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 Encounter

백다임展 / PAIKDAIM / 白茶林 / painting 

 

2022_0503 ▶ 2022_0515 / 월요일 휴관

 

백다임_POND 2019_Meongmu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1cm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2021 뉴 디스코스

선정 작가-사이아트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B1

Tel. +82.(0)2.3141.8842

www.cyartspace.orgwww.42art.com

 

존재로서, 생명으로서 외부세계를 직면한다는 것에 대하여 백다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하드앳지(hard-edge)적인 요소와 표현적인 요소가 동시에 드러나 있는 미묘한 느낌의 추상회화를 선보이게 된다. 작가는 그의 작업노트에서 자신의 작업이 작가와 작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대립 및 부조화 등으로 인한 불안감이나 고립감과 같은 인간 내면의 정서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 는 작업은 여기서 벗어나 자기 내면의 자발적 생명력에 집중하는 과정이 되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작가 자신이 세계 와 관계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백다임_Encounter 202026_나무패널에 아크릴채색_46.5×46.5cm×4(46.5×186cm)_2020

그의 작업을 살펴보면 도형의 일부를 그려낸 것처럼 선명한 형태 로 표현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색이 번져 있거나 상호 침투하며 경계가 허물어진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섞여서 한 화면에 동시에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것에 대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그가 직관하게 된 것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아마도 자신의 작업이 그가 세계와 관계하는 과정과 유사한 현장이 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불명확하고 알 수 없는 외부 세계를 마주하는 것에 대해 작업을 해나가는 가운데 알아가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처럼 그의 작업 과정에서 특별히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라는 두 방향의 인식적 토대를 지속적으로 대비시켜 이로부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두 방향이 서로 분리된 것이라기 보다 는 상호 작용하는 관계로 보고 있기에 작업에서는 부분적으로 형상이 명료해지는 부분을 그려내기도 하고 다른 부분 에서는 형상적 요소가 와해되거나 소멸되는 가운데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흔적들만 남게 된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백다임_Encounter 21052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21
백다임_Encounter 21052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21
백다임_Encounter 21110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21
백다임_Encounter 21122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21

이러한 표현들은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존재적 위치 혹은 존재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읽혀지고 있는데 작가 는 그의 작업에서 경계가 있는 분명한 것과 경계가 허물어져 있는 부분이 혼성적으로 겹쳐져 있도록 함으로써 때로는 분명한 의식으로 명확히 바라볼 수 있지만 때로는 불분명해 보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매몰되는 느낌을 받 게 되는 자신의 정서적 상황을 이처럼 대비되기도 하고 모호해지기도 하는 이미지들과 그에 따른 표현 방식을 통해 좀 더 감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와 함께 작가는 이 두 가지 미묘한 다른 층위가 교차 되는 표현을 하는 가운데 두 개의 이질적인 평면이 마주치게 하고 그것들이 겹쳐져 만들어낸 예기치 않은 형상 및 색 채를 그대로 작업 속에 담아냄으로써 작업의 진행 과정에서 물질적 흔적으로 남겨진 시각적 상황들을 통해 작가는 자 신이 경험하게 되었던 것들을 작업 속에서 작가 스스로 직관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다임_Encounter 220308_Meongmul,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22
백다임_Encounter 20205_Meongmul,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20
백다임_Encounter 202016_ Meongmul,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164cm_2020
백다임_Pattern 14092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14
백다임_Garden2020_Meongmul,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53cm_2020

이와 같은 작가의 작업 방식과 태도를 보면 작가가 전시 주제로 제시한'직면'이라는 명제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세 계를 향했던 시선을 외부세계로 돌리게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시각적 상황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 던 져져 있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상황에 대해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인간이 마주하게 된 외부 세 계의 상황은 명확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에 이를 직면한다는 것은 불안 속에 머물러 있게 만들거나 깊은 고독 감에 빠져들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인간이 마주하게 된 세계에 대해 그리고 그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추상적 이미지들을 생산하는 것과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여러 프로세스를 수행해 나가는 가운데 작가 스스로 경험하게 된 것들을 전시장에서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작가가 경험하게 되었던 영역 에 대해 감각적 차원에서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 백다임 작가 는 외부세계로부터의 침투되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것들에 주목하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 작가는 이 내부에서 솟아나는 것들을 생명력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존재로서, 그리고 생명으로서 외부세계와 상호작 용한다는 것은 결국 몸으로부터 살아있다는 것의 힘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것이 세계 변화의 근거이자 토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작가는 그의 작업을 통해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이승훈

