 북단교차로-영등포 코스트코=2.96km

14. 영등포 코스트코-영등포 유진투자증권=1.08km

15. 영등포 유진투자증권-영등포 로터리= 1.51km

16. 영등포 로터리- 영등포 신동아 아파트=1.73km

17. 영등포 신동아 아파트-선유고등학교=2.21km

18. 선유고등학교-서교동 첨단 빌딩=3.29km

19. 서교동 첨단 빌딩-신촌 현대 백화점= 1.57km

20. 신촌 현대 백화점-아현 감리교회=2.08km

21. 아현 감리교회-광화문 교보타워=2.5km

22. 광화문 교보타워-종로5가역=2.18km

23. 종로5가역-용두동 사거리=2.67km

24. 용두동 사거리-청량리역=1.37km

25. 청량리역-전농 뉴타운=2.1km

26. 전농 뉴타운-청량리역=1.7km

총 2시간 35분 37초 동안 47km 이동

06-1.「빛 드로잉」은 좌우 거리를 촬영한 비디오 기록(총시간 2시간 35분 37초) 가운데 왼쪽을 촬영한 기록을 보면서 그 빛의 궤적을 122cm×30cm 크기의 먹지로 옮겨 그린 결과로, 먹지 위에 놓은 백지에 직접 그린 드로잉, 그 이면에 전사된 드로잉, 먹지 드로잉, 이 세 가지 모두가 작업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시장엔 먹지 드로잉만이 제시되고, 백지에 전사된 드로잉은 드로잉북으로 묶여서 전시 기념 도록으로 한정 제작될 예정이다. 먹지 드로잉의 총 장수는 26장이고, 각 장에 기록된 시간은 총 6분이다. (비고: 가로 길이 122cm의 먹지를 6등분 하고, 각 1면에 1분 분량의 빛을 기록했다.)

 

 


강동주_청량리역-용두역 1.92km, 영등포 유진투자증권-영등포 로터리 1.51km,

전농 뉴타운-청량리역 1.7km (전체 47km 중)_종이에 먹지_30×122cm×3_2013

 

06-2.「달 드로잉」은 좌측 거리를 촬영한 비디오 기록에 등장한 보름달을 좇아 기록한 결과다. 영상 기록 속에서 달이 등장하는 횟수는 모두 22회고, 등장하는 시간은 총 5분 24초다. 달을 옮겨 그릴 때, 1초의 등장 시간을 지름 0.33cm의 크기로 환산했다. 고로, 최장 86초간 등장한 달을 기록한 경우, 지름 28cm의 큰 달로 환산·기록됐고, 최단 1초간 등장한 경우 지름 0.33cm의 작은 달로 환산·기록됐다. (비고: 처음엔「빛 드로잉」에 달빛을 포함했으나, 나중에 재작업하면서 달빛을 분리, 별도로「달 드로잉」을 제작하게 됐다. / 낱장의「달 드로잉」이 22점이고, 모든 달을 244×122cm 크기의 대형 드로잉으로 총합한「5분 24초의 달」은 1점이다. /「5분 24초의 달」에 기록된 달의 지름은 106.92cm「324초×0.33cm」다.)

# 달이 등장하는 구간과 지속 시간

01. 제기동 약 시장 4초=1.32cm

02. 충정로-아현 1초=0.33cm

03. 3초=0.99cm04. 10초=3.3cm

05. 2초=0.66cm

06. 양화대교 51초=16.83cm

07. 영등포 진입 6초=1.98cm

09. 3초=0.99cm

10. 78초=25.74cm

11. 9초=2.97cm

12. 84초=27.72cm

13. 6초= 1.98cm

14. 7초=2.31cm

15. 5초=1.65cm

16. 6초=1.98cm

17. 8초=2.64cm

18. 16초=5.28cm

19. 2초=0.66cm

20. 영등포신세계백화점 1초=0.33cm

21. 1초=0.33cm

22. 17초=5.61cm

총 달 출몰 시간 324초 =106.92cm

 



