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전 여는 서예가 양진니 선생
“먼저 인간 돼야 글씨도 무르익어”

 

 

 

한 자루 붓에 의지해 헤쳐 온 삶이었다. 원로 서예가 우죽(友竹) 양진니(87·사진)씨는 지필묵(紙筆墨)과 함께한 서예인생이 호(號) 그대로 대나무처럼 굳세고 반듯했다고 돌아봤다. 평생 손톱 밑에 스며든 먹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여섯 살에 서예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80여 년 붓을 놓지 않았으니 한국 서단(書壇)에서 드문 일이다.

 “소전 손재형, 운여 김광업 선생께 받은 가르침을 후학들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었지요. 글씨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4~5년마다 개인전을 엽니다. 나의 필적을 인정해 주고 따라주는 문하생들, 누추한 서실을 이따금 찾아주시는 지인들 덕이지요.”

 우죽은 2010년 회고전에 이어 16~22일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미수(米壽)전’을 연다. 한자 서체로부터 한글 서예까지 붓글씨의 모든 것을 망라한 40여 점을 내놨다. 서울 인사동 우죽서실(友竹書室)에서 함께 공부하는 제자 56명이 근작을 출품해 회원전을 겸하니 사제의 정이 넘치는 특별전이 됐다.

 “요즘 사람들은 붓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자유분방한 창작 서예 쪽으로 가려해요. 서예는 마음을 담는 예술입니다. 먼저 인간이 돼야 글씨도 무르익죠. 문자향(文字香)은 인품향(人品香)이라 할 수 있어요. 좋은 옛 글씨본을 꾸준히 보고 쓰는 임서(臨書)가 곧 창작이자 서도(書道)임을 보여주고 싶었죠.”

 우죽은 지난해 발족한 서예진흥위원회의 정책자문위원이다. 한국서예협회 이사장으로 일할 때 국회에 청원서를 내어 대학에 서예학과를 신설하게 만든 그는 “서예가 학교 현장에서 인성교육의 핵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모든 애착을 버려야 할 시간, 서심화야(書心畵也)란 말이 있죠.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그려놓은 것이란 뜻입니다. 묵향 또한 유한하긴 하나 내가 남기고 가는 글씨가 그윽한 향기로 오래 남았으면 더없이 행복하겠어요.”

중앙일보/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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