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작가를 돕는다는 쓴 맛이 사는 맛이란 전시가 아직까지 완결되지 않고 있다. 

그 문제점과 분명한 결산을 요구했다가,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


전시를 추진했던 자가 나더러 무고죄로 고소한다지만, 법으로 따지자면 무고죄가 아니라 사기죄나 횡령죄에 속한다.

내용중 신학철선생의 작품 값 전달 유무는 내가 파악할 때는 지급되지 않았지만, 그 후 지급되었다기에 그 부분은 삭제했다.

그리고 채현국선생의 실명은 대표하는 분이라 밝혔지만, 진행자의 실명은 거명하지 않았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스스로 댓글 달며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사방에 얼마나 쑤셔대며 내 욕을해댔는지, 주변 분들의 전화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나더러 사과하라는데, 뭘 사과하라는지 모르겠다. 결산을 밝히라는 것이 어디 사과할 문제냐?

개인적인 일로서, 자기 먹고 사는 밥그릇 걷어 찬 문제라면 백 번 사과한다.


간접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로는, 90년대 공덕동 채현국선생의 풍림오피스텔에서 신세져 놓고,

어떻게 감히 선생의 일에 딴지를 거냐는 이야기에서부터,

대마초를 문제 삼아 잡아넣으라는 등 별 치졸한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다.

아무리 채선생에게 신세졌다 해도 잘 못을 말씀드리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더 나쁘다.

 

그 풍림오피스텔건은 내가 부탁한 것이 아니라 채선생님께서 비어 있으니 사용하라 해서 들어 간 것이다.

그렇지만, 임대료와 관리비까지 다 부담해야 했으니, 가난한 사진가로서 힘들었다.

옥탑방이긴 하지만, 일과 관련 있는 인사동과 충무로의 사무실이 더 편했고,

관리비까지 내야하는 임대료에 허덕이다, 결국 빚만 지고 나온 셈이다.


솔직히, 인사동에서 공 술 얻어 마신 죄는 숱하다.

그리고 가끔 술집에서 지폐 한 장씩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난 그 것도 좋지 않게 생각한다.

기분 좋아 선심 쓰는 것은 좋지만, 사람을 길들이는 나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난리 치는 친구도 그렇게 망가진 사람아니던가? 도와주려면 보이지 않게 확실히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마초문제는 인터넷이나 언론에 공개적으로 합법화를 요구하는 일이라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잘 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 할 문제이니, 문제삼아 주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그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인터넷에 사진가 조문호의 대마초흡연에 대한 진술과 소견이란 글을 찾아보면 알 수 있고,

신문에 대마초 합법화 과연 남의 일인가?’란 칼럼까지 쓰가며 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친구 정말 사람 잘 못보았네. 두리뭉실 웃고 넘어가는 옛날의 조문호가 아니라, 무서운 것이 없는 막가파다.

이제 모든 걸 버렸으니, 죽기 밖에 더 하겠는가?

옛 날에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란 생각에 잘 못된 일을 눈감은 적이 많았으나, 나이가 들어가며 엄청 후회하고 있다.

그런 사고방식이 누적되어 온 나라가 더럽게 되지 않았는가?

누구나 정의롭게 살고 싶은 생각은 다 있겠지만, 가족이 걸려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난, 남에게 까칠하게 보이더라도 할 말은 하고 잘 못된 것은 바로 잡는 싸움꾼을 자처했다.

착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에 더 분개하지만, 갑질 하는 사람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행여 마누라에 불똥 튈까 염려되어 이혼까지 해가며, 작정하고 빈민촌에 들어 간 사람이다.

잘 못된 일을 알게 되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그냥 두지 않았으니, 그동안 적도 많이 만들었다.

내가 사는 동자동은 물론 인사동의 예술판이나 사진판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잘 안다.

그렇지만 잘 못된 관행이나 위선적 이기주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문화예술계의 한 병페이기도 한, 자선을 간판으로 내 건 이런 형태의 일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관행처럼 대충 넘어가는 일도 막아야 한다.

