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 strand / 线
신진식展 / SHINJINSIK / 申瑨植 / performance.video
2013_0821 ▶ 2013_0827
신진식_옷 입다_퍼포먼스_00:05:00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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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821_수요일_05:00pm
2013 공평갤러리 기획 초대展
퍼포먼스 공연 / 05:00pm~06:00pm출연 / 김미리_신우주_유혜림_윤종인이지연_임도영_정회나_조아라_주다희조연출 / 이지연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GONGPYEONG ARTCENTER GONGPYE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공평빌딩 1층Tel. +82.2.3210.0071
www.seoulartcenter.or.kr
공평갤러리는 오는 2013년 8월21일(수)부터 27일(화)까지 신진식의 퍼포먼스 기획/초대 개인전『실』을 개최한다. ● 신진식은 최근 5-6년간 '이웃', '남용되는 금기산업' 등을 주제로 평면 회화, 단채널비디오, 퍼포먼스 등을 통해 우리가 간과하는 소수의 인권과 개인의 소소한 삶의 자유를 환기시키기 위해 발언해 오고 있다. ● 지난 1982년 무세중의「통막살」참여 이후 1985년 국내 최초의 미디어퍼포먼스인「컴퓨터아트퍼포먼스」시리즈와 대학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길굿패의 잔혹 퍼포먼스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작가는 1992년 도미 후 타 장르의 작업에 몰입해 왔다. ● 2005년 귀국과 함께 페인팅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대규모의 미디어 퍼포먼스에서 군더더기 없는 장편(掌篇)에 이르기까지 8년간 33편의 퍼포먼스를 창작하고 공연해온 작가는 다른 퍼포먼스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직접 자신의 공연에 출연하지 않고 시(詩)와 같은 몇 줄의 텍스트로 관객과 퍼포머에게 놀이를 제안하는 아이디어맨이거나 이 장르에 생소한 이들을 모아 가르쳐 공연으로 이끄는 구루(guru)로서 존재하기를 즐겨한다. ● 이번 퍼포먼스 개인전에서는 작가의 최근 대표작「옷 입다」,「잠자다」와 신작「실」,「보자기」,「선 긋기」,「닦다」,「무중력 실험」단채널 비디오로만 공개했던「오늘 뉴스」,「내게 안 맞는 내 그림자」등 9편의 단편 퍼포먼스를 전시기간 내내 매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공연하며 그외의 전시 시간에는 같은 공연을 비디오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심영진
신진식_컴퓨터 아트 퍼포먼스_01:30:00_1985
실(絲), 삶에 대한 성찰의 계기 ● Ⅰ. 신진식은 누구인가? 아마도 젊은 미술인들에게는 이 이름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컴퓨터 아트'나 혹은 '상호작용'(오늘날 미디어 아트나 퍼포먼스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과 같은 용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다면, 이미 20여 년 전에 컴퓨터 아트의 제1세대 작가로 신진식이란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1983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는 작업 초기에 실험에 기반을 둔 개념적 작업에 열중하며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메일 아트를 비롯하여 신문 광고, 책 등 아날로그적 형식의 매체를 이용하여 다양한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펼쳐나갔다. 이러한 아이디어 퍼포먼스 혹은 아이디어 아트라고 칭할 수 있는 예술 행위는 당시 그가 사랑하던 '곽공주'라는 이름의 여인을 향한 것이었음으로 예술은 생활과 등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는 1984년에 행한 메일 아트에서 "나는 공주를 사랑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엽서를 500부 한정판으로 인쇄하여 공중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뽑은 주소로 발송하였는데, 이는 공주라는 이름이 '공주(princess)'라는 보통명사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행위였다. ● 이처럼 신진식의 작업이 지닌 언어 게임적 측면은 그 무렵 그의 실험 작업을 관류하는 기본 컨셉트 가운데 하나였다. 