06-3.「하늘 회화」는 2013년 2월 25일 일몰시간인 6시 28분부터 총시간 2시간 35분 37초 동안, 청량리 재개발 구역을 출발해 영등포를 거쳐 다시 청량리에 도달하기까지의 여행 과정에서 하늘만을 촬영한 영상을, 1호 크기(22.7×15.8cm)의 캔버스 156개로 옮겨 기록한 결과다. 색면 추상 회화처럼 뵈지만, 어디까지나 직해주의에 따른 리얼리즘 회화다. (비고: 마지막 캔버스는 화면의 일부가 백면 그대로인데, 이는 해당 영상이 채 1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07. 소결: 강동주의 작업 세계에서 가시성의 빛과 비가시성의 어둠이 전치되는 순간, 그 시공의 접면에 대도시 서울의 음예가 스민다. 재창안된 회화의 방법으로 포착한 (2013년 2월 15일 6시 28분부터 9시 3분 37초까지의) 거리의 빛과 하늘의 빛과 달의 빛이 (재)교차할 때, 서울 부도심의 어떤 음울한 정조가 시적으로 되살아난다. ● 07-1. 작가는 신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전』에서의 작업이 빛을 새긴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새기는 감각과 지워나가는 감각이 공존했다." 이번 전시에서 (예전과 달리) 가시성의 어둠과 비가시성의 빛이 대두하는 한 까닭이겠다. ● 07-2. 빛이 어둠을 어둡게 하고, 어둠이 빛을 밝힐 때, 그 가운데 어디쯤에서 음예가 찰나(刹那)의 힘을 발한다. ■ 임근준

 

 


                                                                         이미정_Pull & Push series_나무에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3


가치(價値)의 해체를 위한 다양한 전술들 ● 사회에서 '공공의 선'으로 함의하는 것들은 칭찬받고 격려된다. 공중에서 흩어지는 칭찬의 언어를 지나 유치원을 다니면서 스티커를 받고 초등학생이 되어 공책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상장을 받으면서 칭찬은 구체화 되고 강화된다. 칭찬을 의미하는 '별 스티커'와 '참 잘했어요' 도장은 역으로 맘대로 복도를 뛰어가던 아이, 글씨를 개발새발 쓰던 아이에게는 트라우마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것, 욕망을 표출한 순간 선생님의 격려가 가득 담긴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칭찬의 도구들은 눈앞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칭찬의 도구들은 사회를 공공선으로 이끄는 이미지이지만, 그 공공을 위하여 개인이 수행해야 할 임무나 억눌러야 할 억압의 표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미정이 다루는 이미지들은 '칭찬'과 결부되어 있다. 물론 한눈에 봐도 스마트한 이 작가가 결핍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 터,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고 순종해왔던 것들에 대한 강력한 반발 혹은 거부를 표상한다. ● 칭찬하는 명칭이나 대상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지만 황금색 봉황이 그려진 거대한 상장은 동네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을 때 서툴게 세워주던 가림막에 걸려 있다. 이력서에 붙은 사진에서는 얼굴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견고한 배경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얼마든지 교체되는 배경막으로 상장을 위치시킨다. 작가는 '든든한 배경'이라 생각하는 것이 실은 '평면적이고 연약한 구조'임을 노출시키고 있다. 상장의 물질적이며 구조적인 허약함을 노출시킴으로써 '수상(受賞)'이 개인의 사회적 욕망을 부추기지만 실은 인간적 욕망을 억압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상 받을 만한 일을 수행한 사실에 대한 물질적 증거인 '상장'의 허약한 실체에「The Wall」이라는 제목을 부여함으로써 이 작가의 세계 일면이 언어적 유희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 또한 드러낸다.

 

 


