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현의 사진일기

배추벌레 잡아준 날

이곳에는 비가 꽤 많이 왔습니다. 배추는 물을 주는 대로 자란다고 했는데 막 모종을 심고 바로는 신경을 못 썼습니다. 그러다 비가 오니까 배추 물 안 줬는데 비가 오니 배추 잘 자라겠다고 생각하며 물 주는 것을 게을리했습니다. 어느 날은 배추벌레 안 잡아주면 다 없어지겠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올라갔더니 배춧잎 하나에 벌레가 세 마리씩 붙어있었습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모든 배추에 벌레가 그렇게 붙어서 갉아먹으니 배추벌레를 안 잡아주면 배추가 없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젓가락으로 열심히 잡아줘서 다한 줄 알았더니, 다음날 가보니 벌레가 또 있었습니다. 벌레는 계속 생기고 잡아 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벌레를 잡아주면서 자세히 보니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배추 속을 파먹는 벌레는 거미줄 같은 실로 막아놓고 거기서 잎을 갉아먹고 커지면 나와서 속을 파먹습니다. 그리고 초록색 배추벌레, 배추 겉잎에 붙어있는 송충이, 너무 작은 벌레가 있어서 배추에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열심히 찾다가 갑자기 뚱뚱한 벌레가 나오면 너무 놀라서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건 차마 손으로 죽일 수가 없어서 실눈을 뜨고 조심히 집어 돌로 꾹 눌러놓습니다. 벌레 잡는 일이라니...!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해야 하는 것이라니..!  

 

근데 이 배추 안에서도 배추벌레 말고도 다양한 곤충들 여치 개미 그리고 거미 등 다양한 생명들이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있어, 배추를 먹는 벌레가 있으니 그 벌레를 잡아먹는 곤충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09 12 배추
09 27 배추
배추벌레
배추에 거미

길가에 벚나무는 일찍이 낙엽이 다 떨어졌습니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고 하얀 구절초가 피었습니다. 가을에 피는 국화도 꽃망울이 몽글몽글 맺혔습니다. 여름밤 더웠던 열기를 식혔던 밤바람이 이제는 꽤 쌀쌀해졌습니다. 자연에서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창 자랐던 여름날을 지나 꽃을 피우고 씨가 여물어가고 나무들은 낙엽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여름내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곳의 풀들도 아주 잘 자랐습니다. 그것들도 씨를 퍼뜨려야 하니까요. 여기저기 산자락 그리고 밭에까지 뻗어온 칡도 꽃이 피고 씨가 맺혔습니다. 내년에도 많은 풀과 함께 해야겠습니다. 바람이 차고 날씨가 쌀쌀해지는 만큼 감나무의 감도 익어가고 밤나무에 밤도 후드득 떨어집니다. 가을비가 오고 나면 날이 더 추워지고 바람도 차고 하늘의 구름도 달라집니다. 덥지 않지만 햇빛은 더 뜨겁게 느껴집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씩 보이고 느껴질 때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구절초

자연에서 계절이 바뀌어가는 모습들을 보고 있습니다. 생명들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고 이곳의 농작물들을 거두어들이면서 겨울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여름날 늦게 심은 참깨와 고구마, , 호박등 밭에 있는 작물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리고 마늘 심을 밭도 준비해야 하지요. 이곳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서 제 몸이 온전히 이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는 것이 즐겁습니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닐 적 건물 안에서만 모든 시간을 보냈던 때에는 계절도 날씨도 그저 지나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 역시 날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날씨가 중요하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도시에서 일할 때는 항상 건물 안, 출근할 때 지하철을 타고 들어가면 해가 다 지고 나올 때야 깜깜한 하늘을 봤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출근길이 좀 불편한 것만 빼면 바람이 선선해지고 날이 무더운 것도 영향이 없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자연과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양이현의 사진일기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주말의 봄에실농장에는 또 다른 시원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평이를 위해 정원 모퉁이에 물놀이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온종일 물놀이에 빠진 평이의 모습에, 구경하는 나까지 시원함을 느꼈다.

 

사실, 고양이처럼 물을 겁내는 늙은이라, 여태 바닷가에 갈 기회가 생겨도 물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오래전 물놀이하다 죽을 뻔한 이후부터 생긴 물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지난 주말 역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낮에는 일손을 놓아야 했다.

집안에 들어가도 푹푹 찌는 더위라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얼마 전 인근 고속도로 발파작업으로 지붕의 기와가 흔들려 비가 새기 시작했는데,

공사장 측에서 임시방편으로 지붕 전체를 천막으로 감싼 이후 부터다.

 

김창복씨는 그 무더운 날 닭을 잡아 삶았고, 나는 이현이 따라 옥수수를 땄다.

 

옥수수를 삶아 다 같이 하모니카 합주로 토종 맛에 빠지기도 했고,

수박 화채로 더위를 식히는 여유로운 주말을 보낸 것이다.

 

잠시만 움직여도 땀이 팥죽같이 흘러내려, 그늘막에 앉아 담배나 피우며 평이 물놀이 구경을 했다.

 

물에 들어오라는 평이 재촉에 못 이겨, 잠깐 놀아주러 들어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하수를 뽑아 올린 찬물이라 지긋지긋한 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족욕이나 즐겨야 할 늙은이가 어린애처럼 물장구치는 꼴불견이었으나,

정신이 번쩍 드는 시원함에는 쪽팔려 죽어도 좋았다.

 

턱 위에 올라가 다이빙한다며 퐁당거리는 추태까지 보였으니, 나이를 잊어버린 것이다.