 

백다임_Pond 2019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5×53cm_2019
백다임_Encounter 2020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72cm_2020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이 떠밀려 가는 불안함 가득한 일상의 연속이다. 나는 매순간 많은 정보와 선정적인 자극, 이미지들에 둘러 쌓여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 잠시 외부로부터 위로나 기쁨을 얻으리라는 기대를 버리고 타인의 시선과 관심, 판단에서 벗어나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여 소소하고 단순한 기쁨과 재미를 찾아 어슬렁거려 보고 싶다. 간절히. 아스팔트 길바닥에 빗물이 흔적을 남겼다. 건조하고 무표정하던 길바닥이 빗물을 만나 생기로 반짝인다. 바닥에 잠시 고 인 빗물은 유연한 무늬를 만들어 내어 나의 눈길을 잡는다. 산들바람에 작은 물결까지 인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은 물웅덩이는 알 수 없는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잠시 머금고 있다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나의 작업은 내 안의 생명력, 자발적 활동성을 평면 위에 이식하여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화면을 구획하여 견고한 색 평면을 구축하고 그 평면 위에 자발적이며 즉흥적 움직임의 결과물인 물감 층을 올 려 놓는다. 바탕이 되는 색면은 무심하게 있다. 마치 시간의 흔적을 저장한 수많은 이야기가 스쳐간 도로나 길바 닥처럼 많은 자취를 품은 채 무심하게 있다. 그 바닥 위에 율동 하던 물감 층을 채취해 펼쳐 놓는다. 그리고 나 는 관찰자가 되어 색면과 물감층의 마주치는 과정을 지켜본다. 이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대립과 부조화 로 생기는 불안감과 고립감에서 벗어나 내 안의 자발적 생명력에 집중하는 과정이며 세계와 관계하는 방법이다.

 

백다임_Pond 2019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19
백다임_Encounter 2020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20

내 주변세계와 타인을 온전히 속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알려 할수록, 그래서 내 언어로 해석해 이해하려 할수록 낭패다. 그러나 내 자신이라면, 천천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무언가 드러나 보이고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신의 마음과 직면하고 타협하려 애써 볼만한 일이다. 깊숙이 응시하고 경험한다면 우선 나와의 소통을 가능하리라. '나'를 직면하고 부딪쳐 보는 것은 나와 마주한 세계와의 소통을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 백다임

 

 

Vol.20220503e | 백다임展 / PAIKDAIM / 白茶林 / painting

봄의 횡단


정상곤展 / CHUNGSANGGON / 鄭尙坤 / printmaking.painting
2020_0102 ▶︎ 2020_0122


정상곤_어두운 숲-Burnt carmine_캔버스에 유채_110×180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1110a | 정상곤展으로 갑니다.

정상곤 홈페이지_www.sanggonchung.com         블로그_blog.naver.com/cho36836


초대일시 / 2020_0104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 더플럭스

gallery the FLUX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2층

Tel. +82.(0)2.3663.7537

gallerytheflux.com


자연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관계로서의 회화 ● 정상곤 작가가 그려낸 자연 풍경들은 일견 익숙하게 보아왔던 자연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러나 시간을 갖고 감상을 하다 보면 이내 자연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뭔가 다른 것들이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회화를 진행해 가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상곤 작가의 작업에서는 자연 풍경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지워서 화면 안에 숨겨버리거나 반대로 마치 탐험을 하듯 숨겨진 것들을 파헤치며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가 자주 발견된다. 일상적 풍경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은폐와 발굴을 반복하는 것 같은 작가의 작업은 눈 앞에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에 머물기 쉬운 시선을 외적 형상이 감싸고 있어서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영역으로까지 시선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정상곤_어두운 숲과 검은 흙이 있는 곳_캔버스에 유채_200×300cm_2019