더구나 나는 이 전시의 참여 작가로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할 권리도 있다.

나 뿐만 아니다. 이 전시에 함께 한 작가가 70명이고, 뜻을 같이 하거나 후원하신 분은 헤아릴 수가 없다.

최소한 관련된 분들께는 투명한 결과를 보여 주어야한다.

현재까지의 정산 결과를 전시와 관계된 모든 분들께 통보해라.

 

이 전시를 집행한 당사자도 채현국선생을 더 이상 난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결국 돈이 걸리는 문제지만,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먼저, 도록 제작비와 대관료, 뒤풀이 비용 등 제반 경비가 얼마인지부터 밝히고,

그 다음에 팔렸다는 12점의 판매가와 기부한 차액을 밝혀내라.

그리고 전시를 후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돈 봉투도 낱낱이 기록하라.

채선생을 위해 내 놓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가난한 작가들을 위한 자선전이라

개인 주머니에 들어가서는 않되고, 조그만 금액이라도 근거를 남겨야 한다.

 

그리고 작품이 팔리지 않은 8명의 작가에게 1,450만원을 나누어 주었다고 하지만, 납득이 안 간다,

많게는 430만원에서부터 적게는 50만원을 주었다는데, 무슨 기준인지도 모르지만,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이런 권한을 어떻게 심부름꾼이 휘두를 수 있는가?

추측컨대, 오래전 작품 값을 갚지 않아, 그 빚을 갚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 돈을 돌려 달라 할 수도 없는데다, 남은 돈은 쓰 버리고 없을테니 막막할 것이다.


그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다, 나쁜 친구가 아니니 더 이상 어쩌랴!

차라리 그동안 고생한 수고비를 요구하라.

수입과 지출만 분명하게 밝혀놓으면, 그 다음은 채선생께서 결정할 일이다. 혼을 내던, 용서해 주던...

그리고 가난한 작가를 돕는 이 전시 결과에 대해 채선생님의 분명한 말씀도 있어야 한다.


글 . 조문호


 

 





셋째 수요일이면 인사동 사람들이 만나 술 한 잔 마시는 날이 아니던가?


지난 17일은 힘들어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따라 카메라가 없어 사진조차 찍을 수 없었으니,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미술관’에서 열리는 6남매 초대전에는 들려야 했다.

미국 사는 최정자 시인께서 가보라는 전시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찾아 간 시간은 오후5시 무렵이었다.
도착 직전 정영신씨 한테 전화가 걸려왔는데,
오후4시에 오프닝 행사를 끝냈으니, ‘툇마루’로 오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툇마루' 된장비빔밥 생각에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뒤풀이 장소가 아니라, 정영신과 공윤희씨만 있었다.
그 전시는 뒤풀이가 없어 일찍 끝 났다는 것이다.
전시작품은 물론 이씨 6남매의 얼굴도 보지 못했으나, 어쩌랴!

된장비빔밥 한 그릇 맛있게 먹고 나오니,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종률씨가 들어왔다.
반가웠으나, 사진을 못 찍으니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무장해제되어 버리니, 몸도 마음도 편치않았다.


‘유목민’으로 가다 길거리에서 임영주선생과 화가 최대식 내외도 만났으나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우연히 '쓴 맛이 사는 맛' 참여작가를 만났는데, 전시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유목민’에서는 유진오, 김대웅, 전활철, 박혜영, 임태종, 최종선, 이인섭, 이희종씨 등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 날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도 두 달 전에 치룬 ‘쓴 맛이 사는 맛’ 전시 이야기였다.
난, 일찍부터 들은 게 많아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그게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상 이 전시는 채현국선생께서 평생 쌓아 온 덕에 똥칠하는 전시였다.
그 밑에서 꼬봉 노릇하는 이들의 알랑방구로 선생님의 눈을 어둡게 만든 것이다.

최근 채선생님 답지 않은 모습에 가끔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연세가 드시면 판단이 흐릴 수도 있다.