또 하나,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지만 1980년부터 당시 실험미술의 무심사 경연장이랄 수 있는『앙데팡당』展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 순수미술 계열로 전환한 것은 훗날 그의 진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이 무렵 그는 하이퍼 리얼리즘과 개념미술에 경도되었는데, 이 시기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질풍노도기'에 해당하므로 의 의식이 이후 어디로 향하게 되는가 하는 점을 아는 것은 그의 예술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특히 1982년 당시 독일에서 돌아온 전위연극인 무세중의「통, 막, 살」공연 워크숍에 참여한 경력은 향후 그의 퍼포먼스 작업과 관련, 매우 중요한 체크 포인트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수십 차례의 퍼포먼스 발표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위미술 분야에서는 그의 이름이 생소한 까닭도 따지고 보면 그의 작업이 연극 계열의 퍼포먼스에 연계돼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는 수년간『춘천 마임 축제』 등 연극 관련 행사에 주로 참가하였으며, 그가 미술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최근 몇 년 간에 걸친 『한국실험예술제』를 비롯한 몇 차례의 회화 전시를 통해서였다. 따라서 이번에 공평갤러리에서 열리는 신진식의 퍼포먼스 발표회는 미술계의 복귀를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인 셈이다. ● Ⅱ. 1993년, 신진식은 뉴욕으로 이주 후, 1994년 백남준이 기획한『Seoul Nymax』(뉴욕 엔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 참가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한동안 본격적인 작가 활동은 물론 TV 프로듀서와 광고 영상 감독 등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는데, 이는 훗날 미디어 아트는 물론, 단편 실험영화, 단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TV 프로그램 등 멀티(다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 ● Ⅲ. 최근 몇 년간 신진식은 멀티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쏟아냈다. 행위와 컴퓨터를 이용한 영상, 미디어 아트 등이 결합된 대규모 퍼포먼스와 회화 작업은 성(性), 인권, 대량 소비사회의 단면, 비인간화된 사회 현실, 노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 등 사회적 금기와 후미진 사회의 이면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신진식이 사회에 대해 기울이는 이러한 인식의 이면에는 80년대 초중반 한국 미술계를 강타한 민중미술의 등장에 따른 일련의 전시들, 즉『삶의 미술』,『을축년 미술 대동잔치』 등에 참여한 바 있는 그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진식이 현실 참여적인 시각만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퍼포먼스 중 일종의 카타르시스로서의 행위, 즉 다중이 참여하는 집단 페인팅 퍼포먼스 또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바, 이는 순수한 예술 행위를 통하여 치유의 효과를 유발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는 자신이 직접 퍼포먼스를 수행하지 않고 연출자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데,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행위자들에게는 미술교육의 연장으로서 직접적인 체험과 관련되기도 한다. ● 2012년 『한국실험예술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300초 릴레이 퍼포먼스』에서 신진식은「옷입다」라는 퍼포먼스를 발표, 1등상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전자시계의 전광판이 '300'에서 '0'에 이르는 시간 동안, 5명의 여성 행위자가 번갈아 남이 벗어 놓은 옷을 입는 