작가는 작업과 관련하여 "덤불 숲 풍경에는 애니미즘적 사고를 넘어서 이미 우리들의 넋과 영혼이 스며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언급은 작가의 시선이 어떠한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또한 자연의 숲 가운데에는 물리적 구조나 형태를 넘어 비가시적이거나 비물질적 영역들 역시 공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작가의 이러한 사유 방식은 단순히 애니미즘적 시각뿐만 아니라 만일 정신적 차원에서 세계를 보게 된다면 우리가 평소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영역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점들이 그대로 작업에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전체 화면을 명료하게 그려내기 보다는 곳에 따라 부분적으로 흐릿하게 하거나 형상이 드러나 보이는 곳 위에 여러 번의 붓질이 오가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 그 페인팅이 겹쳐지거나 중복되도록 하여 형상적 요소가 숨겨지거나 지워져 보이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붓질이 만들어낸 흔적이 하나의 형상처럼 보이도록 하여 오히려 숨겨져 있었던 것 같은 이미지들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일을 반복해 나간다.


정상곤_어두운 숲-Burnt carmine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19

정상곤 작가의 이 같은 작업 과정들은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려낸 풍경은 그래서 가시적인 현상을 그려낸 것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보게 된 현상적 풍경과 함께 그로부터 감지되는 어떤 기운이나 느낌들로부터 찾아내고 만들어낸 것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가시적 현상 너머의 부분들에 대한 감각을 열어 둔 가운데 회화라는 작업 행위를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감각의 축적물을 이미지로 구축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느낌들은 가시적 세계를 눈으로 감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의 작업에서는 명료한 무엇 보다는 붓질의 흔적을 통해 상당부분 흐릿하거나 모호하게 화면 위에 남겨둔 것들이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가 보았던 풍경 위에 덧칠하거나 지워내면서 무언가 그가 찾아가고자 했던 흔적들만을 단지 캔버스에 남겨두고자 하였을 것이다.


정상곤_봄의 횡단_캔버스에 유채_70×140cm_2019

그렇다면 작가가 그가 바라보게 된 풍경 속에서 찾고자 하였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과 관련하여 넋 혹은 영혼이라고 표현한 바 있지만 이는 비가시적 영역으로부터 감지되었던 것들에 대한 메타포일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가 그려낸 대상으로서의 풍경의 장소는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자연의 일부인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사용한 작품 명제들을 보더라도 영혼이나 넋을 직접적으로 지시할만한 단어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애니미즘이나 종교적 맥락과 같은 차원의 지시적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고자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보다는 계절에 대한 감각이나 시간성으로부터의 내적 성찰을 촉발시키는듯한 단어들을 선택한 것을 볼 때 작가는 아마도 인간의 존재론적 사유나 실존적 위치와 같은 인간 삶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부분들을 주시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정상곤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물질적 대상으로써 외적 형상만 바라보기보다는 그곳에 깃들여 있는 비가시적 세계, 즉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측면들이 있다고 보고 시선을 그곳으로 가져가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자연 풍경에도 이와 같은 부분들을 함축시켜 그려낸 작품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정상곤_나의 슬픔 프로젝트_종이에 오목판법_49.5×68cm_2019

그러므로 정상곤 작가의 작업은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재현한 회화라기 보다는 자연과 접하면서 그것과 관계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들을 회화 공간에 구축한 작가의 정신적이고 상상적인 이미지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재현적 회화'로부터 벗어나 한층 더 대상과의 관계에 의도적으로 몰입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관계적 회화'라고 지칭할 수 있는 회화의 한 경향성을 작업 가운데 구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전시를 작가가 '봄의 횡단'으로 지칭하면서 인간의 삶 혹은 우리 사회를 통시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자연 그리고 사회를 중층적으로 시각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이자 시각 방식이 회화라는 지점에서 교차되고 있는 작업의 실제적 예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곤 작가는 이처럼 시각의 중심축을 대상과 작가의 사이에서 관계적 위치에 의해 발생되는 상상적 공간에 두고 거기서 이미지를 발굴해내듯 찾아가는 가운데 그로부터 물질적 세계에서 정신적 영역을 획득하는 작업을 수행해왔던 것이다.