 

다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 지 않던가? ㅎㅎ

 

사진: 정영신, 조문호/ : 조문호

 

토종이 맛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식탁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식량 증산을 위해 새 품종으로 개량했기 때문인데, 크고 매끈한 것만 찾는 소비자의 성향도 한 몫 했다.

'농업진흥청'에서 개량한 종자만 사용하다 보니, 토종이 설 자리를 잃어 씨를 말려 버렸다.

 

요즘 나온 과일이나 농산물을 먹다 보면 대개 맛이 없다.

다들 왜 옛날 맛이 나지 않을까?” 궁금해 하지만, 종자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아산의 김창복씨는 유기농으로 토종만 고집하는 농삿꾼이다.

토종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긴 세월 토종 씨앗을 구하러 수소문하고 다녔다.

현재 보유한 종자만 수십 종에 달한단다.

 

수집한 토종 씨앗으로 재배해, 그 농장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토종이다.

그러나 수확량도 적지만 때깔이 작고 못생겨 상품화될 수가 없었다.

돈은 못 버는 대신, 식구들은 옛 맛의 진수를 본다.

 

지루한 장마로 지지난 주말엔 봄에실농장에 가지 못했다.

지난 주말에도 장마가 이어진다는 일기예보였으나, 일기예보가 빗나기를 바라며 갔다.

일주일만 가지 않으면 잡초가 농작물을 뒤덮기도 하지만, 자란 야채를 따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비는 그치지 않고, 젖은 땅을 쉼 없이 적셨다.

지난 폭우에 언덕길이 무너지는 불상사는 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단다.

지척에서 울어대는 맹꽁이 소리를 음악 삼아 멍 때리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선우는 옥수수를 삶아왔다. 하나같이 어린 애 손처럼 작고 앙증맞았으나, 맛은 달랐다.

마치 늙은이의 치아처럼 생겼는데, 옥수수 알은 빠지거나 엇갈린 것이 더 맛있었다.

그래, 어릴 때 맛본 이 맛이야! 입맛이 변한 게 아니라 종자가 달랐구나

맛있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니, 고양이도 먹고 싶어 창 너머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김창복씨는 빗방울이 약해지니, 그사이를 못 참고 신발을 거둬 빗물에 씻어 왔다.

참 부지런한 분인데, 게으른 놈은 옆에 있기가 참 민망하다.

 

이현이는 정동지가 갖다 준 옷으로 패션쇼 하느라 바빴다.

이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한 바퀴 돌고 가더니,

두 번째는 쌕시 모드라며 짧은 바지에 선그라스 까지 끼고 나와 한바탕 웃겼다.

 

비 덕분에 복에 없는 호강을 했다.

토종작물을 특화하여 파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왔다.

거지의 삼중생활은 고달프지만 즐겁다.

 

사진,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봄에실’은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농장 이름이다.

그곳에는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동지 외에 또 다른 대식구가 있다.

 

고양이 4대가 함께 살며 농장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갈 때마다 꼬리를 치켜세워 반가운 기색은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항상 거리를 두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편안한 가족관계를 유지한다.

 

함께 모인 것을 보지 못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여 마리 되는 것 같았다.

들쥐나 뱀을 쫓아주는 고마운 일을 하지만, 그들이 먹어 치우는 사료 값이 만만찮다.

 

 4대가 한 가족을 이룬 농장에 유일하게 입양된 갈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다들 야생으로 사는 것이 체질화되었으나, 그 냥이만 방에 살던 미련이 남아,

높은 곳에 올라가 창으로 방안을 내려다 보았다.

안쓰럽지만, 곧 자유로운 야생에 익숙해질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을 때는 들쥐가 닭장에 들어가 닭을 잡아가기도 하고

풀밭에 뱀이 도사리고 앉아 일하는 사람을 놀라게도 했으나,

고양이 방위사령부가 지킨 후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주말마다 농장에가니 일주일이 총알같다.

 

문제는 몸이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데 있다.

 

더구나 장마철이라 그런지 몸은 쇳덩이처럼 무겁고,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지난 주말에는 김창복씨가 몸보신시켜 준다며 닭을 두 마리나 잡았다.

더운 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엄나무와 푹 삶아 놓았더라.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 넓은 농장의 잡초를 깨끗이 베어내고,

나무 가지치기까지 해 정원을 말끔하게 단장해 놓았다.

 

연못에는 물이 고여 곳곳에 개구리알이 둥지 틀었고,

심어놓은 야채는 싱싱하게 자라, 가지도 고추도 거시기보다 더 컸다.

 

정동지는 백반을 챙겨와 이현이에게 봉숭화 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잠시도 쉴 틈 없는 김선생께는 발판 겸 책꽂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판자를 잘라 못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로 갈고,

선우는 콩기름까지 먹여 발 딛기 민망할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날 오찬에는 선우가 연잎밥을 지었는데, 너무 예뻐 먹기 아까웠다.

오래전, 도예가 조상권씨 공방에서 먹어본 후, 두 번째 맛보는 연잎밥이었다.

입안에 번지는 향이 감칠맛이었다.

 

남정네 빰치는 작은 여장부 김선우는 일 솜씨뿐 아니라 음식솜씨도 대단했다.

거기다 양이현의 부지런함이나 인정스러움은 요즘 소녀가 아니다.

듬직한 평이의 재치 역시 부전자전이다.

 

대단한 분이 모여 사는 농장에 얼치기 두 명이 끼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도움은커녕 일거리만 만드는 편인데, 갈 때마다 신세만 진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 일을 어쩌지?

 

사진, 글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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