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비 시냇물은 말고 얕은데 一曲溪流淺
삼경이라 달 그림자 저물었구나 三更月影殘
손님네 어서 와서 옥피리 불어라 客來吹玉篴
홀로 서서 추위를 이기지 못하니 獨立不勝寒

- 정도전(鄭道傳),「 매화를 읊다[詠梅]」,『 삼봉집(三峰集)』

 

 

정선, 백악부아암, 종이, 39.4×23cm, 개인 소장


경복궁 뒤쪽에 우뚝 솟아오른 백악산(白岳山)의 행정 지명으로는 북악산(北岳山)이다. 그래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의 『서울지명사전』이나 국토지리정보원의 『한국의 산지』에서는 북악산만 있을 뿐 백악산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름은 백악(白岳, 白嶽), 북악(北岳, 北嶽), 면악(面岳) 또는 공극산(拱極山)이라고 불렀는데 『동국여지승람』이나『 문헌비고』,『 한경지략』에서 섞어서 썼으면서도 주로는 백악이라 했다. 나는 백악이란 낱말이 좋다. 역사성도 그렇지만 백악이라는 낱말이 풍기는 소리 느낌이 좋아서다.

백악산은 고려시대 이래 왕의 기운[王氣]이 서린 땅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태조 이성계가 이 산 아래 도읍했다. 지금 광화문 앞 세종로라 부르는 육조대로 네거리에서 보면 뾰쪽한 모습이 너무도 신기하다. 그런데 네거리의 고종황제 칭경기념비각 → 이순신장군 동상 → 해치상 → 광화문 → 청와대 → 백악산이 직선으로 올곧지 않다. 이렇게 중심축을 조금 틀어놓은 까닭은 불의 산인 관악산 불덩이가 경복궁에 미치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틀어 놓고 보니 광화문이며 청와대 지붕은 물론 세모진 백악산 모습이 훤히 잘 보인다. 그러고 보면 불기운을 방어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시야를 가리지 않고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게 아닌가 싶다.

천년왕국 도읍 한양의 진산이자 경복궁의 주산인 백악산은 높이 343.4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여기저기 나무들이 자라서 푸른 빛을 갖추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여전히 화강암 덩어리다. 아마도 수수만년 전에는 흰 산이었을 게다. 실제로 산의 서쪽은 흰 바위 속살을 드러낸 채 가파르게 기운 절벽이다.

북악산의 남쪽에는 주로 소나무를 심었다. <동궐도>나 옛 그림들에 소나무 숲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소나무는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와 나란히 심지 않는다. 함께 있으면 이기지 못하므로 소나무만 따로 심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일제가 1930년대에 소나무를 대량으로 베어내 버렸고 그 뒤로 갈참나무, 굴참나무와 같은 참나무 숲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북악산 북서쪽 부암동 54번지 일대는 400년 전 개성에서 가져온 능금 씨앗을 뿌려 능금나무 단지를 만들었던 장소가 있다. 창의문에서 북악산길로 가다 보면 아래쪽이다. 이곳의 토질이 미사토여서 능금이 잘 자라는데 궁궐 수라간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엔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뒷날 무려 40만 평이나 되는 거대한 능금 과수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신기한 건 이곳 능금나무는 다른 곳으로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왕의 기운이 서린 백악산에서만 가능했던 왕의 능금이었던 셈이다. 북악산 동남쪽에는 갈참나무, 아카시아, 벚나무가 울창한데 1930년대 소나무 숲 제거사건으로 그렇게 바뀌고 말았다. 하지만 충청도 세종시로 내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국무총리가 사용하던 삼청동 공관 터에는 오래된 등나무,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이들 나무 가운데 등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이고 측백나무는 대체로 키가 작은데 이 나무만은 유난히 그 높이가 11m나 되어 가장 크다. 이 역시 왕의 기운을 한껏 받아 그런 것일 게다.

북악 일대는 한양 명승지가 모여있는 땅이다. 산은 작아도 깊은 땅이어서 서쪽 궁정동엔 대은암, 맷돌바위, 병풍바위가 만리뢰, 박우물을 거느리고 있고 또 동쪽 삼청동엔 기천석, 말바위, 민바위, 부엉바위, 영월암과 같은 바위며, 성제정, 양푼우물, 영수곡과 같은 우물이 즐비하다. 그러므로 『동국여지비고』에서 백악 기슭이야말로 산 맑고[山淸] 물 맑고[水淸] 사람까지 맑아[人淸]세 가지가 맑은 삼청(三淸)이라 했던 게다.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왕인 오늘의 대통령 또한 그렇게 맑은 곳에서 맑은 기운으로 맑게 다스리길 간절히 소망한다. 태조와 더불어 천년왕국의 설계자였 던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매화 보며 읊조린 노래처럼 당신 홀로 외롭지 않기를 말이다.

