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동안 인사동에 둥지 틀었던, 음유시인 송상욱 선생께서 전주로 떠나신다.
인사동 풍류와 낭만도, 정들었던 벗들도 하나 둘 사라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 누가 인사동을 지키며 선생의 빈 자리를 메워 줄 수 있을가?
부디, 가시더라도 건강이나 잘 챙기시고, 인사동을 향한 마음만은 변치마시길...






전남 고흥이 고향인 송상욱(79세)선생은 27년간 국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으나, 

시작에 전념하려 갈현동의 선정고등학교를 명퇴한 후, 98년도에 인사동에 입성하였다.

인사동에 셋방 하나 얻어 작업실로 쓰며, 그동안 ‘백지의 늪’, ‘무무놀량’, ‘광대’ 등 일곱 권의 시집을 펴냈고,

1인 무크지인 ‘송상욱 시(詩)지’ ‘멧돌’을 꾸준히 펴내어, 시 나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인사동 골목골목을 풍미하는 등, 돈 안 되는 일만 골라 해온 것이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창예헌’과 산삼 심는 모임인 ‘농심마니’ 맴버로 어울리며,

인사동에서 열리는 만찬이나 연회 때마다 그 만의 노래로 향수를 불러 일으킨 분이었다.

진주기생 산홍이를 애절하게 그리는 ‘세세연연’이나 요절한 누이를 그리는 시 ‘부용산’ 노래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밤새도록 이어지는 가요반세기의 메들리도 이제 끝나버렸다.






송선생은 45년 전, 아내가 가출한 이후 오래 동안 독신으로 지내다 10년 전 지금의 아내 김미옥(57세)씨를 만났다.

당시 ‘툇마루’가는 골목 초입에 있던 ‘아라가야’라는 이름의 전통의상가게에 우연이 함께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지금의 아내와 눈이 맞았다고 한다.

18세 연하의 꽃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될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인사동이 선생께 드린 선물 아닌 선녀였다.






이번에 연고도 없는 전주로 갑자기 이사하게 된 것도 아내의 뜻을 따른 것 같았다.

아내의 고향은 공주지만, 전주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무용을 배우는 등, 추억이 많은 곳이라는 이유였다.

감히, 꽃 따라 나비 가는 이치를 어찌 거역할 수 있으리오.






송상욱 선생을 떠나보내는 송별 만찬이 지난 10일 오후7시 인사동 ‘툇마루’에서 있었다.

송상욱선생을 비롯하여 김명성, 박인식, 송성묵, 정채은, 김각환, 김시인, 강성몽, 서길헌씨 등 열 명이 모인 조촐한 자리였지만,

새벽 두시까지 자리를 옮겨가며, 술과 노래로 아쉬움을 달랬다.

‘툇마루’에서 송성묵씨 작업실로, ‘로마네꽁티’에서 이름도 모르는 주막에 이르기까지 엄청 퍼 마셔댔다.

그 날 선생께서 목이터져라 부르는 ‘비나리는 호남선’이 술취한 이들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진 , 글 / 조문호
















































 

인사동의 음유시인


도서출판 맷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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