순환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 이번에 공평갤러리에서 선보일 신진식의 퍼포먼스「실/Strand」은 그의 대표작인「잠자다」(2011),「옷입다」(2012)를 비롯하여, 신작인「실」,「보자기」,「선 긋기」,「닦다」,「무중력 실험」,「오늘 뉴스」,「내게 안 맞는 내 그림자」등 9편이 실연(實演)되며, 이는 다시 비디오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 신진식은 이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사회적 속박, 위선을 통한 생존의 욕구, 체제에의 순응과 개인적 의지의 문제 등 서로 길항관계에 있거나 모순되는 성질들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인간관계를 끈의 유비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행위자들의 행위는 작가의 말을 빌리면 "누군가가 대신 재단해 주는 나의 삶"에 대한 관객의 성찰을 촉발시킨다. 관객들은 그런 행위자들의 다양한 행위를 통해 '관계'의 섬세한 의미를 해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구체성이 결여된 행위는 마치 풀기 어려운 난수표처럼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상징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것의 처음과 끝은 과연 어디인가. 물론 해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관객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마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처럼. ■ 윤진섭
신진식_오늘 뉴스_퍼포먼스_00:10:00_2012
끝내 지키고픈 내 감각 속의 자유 ●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소리 내어야 하는 것처럼 위선을 강요하는 사회에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 한 번 양보하기 시작했더니 내 안방을 내주는 것은 물론 술집이나 거리에서 조차 담배를 필 수 없는 애연가가 끝내 저항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 법에 접촉되지 않고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펼쳐야 하는 지. ● 느린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점점 빨라지는, 일테면 LTE-A같은 통신 속도에도 대항하여야 하는 것인지. ● 이 모든 의문의 답은 "순응하라."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저항하는 것이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고 곡해하는 내 의지는 어떻게 처단해야 하는지. ● 실로 감긴 누에고치처럼 조여 오는 외부의 힘들에 맞서기 위해 오늘도 내 머리는 고상해질 새가 없다. ● 더욱 무서운 것은 화형장으로 인도할 마녀사냥을 매일 뉴스로 보며 절로 움추러드는 나의 비겁함과 만나는 일이다. ● 그렇다고 머리띠를 둘러메고 구호를 외쳐서 될 일도 아닌 누구도 관심없는 소소한 자유 아니 째째한 자유의 수호를 포기할 순 없다. ● 하여 나는 용기를 끌어내고 지혜를 얻기 위해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실을 감고 풀며 무언가를 짜내려가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신진식_내게 안 맞는 내 그림자_퍼포먼스_00:15:00_2012
이 퍼포먼스展에서는 다음과 같은 9가지 방법의 실 감고 풀고 다시 감기를 시도해 본다. 1. 보자기 ● 3명의 불한당이 빨간 보자기에 싼 무거운 것을 하나씩 들고 와 바닥에 내려놓는다. 보자기가 풀리면서 그 안에서 무엇인가 나타나는데... 2. 선긋기 ● 세 명의 정숙한 처녀들이 먹줄을 튀기며 바닥에 선을 긋는다. 선긋기가 끝나면 관객들을 그려 놓은 도형 안으로 나누어 정렬 시킨다. 3. 오늘 뉴스 ● 오늘 뉴스는 날씨 이상으로 우리의 하루에 작용한다. 어느 시댄가 "나는 신문의 문화면밖에 안 봐"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 우리 삶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포털사이트의 뉴스 헤드라인은 하루 혹은 매순간의 통과의례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입력되어지는 정보들을 솎아내려 아무리 노력해도 오늘 뉴스들은 모이고 모여 마침내 거역할 수 없는 큰 물결로 진실을 재단(裁斷)한다. 하지만 날씨와 달리 오늘 뉴스는 기획되고 만들어지기도 하겠지. 4. 내게 안 맞는 내 그림자 ● 모델은 포즈를 취하고 재단사(裁斷師)는 그 포즈의 외곽선을 그린다. 