 

 
글 / 최 열


그림의 뜻 / 정선 - <백악산>

​최 열 / 인물미술사학회 회장

산새는 울음 그치고 꽃은 져서 날아간다 山禽啼盡落花飛
나그네는 못가도 봄은 벌써 가버렸지 客子未歸春巳歸
갑자기 남녘 바람 정을 불러 일으키니 忽有南風情思在
뜰을 휩쓸어라 고운 풀 우거졌네 解吹庭草也依依

 

- 정도전(鄭道傳), 「사월초하루」, 『삼봉집(三峰集)』

                                      정선, 백악산, 종이,44×33.5cm, 개인 소장


정선은 백악산을 여러 폭 그렸는데 이 작품 <백악산 취미대>는 취미대가 아니라 백악산 전경을 그린 작품이다. 우뚝 솟은 백악의 위용이 대단한데 하단을 받쳐주는 구름 물결이 좌우로 장강처럼 흐르니 마치 하늘에 뜬 산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구름 물결 아래 검푸른 숲이다. 경복궁 북쪽 담장쯤일 터이다. 그렇게 경복궁을 감춰두고 구름 물결 위쪽에 가파르게 취미대 터를 배치함으로써 이 땅이 신비한 장소임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 백악산에는 백악신사(白岳神祠)만이 아니라 저 삼각산의 신령까지 모시는 삼각신사(三角神祠)까지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신령스런 땅이었다.

그림에 구름 물결 흐르는 장소는 오늘날 청와대 터다. 이 땅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이 터에 처음으로 궁궐이 들어선 때는
『고려사』에 나오듯이 고려 숙종 6년째인 1101년 9월 남경(南京) 궁궐을 개창하면서이다. 그때 이곳을 답사한 신하들은 다음처럼 아뢰었다.
“저희들이 노원역, 해촌, 용산에 가서 산수를 살펴본 즉 도읍을 정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面嶽)의 남쪽 산수 형세가 옛 문헌의 기록에 부합되오니 청컨대 삼각산 주룡의 중심 지점인 남향관에 그 지형대로 도읍을 건설하소서라고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고려사』, 숙종 6년 10월)

그러니까 지금 청와대가 들어앉은 자리는 고려 남경궁궐 터인 셈이다. 그렇게 300년을 내려오다가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천도를 위해 권중화(權仲和)로 하여금 궁궐터를 조사하라고 하였더니 『태조실록』 1394년 9월에 아뢰기를 고려 때의 남경 궁궐터가 너무 좁으므로 그 남쪽으로 내려와 개창할 것을 아뢰었고 그렇게 해서 건설한 것이 바로 오늘의 경복궁이다. 이렇게 되자 남경 궁궐터를 후원(後苑)으로 삼아 여러 정자를 지었고 또 상림원(上林苑)을 두어 기화요초를 기르는 식물원으로 가꾸었다. 또한, 농번기 때면 왕과 왕비가 친히 이곳에서 모심기하는 친경(親耕)의 현장이었으며 대원군 때는 후원 둘레에 담장을 설치하고서 문무 대과를 치르는 시험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910년대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출몰하였으므로 ‘금호방(禁虎榜)’이라고 쓴 팻말이 붙어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기간 내내 그러한 땅이었다가 1939년 9월에 접어들어 이곳에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섰다. 경복궁을 헐어내고 1926년 조선총독부를 완공한 때로부터 무려 14년이나 지난 뒤인데 그때까지 총독관저는 남산 밑 필동 2가에 위치한 화장대(和將臺)였다. 조선총독은 이곳 관저로 이주해 오면서 건물 이름을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렀다. 경무대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철근콘크리트에 백색 타일을 발랐는데 무엇보다도 지붕이 광채 나는 청색(靑色)으로 아주 먼 거리에서도 그 색깔이 눈에 띌만했다고 한다.

6년이 지난 1945년 해방이 되고 9월 미 군정이 시작됨에 따라 군정장관 Hodge 중장,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이승만 대통령이 차례로 사용했다. 일본인 통치자가 사용하던 이름인 경무대라는 이름을 청와대(靑瓦臺)로 바꾼 것은 4·19혁명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다. 물론 이 건물은 1993년 10월 철거해 버렸고 지금의 청와대 건물은 1992년에 지은 것이다. 고려 숙종이며 조선 태조는 물론 일제 총독, 미 군정 장관,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땅과 그 건물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 모두 이슬처럼 사라지고 만다. 오직 유구한 것은 저처럼 우뚝한 산, 백악의 자태요, 흐르는 구름일 뿐. 요즘 남녘 바다 세월호의 비참으로 힘겨운 나날인데 정말이지 청와대가 평안하기를 소망하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사월초하루」에 불렀던 슬픈 노래 읊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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