그럴 땐, 모시는 사람들이 바로잡아 드려야 하는데, 비위나 살살 마추며 부추긴다.


원인은 언론 병폐에 휘말린 것이지만, 요즘 채 선생님께서 힘든신 것 같다.






이번 전시 자체가 채선생님 얼굴 팔아 개인적 욕심을 채우려는 나쁜 발상의 기획이었다.
채현국선생께서 복막염수술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잘 아는 작가들을 끌어 모아 인사동에서 전시 한 번 열자며 부추긴 것이다.
그래서 급조된 전시가 ‘쓴맛이 사는 맛’이란 전시인데, 오로지 개인적 장사 셈으로 진행된 것이다.


신학철, 황재형, 이우환, 방혜자, 이제하, 임창열, 구중서, 주재환, 김정헌, 민정기씨 등

화단의 내노라 하는 70여명의 작품을 끌어 모아 우스꽝스러운 전시를 마련한 것이다.
전시를 추진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채선생님께서 전시를 밀어 부쳤는데,

가난한 작가들을 돕는다는 처음의 취지와는 딴 판이었다.





한 예로, 신학철선생의 작품은 팔았으나, 벌써 모 옥션 경매에 배값으로 작품이 나왔단다.
낌새 챈 화가들이, 전시자체의 불만을 뒤늦게 쏟아 놓으며, 작품을 돌려받기 위해 안달이다.
오죽하면 황재형씨는 자기의 작품은 아예 팔지 않을 것이라며 작품을 돌려달라고 했겠는가?


뒤늦게 채현국선생께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 결산 할 것을 요구했다지만, 이미 늦었다.

잘 아는 박인식, 김명성씨께도 마무리를 도와달라 부탁했으나, 모두들 손을 내저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공윤희씨가 이 문제를 떠 맡았는데, 누구의 작품이 얼마에 팔렸으며

그 돈의 사용처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목록을 요구했으나, 엉뚱한 소리만 한단다.


그동안 받은 돈으로 중형 승용차 랜트하여, 온갖 똥 폼 다잡으며 흥청망청 쓰고 다닌 소문도 자자하다.

더 웃기는 것은 사진을 우습게 여겨 그림 한 점 사면 보너스로 끼어 준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에게 당한 적이 한 번 있다.

내 사진 다섯 점을 가져갔으나, 10년이 되도록 3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

당시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의 초대전으로 산을 지우다란 전시를 했는데,

전시가 끝난 후 팔아 주겠다며 가져간 작품이 다섯 점이다.

그 때 통인에서 판매한 가격은 한 점에 평균200만원이었다.


그런데, 인사동 식당이나 술집 벽에 걸린 내 사진을 두 점이나 보았으나,

그 사진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가 사는 방식을 일찍부터 알기에,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40여년지기의 동생처럼 지내 온 사이다.

젊은 시절부터 인사동에 나와 천상병시인을 비롯하여 채현국, 이계익선생 등

어르신들을 보살피며 받는 작은 용돈으로 어렵게 살아왔다,

돈이 없어 물질적으로 도와주질 못할망정, 마음은 늘 형편이 좀 풀리기를 바랬기에,

주위에서 그를 탓하면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쩌겠냐?’며 인간적인 이해를 설득했다.

사실 장난을 쳐도 큰 장난도 못 친다. 소소한 돈거래로 욕을 먹기에 안스러운 측면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둘 수 없다.

존경 받는 채현국선생께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더구나 평생을 가난하게 살며 소신 것 작업하는 인사동의 가난한 예술가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친분으로 덮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을 그냥 두면 바로 사기꾼 된다.

    

우선 ‘쓴 맛이 사는 맛의 전시결산부터 빠른 시일내에 밝혀내라.

한 사람이라도 피해를 입혔거나 횡령을 덮으려 한다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빠른 해결과 원만한 수습을 바란다.

 


[사진은 '쓴 맛이 사는 맛' 전시가 열린 11월 15일에 찍은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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