모델과 재단사는 외곽선이 그려진 종이를 함께 오리기 시작하나 마무리의 특혜는 모델이 누리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자신이 스스로 설계한 패턴이라 믿기에 모델은 그 형상에 몸을 맞추려 노력을 거듭한다. 내 몸에서 발췌한 패턴일지라도 그 패턴에 내 몸을 맞추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누군가가 대신 재단해주는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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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식_무중력 실험_퍼포먼스_00:15:00_2012
5. 닦다. ● 그어 두었던 선을 닦는다, 닦고 또 닦는다. 6. 옷입다. ● 무대에 원형으로 둘러선 다섯 여성. 자신의 옷을 벗어 놓고 옆으로 같이 돌아 다른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는 행위를 300초 동안 반복한다. 7.무중력 실험 ● 작가가 준비한 글을 관객 모두가 낭송한다. 낭송이 반복되면서 우리 모두는 무중력 상태로 들어선다. 8. 실 ●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다, 극세사로 연결된 너와 나. 9. 잠자다. ● 실로 연결된 공연자와 관객 모두 누워 잠이 든다. ■ 신진식
신진식_잠자다_퍼포먼스_00:15:00_2011
불안의 5분 사색의 5분 ● 어느 한 예술가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근원에 쉽게 다가갈 수 없고, 기존에 있어왔던 카테고리에도 쉽게 담아낼 수 없는 작가가 있다. 그가 신진식인데 적어도 나에게는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인물이다. 그가 30여년 자신이 해온 작업 중에서 전시작품이 아닌, 퍼포먼스 작업만 묶어 개인전과 책으로 정리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는 짧은 30년의 세월이다. 오랜 사색과 실험 그리고 좌절과 진일보를 향한 고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같은 예술가로써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 내가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불과 몇 년 안 된다. 1969년, 일단의 젊은이들이 명동과 신촌거리에 나타나 옷 대신 고무풍선을 몸에 걸치고 이상한 행위를 했다고 신문에 났는데, 그들 이름이 정강자. 정찬승, 방태수 등이다. 당시는 그런 행위예술을 헤프닝이라고 했고, 김구림, 이건용 등이 합세하며 이벤트라 불리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행위예술로 기록될 그들의 작업은 최루탄 가스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다. ● 60-70년 대 한국의 암담한 정치상황은 이들의 순수하지만 방종한(?) 예술정신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TV 드라마에 넋이 빠진 일반대중 또한 그들 젊은 행위예술가들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골목길 한 구석에서 잠시 피었다 떨어진 꽃잎처럼 그렇게 1 세대 행위예술가들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져 갔다. ● 다시 세월이 흘러 1983년, 우리의 전통 몸짓과 우리 민족의 염원으로 무장한 무세중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독일에서 돌아온 그가 첫 번째로 무대에 올린 작품은「통막살」이다. 주제는 '통일을 염원하는 막걸리와 살풀이'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무세중의「통막살」을 시작으로 퍼포먼스라는 장르가 비로소 우리나라에 소개된다. 분단의 도시 베를린의 장벽 앞에서 공연을 한 경력의 소유자라 무세중의 공연은 우리 예술계에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 그「통막살」작업에 젊은 배우 및 예술가들이 합류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신진식이다. 그는 홍익대학에서 그림을 그리던 23세 나이의 미술학도였다. ● 그렇게 무세중 그룹에서 잠시 활동하던 그는 '비디오 아트'라는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회화에서 퍼포먼스, 그리고 비디오 아트로 영역을 넓혀가는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렇게 그는 내 기억에서 일단 멀어져 갔다.