                                                                                   이미정_명언짓기#6_화선지에 먹_28×70cm_2011


촘스키(Noam Chomsky)는 인간이 사물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방법에는 문화적 요인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인간이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리는 판단은 비록 의식한 것이 아닐지라도 전략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평가의 결과는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기는 기준이 된다. 정신에 구축한 도덕적 체계는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새로운 상황에 적용되는 모든 판단의 토대가 된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살아가면서 나쁜 짓을 할 때조차 스스로 기분내키는 대로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기 어려운 것은 도덕적 가치의 기본 틀에 맞추기 위해 상황을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덕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법과 다른 체계 안에서 인간의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규율은 도덕과 유관하며, 억압기제로 작용한다. 결국 상을 받을 만하고, 칭찬받아 마땅하고 모두가 지켜야 할 것들은 역으로 자아존중감을 해칠 수 있고, 자신을 억압할 수 있으며, 별반 쓸모없는 것들일 수 있다. ●「자가수상을 위한 단상」이나「자가수상을 위한 무대」는 구체적으로 사회가 규정한 '공공 선'을 개인적인 일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사회성을 무화시킨다. 동상이나 트로피를 올려놓는 대(base)를 재현한「자가수상을 위한 단상」의 나무 좌대는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선 '네 번째 좌대'를 연상시킨다. 주변의 군주나 영웅상과는 달리 비어 있는 좌대에는 힘없는 구조물이 올려지기도 하고 지원한 일반인이 돌아가며 동상처럼 서기도 한다. 강인한 영웅주의의 자리에 위치한 존재들에 주목하는 이 좌대처럼 이미정의 좌대는 '아무 것도 아닌' 개인을 위치시킨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국기를 향해 인사도 하고 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볼 수도 있는 나무로 만든 '허접한' 좌대는 '높이'를 통해 구분짓는 사회의 장소적 허구성을 폭로한다.

 

 


                                                                            이미정_자가 수상을 위한 단상_나무_52×62×62cm_2012

 


「자가수상을 위한 무대」는 둥근 나무의자의 뒷배경으로 상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무궁화 도상 좌우로 일상의 기물들이 입시도안집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한 편화(stylization)로 제작되어 걸려 있다. 드릴, 망치 등 공구에서부터 화가들이 사용하는 파레트에 이르기까지, 사물들이 마치 컴퓨터 바탕의 이모티콘처럼 널려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떠올리며 그것과 연관된 사물을 '클릭'하여 나무의자 위에 놓고 엔터를 치듯 획득하면 된다. 그 다양한 물건들에는 성인용품과 게임 아이템까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소유하고 싶어 하거나 직업을 의미하는 모든 것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를테면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거나 좋은 기업체에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조직의 선택을 의미한다. 합격자명단이 굳이 발표되는 것도 그러한 선택의 주도권이 조직에 있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장의 한 벽면을 차지한 수많은 사물들은 아주 가볍게 커서만 옮기면 되는 컴퓨터 화면 속 세계 같지만 눈앞에 실재하며 사물을 만지게 한다.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고 획득할 수 있는 그 무대는 입시미술을 경험한 사람에게 학교에 의해 선택되어진 개인이 아닌, 학교를 선택하는 개인으로서의 쾌감을 맛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자가수상을 위한 무대」는 작가의 이전 작인「레드콤플렉스」와의 연결점을 보여준다. 나무의자 위에 사물을 선택하여 목에 걸거나 들고 선 인물의 광배가 되는 무궁화는 황금빛 찬란하다. 그런데 무궁화의 중심에 있는 술이 발기한 남근처럼 발칙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주의와 연계하여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대상과 금기시하는 성(性)적인 이미지와의 결합은 '공공의 선'이라 규정한 것이 얼마나 개인의 억압을 기반으로 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놀이적인 속성, 금기와 숭고함의 결합은 전통사회에서 가치를 부여하던「문자도」나「행실도」를 변형한「구직을 위한 8덕(八德)」과「백명의 소녀를 그린 그림」에서 구체화된다.

 

 


