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임창규 기자]

 

필묵의 자유로운 구사를 통한 전통서예(傳統書藝)의 방법적 해체와 한자조자신화(漢字造字神話)의 형상화적 시도를 추구하는 시중(時中) 변영문(邊榮文)작가가 '시중의 묵창'(時中의 墨窓)을 주제로 한 두 번째 개인전이 5월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시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다.

변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서예의 경계 허물기와 전통서예의 방법적 해체로부터 전개되는 그만의 창조적 필의 세계는 다시 한 번 전하여 원형적 서예언어인 그 조자신화세계(造字神話世界)에로의 회귀와 그 형상화 활동으로 전개된다.

또 작가는 완고한 법고(法古)의 자세에서 벗어나 다양한 표현방법과 대중 친화적인 조형미감으로 새로운 시도와 함께, 조자신화 속에 온장되어 있는 서예 문자적 조형언어와 그 예술적 정신을 찾아 응용하면서 원초적 형상화의 재현을 모색한다.



'시중의 묵창'에서 묵창(墨窓)의 묵(墨)은 필묵의 도구를 빌어 이루어 내는 서예를 가리키며, 창(窓)은 창문(窓門)으로, 바깥 세계로부터 햇빛이나 공기가 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벽에 만들어 놓은 문을 가리킨다.

한편 변영문씨는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이며, (사)한국서예협회 운영위원장 및 이사장과 서울지회장을 역임했으며, 2002 대통령상과 2003 효원문화상을 수상했다.

 




미수전 여는 서예가 양진니 선생
“먼저 인간 돼야 글씨도 무르익어”

 

 

 

한 자루 붓에 의지해 헤쳐 온 삶이었다. 원로 서예가 우죽(友竹) 양진니(87·사진)씨는 지필묵(紙筆墨)과 함께한 서예인생이 호(號) 그대로 대나무처럼 굳세고 반듯했다고 돌아봤다. 평생 손톱 밑에 스며든 먹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여섯 살에 서예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80여 년 붓을 놓지 않았으니 한국 서단(書壇)에서 드문 일이다.

 “소전 손재형, 운여 김광업 선생께 받은 가르침을 후학들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었지요. 글씨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4~5년마다 개인전을 엽니다. 나의 필적을 인정해 주고 따라주는 문하생들, 누추한 서실을 이따금 찾아주시는 지인들 덕이지요.”

 우죽은 2010년 회고전에 이어 16~22일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미수(米壽)전’을 연다. 한자 서체로부터 한글 서예까지 붓글씨의 모든 것을 망라한 40여 점을 내놨다. 서울 인사동 우죽서실(友竹書室)에서 함께 공부하는 제자 56명이 근작을 출품해 회원전을 겸하니 사제의 정이 넘치는 특별전이 됐다.

 “요즘 사람들은 붓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자유분방한 창작 서예 쪽으로 가려해요. 서예는 마음을 담는 예술입니다. 먼저 인간이 돼야 글씨도 무르익죠. 문자향(文字香)은 인품향(人品香)이라 할 수 있어요. 좋은 옛 글씨본을 꾸준히 보고 쓰는 임서(臨書)가 곧 창작이자 서도(書道)임을 보여주고 싶었죠.”

 우죽은 지난해 발족한 서예진흥위원회의 정책자문위원이다. 한국서예협회 이사장으로 일할 때 국회에 청원서를 내어 대학에 서예학과를 신설하게 만든 그는 “서예가 학교 현장에서 인성교육의 핵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모든 애착을 버려야 할 시간, 서심화야(書心畵也)란 말이 있죠.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그려놓은 것이란 뜻입니다. 묵향 또한 유한하긴 하나 내가 남기고 가는 글씨가 그윽한 향기로 오래 남았으면 더없이 행복하겠어요.”

중앙일보/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정하건 선생.

