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부암동 작업실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는 안애경씨 연락이 왔다.

지난 금요일 오후 무렵 정동지를 앞세워 부암동을 방문했는데, 공간의 대변신을 만난 것이다.

 

습기가 차 비어있는 반 지하 공간을 빌려 철거 공사 할 때 보았는데,

그 때가 엊그제 같건만 벌써 3년의 세월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세월은 말없이 저만큼 가버렸는데, 난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뜯어낸 벽돌 부스러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산더미 처럼 쌓아놓았는데,

그 사이 멋진 생활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핀란드를 오갈 때마다 코로나 격리되는 시간에 조금씩 작업을 했다는데,

작업이라기보다 놀이처럼 즐긴 것 같았다.

 

벽에 붙은 갖가지 타일도 을지로 타일가게에 버려진 자재를 주워 모아 재활용한 것이었다.

그는 예술가며 실천하는 환경운동가다. 자기가 사용할 컵은 광주리에 담아 다닐 정도로...

 

얼마 전 오산에 어린이 놀이 공간 '나무처럼'을 완성했다는 소식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예상은 했지만 상상 밖이었다.

만든 사람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자기가 즐길 공간을 만든 것 같았다.

한 가지 이해 되지 않았던 것은, 관급공사에서 예술감독이 할 수 있는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하기야! 필란드 있는 작가를 오산시장이 직접 만나 부탁한 일인지라 재량권이야 주었겠지만,

잘 못된 관습과 관행을 바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안감독은 모든 걸 하나하나 설득하여 바꾸어 놓았다.

장애물에 불과한 현장소장이란 직책 자체를 없애 버리고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담당공무원부터 설득시켜 기존의 가치를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하청에 하청이 따라 붙으며 부풀려지는 견적구조도, 인부들이 자재를 아끼지 않는 관습도 모조리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필요한 재활용 자재가 관급공사 자재를 조달하는 조달청에 있겠는가?

 

놀이공간을 완성한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곳을 운영할 직원들의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안전과 질서만 강조하는 기존의 보육시스템으로는 어린이들의 창의적 활동에 장애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보라 시키지 말고 그냥 노는 걸 지켜보라"는 말을 학부모들은 알아 듣지만,

단체로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교사들의 관습은 바꿀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시종일관 안전과 질서만 앵무새처럼 외우며 어린이를 길들이기에 혈안이란다.

 

커피 한 잔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인근 주민들에게도 미운털이 박힌 것 같았다.

보육타운 마당에 차를 들이지 못하게 한 것 때문인지 사사건건 시비란다.

얼마 전에는 놀이마당 뒤에 잡초가 많다는 민원을 제기해 청소과에서 나와 풀을 베어버린 적도 있었단다.

그들에게 화초로 구분되지 않은 것은 모두 잡초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정선 만지산 화재현장에 집 지을 일도 물어왔다.

아직까지 옆집과 합의가 되지 않아 당분간 보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바로 결론을 내렸다.

화해하여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 또한 소유욕일 수도 있겠다.

'동강사람들 자료관 만드는 일이나 멋진 예술창고 만들어 예술가들 불러 모으려는 생각 자체가...

 

다소 불편해도 도움 준 분들이 호젓한 시간을 즐기며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작지만 예술과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오붓한 공간.

 

생활에서 찾아 만들어가는 안감독 디자인이 인생 디자인으로 승화하는 지점이다.

그동안 게 거품 물었던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헛소리였단 말인가?

인간관계 하나 조율할 줄 모르면서 무슨 사람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마침 건물주인 아주머니가 지나치다 모처럼의 인기척에 들어오셨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에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졌다.

집을 빌려 준 사람이나 빌린 사람이나 마음만 맞으면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안애경씨 따라 전망 좋은 식당에 들어가 콩국수를 먹었는데, 소금도 넣지 않고 허겁지급 먹어버렸다.

요즘 사람들은 소금을 싫어해 싱겁게 먹어야 하는 줄만 알았는데, 옆에 준비해 둔 소금도 몰랐다.

늙어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딱 맞다. 

 

사진, / 조문호

 

 

친환경적인 작업으로 주목받는 안애경 예술감독을 만나러 오산 놀이공간 '나무처럼' 작업장을 찾았다.

 

 

 

오랫동안 핀란드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북유럽과 한국 문화를 접목해 온 그로서는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았는데, 몇 달 전 오산에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차일피일 미루다 가보지 못했다.