                                                            이미정_구직을 위한 8덕(八德)_효, 제, 충, 신_C 프린트_72×40cm×8_2013_부분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는 전통사회에서 나라를 존재케 하는 가장 주요한 덕목이며 도덕률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취업 전까지는 부모님께 딱 붙어 살 수밖에 없는「효」, 서슬퍼런 귄력 앞에 무조건 쥐 죽은 듯 비굴한 굴복의 자세로 이루어진「충」과 경쟁을 위해 우정도 버린 채 밟고 서거나, 대기업에의 취업을 소원으로 이루어진 '문자도'는 88올림픽으로 한창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졌을 때 태어난 1988년생 작가가, 88만원 세대라는 자각 아래 20대의 현실을 투영하였다는 사실에서 과거의 정형화한 도상으로부터 현재진행형의 사건에 대한 비판적 도상을 획득하였다는 의미를 가진다. ● 소년들에게 바른 사회생활을 가르치는 '행실도'를 소녀들에게 금기시하는 것을 가르치는 도상으로 이용한「백명의 소녀를 그린 그림」에서는 가치를 '전복(顚覆)'시키는 방식의 유쾌함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쾌락을 지향하고 낭비하는 삶,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오직 자신의 삶을 사는 삶,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인 오르가즘을 획득하는 삶, 무모하고 과시적인 삶"을 권장하는 사회를 재구성하였다. "주체(법)와 지식의 대상(억압)에" 도전하고 해체하는 방식은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직시한 것처럼 침묵이나 비실존과는 다른 격렬한 전투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지나 현재적 아노미와 경제적 공황에 가까운 글로벌한 시대에, 변화하는 의식의 와중에서 전통적 가치와 서구적인 모럴 사이에 위치한 동아시아의 여성으로서 당착한 문제점들을 동아시아의 가치관을 묘사한 틀을 빌어 해체하는 것이다. ● 이러한 금기에의 도전은 만다라(mandala)라는 도상을 통해 합법적인 위치를 갖는 성적인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불편한 현실의 관계를 드러내는「합일」시리즈와「Pull & Push」시리즈와 같은 '성'을 개념으로 한 사회적 쓸모가 약한 놀이기구를 발명함으로써 더 노골화된다. 은유, 상징, 내밀함 등으로 표상되던 개념은 작가의 손을 통해 그림, 기구, 이미지로 노골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존재가 된다. 사용된 재료들은 싸구려 합판에 그린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합판 중에서도 고가의 것이다. 젊은 작가의 경제력에 비하면 과한 편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데, 최대한 양질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 또한 작가가 선택한 개념이다. 쓸모없는 것을 생산하는데 가장 좋은 재료라니. 실생활에서 유용성이 떨어지는 물건을 만드는 데 들이는 공력과 시간 그리고 경비는 무모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실질성과 효용성을 가치로 두는 세계를 '전복'시키는 것은 외부의 이미지에서부터 속살까지 통일되어 있다.

 

 


                                                                    이미정_자가수상을 위한 무대_나무에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3_부분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은 현대가 '불안의 시대'인 것은 그 어떤 견해와도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관여나 참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나아가 물고기는 물 밖에 나와야 물을 의식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오늘날 텔레비전과 신문지상의 뉴스가 객관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사건이 등장할 때까지 반복되는 자기복제 기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 기계사회의 미디어에 대한 맥루한의 통찰은 우리 사회의 흐름을 조정하거나 진행하는 에너지에 대해 유용한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 푸코(Michel Foucault)가 경계했던 사라지라는 선고, 침묵하라는 명령, 비실존을 긍정하라는 명령인 '억압'이 이러한 뉴스의 틀과 연계되어 이미지를 통해 확고해지는 것 또한 확인한다. ● 오랜 세월 이미지를 틀 지우는 것들에 대한 반발 혹은 상상력의 규제에 도전해온 미술가들의 힘은 자본주의 시대에 현저히 약화되었다. 물론 군주나 절대적인 권력의 주체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 국적이나 물리적 실체가 없는 자본은 부정할 대상을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이미정의 발칙하고, 도전적이며 순전히 놀이를 위한 놀이기구는 '공공의 선'과 먼 거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공공의 선을 위해 매우 유용한데, '가치'라는 이름으로 규제된 삶의 법칙들을 무화시키는 놀이의 존재를 우리에게 각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성적인 이미지가 넘쳐남에도 주체 없는 이미지만 존재하며 여전히 '성' 자체에 대해서는 금기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가 신장하고 자본을 지닌 엘리트가 사회적 책무를 잊고 자신의 욕망을 펼쳐나가던 서구 근대의 모습과 닮아 있다. 주체적 삶을 위하여 땅에서 벗어나 지식을 소유하였지만 노동에서 소외된 88만원 세대, 88년생의 삶은 연대(連帶)와 유대(紐帶)라는 대안을 통해 확립될 수 있음을 '8망(八亡)'의 도상이 되어버린 '구직을 위한 8덕(八德)'에서 본다. 이 젊은 작가의 발칙하고 거칠어 보이는 작품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세상은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때문이다. ■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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