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부산 친구 신윤택씨의 막내아들 정환군이 장가간다는 소식을
창원의 김의권씨로부터 전해 들었다.
결혼식 있는 토요일엔 일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설였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가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랴부랴 예식장이 있는 울산으로 가기위해 서둘러야 했다.

 

 

 

, 다양한 층의 친구들이 있지만, 부산이나 마산, 울산 등 경상도 사는 친구들은

대부분 청춘시절에 만난 친구들이라 남다른 추억을 갖고 있다.

히피문화에 빠져 있을 때로, 속된 말로 분류하면 화류계 친구들이다.

좋게 말하면 한량이요, 안 좋게 말하면 난봉꾼 시절이었다.

다들 음악과 관련된 유흥업을 하던 친구들이라 화류계로 분류하는데,

음악과 사랑에 빠져 보낸 청춘시절, 아니 순정시절이었다.

 

 

    

아들 장가보내는 신윤택씨를 비롯하여 황성건, 김의권, 조진현씨 등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린 정남규, 홍수진씨는 만날 수 없지만...

 

 

 

이들은 40여 년 전부터 어울린 친구들로,

하단에 있던 에덴공원 난향음악실에서 남포동으로 옮겨 국악주점 한마당을 할 때다,

신윤택씨는 서면 우드스탁을 거쳐 남포동에서 고전음악을 들려주는 전원다방 운영할 무렵 만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사진가 최민식 선생께서 자갈치시장에 나오시면,

낮에는 전원다방에서 죽치다 어두워지면 한마당에 들리셨는데,

그 때 선물한 인간사진집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꿀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황성건씨는 하수진이란 가명으로 홍수진씨와 함께 음악실 디스크 자키로 떠돌았다.

둘 다 그림에도 재질이 많아 판돌이 주제에 화판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는데, 음악실이나 여러 곳의 실내장식을 맡기도 했다.

밥 딜런이나 지미 핸드릭스 등 뮤지션들의 연주 장면을 극장 간판처럼 크게 그리기도 한 재주꾼들이다.

긴 머리를 출렁이며 목이 긴 부츠를 신고 다니던 그 당시 모습들을 떠 올리면 웃음이 절로난다.

 

 

 

그 뒤 김의권씨는 마산으로 옮겨 수림음악실을 운영했는데,

부마민주항쟁’에 휩쓸려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그 당시의 수많은 일화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이십년전 찍은 고인 홍수진씨의 모습

 

홍수진씨는 울산 엠비시 디스크 자키로 시작하여 편성부장까지 맡았으나, 안타깝게 위암에 걸려버렸다.

자칭 공인이라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신 죄였다.

음악과 문학 그림 등 다방면에 재능이 있던 친구지만,

슬픔은 영원히 잠들지 않는다는 시집을 남기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진양호 까타리나에서 시작된 황성근씨의 화류계 인생은 신촌의 장미 빛 인생으로 이어졌다.

말년에는 울산대 앞에서 유혹이란 카페로 유혹하다, 결국 문 닫고 말았다.

 

 

 

다들 유흥업에 종사한 셈인데, '해태제과'에서 일한 조진현씨도

동래 온천장에서 호텔을 운영한 적이 있으니, 유흥업 친구에 끼어도 뒷말은 없을 듯 하다.

 

 


  

신윤택씨는 일종의 흥행사 기질을 갖고 있었다.

개성 있는 업소를 만들어 손님이 넘쳐날 때 프리미엄 붙여 팔아넘겼으니까...

그렇지만 그나 나나 상호 잘 못 붙인 죄로 부정 타, 망한 케이스다.

나는 서면에서 이별의 부산정거장하다 망하여 서울로 도주했지만,

그는 초량에 문을 연 크라이막스로 망했다. 절정에 오르면 그 다음은 끝이 아니던가?

 

 

고인 정남규씨의 6년전 모습

 

지금은 떠나고 없는 정남규씨가 그 중 가장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부산 서면을 관활로 둔 부전동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공무원이 음악을 좋아하는 히피니즘에 빠진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 친구에게 부탁하면 세상 어떤 일도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불치의 병에 걸리며,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스스로 목 매달아 죽었다.

 

 

 

그런데, 정환군 결혼식 이야기는 간데없고, 친구들 이야기로 입이 말라버렸네.

 

 

    

정환군 결혼식에 갈 것을 뒤 늦게 작심하는 바람에 열차 좌석을 얻지 못해, 차를 끌고 가야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지랄같은 습관이 하나 있다.

이튿날 새벽에 먼 길을 떠나게 되면, 그 전날 밤은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소풍가기 전 날, 잠 못 이루는 애들처럼 말이다.

 

 

 

전 날 밤늦게 신학철선생 상가에 다녀 와서, 부고를 올리고 자정 무렵 자리에 들었는데,

한 시간이라도 눈 좀 붙이려고 몸부림쳤으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섯 시간 넘게 이불을 뒤척이며 온갖 잡 생각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꼬박 밤을 지새고 여섯시에 일어나 울산으로 출발한 것이다.

 

 

결혼식이 열두시라 여유롭게 출발했는데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달렸지만, 울산 톨게이트에 들어서니, 결혼이 시작될 열두시였다.

장장 여섯시간을 고속도로에서 시달린 셈이다.

 

 

차주인 정영신씨가 같이 가지 않았으니, 길 안내 할 핸드폰이 없어 더 곤욕스러웠다.

고속도로야 장님도 찾아 갈 수 있겠지만 울산시내로 접어드니,

서울 올라 온 시골영감이 김서방 집 찾는 격이었다.

차에서 내려 '목화예식장'을 물어보았으나 이리가라 저리가라 끌려만 다니다,

결국은 택시를 앞세우고 와야했다.

