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오후4시 무렵, 인사동으로 전시보러 갔다.
김명성씨 개인 소장전으로 잘 못 알아, 나도 사진을 보낸 전시다.




전시장소로 정해 진 ‘베르린미술관’이 ‘콩세유갤러리’로 바뀌었더라.
대형 갤러리인 ‘베르린미술관’이 대관전 유치가 어려운데다, 기획전 잇기도 쉽지않아,

운영하던 지승룡씨가 다른 분에게 넘긴 것 같았다.



 
그런데, 전시장 입구에 ‘평화와 상생을 위한 대한민국 다른 백년운동 기금마련전’이라고 붙어 있었다.

“이게 뭔가?” 장소를 잘 못 찾은 게 아닌 가 했으나, 참여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물론, 전시 목적을 사전에 알아보지 못한 나의 불찰도 있지만,
출품작가에게 전시 취지 정도는 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얼마 전부터 가난한 예술인을 돕는다는 허울 좋은 모금전을 비롯하여
‘민예총기금마련전’, ‘환경재단 기금마련전’ 등이 수시로 열려 기금마련전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물론, 참여작가야 손해 볼 것 없다.
작품이 팔리면 판매금액의 반은 주최 측으로 가지만, 반은 챙겨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기획전이건 갤러리 마진을 고려하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그리고 대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시일수록 끼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것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전시장으로 내려가 보니, ‘주권자 전국회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체에서 마련한 기념마련전인데,
출품 작가로는 강연균, 김준권, 민정기, 신학철, 이철수, 정고암, 정비파, 황재형씨 등
민예총 소속의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었는데, 최규일, 이청운, 강찬모, 임채욱, 전인경씨 등
인사동 사람들로 분류되는 작가도 여럿 참여하고 있었다.




아마 출품 작이 부족해 인사동 작가의 대부 격인 김명성씨가 개입되어 도와준 것 같았다.
나 역시 김명성씨가 연락해 사진을 보냈는데, 아무리 가까워도 지킬 건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난, 출품작을 제작할 여건도 되지 않지만 마침 만들어 둔 사진이 있어 그 중 두 점을 보낸 것이다.

그것도 삼년 전 충무로에서 개인전 할 때, 김명성씨가 찾아와 주문한 사진이었다.
한 변이 160cm나 되는 작품 10점을 부탁해 정영신씨가 부랴부랴 제작한 모양인데,
그 이후로 감감소식이었다고 한다.



사업에 문제가 생긴 김명성씨 사정을 잘 아는 정영신씨라 차마 전화도 못하고 혼자 냉가슴 앓았다고 한다.
만든 작품을 석 달이 넘도록 액자 집에 맡겨 두었는데, 찾아가라는 전화를 수십 번도 더 받았다고 한다.



찾아와도 보관할 곳도 없는데다, 200만원이 넘는 액자제작비가 없어서다,
결국 빚내어 작품은 찾아왔으나, 비좁은 방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승용차에는 실을 수도 없어 정선 에 갖다 둘 수도 없었다.

말 한마디 못한 채 그 짐을 머리에 이고 살았던 삼 년은 곤욕스러웠다.




그건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이번 전시는 다른 문제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르고, 똥개처럼 시키는 대로 작품 낸 자신이 부끄러웠다.
만만하고 믿으니 그랬겠지만, 한편으론 나를 우습게 본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전시장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이두엽, 김신용, 전인경, 전활철씨 등
아는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작품을 둘러보던 출품작가 민정기씨는 황급히 나가버렸다.
나 역시 기분이 언짢아 전시장을 빠져 나왔다.
인사동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 편할리가 없었다.




소주나 한 잔 할 생각에 ‘유목민’에 들렸는데, 김신용씨와 장경호씨가 있었다.
김신용시인의 산문집이 '시산맥'에서 나와 ‘유목민’에 맏겨 두었다고 했다.
“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떨어져 있네”란 산문집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뒤이어 조해인, 김명성, 전인경씨가 '유목민'에 나타났고,
최유진, 김승준, 임영균, 최효준, 노광래, 강찬모, 이인섭씨가 등장하며 술판이 무르익었다.
술집 골목을 지나가는 박기성씨를 만나기도 했다.




이리 한 잔 저리 한 잔 얻어 걸친 술에 맛이 갔다.
언짢았던 많은 생각들이 잊혀지는 것을 보니, 분명 술이 마약은 마약이었다.
택시를 탄 모양인데, 조해인씨가 다 왔다며 깨웠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 대접 받고 살 수 있을까?

사진, 글 / 조문호




































































비가 내린 지난 토요일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동자동 쪽방사람들의 행렬이 인사동을 메웠다.

‘남인사마당’에 집결한 빈민들은 북인사 마당을 돌아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그들이 외치는 “박근혜 방 빼!”라는 함성이 인사동 거리에 울려퍼졌다.

빗길 나들이의 외국 관광객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지나치는 행인들은 구호를 따라 외쳤다.

시냇물이 강물 되듯, 광화문으로 몰려든 시민들의 물결은 광화문 일대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곳곳에 울려 퍼지는 퇴진 함성과 음악소리에 들떠 추위도 잊게 했다.

어두워지자 경찰이 진을 친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으나,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오히려 전경을 위로하는 시민이 늘어나고, 전경들도 몸은 묶였으나 마음은 똑 같다는 듯 서로 일체감을 보였다.

밤늦은 시간, 인사동에서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 어디 있어? 광화문에 있으면, ‘여자만’으로 와”
빵조각으로 끼니는 메웠으나, 추위를 녹여줄 술 생각이 간절했던 터라 잽싸게 달려갔다.


‘여자만’에는 김명성씨와 김용국씨가 있었지만, 연락을 받았는지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고중록, 이강군, 김영배, 정영신, 신상철씨에 이어 인사동 어르신들도 오셨더라.

방배추로 통하는 시대의 협객 방동규선생과 강 민시인, 구중서, 전태수선생 등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시위현장에서 오신 것 같았다.

이미례씨가 차린 술상 옆에는 박기성씨와 김여옥씨도 있었지만, 긴 시간 퍼져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급히 마신 탓에 취기도 올랐지만, 시위현장에 복귀하기 위해서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인사동 거리는 붐볐다. 오히려 종로 방면은 사람이 빠져나가 보행이 다소 수월했다.

광화문 군중대열에 합세하여 또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 방 빼! 박근혜 방 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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