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해 대한항공 TV광고에 이용된 ‘아침을 기다리며’.

마이클 케나가 2007년 발표한 솔섬 사진. ‘Pine Trees’ 연작 중 한 컷.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물에 비친 소나무 섬의 사진 가격은 30만 원일까, 3억 원일까? 국내 대기업이 해외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과 유사하게 찍은 사진을 광고에 사용했다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올해 1월 14일 영국의 사진가 마이클 케나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에 대해 한국 대기업들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우선 대한항공과 다퉈 보겠다며 광고가 종영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3억 원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법원의 결론과 상관없이 사진의 저작권이 공론화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문제가 된 사진은 강원 삼척시의 솔섬이라는 섬의 사진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속섬인데 삼척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이클 케나의 작품이 발표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케나는 2007년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모래톱 위에 서 있는 3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물에 비치는 장면을 흑백 사진 몇 장으로 표현하며 ‘Pine Trees’라는 제목을 붙였고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은 솔섬을 케나의 전유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기가 그린 그림과 일기장도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면 저작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법 정신과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케나가 현재 소송 대리인인 공근혜갤러리에서 1월 10일∼2월 23일 최근 2년간 작업한 한중일의 풍경 사진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2006년 제2회 삼척관광사진공모전에서 최종준 작가가 이 섬을 촬영해 ‘호산의 여명’이라는 제목으로 입선한 적도 있기 때문에 원조를 주장하는 것도 무리라는 게 사진계의 중론이다.

인터넷에는 속섬에 대한 수천 건의 촬영 정보가 넘치고 있다. 카메라의 각종 수치와 찾아가는 길, 적정 시간과 촬영 포인트까지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배 인심처럼 후한 게 사진 인심이다. 외국과 달리 촬영 정보를 나누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아마추어 작가들은 수십 명씩 팀을 꾸려 다니면서 같은 사진을 찍어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많은 작가들이 솔섬을 촬영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싼 가격이나, 말 잘하면 공짜로도 사진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2011년 8월 ‘감동이 솔솔’이라는 15초짜리 TV 광고를 만들면서 아마추어 사진가의 솔섬 사진을 사용했다. 이 사진은 2010년도 제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50여 점의 작품 중 하나인 ‘아침을 기다리며’라는 사진이었다. 당시 작가는 상장과 함께 국내선 왕복 이코노미클래스 항공권 2장을 받았을 뿐이었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음원에 대한 저작권이 포괄적으로 인정되면서 작곡가들의 삶이 예전에 비해 한결 나아졌다. 예술이 배고픈 직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점점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무조건 저작권을 들이밀며 상식을 넘어서는 돈을 요구하는 에이전시의 태도도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아마추어 작가들 스스로 땀 흘려 만든 작품을 너무 쉽게 기업이나 단체에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세계적인 사진 작가 마이클 케나가 오는 14일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외국 작가가 한국 법원에 선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케나의 작품을 둘러싸고 법정 분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케나는 지난 2007년 강원도 삼척의 조그마한 섬, '속섬'을 찍었는데요, 섬에 심어진 소나무 덕분에 '솔섬(Pine trees)'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됐고, 물 위에 떠있는 고요한 이미지 덕분에 케나도 국내에서 꽤 유명세를 얻게 됐습니다.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LNG 생산기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솔섬도 여론에 힘입어 보존이 되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11년 대한항공이 '솔섬'과 비슷한 사진을 TV 광고로 내면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대한항공이 광고에 사용한 사진은 대한항공이 주최한 사진상의 입선작으로 아마추어 작가의 작품이었는데요, 케나 측은 이 광고 사진의 구도 자체가 케나의 사진과 비슷해서 케나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아무런 통보도 없었다는 데도 유감을 표시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케나 이전에도 솔섬을 촬영한 작가는 많다"며, "광고에 사용한 사진도 배경, 색상이 흑백 사진인 케나의 작품과 달라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풍경 사진 '저작권'에 대한 정확한 판례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사진 전문가,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고요, 그래서 일반 사진 동호인들도 풍경 사진을 찍어야 할지 말지 헷갈린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저작권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건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안이어서 이번 판결이 어떻게 나올 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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