 

 

 허겁지겁 들어가니, 이미 결혼식은 끝나고 친구들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날 신윤택씨 아들 정환군을 처음 보았는데, 땅잘막한  애비와는 달리 키가 훨신한 게 잘 생겼더라

예쁜 며느리도 야무지게 생겨, 잘 살것 같았다.

너무 서둘러 오느라 축의금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지만, 뒷날 시간나면 신방 꾸밀 사진 한 장 보낼 작정이다.

 

 

    

정장 차림의 신윤택씨 행색은 마치 꾸어다 놓은 보리쌀자루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눈을 깜짝거리며 생글거리는 특유의 표정을 보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정신없이 예식장에 뛰어 든 터라, 입구에서 눈인사만 주고받은 친구들을 다시 찾았다.

인사동을 자주 들락거리던 창원의 김의권씨는 본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마 전 이종호씨 상가에서 볼 때처럼, 손만 대면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이었다.

그만의 캐릭터는 여전하지만, ‘힘 빠진 안마사 같다고 한 나의 말이 결코 어거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옛날부터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자가 바로 조진현씨가 아니던가?

반가워하는 조진현 내외와 건장한 아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호탕한 그의 웃음과 환한 표정에 온갖 시름이 달아났다

 

 

 

 

본지가 십년은 족히 된 것 같은 황성근씨도 여전했다.

요즘은 아파트 경비실을 직장으로, 남는 시간을 한시에 푹 빠져 산단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가며 재미있게 사는 모양인데,

설마 예전처럼 사슴처럼 슬픈 눈빛으로 여인의 마음을 홀리는 그런 일은 없겠지...

 

 

 

죽은 홍수진씨를 대신하여 미망인 최정순 여사도 만났고,

음향시설에 일가견이 있는 김화식씨도 오랜만에 만났다.

예식장 뷔페 음식만도 충분했지만, 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신윤택, 김의권, 황성근씨 등 다섯 명이 최여사 따라 나선 곳은 한탄강이라는 중태기 매운탕 집이었다.

첫 번째 술자리에서도 신윤택씨가 이야기를 끌어갔지만, 이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지만, 술자리를 맛지게 하는 재미가 있다.

손으로 가려가며 옆 사람이 들릴 정도의 귀엣말을 소곤거리는 그 유치찬란한 구라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행여 이야기 중에 누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잊어버릴 만큼

분명한 주제도 없고 이야기의 연결성도 없지만, 심각하게 구라를 푸는 것이 특징이고 재미다.

때로는 비참하다는 말을 참비하다고 돌리는 등 잘 새겨들어야 안다.

, 귀가 어두워 그가 하는 귀엣말 외는 대충 감으로 짐작하지만. 보기 만해도 유쾌한 친구다.

 

 

 

여지 것 차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했으나, 이차에서는 술이 땡기기 시작했다.

파리약 병처럼 생긴 진로 두꺼비를 몇 병이나 깠는지, 슬슬 맛이 갔다.

틀니를 빼어 낄낄거리지를 않나, 얼굴 간지러운 이야기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오죽하면 술자리에 여러 차례 어울린 적 있는 정영신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제발 아는 채 하지마라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퇴박을 주었을 최여사도 세상을 달관한 듯 아무 소리 없었다.

 

 

 

술자리 말은 양반처럼 고상한 것 보다 쌍놈처럼 저질스러워야 재밋다며 우겼다.

그 날은 말을 잘하지 않는 황성건씨도 파안대소 하는가하면, 농담도 곧 잘 했다.

 

 

 

최여사와 황성건씨만 보내고, 셋이서 여관방을 찾아들었는데, 술이 취해 방을 잘 못 잡은 것 같았다.

, 피로가 몰려와 정신없이 쓰러져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신윤택씨는 누울 자리가 없어 의자에 꼬꾸라져 있었다.

 

 

 

다들 늦게 일어나, 속 푼다며 정관까지 밥 먹으러 가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지극정성이었다.

한 참을 돌아 찾아 간 곳은 부자집 보쌈으로 기억되는 정식집인데,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할 일 없는 늙은이들이 기장 바닷가를 맴돌며, 커피 집에서 시간 죽이는 것 또한 얼마만이던가

 

 

     

처 자식에 코 끼어 끌려간 조진현씨가 오후 4시쯤 광안리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온 듯 했다.

일찍부터 광안리 칠성횟집에 자리 잡았으나, 운전해 집에 가려면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친구가 있어도 술이 없으니, 앙코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신경림선생의 시처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그래! 바로 이거다.

다들 개털로 살지만, 하고 싶은 것 하며 재미있게 살았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치 보지 않고 꼴리는 대로 살아온 친구들의 쌍다구를 바라보니, 다들 잘 살았다 싶었다.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는 물거품에 불과하지 않던가.

우린 다시 청춘시절을 즐기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쉽지만, 헤어질 시간이 되니 조진현씨가 다가와 기름 값을 찔러주었다.

기름 떨어진 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친구니까 이심전심인 게야.

고맙다! 친구들아~ 부디 건강이나 잘 챙겨라.

 

사진, / 조문호

 

 

 

 

 

 

 

 

 

 

 

 

 

 

 

 

 

 

 

 

 

 

 

 

 

 

 

 

 

 

 

 

 

 


산전수전 다 겪은 록 뮤직 메니아


* 곰내재공원 대표

'인사동 정보 > 인사동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효준(서울시립미술관장)  (0) 2013.03.11
이지녀(국악인및 무당)  (0) 2013.03.11
박구경(시인)  (0) 2013.03.11
노인자(주부)  (0) 2013.03.11
전인경(서양화가)  (0) 2013.03.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