정상곤_나의 슬픔 프로젝트_종이에 오목판법_49.5×68cm_2019

작가는 햇볕 쏟아지는 봄날의 풍경으로부터 '봄의 횡단'을, 어두움이 깊어가는 숲에서 '검은 흙'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슬픔'을 찾아낸다. 그가 그려낸 것들은 자연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고, 삶의 어두움이기도 하며,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이기도 하다. 작가의 시선은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캔버스 위에 더 깊은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의 깊이를 연금술처럼 생성해낸다. 이러한 작업은 정상곤 작가의 회화가 일상적 풍경으로만 읽혀지지 않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누구나 그러하듯 자연 속 풍경을 바라보지만 그 대상들을 일상적 풍경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자신의 삶의 궤적과 시각적 관성이 있음을 말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물질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정신적 세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가시적 세계는 풍경이라는 대상 가운데 현현(顯現)할 수 있으며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작가는 그것을 캔버스와 화지 위에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자연 그리고 작가의 관계를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나 작가의 말을 직접 듣는 것보다도 더 깊은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교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상곤 작가의 회화는 이처럼 가시적 풍경 가운데 작가가 상상하고 있는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근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보게 되는 관계로서의 세계이자 풍경이라는 것은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음직한 미지의 공간들이지만 작가는 그것을 자신의 상상력으로써 가시화 시킬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구현될 수 있음을 그의 작업을 통해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 이승훈


정상곤_나의 슬픔 프로젝트_종이에 오목판법_49.5×68cm_2019

전시 제목 『봄의 횡단』은 '계절이 빠르게 봄을 횡단(橫斷)한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에서 가져온 말이다. 봄이라는 계절이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도로를 횡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질곡의 현대사와 얽혀 그만큼 절실하게 혹은 초연하게 슬픔을 견디어 내야하는 이들에게 4월은 그저 빨리 보내버리거나 망각하고 싶은 것을 의미할 수 있겠다. 유난히 붉거나 검은 흙에서 나온 풀들, 그리고 그 사이에 흩어진 작은 돌멩이 사이사이에 우리들의 살과 피가 먼지가 되어 스며있다. 이것들로 이루어진 덤불숲 풍경에는 애니미즘적 사고를 넘어서 이미 우리들의 넋과 영혼이 스며있는 것이다. ● 페인팅 「어두운 숲」 연작에서 사용한 Burnt carmine(붉은 색 천연색소로 연지벌레에서 짜낸 염료로 만든 양홍을 말함)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물질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빛을 잃은 숲의 풍경일지라도 그 어떤 밝음 자체를 포기 할 순 없기에 그림을 그리며 그 제단에 카민 색을 희생의 의미로 선택하여 올린 것이다. 밤 풍경 그림 위에 지우듯 덧그린 덤불 숲 제주 다랑쉬 풍경, 빛의 과다 혹은 밝은 녹색으로 그린 그 덤불 숲 사이사이에 붉은 색 카민으로 그린 밤 풍경이 흔적으로 남겨져 있다. ● 「나의 슬픔 프로젝트」는 지난 초여름에 진행했던 총 11명의 인터뷰 장면과 대화 내용으로 제작한 일련의 판화 작업에 붙인 제목이다. 일련의 판화의 왼쪽 화면에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생각하고 망설이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인물들의 모습들이 정지된 화면처럼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판화의 오른쪽 화면에는 좌우명과 같은 글들, 혹은 금방이라도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릴 것 같은 흐릿한 넋두리와 같은 문장들이 등장한다. 인터뷰 장면을 간추리고 그들이 말했던 내용들을 판에 새기고 찍고 지우고 다시 찍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흐릿하게 지워지고 사라지는 판화 이미지가 마치 랙이 걸려 멈춰 선 영상의 파편처럼 우리 시대의 상처와 상실감 혹은 시대적 슬픔을 담지하고 있는 타자가 된 나 자신(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2019.12) ■ 정상곤


Vol.20200102f | 정상곤展 / CHUNGSANGGON / 鄭尙坤 / printmaking.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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