 

서예 대가 정하건 선생, 팔순기념전 열어
40년 이상 인사동 지키며 서예 부흥 염원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70~80년대만 해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글씨 꽤나 쓰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참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죠. 동양의 정신문화가 '시·서·화'에 담겨있지 않나요? 서예 문화가 다시금 부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인사동을 떠나지 않고 있어요. 취미로라도 사람들이 서예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서울 인사동에서 서예를 공부하는 서실을 찾기란 예전만큼 흔치 않다. 골동품과 동양화를 비집고 서양화 위주의 현대미술이 인사동을 점령하면서 서실 역시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 남아있는 서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도 이 중엔 40년 넘게 인사동을 지켜온 서실이 있다. 인사동길 대로변 칼국수집 건물 4층에 위치한 송천서회다. 지난 3일 저녁 7시께 찾은 서실에는 15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직장인 너댓명이 먹물 머금은 붓으로 화선지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작업실 안쪽으로는 이들의 스승인 송천(松川) 정하건 선생의 사무실이 자리해 있다.

사무실에서 정하건 선생을 만났다. 각종 서예관련 책들과 글씨 작품들, 벼루와 붓들이 수도 없어 묵향이 진동했다. 정 선생은 여전히 밥 먹고 잠시 쉬는 일 말고는 하루 종일 글씨를 쓰고 가르치고, 책을 보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오랜 수련과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서예를 평생 해왔기 때문인지 선생의 몸과 얼굴은 굉장히 말라 보였다. 그러나 눈빛은 살아있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원로 서예가인 정 선생은 웅강한 육조체를 기본으로 예서, 해서, 전서 등 모든 서체를 두루 섭렵한 대가다. 추사 이래 최고의 서예가로 꼽히는 검여 유희강으로부터 한문 서예를 사사하고, 갈물 이철경에게 한글서예를 배웠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최고상인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두 번 씩이나 수상한 이력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한글과 한문을 병용해 작성한 9000여 자에 이르는 대작인 조계사 '사적비'를 비롯해 해인사 '자운대율사비문', 임경업장군 묘역정화비문 등이 있다. 그는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과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에게 서예를 가르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7년간 자신의 글씨 스승이 됐던 정 선생에게 이 회장은 "제 2의 추사가 되시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송천 선생 역시 가장 존경하는 서예가로 '추사'를 뽑고 있다. 그의 삶은 추사의 글씨를 모방하고, 연구하며 살아온 세월이기도 하다. 정 선생은 "추사의 힘찬 필맥을 숭모한다. 거기에 우아한 멋을 풍기는 나의 개성을 담아 글씨를 쓰고자 했다"고 고백했다.

정 선생이 서예로 인생을 살아온 데에는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고향 연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종이가 귀했던 시절 할아버지가 분판에 먹으로 글씨를 써 주면 그대로 따라서 몇 번이고 물걸레로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주경야독하며 공부했고, 대학 1학년 때 한글로 독립선언서를 썼던 작품이 국전에 입선했다. 하지만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국전에서 입선과 낙선을 반복하다 최고상을 타기까지는 24년이 걸렸다. 그런 가운데 서예가 유희강의 인사동 서실을 이어받아 1973년 송천서회를 만들었고, 지금껏 제자들을 길러오고 있다. 또한 매년 제자들의 작품으로 기획한 서예그룹전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50여명이 그의 문하생으로 서예를 배우고 있다.

그런 송천 선생이 올해 팔순을 맞아 개인전을 열고 있다. 10년마다 한 번씩 자신의 글씨를 한데 모아 보여주는 전시다. 서른 살 개인전 이후 여섯 번째다. 행서, 해서, 전서 등 선생의 원숙한 서예관이 깃든 다양한 서체의 작품 130여점이 나왔다. 우리나라 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노산 이은상의 '조국강산'을 2700여자의 글씨로 써 내려간 대작 부터 '호현낙선(好賢樂善, 어짐을 좋아하고 선함을 즐긴다), '지고지순(至高至順,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함)', '좌금우서(左琴右書, 거문고와 책을 늘 곁에 두고 즐긴다)' 등 송천의 최신작들이다. 한글은 물론 한문과 국한문 혼용체 글씨들이 섞여 있다. 작품들을 보면 '사람과 글은 세월이 흘러야 갖춰진다'는 '인서구노(人書俱老)'를 실현하고 있는 노장의 혼이 느껴진다. 그는 "10년 후에 90세가 되는데, 그 때는 전각작품을 100여 점 내보이고 싶다.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100세전'도 하고 싶다"고 했다. 11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 문의 02-779-6318.


붓글에 일가를 이룬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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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명품 방송으로 더 유명해진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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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의 이름을 걸고 붓글 가르치는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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