신진식_페인팅 퍼포먼스_퍼포먼스_00:45:00_2005
그리고 다시 만난 것이 21세기 초, 어느 봄날 대학로이다. ● 자 그럼 그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자.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말했다고 했던가? ● 나는 신진식의 작품을 만나면 머리가 아프다. 즉 무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 나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에는 감미로움이 없다. 아기자기함도 없다. 서정성과도 거리가 멀고, 눈물로 마감하는 감동도 없다. 때문에 당황스럽다. 그의 작업은 약간의 당황스러움 속에서 오로지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니 생각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생각하도록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서서히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느낀다. 나는 그의 작품을 대하고 있는 동안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으로 내가 살아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 내가 처음 대한 작품은 2005년 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의「페인팅 퍼포먼스」였다. 동그랗게 생긴 원형 캔버스 5개를 바닥에 깔아놓고 붓 대신 손으로 물감을 칠해가는 작업이다. 붓 대신 손가락과 손바닥을 이용한다는 것 뿐 다른 회화작업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관객이 모여들자 작업 방식이 갑자기 변한다. 행위자 몸 자체가 캔버스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몸과 얼굴을 캔버스 삼아 칠하고 바르고, 덧바르던 물감을 아예 들이 붓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원형 캔버스에 뒹굴고 미끄러지며 현란한 색채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당황스러워하던 관객은 서서히 즐거운 탄성을 질러대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페인트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유쾌한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 신진식은 이 작업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한마디로 잘 모르겠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5색의 페인트 속에서 관객 모두가 즐거워했다는 점. 어쩌면 그것은 해방감이리라. 소위 말하는 카타르시스. 그리고 관객은 자신의 가슴속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감지했으리라. ● 사실 그날의 심장박동은 봄날의 미풍처럼 경쾌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벼운 심장박동은 신진식 작업의 전초전(前哨戰)에 불과했다. ● 2011년, 한국실험예술제의 300초 퍼포먼스「잠들다」와 2012년 같은 예술제의「옷 입다」. ● 이 작품들은 불과 300초, 즉 5분 동안에 끝이 난다. 대신 대형 화면에 전자시계 전광판이 투사된다. 300에서 299, 298, 297, 296... ● 숫자가 하나씩 줄어간다. 그리고 시계 초침소리가 들린다. 극장 안은 숨죽인 침묵이 흐른다. 채칵채칵, 채칵책칵, 침묵 속에 시간은 빠져나간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깊은 밤 분연 듯 잠이 깼을 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초침 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한번 깬 잠은 쉽사리 다시 오지 않는다. 초침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또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자신의 몸속에서 울려오는 심장소리다. 긴장된다. 심장이 뛴다. 한밤의 비명소리나 하늘이 쪼개지는 천둥번개만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초침소리에 우리는 충분히 긴장한다. ● 그런데 신진식은 대형화면에 전광판까지 설치해 놓고 시간의 사라짐을 직시하라고 강요한다. 시간이 빠져 나간다. 시간이 사라져 간다. 유한(有限)한 우리의 인생을 말하려는 것인가? 심란하다. 시간은 계속 빠져나가 전광판은 187, 186, 185, 184를 가리킨다. 이제 시간이 3분여 밖에 남지 않았다는 표시다. 그런데 대체 무슨 시간의 끝을 말하는 것인가? 열명 쯤 되는 여자 배우들이 어둑한 무대에 나타난다. 한 여자가 옷을 벗는다. ● 아, 이제 긴장을 풀게 되나보다. 그런데 여자는 스르르 눕더니 잠이 들어 버린다. 두 번째 여자는 하품을 한다. 이 심각한 순간에 하품이라니? 하품하던 여자도 쓰러져 잔다. 세 번째 여자도 옷 벗고 잔다. 시간이 사라져 가는데 잠을 자다니? 심란하다. 나는 초조해진다. 그리고 의문이 생긴다. 사라져 가는 시간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는 오직 '잠자는 것' 밖에 없단 말인가? 기도를 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섹스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신진식은 잠자는 모습만 연출해 낸다. ● 저렇게 잠들어 있다가 시간이 다 소비되면 어떻게 되나? 