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 시력 60년 맞아 ‘시 전집’ 펴내




“자네의 눈에 시의 빛이 내비치고 있네. 쉬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시게.” 미당 서정주는 그가 추천해 ‘현대문학’에 시를 실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온 청년 민영(사진)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날로부터 60년이 흘렀고 청년은 83세 노인이 되었다. 시력(詩歷) 60년을 계기로 그는 그동안 펴낸 시집 9권에 수록된 시 409편에다 최근작 10편을 모아 ‘민영 시 전집’(창비)을 펴냈다. 이산의 그리움을 담은 절창 ‘엉겅퀴꽃’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단아하고 깊은 서정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한곳에 모인 셈이다.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 잃고/ 홀로 사는 엉겅퀴야// 갈퀴손에 호미잡고/ 머리 위에 수건 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님의 이름// 엉겅퀴야 엉겅퀴야”(‘엉겅퀴꽃’)



그가 1980년대 후반 신경림 시인에 이어 회장을 맡기도 했던 ‘민요연구회’에서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재야 노래패들이 자주 부르곤 했다. 이 시에 거론된 철원은 그의 고향인데,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했고 다시 광복과 전쟁을 거치면서 부산과 서울로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았다. 고향은 있지만 떠돌이의 숙명을 면치 못했기에 그의 시편들에는 늘 어딘가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는 편이다. 두 번째 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용인 지나는 길에’ 시인은 “저 산벚꽃 핀 등성이에/ 지친 몸을 쉴까./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고개 젓는다”면서 “소태같이 쓴 입술에/ 풀잎 씹힌다”고 썼다. 한편으로는 “슬픔으로 얼룩진” 역사를 선명하게 음각하기도 했다.

“흘러가거라 등불이여,/ 밤이 지배하는 강물을 헤치고/ 저 끝없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흘러가거라 돛단배여,/ 슬픔으로 얼룩진 역사를 등에 싣고”(‘유등流燈’) 그는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최근 시편 ‘바람 부는 날 영등포 역전에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으나/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대책 없이 째깍꺼리는 시계탑을 쳐다보니// 부끄러워지는구나, 밥 한끼/ 담요 한 장 되어주지 못하는/ 詩를 쓴다는 것이!”라고 짐짓 자탄하지만, “전쟁 때문에 배우지도 못하고 오직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쓴 글이기에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면서 “독자 여러분이 차분하게 읽어주기만을 바란다”고 ‘시인의 말’에 썼다. 



[스크랩] 세계일보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엉겅퀴 꽃'의 원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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