 

 

 

마침 정선 집에 불난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와, 13일 정오 무렵 정동지와 찾아가기로 약속한 것이다. 갑자기 서둔 것은 만들어 놓은 놀이공간도 궁금했지만, 정선에 집을 지으려면 환경친화적으로 작업해 온 안감독의 자문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안감독을 지켜본 바로는 예술이 별난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이었다. 무슨 일이던 그 대상에 푹 빠져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그 대상에 대한 친화력이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을 숱하게 보여주었다. 어린이 공간을 만들 때는 어린이가 되어 동화되었고, 자연의 공간은 원초적 미로 되돌렸다.

 

 

 

오후2시 무렵 ‘오산 보육 타운’에 도착해 마당에 차를 주차하니, 안감독이 달려 나와 다른 곳에 주차하란다.  바닥에 주차 구역이 그려져 있어 괜찮은 줄 알았으나, 안애경씨가 주차를 못하도록 바꾼 것 같았다.

 

 

 

 

아예 바닥에 그려진 선은 지우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워진다는 논리다. 인위적인 것이나 관습적인 것을 싫어하는 안 감독의 진면목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산보육타운’이란 간판과 빛바랜 건물외벽을 보며, 역시 안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공사를 하면 외부부터 치장하여 돋보이게 하는데, 그는 가식적인 면보다 실리적인 면에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정문을 들어가는 계단과 바닥에 모자이크된 오밀조밀한 바닥재들이 어린이들의 소꿉놀이터 처럼 정겹게 깔려 있었다.

 

 

 

본관에 들어가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답답하게 막아 둔 천장을 뜯어내어 앙상한 골재와 배관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막힌 벽에 유리를 넣어 자연 풍경을 그대로 보이게 만들었다. 가리고 숨기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관습을 깨는 그만의 장점이다.

 

 

 

오로지 역랑을 집중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놀며 창의력을 일깨우는데 있었다.

 

 

 

여지 것 '서서울호수공원'에서 열린 ‘어린이 아트 캠프’나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늘 푸른 예술로 공원 워크숍' 등을 통해 생각이 깨어 있음을 잘 알지만, 어린이 놀이터를 개선하거나 폐목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등 본보기가 될만한 좋은 작업을 많이 보여주었다.

 

 

 

오래 전에는 월드컵공원의 폐목으로 낙엽 함을 만드는 작업도 했다.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자연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하고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그가 작업하는 방식인데, 미술과 디자인은 우리일상에 뭔가 써먹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활철학이다.

 

 

 

 

일반적인 실내장식이라면 설계도면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하겠지만, 안애경씨가 맡은 이상 대충 넘어가는 것은 통하지 않았다.

 

 

 

매번 일 할 때마다 부딪히는 점이 공무원들의 틀에 박힌 관념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이 공사 역시 현장소장으로 파견된 분과의 이견이 장애가 되어 현장 소장직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만들어야 하니 공사기일이 길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만 한 눈 팔면 일률적으로 마감되고, 기존 방식으로 처리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인부들을 관리하는 감독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근길의 정체를 피해 새벽부터 출근하였으니, 현장에서 살았던 거나 마찬가지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집에 있는 식기를 비롯한 일용품까지 현장에 옮겨 놓았더라.

 

 

 

꾸며진 어린이 놀이 공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흥미로운 것이 너무 많아 욕심까지 생겼다. 손녀 하랑이가 이 어린이집에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꼰대의 이기심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하나 놓인 소품들도 예쁘고 흥미롭지만, 창의적인 공간들이 너무 많아 앞으로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이 줄을 이을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직접 종이로 동물 형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그림자놀이도 재미있지만, 손 씻는 수도꼭지까지 청개구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감독은 공간을 만드는데 끝나지 않았다. 그 곳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당분간 눌러 앉았다고 한다.

 

 

 

 

안애경 감독은 일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몇 년 전에는 방바닥에 오래 앉아 허리를 다쳤다는 페북 소식을 접하고 핀란드 목공예가 헬레나와 미디어작가 유하, 소피아 등 세 사람을 데리고 쪽방을 찾아와 침대를 만들어 주고 책상까지 들여 준적도 있었다. 자재를 챙겨 와 공간에 짜 맞추어 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필요하면 무슨 일이던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심성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야기 중에 정선 집 문제도 나왔는데, 직접 현장을 보지 않고 거론 할 사정은 아니었다. 불난 현장이 정리되고 작업이 시작되면 자문해 주겠지만, 가급적 현장에 있는 자연적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다. 불 탄 쇠토막까지 적절하게 활용하여 지난한 세월을 알아 볼 수 있도록 만들 작정을 했다.

 

 

 

다른 미팅 약속이 잡혀 손님들이 찾아와 먼저 일어났는데,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만들어 둔 복숭아 통조림을 챙겨주었다.

 

 

 

돌아오는 내내 집 지을 생각에 빠졌었는데, 하루에도 집을 몇 채나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내 평생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지어보는 집인데, 제대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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