죽는 것 아닌가? ● 불안하고 초조하다. 잠들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대로 뛰어나가 그녀들을 깨우고 싶다. 그러면서 "내일 지구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명언이 스친다. 그리고 베케트의 연극『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대사 한 구절도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모두 깨어있는데 나 혼자 잠들어 있는 것 아닌가?' ● 차라리 전광판의 숫자가 1에서 시작해서 플러스 방향으로 진행해간다면 우리의 불안과 당혹스러움은 훨씬 덜 할 것이다. 그런데 숫자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쉬지 않고 진행된다. 불안감이 증폭된다. 숨이 막힌다. 대체 무엇을 향한 카운트다운인가? 우리는 시간을 기다림으로 생각해 왔다. 때문에 한해가 가고 새해를 맞을 때 거리로 몰려나가 다함께 외친다. 8, 7...4, 3, 2, 1, 0...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밤하늘로 쏘아올린 폭죽과 함께 샴페인이 떠지고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높은 빌딩에선 오색 꽃종이가 나르고, 이 순간만큼 가슴 벅찬 환희의 순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의 기다림만큼 심장 뛰는 순간도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신진식이 만들어내는 심장 박동과는 사뭇 다르다. ● 어쩌란 말이냐, 드디어 9, 8, 7...심장이 벌컥거린다. 터질 것 같다. ● 시간이 제로가 되기 전에 반전(反轉)이 있겠지. 어떤 수습책이 있겠지. ● 그러나 전광판은 2, 1, 0에서 꺼져 버린다. ● 무대도 암전 되고 더 이상 초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적만이 흐른다. 시간은 멈췄는데 배우들은 어둠 속에 그대로 누워있다. 나는 잠시 공황상태에 빠진다. 이 심란한 5분. 이 불안한 5분. 그러나 수없이 많은 질문과 생각이 명멸(明滅) 했던 5분. 불과 5분이었지만 예술의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싶다. 밤을 새워가며 일주일 이상 읽어야 할 니체 전집을 단 5분 사이에 독파한 느낌이 든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나는 신진식의 작업에 매료되는 것이다.
신진식_윌리스 반 스톤_미디어 퍼포먼스_01:30:00_2010
그리고 몇 년 뒤 홍대 앞 소극장 시어터 제로에서 만난 작품은「윌리스 반 스톤」이란 제목을 붙이고 있었다. 미국의 젊은 시인의 이름이란다. 그 젊은 시인은 "번역 행위는 야훼가 파괴한 바벨탑을 쌓는 도전적 행위"라 했으며 바로 이 바벨탑의 논리로써 신체언어와 소리언어, 문자언어와 영상언어를 제시했다고 하던가? ● 어쨌든 대형화면에 영상이 투여된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뉴스 같다. 그러나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멘트를 자세히 들어보면 마치 요리 강습 프로 같다는 착각이 든다. "파와 마늘을 송송 썰어 끊는 물에 투하하면...거대한 버블제트에 의해 두부 잘리 듯 초계함 1척이 두 토막으로 폭파되고...국방부 발표에 의하면...간장 한 스푼에 고춧가루 반 스푼..." ● 그리고 화면엔 소파에 누워 노닥거리는 두 여자가 투영된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포스모던 시대의 해체주의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윌리스 반스톤의 바벨탑 논리를 펼쳐내는 것인가. 야훼가 파괴한 바벨탑을 진실에 이르는 길이라 상정해보자. 그리고 번역행위가 바벨탑을 다시 쌓는 도전적 행위라 했다면, '진실에 이르는 길을 다시 쌓는 도전적 행위'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혼란스럽지만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올리듯 신체언어와 소리언어, 문자언어, 영상언어가 총동원 된 것이 아닐까?
신진식_깃(과)발_프로젝션 맵핑, 미디어 퍼포먼스_01:30:00_2012
이처럼 현대적이며 묵시적인 그의 메시지들은 춘천마임축제를 만나 또 한 번 비상의 날개를 펴는 것 같다. 앞에 만났던 작품들이 극장이나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였다면, 춘천마임축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거대한 야외에서 100여명 가까운 행위자가 등장하는 거대한 작품으로 옮겨간다는 점이다. 벽면 전체를 덮는 초대형 영상, 3층 높이 계단 전체를 무대로 활용하는 등 거침없이 확장된다. ● 그리고 신진식 예술의 본 장르인 '비디오 아트'의 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실내공간에서 우리의 심장을 들뛰게 만들며, 생각하도록 괴롭히는 그의 작업이, 넓은 무대에서 더욱 확장되어 나가길 기대한다. 드넓은 하늘 아래 아우성처럼! 펄럭이는 깃발처럼! ■ 오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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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아展 "同床異夢" (0) | 2013.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